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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9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엡6:12-13상


전 지구적으로 100여개 나라와 300여개 도시에서 벌어지게 될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worldmarch for peace and nonviolence)"은 단순히 나라와 나라를 돌아다니는 행진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지금 벌어지는 모든 폭력과 지배를 일삼는 이들에 대한 단순한 저항도 아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은 불평등과 불의를 가하는 이들에 대한 ‘아니오’에 대한 표현을 넘어 궁극적인 싸움의 대상에 대한 실존적 각성운동이자 노력과 헌신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상호 결의의 결사운동이다. 

먼저 우리는 최근에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이고도 사회적인 죽음과 어둠의 시대적이고도 실존적인 상황에 대해 익숙해진 관성과 생활습관 그리고 침묵의 문화에 의한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남(awakening)'에로의 부름을 듣는다.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변형된 형태들은 멀리서 일어난 것이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과 그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생태의 균형질서의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의 충격인 가뭄과 홍수, 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금융질서의 교란과 실물경제의 붕괴, 빈곤의 남북양극화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급증, 핵무기와 무기경쟁 등으로 인한 군사화로 인한 천문학적인 예산집행과 복지정책의 감축,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일상화로 인한 인간안보의 위기상황과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임계점에까지의 추락, 공무원과 은행 그리고 기업과 언론에 불어닥치고 있는 일방적인 강제문화와 사회적 엘리트들의 모랄 헤저드(도덕불감증), 지식인의 권력과의 공모와 이념적 패거리 문화, 교육의 상업화와 비인간화...등등 열거하기가 너무많은 사회적 병리현상들을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폭력(violence)과 지배(dominance)가 일상화, 구조화 그리고 지구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다수의 냉담한 민감성과 굴종 그리고 침묵의 문화에 젖어들어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선의의 뜻을 지닌 소수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은 단순히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민감성에 대한 회복이자 각성이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은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강제의 질서에 대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개인 내면의 영적인 각성을 향한 발걸음을 걷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거짓의 문화’를 생산하고 유지하며 확산시키는 이들에 대한 증오, 미움 그리고 비난을 통한 상대방의 ‘적’이미지 만들기를 넘어서는 운동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적의 이미지로 투영시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징벌, 정복, 파괴, 거절, 분리, 격퇴의 형태로 사회적운동으로든 내면적이든 적을 향한 공격과 무찌름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우리의 행진은 이념, 사상, 신조, 생활양식이 다른 ‘적’을 무찌는 일에 힘을 합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비폭력은 상대의 공통 인간성에 호소하며, 우리의 진정한 적은 어느 특정 인간이나 그룹이 아니라 그들을 움직이는 세계관과 가치관과의 대결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이다.

인간은 그가 배운 것의 전형이다. 한 인간의 삶은 그가 생각하고 믿는 것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드러나 있는 폭력과 지배의 실행자인 어느 인간이나 집단 뒤에 있는 진정한 조종자로서 성서가 신화로 표현한 초자연적 지배세력이라는 가치질서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인 꿈을 꾸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세계행진의 근본 목표가 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혈과 육의 어느 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짓고 지배하는 권세, 암흑세계의 악신과 하늘의 악령들을 제대로 분별(discerning)하고 이들에게 이름을 붙이는(naming) 행위로서 영적 순례가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의 과제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행진은 단순히 3일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영적 여정으로서의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궁극적인 대상(“원수”)가 인간이 아니라 가치관,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바로 단순히 어느 인간, 집단, 정권, 나라를 대상으로 싸우는 것을 넘어 가치문제와 삶의 재질서화라는 근본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타켓이 ‘너’가 아니라 바로 ‘나’의 변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자가 되는 ‘너’에게도 스스로가 하늘의 악령의 희생자임을 호소할 수 있게 하고 포로됨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권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행진은 영적투쟁의 여정이다. 그것은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을 제대로 보고 주목하는 영적 수련 곧 ‘알아차리기 수행(practice of noticing)'을 요청한다. 알아차리기 수행은 집중하고 주목하는 수행이다. 그것은 폭력과 지배의 현상뒤에 감추어져 있는 암흑의 권세와 천상의 악령들을 간파하고 드러내 보이게(making visible)하여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꿈을 공동으로 꾸는("our dreams can be possible") 순례이다.

이러한 순례는 어느 한 개인, 한 그룹에 의해 가능하지 않다. 이는 곧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어느 한 인간, 그룹을 넘어 지배체제를 움직이는 세계관과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순례는 모두의 지혜, 노력, 재능, 욕구, 꿈, 시간을 요청한다. 거기에는 신분, 성별, 나이, 빈부, 인종, 언어를 수렴하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공동적 실천의 운동이자 같은 과제를 향한 일치운동이다. 모두가 포함되고 모두가 긍정되며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길이다. 

그대가 기독교인, 불교인, 유교인, 혹은 전통종교인인가.
그러면 그대의 종교가 지닌 지혜가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행진의 에너지가 되게 하자.

그대가 진보 혹은 보수의 영역에 속해 있는가
그러면 그대의 변화에 대한 열정과 궁극적인 가치의 보존에 대한 열정을 함께 담자.

그대가 어린이, 청년, 여성, 장년 혹은 노인인가         
그러면 그대의 경험과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함께 손잡고 가는 행진의 길을 만들자.

그대가 빈자, 실업자, 노동자, 소유자, 부자, 엘리트, 혹은 대기업가인가
그러면 그대의 보편적인 인간성의 이름으로 더 큰 희망을  현실화하는 흐름을 형성하자.

꿈을 함께 꿀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공통된 인간성의 이름으로 손을 함께 잡고 몇 걸음은 같이 갈 수 있지 아니한가

200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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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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