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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비폭력을 신념화하기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에로의 초대 1-

                                                                                                                            박성용

세계일정: 2009년 10월 2일 -2010년 1월 2일
한국일정: 2009년 10월 14일 -20일 (1주일간)

국제웹사이트:
www.theworldmarch.org
한국웹사이트: www.worldmarch.kr



핵실험이 근처에서 진행되고, 군사적 긴장이 드높아지며, 각종 무겁고도 거대한 사회적 이슈들이 봇물이 터지듯 우리 사회를 뒤덮어 여기 저기 분노와 고통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수십조라는 엄청난 예산을 4대강 토건사업에 쏟아 붓고, 용산참사가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하며 실업과 비정규직의 고통 등으로 꿈틀거리는 사회적 불만이 목까지 차올라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무언가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가시지를 않는다.

이렇게 사납고 잔인한 폭력의 폭풍우의 정국속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소극적이고도 약한 소리라고 말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정하도록 사나운 바람 속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다시금 생각하는 것은 매우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주변이 온통 결투 판이고 강제와 저항의 제로섬게임에 있을 때 평화를 주장한다는 것은 이해, 사랑, 자비라는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있어서 평화와 비폭력을 주장한다는 것은 수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용기가 요구되어진다.

둘러보라.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법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공공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 증오 그리고 절망은 과연 나와 무관하게 ‘저들’이 만들어 놓은 것뿐인가?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수많은 분노, 두려움에 대한 순응, 차별과 특권, 다양한 심리적, 상징적 폭력들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밖의 것과 안의 것은 서로 맞물려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그 누구를 한 손가락으로 지적할 때 나머지 손가락들은 나를 지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종단이 사회개혁에 앞서서 한 때 주장하듯 ‘내탓이요 내탓이요’를 외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밖의 소음과 폭력만큼이나 우리 안의 소음과 폭력도 심각한 상태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메타담론으로 정치외교적인 언어로 폭력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 있을 때, 이미 우리는 가정에서, 나의 동료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내 내면에서 작고 조그마한 소리들로 폭력의 각본에 의해 우리 자신들도 절여있다는 사실을 눈뜨며 자각하자는 말이다. 평화를 말로, 시위와 선전으로, 이야기 하는 것과 평화를 하나의 실재로 구축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지금은 우리가 평화를 담론으로 이야기하는 때를 넘어 실천하여 생활하여야 할 때이다.


안의 것이 밖의 것만큼 중요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라는 페미니스트 주장은 진리를 담고 있다. 말하기를 넘어, 단순히 염원하기를 넘어 실천하고 훈련되어 몸으로 체화시키는 것이 폭력을 거세시킨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온다.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고통, 분노, 절망, 공포주기, 폭력들은 깨닫지 못한다면 그에 의해 사회학습을 받으면서 우리도 닮아간다.

할아버지가 내 어렸을 때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미 곰이 마을에 내려와 돌담 옆에 서서 문틈으로 방안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아이고 이 귀여운 내 새끼야! 잘 자라 자장자장...’ 엄마가 잠시 나간 사이에 이 어미 곰도 애정이 발동하여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애기 우는 소리에 놀라 엄마가 달려가 보니 어미 곰이 애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날카로운 발톱과 거칠은 손바닥으로 그래서 애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주의깊은 알아차림을 통해 내안에 있는 폭력, 분노 그리고 두려움을 변화시키고 제거하지 못한다면 나의 순수한 열정과 사회에 대한 나의 노력도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의 패턴에 똑같이 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여 애를 키우면서 힘들게 하는 애에 대해 몇 마디 한다.“얘야,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니, 넌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응?...” 그러다 문득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지겹도록 싫게 들었던 그 말들, ‘아, 정말 저 소리 듣기 싫다’라고 하던 그 징그런 말들을 커서 똑같이 내가 하고 있지 아니한가! 다른 대안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이 없었기에 내안의 폭력의 각본은 자동적으로 발사되어졌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우리는 개인으로서, 한 집단, 혹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국민으로서 우리의 폭력, 분노, 절망, 두려움을 인식하고 껴안고 전환시킬 수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이 어둠의 그림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평화는 구호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평화의 의식화와 실천을 통해서만 오게 된다. 그대가 누워서 기다리면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는 감처럼, 잠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다가오는 현실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한 기다림과 열망으로 온다.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공동으로 열망하고 그에 대한 의식으로 채워져야 다가온다.
 
 
이제는 우리가 변화를 창조할 때이다

아주 먼 까마득한 옛날 한 때 온 천지에 거대한 몸짓의 짐승들만 살았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그들이 큰지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발자국과 크기를 보면 좀처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곤 한다. 온 사방이 그들로 덮여 있었던 때가 있었는 데 갑자기 종말을 맞이했다. 그들의 멸망에 대해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나는 머리가 배를 통제 못해서 멸망하였다고 믿고 싶다. 지금도 인간들은 새로운 공룡의 변형들을 만들어 낸다. 핵무기. 군비경쟁, 이념의 집단화와 세력화, 소비극대화를 위한 과대생산... 경제 블록화... 그리하여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잔인함의 정치경제 시스템이다. 어떻게 이를 자비의 사회구조와 돌봄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정도 먹고 즐기며 간다 치더라도, 과연 우리의 애들에게는 진정으로 어디 안전의 공간이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엘리트들인 전문가, 정치인, 지도자들을 믿어왔다, 그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고, 폭력이 없는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이다. 우리가 평화를 선택할 때이다. 사랑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적인 정치경제의 모습으로 시스템을 재구조화하고 미래세대와 생태적 약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기회와 공간을 갖도록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가 숨쉬고 일상에서 활동하는 데서부터 평화는 시작한다. 평화는 이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나타난다. ‘전쟁이나 폭력이 할 수 있는 것을 평화는 훨씬 더 낫게 할 수 있다.’  

누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불만족스런 사회상황을 숙명으로 돌릴 수 있는가? 그것들이 사물이 진정 있는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현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와 정반대이다. 사방에서 사회적 안전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데도 태연하게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마치 멀리 남에게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러면서 폭력으로부터 이득을 얻은 세력과 보이지 않는 공모를 하게 된다. 순진한 것인가? 아니면 착각에 빠진 것인가?


평화와 비폭력의 세력을 지금 형성하자

오늘의 이토록 격랑하며 요동치는 세계에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전 세계에서 성장하고 확산되고 있는 평화의 세력화에 동참하라. 10월 2일 세계비폭력의 날을 시작으로 전 세계 천만 명이 넘는 지구시민들이 100개가 넘는 나라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을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폭력과 테러 그리고 분쟁과 차별이 만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의의 사람들이 함께 일어서서 이를 위해 함께 걸음을 하고 있다. 개인과 단체의 영적, 사상적, 교육적, 문화적 자원을 나누며, 자발적으로 다양한 공동행동들을 기획해 내고 있다. 훈련 워크숍, 강연회, 문화 공연, 행진, 대화모임, 공정무역 등의 공동사업 등을 통해 옛 삶의 시스템을 내려놓고 새로운 대안적인 살림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서로 돌보고 기존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세력화에 우리가 함께 동참할 때이다.

전쟁과 증오, 분노와 절망보다 더 위대한 것을 선택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옛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가올 새로운 것을 위한 것이다. 저항보다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비난하기 보다는 희망하기 위함이다. 이는 삶이 절망하기에는 너무나 신성하고 귀중하기 때문이다.

희망의 이야기를 창조하자. 인터넷을 통해, 학교에서, 모임과 집회에서 우리는 평화를 탐구하고 평화에 대한 작은 성공들을 함께 축하하며, 우리의 영혼이 이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감응하게 하자. 금년에는 인류역사에서는 처음으로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전 지구적 목소리, 행동 그리고 조직을 보게 된다.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와 비폭력의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일치된 인류의 목소리들을 내도록 하자. 국가와 국제기구들은 시민사회의 말을 안듣고 있고, 들어도 굼떠서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일어설 때이다. 아기의 안전을 생각하는 아줌마들이, 동물의 아픔과 자연의 파괴를 아파하는 청소년들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지금의 폭력적인 사회시스템을 바꾸고 싶은 일반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성, 종교, 직업, 지역성, 이념, 재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가진 모두가 서로 연대함으로서 갈등과 분열의 장벽을 뚫고 채우는 데 힘이 되자. 에티오피아 격언은 이렇게 말한다. “거미줄들이 한데 모아지면 사자도 멈추게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슴이 자비와 이해로 채워지게 하자. 서로 해치고 미워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의 약함과 상처받음을 눈여겨보며 서로 연결되어 흐름을 만들자.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테러와의 전쟁’처럼 그리고 핵 위헙에 대한 핵사용의 핵우산정책처럼 우리의 상상력은 폭력을 다루는 데 빈곤하다. 그래서 폭력을 폭력으로 막으려 한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평화에 대한 신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평화유지를 위해 더욱 파괴적인 방식을 의도적으로 대응한다. 그 결말은 마주쳐 달려오는 두 기차를 보고 있는 꼴이다.  우리는 긴급히 좀더 창의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영혼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경직된 정치경제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강하게 손을 붙잡고, 서로의 가슴을 연결하며, 진정어린 힘을 자신들로부터 이끌어 내어 서로 연결해야 한다. 평화가 우리의 가슴과 행동의 모든 순간에 살아 움직이게 하자. 우리는 지구시민으로서 공동관계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평화의 빛에 쪼여 폭력을 분별(discernment)하고 가슴을 무장해제하며, 비폭력을 통해 개입하고 참여함으로써 변화의 세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연결하는 것은 분리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전쟁과 폭력, 분열과 탐욕의 불길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과 기회를 풀무질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의식이 깨어나고 서로 연결하기를 통해 공동의 지혜를 모으며 새로운 삶을 태동을 실험한다. 


- 매 순간 평화를 꿈꾸자.

-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자.

- 서로 손을 내밀어 공동의 선을 기획하자.

- 평화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상상하고 이를 감격하며 축하하자.


200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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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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