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22

경청에 대해서

- 비참함을 넘어서는 상승의 날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성장과 자유가 있다.

 

- 빅터 플랭클 -

 

 

이 세상이 돌아가는 삶의 비참함의 현상들과 그리고 일상에서 소소히 벌어지는 단절의 아픔에 대한 파편들을 겪는 것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훈련과 활동에 관련된 서클로 진행되는 모임과 워크숍으로부터 얻는 여러 따사롭고 충일된 경험들을 비교하며 마치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이런 대비-경험속에서 주목하게 된 한 가지는 바로 경청하기의 신비이다. 마치 나에게는 지배체제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분열 그리고 이로 인한 고통어린 현실 그 저변에는 말해주기의 깊은 병적인 증상으로 인해, 즉 그러한 뿌리균과 팡이실로 인해 여기 저기서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는 버섯 현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두려움옳고 그름의 근본 프레임(뿌리균)속에서 변화시키기 위해 말해주기’(팡이실)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작동될 때, 자신의 본래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초래하는 결과적인 현실은 뜻밖에도 혼란과 비참함이다. 그리고 불의의 교정과 그 극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개인과 집단도 얼마가지 않아 이 덫에 걸려 상처와 분열, 그리고 무력감과 나가지 않음이라는 수렁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함의 경험들은 다양하고 중첩되어 무겁게 그리고 긴박한 현실로 다가와 호흡과 피부를 강타하고 있다. 그에 대한 현상들은 나와 너의 존재의 가치를 축소시키고, 더럽히며 살맛을 잃게 만드는 권력의 부패와 무지 그리고 오만함, 안전에 있어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무너짐과 안전망이 없다는 공포, 나의 안전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와 미래 생태-존재들에 대한 무거운 비용부담의 현실, 만연된 비난과 냉소의 문화속에 길잃어버림의 감각이 파도에 파도를 이끌고 엄습하며 덮치고 있다.

 

이러한 비참함의 현실은 자극과 반응의 무자각적이고 자동응답적인 악순환의 회로를 작동시켜 부정적인 피드백의 시스템속에 우리를 가두어 버린다. 이런 비극적 상황에 있어 나는 빅터 플랭클이 제기한 성장과 자유의 공간허용에 대해 갑작스럽게 그리고 심각하게 다시 주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러한 자극-반응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하는 그의 고민이 다가온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런 고민을 그 어떤 편안한 캠퍼스나 학술 연구소의 공간에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날 게슈타포에 의해 강제로 1,500명이 열차에 태워져 며칠동안 이동하다 내린 아우슈비츠라는 곳에 내려져, 그날 오전 중으로 1,300명이 독개스실로 들어가고 거기서 판별하는 게슈타포의 손짓하나로 200명 생존자중의 한 사람으로 남았던 빅터 플랭클은 거기서 자기 부모, 아내, 아이들도 독개스실로 보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후 전쟁종료로 생존자로 거기서 나오게 되기까지 비참함과 무의미의 지옥 경험을 통해, ‘자극-반응이 우리의 근본문제이라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의 비참함과 더불어 사회의 비참함에 대한 근본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것이 비폭력실천가로서 나에게 새로운 통찰을 주는 면이기도 하다.

 

그가 어떻게 그의 이론을 전개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갈등전환과 비폭력 실천 그리고 회복적 실천에 관심을 가진 나에게는 이 자극을 보는 눈과 반응의 방식에 대한 악화시키는 이중 고리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아니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이 자극과 반응사이에 틈을 만들어 어떻게 그 틈(공간)에서 자연적으로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성장과 자유의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틈/공간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우선 자극(stimulus)’과 관련하여 무엇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의식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물의 현상은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 포착되어지는 것이다. 신경생리학자들은 현상은 단지 우리 의식에 대한 사후확인의 결과라는 말까지 한다. 어떤 현상, 사건, 관계, 사람, 사물이 자극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을 포착하고 주목하게 되는 의식의 프레임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이라는 프레임의 구성요소가 두려움이 삶의 실재이다라는 틀과 옳고 그름이라는 렌즈를 장착하고 있을 때 우리가 만나지는 현상, 사건, 관계, 사람, 그리고 사물은 굴절되어 그것이 그 굴절된 실재(reality)가 진정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틀에 의해 자극을 포착하게 되면 그것은 위협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고, - 잘못된 것도 안전함을 깨치기에 위협으로 인식된다 - 거기에 대한 자동반응은 3F's의 반응 곧, ‘맞서기(Fight, 공격하기)’회피하기(Flight, 도망가기)’ 그리고 얼어붙기(Frozen, 굴종하기)’를 초래한다. 힘이 있으면 맞서기, 약간의 힘이 있으면 도망가기, 아니면 무력감을 느끼면 굴종하기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의 인식과 3F‘s의 반응은 자신의 내면속에 용수철처럼 자동반응 메커니즘을 각인시킨다. 바로 자아가 보호-저항-통제-조작이라는 내적 메커니즘을 통해 다가오는 사물, 사건, 관계, 사람, 사물을 맞이하게 만든다. 이러한 내적 메커니즘은 최소한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자신의 선택과 행동, 말걸기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자기 보호속에 타자성에 대한 저항을 일으킨다. 만일 정당성(타당성)과 옳고그름의 부당함이 여기에 동기부여를 준다면 그는 단순히 자기라는 심리적 영역안에서 일어나는 보호와 저항을 넘어 상대방에게로 나아가는 침해의 행위를 작동시킨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통제이자 더 나아가 영향력을 미쳐 아예 자시가 원하는 대로 상대, 사건, 상황을 바꾸는 조작하기까지 나아간다. 자신의 안전의 영역을 확대하여 정복하여 안전의 통치력과 그 범위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가 그리고 그가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이렇게 보호-저항-통제-조작이라는 내적 메카니즘을 작동시킬 때 일어나는 비극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어나는 낯선 현상들은 무조건 자신의 안전을 위협을 일으키는 자극으로 일단은 해석하는 자동 경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포용과 수용력이 약해진다.

둘째로, 자극-반응의 속도와 빈도율이 많아지면서 매우 바빠진다. 뭔가 해야 할 것들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매우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데 나아지는 것은 없다. 계속적인 일들로 인해 피로도가 개인, 사회속에 쌓이게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셋째로, 하는 모든 일이 대응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어서, ‘잔해 처리에 에너지와 노력을 들일 뿐 뭔가 창조하는 것이 없다. 생성의 논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이래서 반응하여 대처하는(coping with something) 것은 있는 데, 희망을 창조하고 생성하는(generating)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넷째로, 잔해 처리의 중요한 목표는 잘못에 대한 희생양을 지목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리고 어떤 그룹을 희생양으로 지목하면 -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지목하기 - 그 메커니즘은 건들어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그 희생양 처리로 인해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더욱 견고히 한다. 그래서 그 메커니즘을 통솔하는 엘리트의 통치와 그 작동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을 강화시킨다.

다섯째로, 자극-반응의 메카니즘은 결국 시스템(정체성, 체제)의 경직성을 낳는다.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상실하여 무질서와 통제불능의 상태로 확산되어 간다. 그래서 도태되거나 새로운 것의 출현을 막는 무거운 부담/비용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비극적인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이렇게 자극-반응의 틀과 자아속에 보호-저항-통제-조작의 내부 메커니즘이 작동되면 결국은 외적인 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면서,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거나 느낄 수가 없고 대응하기에 바쁜 인생과 그런 사회가 되고 만다.

 

자극-반응의 프레임은 자아와 사회에 보호-저항-통제-조작의 내부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결국은 비극적 현실을 출현시킨다면 이러한 자극-반응의 프레임을 깨는 틈/공간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명상은 이러한 자극-반응의 틀을 깨는 데 중요한 멈춤과 알아차림의 공간을 개인에게 증가시켜왔다. 이 명상이 단순히 종교적 수행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실재에로 들어가는 수련이 된다면 간디, 토마스 머튼, 틱낫한 등에서 보여지는 왜곡된 자아됨과 비참한 현실에 대한 변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명상은 대개 정적주의로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비록 틱낫한이 마음챙김(mindfulness)은 일상의 모든 행위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했지만 그 정적주의로부터 일로부터 떨어져 관상하는 경향성은 그 추종자들로부터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내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일과 행동속에서 일어나는 경청하기이다. 나는 최근에 명상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인식하면서 조금씩 그러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과 모임, 그리고 훈련 워크숍으로 이어지는 내 바쁜 일정속에서 자극-반응의 틀을 넘어선 수련으로서 경청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적인 주목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와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나나 상대방이 모르거나, 잘못하고 있거나하는 것에 앎이나 옳음을 알려주는 말해주기가 가장 효과가 있다는 굳건한 신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 꼴을 못 보겠는 상황을 맞이하면 비난, 충고, 조언, 강요 등의 말해주기 행동을 시도한다. 내가 여러 형태의 서클모임에서 깨닫는 것은 경청하기를 통해 사람들은 오히려 편안함, 감정이 이완됨, 친밀함, 명료함, 자기 의도에 대한 자각, 수용됨 등의 이해와 변화의 경험들을 맛본다는 점이다.

 

경청의 힘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불러일으킴에 있다.

 

첫째로, 우리의 인상에서 만나지게 되는 관점과 주장은 그 원래 성격이 모호하거나, 복잡하거나, 서로 모순된 일면들을 지니고 있는 데, 경청하기는 그러한 모호하고, 복잡하고 또한 모순된 사건, 상황, 관계, 사람들을 양자택일하지 않고, 역설의 긴장으로 끌어들여서 그런 모순 상황을 넘어서는 초월과 창조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모순과 역설사이에서, 모순을 끌어들여 역설과 통합의 문을 열도록 한다.

둘째로, 경청하기는 말해주기가 주는 영향력의 미침, 곧 상대방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기라는 위험을 갖지 않고, 상대방의 심리적 영역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서로의 내면의 문을 열어 보여주는 거울과 수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로를 주체화시켜 생성적 질서(generative order)’의 공간을 허락한다.

셋째로, 경청하기는 자극-반응의 세계속에서 우리의 중독된 (프로그램화된) ‘행동모드존재-모드로 바꾸어준다.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일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고, 이를 넘어서 존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여기서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으로, 혼란에서 명료함으로, 소외에서 친밀한 관계로 가는 공간을 창조한다. 이와 반하여, 자극-반응의 구조적 틀속에서 말해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존재에서 행동과 소유의 모드로 전환시키고, 결국에는 상황과 사건속에 파괴적 질서(destructive order)’를 몰고오는 경향성에로 쉽게 전락하게 만든다.

 

모든 세포, 인간이라는 몸, 그리고 사회라는 모든 계(system)는 정체성, 관계, 정보의 역학적 흐름속에서 생존하고 번성한다. 자아의 자기됨이라는 정체성, 타자성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이 진실로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정보의 통합적인 역동적 흐름속에서 건강성과 안전 그리고 풍성한 삶에로의 성장을 영위해 나간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 관계, 그리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최적화된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경청하기이다.

 

따라서 경청하기는 단순히 평화롭거나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윤리적 실천 권고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인식론적 기반이 되고 존재론적 안전함의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파괴의 잔해에 대한 사건 처리의 대응하기라는 중독된 행동-모드에서 뭔가 근본적이고 실재에 기반을 한 존재-모드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즉 자극-반응을 넘어선 성장과 자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의 실재가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은 모든 실재는 경청하기를 통해 서로 의존하여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경청하기가 이토록 비참하고 비통한 현실속에 그 악순환을 끊어내고 다시금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듣 기 

                                   

                        - 윌리엄 스태포드 

 

 

내 아버지는 작은 동물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지

혹은 어둠속에서 커튼에 부딪치는 나방소리나

우리들이 한 번도 있어보지 못한 장소 속으로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멀리서 오는 모든 소리를.

 

우리가 바람속에서 현관문에 다가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부드러운 야생의 밤으로부터 그에게 말을 건다네;

우리가 보게 되는 건 그가 고개를 쳐들고 얼굴이 진지해져서

세상의 벽들이 벌어져서 넓어지게 되는 거야.

 

내 아버지가 그렇게 많이 들을 때 우리는

밤에는 무언가 다른 곳에서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침묵을 초대하면서, 우린 여전히 멈춰 서 있게 되지.

 

 

윌리엄 스탠포드처럼 우리도 지금 이사회의 어둠과 야생의 밤으로부터 고개를 쳐들고 얼굴이 진지해져서 세상의 벽들이 벌어져 넓어지는현실을 볼 수 있기를! 우리가 경험하는 무언가 다른 곳에서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그러한 순간이 되는 초대를 내가 맛볼 수 있기를...

(2016.9. 25)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서클로 하는 대화모임 진행자양성(스터디서클진행자) 워크숍 6/5-6/7 file 평화세상 2017-04-20 565
공지 대한민국 한 시민으로서 나는 참담하고 비통하다-테러에서 세월호, 사드 그리고 5차 핵실험까지- 평화세상 2016-09-11 1053
공지 6/22-6/24 스터디서클 진행자 양성과정 워크숍에 초대합니다. 평화세상 2016-05-23 1395
공지 스터디서클이란? 평화세상 2016-03-22 1374
공지 우리를 갈라놓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파커파머 워크숍(4/11-4/13)으로 초대 file 평화세상 2016-02-29 2790
공지 2회 '스터디 서클 대화모임 진행자 양성 워크숍'으로의 초대 2016년 1월 4일-6일 평화세상 2015-11-17 1322
공지 경청을 통한 회복 모델로의 초대: "재-평가 카운슬링(Reevaluation Counselling) 소개 공개강연및 일일 워크숍으로의 초대 file 평화세상 2014-03-21 2702
15 >파커파머 국제진행자모임(Global Gathering)으로부터 온 생각들< file 평화세상 2017-05-08 306
14 파커 파머 신뢰의 서클 2017Global Gathering 사전워크숍 성찰 file 평화세상 2017-05-08 344
13 >상처로 곪아진 민주주의에 대한 묵시적 예언과 그 비극적 간극에 서서< 평화세상 2017-05-06 438
12 시민사회 활동가(및 회복적 서클 진행자)의 활동과 내면작업의 근거 평화세상 2017-02-06 682
11 갈등상황에서 보편적인 10가지 궁지들 평화세상 2016-10-09 906
10 대화 모임에서 정치적 이슈 다루기 평화세상 2016-10-08 825
9 ‘저항’으로부터 대안의 ‘실현’에로 나아가기-세계비폭력의 날에 평화세상 2016-10-02 896
8 뇌관에 심지불이 가까이 타들어가는 '사고'공화국-깜깜한 정국의 블랙홀이 우리를 삼키고 있다 평화세상 2016-09-30 1551
» 경청에 대해서-비참함을 넘어 서는 상승의 날개 평화세상 2016-09-25 938
6 사실과 논리의 정치학에서 비통함의 정치학으로 평화세상 2016-09-18 915
5 스터디 서클 단상- "영혼의 열망으로" 평화세상 2016-06-29 1144
4 3차 스터디서클워크숍 참가자 평가 file 평화세상 2016-03-22 1510
3 진실과 자비의 대화 공동체를 이루는 평화 이야기-가족, 단체, 공동체, 지역사회, 국가에 있어서 진정한 심층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영혼을 가꾸기- 메인즈 2012-05-12 2008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