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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 출범식을 맞이하여
참여 단체와 개인과 나누고 싶은 제언



“다 함께 꿈꾸면 염원은 현실이 되고
서로 손잡고 걸으면 그것이 길이 되어진다“

                                                                                    박성용/평화와비폭력세계행진한국위원회사무총장



우리가 그동안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전 지구적인 각성과 공동행동을 위해 준비해온 세계행진 한국일정이 꼭 1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수개월간 서로의 뜻과 생각을 모으고 소통하며 의견을 나누며 조금씩 이 행사에 대한 염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공동 작업을 해왔습니다. 각 단체의 일이 많은 현실에서 재정과 인력의 부족과 현 정권이 지닌 소위 진보단체들, 평화단체들에 대한 몰이해와 역풍속에서 거의 무로부터 출발하여 40단체와 기관들이 이 지구적인 비폭력 평화운동에 동참한 것은 그 자체로 축하해주고 기뻐해야 할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지구적으로는 보름 후 10월 2일 세계비폭력의 날에 해 뜨는 뉴질랜드로부터 시작하는 평화와 비폭력의 새 물방울이 나라를 지나면서 초록물결의 강으로 바다로 바뀌는 것을 목도할 것을 기대하며 한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캠페인을 하는 지 다시금 돌아보고 개인과 단체의 열의를 재확인할 때입니다.


1. 전 지구와 국내의 비인간적이고 비극적 현실이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 밀레니엄의 초기부터 9.11비극으로 시작된 ‘폭력과의 전쟁’은 오히려 수많은 작은 전쟁과 폭력의 불씨들을 사방에 번지게 해서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에서 죄 없는 민간인들 수백만 명이 희생자가 되어갔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사례처럼 명분 없고 소수강대국의 탐욕이 일으킨 직접적인 희생자들 보다 그로 인해 파생된 질병과 빈곤은 몇 배나 더 큰 약자들의 희생은 보도되지도 않고 주목받음도 없이 쓰러져 갔습니다.

선조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전례없는 기후대변화의 충격은 이제 전 세계가 몸소 겪는 현실이 되었고, 환경악화의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 폭염과 홍수, 질병과 먹거리의 불안은 세계화되어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생명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고, 그 피해는 거의 대다수 제 3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말없는 생태 타자들(eco-Others)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우리의 눈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금 현실은 이념대결로 인한 소모적인 군사적 긴장과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소수 기득권층의 경제와 정치의 강성 보수화로 인해 소통부재의 일방적인 기 싸움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용산참사와 4대강 개발 사업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고,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보좌익에 대한 칼부림은 여러 공공영역에서 그 씨를 말리는 전면적인 공격을 가시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득세로 인한 미움과 증오가 본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이토록 황폐케 하고 절망케 하는 비참한 현실, 곧 인간 동료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자존감과 배려, 생명들의 생존권의 박탈과 이 어둠의 지구적인 현실입니다. 그리고 세계화되어가고 있는 이 비참의 현실, 우리의 일상사에 깊이 체험되고 있는 보편화된 아픔의 깊이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있는 우리의 무감동과 무기력한 모습에 대한 자기비애와 냉소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무서움입니다. 그 원인이 소수의 탐욕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잠자고 있는 의식과 공모, 이 현실에 순응하여 현재 폭력 시스템이 돌아가게 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협조가 더 큰 문제입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은 바로 각 개인, 그룹들로 하여금 작금의 비참한 현실을 차마 눈뜨고 보고, 숨 쉬고 살기에는 너무나 답답함을 외치는 운동입니다.

세계행진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어떤 고통의 상황에 있는 지 그 아픔과 신음을 신체적인 언어로 상징으로 표현하는 운동입니다. 누구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려하고 있고 낙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선을 호소하되 한 개인이 아니라 다함께 무리가 되어 드러내어 보여주는 운동입니다.


2. 세계행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주목’하고 여기에 더 가까이 감에 있습니다

지구화되어가고 있고 우리 주변생활에 바짝 다가온 고통과 비참함의 현실이 왜 문제가 안되고, 가려져 있으며, 우리의 이야기에서 주제가 되지 못하고 왜 침묵과 잊혀진 현실이 되어가는 것인지 본인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의 하나는 매스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화려한 미사여구들 곧 선진대국에로의 돌입에 대한 각종 메시지들, 국가의 안보를 위한 국제협력의 공조와 군사력 강화, 개발의 화려한 지표들, 심각함을 없애는 대중문화의 중독성, 관료와 경제지배층의 대중서민에 대한 자선적인 사업의 선전 등이 우리를 마취시키고 눈을 미혹케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라크 파병이든 북에 대해서든, 남남갈등에서든, 남을 구해주기 위해 폭력과 전쟁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정당화와 자신의 안전은 적을 무찔러야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매우 강한 전염성을 갖고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정 개인과 집단의 탐욕성이 ‘남을 구원하는 폭력’의 논리를 통해 ‘폭력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진보와의 전쟁’ 등등으로 변형되어 자기편이 아닌 자, 낯선 자와 집단에 대해 의심되는 것을 조사하고 지배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희생자를 비참하게 하고 가해자도 비인간화라는 윤리적 고착증세를 가져오는 폭력 시스템으로 인한 환상과 착시에 대한 시각의 교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문명의 얼굴을 한 소수 야수들의 약탈논리로 인해 오는 삶의 분리와 황폐함 그리고 도덕성의 천박함이 치유되기 위해서 우리는 세계행진이 단순히 프로그램 혹은 사업이라는 단순히 일을 치루어냄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있는 폭력의 각본을 해체시키는 진지한 자세와 노력이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 세계행진은 타인의 고통을 주목하고 이에 가까이 가는 내적 순례를 주창하게 됩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행진은 단순히 미래 이상에 대한 집단의 목소리 내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과 원격-타자(the distant Others)의 고통의 현실을 주목하는 데 정성을 다하는 데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그 고통이 전쟁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이든, 가해자가 안 보이는 제도적 폭력이든, 혹은 안보를 위한 국가폭력이든,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든 이들 희생자들에 대한 아픔을 주목하고 함께 느끼는 ‘마음열기’가 세계행진의 주요 목표가 됩니다.  

고통이 진실을 말해준다고 본인은 믿습니다. 수많은 이념 선전의 소모적인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소속정파, 지역성으로 인한 착시현상이 치유되는 곳은 고통에 대한 주목과 더불어 느끼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 왜곡되어지고 커지는 이유는 바로 마음 열어 고통을 들어보는 작업에 우리가 인색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희망이 궁극적인 실재임을 믿습니다

새천년에 들어와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는 끔찍함의 전례 없는 사례의 하나는 자살폭탄공격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이 무장단체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단체인가 하는 언론의 부정적 이미지 칠하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유형으로서 나타나는 자살폭탄 뒤에 누구나 목숨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본능에 거슬러 폭탄을 몸에 감아 적에 뛰어드는 이들의 깊은 절망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음, 그리고 그에 따른 증오의 무게에 깊은 아픔을 느낍니다. 

가해자의 지배와 탐욕 그리고 희생자의 증오와 보복이 빚어내는 폭력의 악순환은 견고한 올무가 되어서 우리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무력감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 간에서든, 집단 간에서든 혹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든 가해자와 희생자로서 이분적인 고정화는 서로를 소외시키고 삶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따라서 우리의 캠페인은 단순히 어떤 사업, 프로그램을 할 것인가를 넘어서서 폭력시스템과 그 악순환에 대한 영적, 사상적 저항을 요청합니다. 어떤 가치관을 드러내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맞대응과 보복을 넘어서서 상대를 끌어들여 선을 행하게 하는 데 투쟁을 할 때입니다. 그래야 가해자와 희생자의 양극의 대치전선에 변화가 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의 본성은 자연적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적과 대면해서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참아내는 것이 불편함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를 자신의 입장과 이득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도록 하게끔 투쟁하는 방식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을 하는 이유는 상대나 내가 한 특정의 공통된 공간과 시간을 같이 하고 있고, 유일한 한 생을 함께 하고 있기에, 상대가 자신의 입장, 이념, 이익을 넘어 선을 행해야 내 삶이 윤택해지고 편해지기 때문에 맞싸우기를 통해 내가 이기고 상대가 지는 게임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선을 행하도록 ‘의로움에로의 봉사’에로 우리가 상대와 투쟁하도록 하게 합니다. 우리가 동물의 약탈 방식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방식에로 전환하도록 하게 하는 새로운 싸움으로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행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지금의 캠페인의 결과가 비록 미약할지라도 그 결과는 크고, 씨앗은 성장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진실의 힘을 믿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비폭력은 모든 종교의 신앙의 근본가치이자 인간성의 근본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평화와 비폭력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근본 가치로서 삶을 인간화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한 캠페인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이 평화와 비폭력의 삶에로의 길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희망에 대해 신뢰하기를 배우는 데서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상처들과 간극들, 남북과 남남의 갈등과 생활구석구석에 번져있는 우리의 분열을 치유하고 화해의 에너지를 주는 것은 바로 사랑과 자비 그리고 가능하다는 희망에서 옵니다. 자신의 일상적인 관심에서 눈을 돌려 사랑, 자비, 희망을 의식하고 몸과 삶으로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그에 기초해서 응답하면 우리의 내면과 사회가 변화하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사회적 약자와 희생자의 가난은 금전적인 부의 결핍보다도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의 결핍입니다. 다른 것이 다 박탈되어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혼의 힘이고 이는 사랑과 자비에 대한 희구와 그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신념입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희망이 여전히 우리 가슴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역사의 주체가 되고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4. 연대와 상호협력은 우리의 최후 보루이자 힘의 근거입니다

우리가 대응해서 싸우는 폭력의 세력은 폭력을 집행하는 조직의 견고성, 자금과 지원 체제의 막강함으로 인해 그 규모와 철저성에 있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은 정치적 집단도 아니며 강력한 조직적 체계도 아니고, 그 동원력과 재정의 수준에 있어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캠페인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규모와 그 복잡성에 비해 우리 자체는 매우 약하고, 관심에 있어서도 그리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중요한 것은 폭력체제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의 약함을 알고 있고, 우리도 우리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중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고래와 작은 물고기와 같은 힘의 관계속에서 우리가 역점을 두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진실성과 선의로 서로 연결되고 이를 표현해서 일반인들의 마음을 얻는가 입니다.

저는 ‘거미줄들이 연합하면, 사자도 묶어낼 수 있다’는 이디오피아 격언을 신봉합니다. 연약하고 작은 존재들이 하나의 공통 과제앞에 서로 연결되고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10개월 동안 느리게 그러면서도 소통의 시간을 많이 가진 것은 바로 서로의 내면과 조직 내부에 있는 열의와 자원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운동을 통해 힘을 서로 받고자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지구촌이 이 세계행진을 통해 얼마만큼 바뀌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 정직하게 회의감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생계문제, 미래의 보장, 사회적 특권의 향유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평화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무리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종, 종교, 문화, 성, 나이, 언어, 직업, 사회적 위치의 차이를 넘어서서 평화와 비폭력을 향한 인류의 일치를 위해 서로 손을 잡고 나가고, 각 지역에서 서로의 자원을 통해 새로운 대안적인 상상력과 지혜를 결합하여 새로운 현실에 대한 염원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꿈꾸는 자들로 인해 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작은 정성과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서로 연대하여 하나의 공통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자원을 연결하여 다른 종류의 힘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화해와 일치의 힘, 섬김과 갱신의 힘, 연대와 개입의 힘들을 말합니다. 이 연대와 상호협력이 우리의 약함을 감싸고, 새로운 현실에 대한 변혁의 힘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저항하고, 조직하며, 가르침으로서 바뀌어져 가는 세상을 목격할 것입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을 준비하면서 과제에 비해 조직의 연약성에 대한 두려움과 상황의 악재들이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재정문제는 큰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의의 힘을 믿습니다. 아예 꿈꾸지 않은 것보다 꿈꾸며 현실로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에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슴에 품은 것을 세상에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문제가 선물을 주는 신비로 바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글을 읽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저처럼 자신의 희망을 고백하고, 말을 걸고, 서로 화답하고 응답함으로서 이 캠페인이 역동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를 고대합니다.


2009.9.9.


*  이 글에 대한 지지와 후원 및 참여는 비폭력평화물결 전화 02-312-1678 혹은 이메일 www.peacewave@peacewave.net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계행진 공식웹사이트 www.theworldmarch.org (국제) 그리고 www.worldmarch.kr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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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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