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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하에서 비폭력의 힘 사례

                            로젠슈트라세의 여성 시위대

                                                                                                                           - 마이클 N. 네글러


1943
2월 말의 어느 흐린 주말, 베를린에서는 경찰과 게슈타포들이 차가운 거리를 훑고 지나가며 남아 있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리아계 유대인’(비유대인과 결혼하거나 비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고도 없는 기습 검거에 재대로 저항 한번 못해보고 모두 붙잡혔다. 체포된 사람들은 별다른 소동 없이 로젠슈트라세에 있는 유치장으로 이송되었다. 최근에 개축된 건물로, 게슈타로 본부 건물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시각, 베를린에 아직 남아 있던 유대인들의 비공식 전화 연락망인 유대인라디오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몇 시간 안에, 체포된 유대인들의 아내나 어머니들은 그들이 구금되어 있는 유치장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유대인들이 잡혀 있는 로젠슈트라세 유치장 앞으로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리 연락을 받기라도 한 듯베를린 전역에서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어, 사랑하는 가족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퇴거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다. 여성들은 순식간에 6천 명이 넘게 불어났고, 같은 시각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방면을 요구하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외침이 굳게 잠긴 창문 밖으로 터져 나왔다. 불과 몇 블록 안에 게슈타포 본부가 있는 상황에서, 이는 정말 아슬아슬한 시위였다. 기관총 한두 대면-폭력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힘이었다면- 거리의 소동꾼들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이 일화는 나치에게는 소용이 없을 거야라며 체념하기 쉬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맞섰던 사례로 연구에 회자되었다. 실제로 이날의 시위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위는 나치 정권에 도저히 풀 수 없는 딜레마를 안겨주었고, 며칠 뒤, 시위대의 여성들이 아닌, 게슈타포가 나가떨어졌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온 일요일, 갇혀 있던 남자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사이 이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던 사람들은 다시 허둥지둥 베를린행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수용소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였고, 수용소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왔다.

최근까지, 이 일화에 대해 알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이 아리아계남성들이 그 뒤에 두세 명씩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잡혀 갔으며, 이번에는 그들을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여성들의 시위가 대단한 구경거리이긴 했지만, 지속 가능한 성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치 체제 전체에 대한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1996년 마침내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한 본격 연구서가 등장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 교수 나탄 슈톨츠퍼스가 쓴 <마음의 레지스탕스>는 베를린뿐만 아니라 파리를 비롯해 혼혈 유대인문제를 안고 있던-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는 베를린의 지침들을 충실히 따랐던- 다른 여러 도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나치의 논리와 폭력의 모순에 대해 놀랄 만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사건 당시 총통 히틀러 자신은 결정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한때 스스로 자랑을 일삼던 광기의 의지독일 민족을 구원해냈던 그가 이번에는 꼼짝없이 무력화된 것이다. 비폭력이 그를 마비시켰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로젠슈트라세 유치장 앞에서 벌인 시위에 힘입어 사지를 벗어났던 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행 후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파리와 나치 휘하에 있던 유럽 다른 도시의 아리아계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위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여성들의 즉석 시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현대 세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테러 정치 속에서 10여 년 넘게 살아온 여성들이었다.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나치에 대항해서 비폭력 시위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시도하자 대성공이었다.

 


출전: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행진>,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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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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