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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비폭력을 신념화하기

               -한국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의 기획과 그 철학-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폭력과 고통의 현실이 평화의 불꽃을 일으키다


국제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이후 일어나고 있는 무력분쟁과 빈곤, 환경악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에 책임있는 국가나 국제기구는 무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정이익에 쏠려 정의로운 국제질서를 바라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핵실험과 군사적 긴장에 못지않은 각종 무거운 사회적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수십조의 4대강 토건산업과 실업, 용산참사, 언론악법 등의 폭력의 폭풍우는 희생자들의 고통과 무력감을 높이고 있다.


폭력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전세계 풀뿌리 평화운동이 몇 명의 비폭력 활동가들에 의해 기획되어질 때까지도 그 가능성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월 2일 세계비폭력의 날에 해뜨는 뉴질랜드로부터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이 시작될 때 이는 단순히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95개 나라가 참여하는 세계행진은 전 세계적인 풀뿌리 시민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네트워크 결합에 의해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불길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핵무장과 재래 무기의 해제, 분쟁의 비폭력 해결과 평화조약의 체결, 각종 폭력의 노출과 풀뿌리 평화운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지구촌 시민들이 같은 공동의 꿈을 꾸고 이를 현실로 바꾸고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비폭력평화물결의 제안으로 고난함께 등 39개 단체가 이를 위해 공동으로 준비하고 서로의 인적 자원과 비전을 담아 15일부터 21일까지 세계행진에 있어서 가장 오래 머무르는 일정을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업등의 후원도 기대하였지만 현 이명박정부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거부감의 영향으로 자체의 기금모금과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부드럽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형성할 수 있는 사업들을 구상하게 되었다.










신념화하지 않은 평화는 공상이 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라는 페미니스트 주장은 진리를 담고 있다. 단순히 ‘너 들어라’라는 시위언어를 넘어, 실천하고 훈련되어 몸으로 체화시키는 실습이 우리 사회의 프로그램화된 폭력과 사회학습을 거세시킨다. 이를 위해 단체들은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서로 의제 설정에 있어서 동의하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폭력과 비폭력에 대한 인식과 의식의 형성에 대한 워크숍을 한국비폭력대화센터와 NCC 등에서 준비를 하였으며 일본참가자들의 “Walk 9"의 100일간 한반도 순례 등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주의깊은 알아차림을 통해 내안에 있는 폭력,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변화시키고 제거하지 못한다면 나의 순수한 열정과 사회에 대한 나의 노력도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의 패턴에 똑같이 하게 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한 집단, 혹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국민으로서 우리의 폭력, 분노, 절망, 두려움을 인식하고 껴안고 전환시킬 수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이 어둠의 그림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평화는 구호로 오지 않는다. 잠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다가오는 현실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평화의 의식화와 실천을 통해서만 오게 된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야기 마당을 준비하고 부드러움과 감정의 힘을 사용하는 홍신자씨의 춤을 통한 평화워크숍, 가슴의 무장해제를 위한 마가스님의 자비명상과 이종희 선생의 명상춤 등도 기획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변화를 창조할 때이다


핵무기. 군비경쟁, 이념의 집단화와 세력화, 소비극대화를 위한 과대생산, 경제 블록화... 그리하여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잔인함과 강자의 정치경제 시스템이다. 어떻게 이를 자비의 사회구조와 돌봄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엘리트들인 전문가, 정치인, 지도자들을 믿어왔다, 그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고, 폭력이 없는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열망을 신뢰할 때이다.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진정성을 보증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하기 위해 일어선다.


사랑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적인 정치경제의 모습으로 시스템을 재구조화하고 미래세대와 생태적 약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기회와 공간을 갖도록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가 숨쉬고 일상에서 활동하는 데서부터 평화는 시작한다. 평화는 이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나타난다. ‘전쟁이나 폭력이 할 수 있는 것을 평화는 훨씬 더 낫게 할 수 있다.’  


누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불만족스런 사회상황을 숙명으로 돌릴 수 있는가? 그것들이 사물이 진정 있는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현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와 정반대이다. 사방에서 사회적 안전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데도 태연하게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마치 멀리 남에게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러면서 폭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세력과 보이지 않는 공모를 하게 된다. 순진한 것인가? 아니면 착각에 빠진 것인가?



우리의 선택과 노력은 새로운 현실을 잉태한다


오늘의 이토록 격랑하며 요동치는 세계에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한편으로는 폭력과 테러 그리고 분쟁과 차별이 만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의의 사람들이 함께 일어서서 이를 위해 함께 걸음을 하고 있다. 개인과 단체의 영적, 사상적, 교육적, 문화적 자원을 나누며, 자발적으로 다양한 공동행동들을 기획해 내고 있다. 훈련 워크숍, 강연회, 문화 공연, 행진, 대화모임, 공정무역 등의 공동사업 등을 통해 옛 삶의 시스템을 내려놓고 새로운 대안적인 살림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서로 돌보고 기존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세력화에 우리가 함께 동참할 때이다.


전쟁과 증오, 분노와 절망보다 더 위대한 것을 선택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옛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가올 새로운 것을 위한 것이다. 저항보다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비난하기 보다는 희망하기 위함이다. 이는 삶이 절망하기에는 너무나 신성하고 귀중하기 때문이다.


세계행진단 20명이 한국을 밟고 처음 간곳이 강화 중립구역 철조망이었다. 이시우선생에 의하면 분단 56년만에 외국인이 이곳을 처음 방문하였다고 한다. 분단의 아픔과 폭력의 아픔에 대한 증언을 위해 강화 민통선, 인제의 DMZ, 용산참사현장 등을 방문하고, 현지 실향민과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의 아픔을 들으며 범종교인 참회기도와 범종교인 평화선언을 선포하였다.


이 범종교인 평화선언은 “폭력과 지배체제의 내면화와 사회화는 종교인의 내적 진리에 대한 각성과 사회적 증언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요청한다”고 천명하고, 이를 위해 수행은 아픔의 자리가 곧 성전이며, 수행의 진정성(혹은 영성의 참됨)은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고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타자(eco-Others)에 대한 단순한 구제를 넘어” 이 약자들이 “익명의 교인, 불자, 신도임을 깨달아 구제에서 섬김으로 나아가는 이타수행”을 할 것을 공언하였다. 이를 위해 위기에 대한 공동의 책임과 공동협력의 실천에 근거하여 강제와 지배의 마음의 무장해제, 폭력각본(폭력의 사회화)에 저항하여 평화적 수단을 통한 평화적 해결, 단순함의 생활화, 종교의 벽을 넘어 평화와 정의에로의 저항과 개입 그리고 변혁에로 헌신하는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실천요강으로 제시하였다.


시대의 아픔이 엄중할수록 우리는 대안과 희망의 꿈, 변화의 꿈을 함께 꾼다. 절망보다 우리의 영혼이 벅찬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감응하도록 하게 하자. 금년에는 인류역사에서는 처음으로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전 지구적 목소리, 행동 그리고 조직을 보게 되었다. 이 일치된 인류의 목소리와 공동행동이 한 물줄기가 되어  갈등과 분열의 장벽을 뚫고 채우는  통합시키는 힘을 만들 때이다. 에티오피아 격언은 이렇게 말한다. “거미줄들이 한데 모아지면 사자도 멈추게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슴이 자비와 이해로 채워지고. 서로 해치고 미워하는 것을 증오대신 불쌍히 보며 우리의 약함과 상처받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서로 연결되어 흐름을 만들면 평화에 대한 염원은 현실이 될 것이다.



연결하기와 축하하기가 우리의 진정한 힘이다


‘테러와의 전쟁’처럼 그리고 핵 위헙에 대한 핵사용의 핵우산정책처럼 우리의 상상력은 폭력을 다루는 데 빈곤하다. 그래서 폭력을 폭력으로 막으려 한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평화에 대한 신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평화유지를 위해 더욱 파괴적인 방식을 의도적으로 대응한다. 그 결말은 마주쳐 달려오는 두 기차를 보고 있는 꼴이다.  우리는 긴급히 좀더 창의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영혼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경직된 정치경제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강하게 손을 붙잡고, 서로의 가슴을 연결하며, 진정어린 힘을 자신들로부터 이끌어 내어 서로 연결해야 한다. 평화가 우리의 가슴과 행동의 모든 순간에 살아 움직이게 하자. 우리는 지구시민으로서 공동관계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평화의 빛에 쪼여 폭력을 분별(discernment)하고 가슴을 무장해제하며, 비폭력을 통해 개입하고 참여함으로써 변화와 변혁의 세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연결하는 것은 분리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전쟁과 폭력, 분열과 탐욕의 불길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과 기회를 풀무질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고 서로 연결하기를 통해 공동의 지혜를 모으며 새로운 삶을 태동을 실험한다. 한국에서 세계행진의 행사는 이제 21일로 지나가고 세계행진단은 모스코바를 통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돌아 북미와 남미로 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불꽃으로 타오르며 더욱 번지는 들불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매 순간 평화를 꿈꾸고, 평화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상상하고 이를 감격하며 축하하여야 할 때이다. 웃을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기뻐하자는 것이 아니다. 웃음이 평화의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웃고 축하하자. 그러면 평화는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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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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