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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과 논리의 정치학에서 비통함의 정치학으로

 

 

한 남자가 밤에 울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그의 입술에서는 향기로운 기도가 계속됩니다.

...

당신이 울부짖는 그 비탄이

바로 당신이 바라는 그 합일에서 오는 것입니다.

도움을 구하는 그 순수한 슬픔이

바로 비밀의 성배입니다.

 

주인을 향해 낑낑거리는 개를 보십시오.

그 흐느낌이 바로 대화입니다.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랑의 개들이 있습니다.

그 개에게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길.

 

- 루미 -

 

 

내가 서클진행방식을 처음으로 시민사회에서 다른 단체들에게 나누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도 2008년 촛불집회의 불길이 수그러들면서 명박산성(컨테이너박스벽)과 명박열차(전경버스벽)로 운동의 실패에 대한 - 그 단체의 구성원들의 전체적인 소감이 그러하였다 - 향후 방향을 모색하는 한 열정적인 촛불단체의 초대에 의해 서클 프로세스방식에 의한 대화모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미 퀘이커 평화운동훈련모델인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HIPP(Help Increase Peace Program)에서 서클의 맛을 보기 시작한 나는 당시에 어설프게 서클 프로세스라는 방식이 갖는 변혁적인 힘의 가능성을 조금씩 확신하며 적용하고 있었다.

 

그 이후, 묘한 인연으로 내 영혼이 끌어잡아 당기고 있었는지 아니면 서클의 영혼이 나를 끌어당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사회에서 각기 흩어져 진행되고 있는 서클모델들이 하나씩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델들이 바로 회복적 서클(도미니크 바터), 신뢰의 서클(파커 파머) 그리고 스터디 서클(마일즈 호튼)이었다. 이런 다양한 서클의 진행방식들을 만나면서 내 심장이 치유되고 영혼은 점차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두려움의 움츠림으로부터 참여에로 손과 발이 움직여 나가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시간도 흐르고 서클의 방식이 많이 보급도 되어 덜하지만 두 극명한 대조의 풍경이 기억난다. 하나는 따스함과 환대의 분위기에서 깊이 감동을 받은 참여자들의 소감이요, 다른 하나는 아무 것도 가림막이 없어 불편해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해 하던 참여자들이 워크숍 첫 세션의 모습이 그것이다. 대개는 이틀째 되면 서클 분위기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그래도 마음 열기가 쉽지 않아 23일 워크숍이 거의 다 진행되어서야 서클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좀더 일찍 그런 분위기에 녹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회복적 서클처럼 갈등상황과 문제상황에서 강한 적대적 감정상태로 서클로 진입하는 경우의 몇 몇 상황을 제외하고, 대화와 이해 혹은 영혼의 탐구를 위한 일반적인 서클 모임에서 느껴지는 공간(space)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마치 전혀 다른 공간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그 느낌을 뭐라고 할까? 그 무슨 밀도 높은 에너지의 흐름을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기에는 열려있는 환대와 주의 깊은 경청 그리고 안전한 수용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변형된 분위기가 각자를 감싸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어떠한 존재이든 존중받는 느낌이고, 모두가 기다리며 듣는 절제된 대화 흐름이 펼쳐지면서 개인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살과 영혼이 묻어있는 이야기가 참여자 전체를 공명시킨다.

 

각 개인의 이야기가 자기-주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표현으로 국한되기에 상대방의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되면서 결국은 굳이 판단하지 않고 그냥 들을 수 있다. 각자의 이야기가 들려지면 뭔가 각자에게 소중한 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 소중한 것들이 확인되면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저절로 출현하면서, 그 흐름에 따라 모두가 함께 마음을 내면 일은 저절로 굴러가게 된다. 이 흐름을 타게 되면 일이 부담이나 강요보다는 자발성에 따른 선택들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축하하기로 우정어린 유대감이 서로를 감싸면서 모임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일은 자율적으로 굴러가게 된다.

 

지난 주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 독서서클모임을 좋은교사운동내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내 멤버들과 가지면서 대면했던 파머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상위 20퍼센트가 부의 8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하위층의 반대자들이 가족, 신앙, 그리고 애국심을 내걸고 나오면 자신의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입의 불평등을 드러내주는 도표를 시민들에게 제시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보다는 그 도표를 보여주는 당신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개인간의 갈등과 논쟁으로부터 정치영역에서 논쟁에 이르기까지 진보운동영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기만 하면 상대방은 대화나 협력에 응해줄 것이란 기대를 하지만 실상은 거꾸로라는 이 말은 참과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고뇌를 하게 만든다. 거짓과 불의에 있는 사람들이 오만하거나 무지하다고 치부하기에는 대답이 안 나오는 그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학교폭력사건에 있어서 담당교사가 갈등당사자 부모에게 사실은 ...이었습니다라고 해서 당사자들이 고마워하고 조처에 수긍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에 사실은...이었습니다라고 해서 보수정권의 지지자들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실 그 자체만 가지고는 상대방을 움직일 수 없다는 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인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낯선 자와 적대자들 앞에서 파머가 말한 대로 폭판 파편을 그들에게 던져 결국은 서로가 모두 야만이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에 부패한 경제와 잔혹한 정치현실로 인한 아픔에 움츠러들지 않고 어둠과 슬픔의 에너지속에서 나오는 통찰을 갖고 떨쳐 일어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이 지금의 4대강 녹조운동장으로 인한 생태학살, 사드로 인한 두려움과 증오의 정치학, 검찰의 부패, 슈퍼엘리트들의 비인간적인 권력욕이라는 통렬한 슬픔의 지하통로에서 인간화된 민주주의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가?

 

나는 이에 대해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가 제시한 다음 질문이 우리의 심장에서 어떻게 각인되고 응답되는지에 따라 그 실마리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사실 그 자체를 말해주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가슴 찢어지는 이 슬픔의 현실에서 다른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과 논리의 정치학보다 비통함의 정치학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여진다.

 

비통함은 힘이 있다. 그 예는 에집트에서 억압받던 히브리 집단(원래 히브리란 말은 단일민족개념이 아니라 힘이 없는 떠도는 이들을 지칭했다)이 고역에서 신음하다 하늘에 울부짖으니(crying out) 신의 응답이 있었고 여기서 출애굽이 일어나 탈출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는 중에 계속 축대가 무너져 그 이유를 물으니 일리를 쌓을 때마다 사람 한사람씩 제물로 받쳐야 가능하다는 말에 고민이 되던 차에 신하의 조언으로 만명을 죽이는 것보다는 만씨 성을 가진 사람 한 사람을 죽이면 될 것이란 말을 듣는다. 그래서 갖 신혼을 차린 한 만씨 청년을 강제로 죽여 만리장성이 쌓아지게 되었다. 그후 그 만씨(맹씨)부인은 건설현장에 가서 통곡을 하니 그 죽은 뼈들이 나타났고, 그 소문에 진시황이 그녀의 자태에 반해 왕후로 책봉하겠다고 하니까 남편의 49제 제사를 먼저 허용하게 한 다음 마지막날 제관백작들과 백성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황제에 대해 일개 부녀가 욕을 하고 강물에 투신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이 두 동서양의 민담은 비통함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에게 폭탄파편을 던지기나 내 자신이 고통으로 움츠러들기가 아닌 비통함의 정치학을 향해 나가기가 단순히 사실과 논리를 넘어 다른 대안을 주기 때문에 순진하게 감정배설의 길을 걷자는 게 아니다. 비통함으로 우리가 논리가 아닌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는 다른 중요한 마음의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윌리엄스가 말한 생각과 의견을 넘어 전 존재로 경청하기관심을 주기그리고 동료시민을 신뢰하기에 대한 결심이다.

 

나는 이러한 마음의 작동방식없이 사실과 논리만으로는 이 분열된 사회, 그리고 증오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전환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단지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되어지질 않는다. 경청, 관심 그리고 신뢰라는 이 시민권의 역량을 우리가 일상에서, 관계에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훈련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다. 마치 덴마크에서 6세부터 16세까지 공감능력을 최우선 교육과정으로 가져간 결과가 사회복지국가로 태동한 것처럼 우리가 그러한 시민권 역량에 따른 민주주의 인프라 구축없이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일 것이다.

 

순수한 슬픔이 바로 비밀의 성배이고 흐느낌이 바로 대화이다라고 루미는 노래한다. 여기에 당신의 생명이 바쳐질수 있다면 그동안 사실과 논리로도 못 바꾼 세상에 최소한 다른 공간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서클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이 슬픔과 흐느낌에 전 존재로 경청하고 관심을 집중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참여자를 신뢰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그 어떤 방식으로든 무장하지 않는 열린 가슴의 무리들이 일어설 것이다.

 

오늘 아침은 황금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길고 긴 폭염이 언제였나는 듯이 기온도 쌀쌀한 말고 환한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며칠 동안의 날씨가 아니라 지속적인 기후를 우리가 누릴 수 있기 위해서 파머와 윌리암스가 말한 시민권 역량의 훈련에로 마음이 당기는 계절이 되길...

 

(201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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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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