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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와 역설-David Bohm

조회 수 1951 추천 수 0 2014.11.03 06:15:07

                                                                         문제와 역설

 

문제라는 단어가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혼란 등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것일까? ‘문제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거기에 의문을 품을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현재의 난관들을 문제로 규정하고 대처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온다. 이런 사고는 어려움을 해결하기는커녕 상황 타개를 저해하는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제라는 영어 단어 ‘problem'의 어원은 그리스 단어로 앞으로 내놓다라는 의미다. 실제로도 이것이 단어의 핵심 의미다. 어떤 어려움 또는 부적절한 상황을 해결할 목적으로 제안된 아이디어를 토론이나 논의 대상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

하지만 문제 형태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경우에는 암묵적이고 내재적인 일정한 전제들이 깔려 있다. 이런 전제들 중에는 당연히 제기된 질문들이 합리적이며 모순되지 않는다는 가정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때로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되거나 자기모순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불합리한 문제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심리적으로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경우에,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문제라고 규정하면 잘못이 시정되기는커녕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설에 직면했다고 말하는 쪽이 맞다. 아첨에 약한 남자의 사례에서 역설은 그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속이고 싶은 더욱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이 견디기 힘든 무력감에서 그를 해방시키고, 내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잠시 행동을 멈추고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자기모순적인 욕구 또는 필요에 의해 하나부터 열까지 지배당하고 있으며, 그런 생각과 느낌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자각을 유지하는 데는 진지한 태도와 더불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른 것에 관심을 쏟으면서 현실로부터 도망치거나 자각을 회피하는 쪽이 훨씬 쉽다. 하지만 진지한 태도를 갖고 본인의 에너지를 쏟아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면 역설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자각할 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히 말만으로 또는 머리만으로 하는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역설의 근원을 자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불합리한가가 그야말로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지고 이해되기 때문에 결국 역설은 사라진다.

 

하지만 다음 사항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이 문제로 취급되는 한은 결코 해소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마음이 역설을 진짜 문제인 양 취급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역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붙잡혀 있게 된다. 문제는 해결책이 있지만 역설은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매번 내놓는 해결책이 적절치 않은 것으로 판명되고, 더욱 혼란스러운 새로운 질문들만 생겨날 뿐이다. ... 문제로 규정한 사실 때문에 역설을 둘러싼 활동이 더욱 강렬해지고 오히려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따라서 문제와 역설의 차이를 알고, 적합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설과 문제를 구별하는 것이 개인의 심리와 관련된 사항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양자의 구별은 인간관계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데도 무척 중요하다. 인간관계의 단절을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접근법이다.

: 부모와 자식 관계- 열린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잘 알지만 한편으로 마음을 닫고 소통을 거부하는 이런 상황이 바로 역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지배하는 역설적인 방식에 진지하게 지속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사고와는 분리된 독자적인 어떤 것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분리와 독립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역설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탐욕, 폭력, 자기기만, 공포, 공격성을 비롯하여 타락과 혼란을 조장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인식은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인간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이를 하나의 문제로 간주하면서 인간 본상에 내재된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모두가 일찍부터 깨달았던 사항이니만큼 극복하고 통제하려는 노력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모든 사회는 징벌 체계를 마련했다.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어 옳은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다. 모든 사회는 동시에 일련의 보상 체계를 만들었다. 방법은 반대지만 사람들이 옳은 행동을 하도록 유인하려는 목적은 동일하다. 징벌과 보상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인류는 각종 종교의 잘못된혹은 사악한사고와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하지만 이것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바라던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인간 본성 안의 무질서가 역설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문제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식으로는 이를 종식시킬 수가 없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시도들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결국에는 사회에 도움은커녕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현재 인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안에 내재된 무질서를 별개의 문제인양 다루는 바람에 야기된 어려움들이 가히 폭발적인 비율로 증가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감각과 몰지각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외부로 드러나는 혼란의 심층 원인은 내부의 생각과 감정의 역설인데, 무감각과 몰지각 때문에 이런 역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감정과 생각들이 사실은 철저한 역설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역설에 붙들린 정신은 필연적으로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 역설을 보지 못하고 자기모순적인 행동을 계속하려는 시도는 고통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정신은 이런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서 환상이 필요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환상을 만들고 거기에 안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그런 상태의 정신은 개인적인 관계든 사회적인 관계든, 인간관계 자체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문제사회의 문제해결하려는시도는 현재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확산하고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개인 및 사회문제들을 생각하는 사고 과정 자체가, 사고가 다루는 내용에 영향을 받고 통제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고는 자유롭지 않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강렬한 의식이다. 분석대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혼란스러운 사고 과정에서 야기되는 오류를 꿰뚫어볼 능력이 있는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식이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관계에서, 궁극적으로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라고 인식되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서 드러나는 많은 역설을 파악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분할되지 않은 전체를 염두에 두고 삶을 바라보고 지속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지속적으로 진지하고 진중하게 인간 정신의 속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랜 세월 계속된 부주의와 굳어진 타성으로 인해 정신은 여러 가지 역설에 빠져 있으며, 그로 인해 야기된 어려움을 외부에서 생긴 문제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데이비드 봄 <창조적 대화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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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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