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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하는 힘 vs 관계하는 힘의 사례

 

엄마는 곧 오실 거래요

보모로 일하던 시절, 일주일에 하루씩은 내가 돌보던 쌍둥이 자매가 다니는 조합 유치원에 나가 일을 거들었다. 쌍둥이 자매는 1년 전부터 그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마음대로 뛰어놀 만큼 충분히 유치원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치원이 처음이라 조금 수줍어하는 아이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늘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였다. 아이들은 찰흙을 치대고 굴리거나 꾸미기 방에 있는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어보면서 자기들끼리 낄낄 웃고 수다를 떨었다.

어느 날 이젤의 그림들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화롭고 행복한 소리 사이로 갑자기 복도 쪽에서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두 살쯤 되어 보이는 검은 머리의 아이가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

싫어!”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면서 신발을 홱 집어던졌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선생임은 곧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 쉬듯 말했다.

도통 신발을 신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 다음에는 어느 아이 어머니 한 명이 신발을 집어 들고 여자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치원에서는 누구나 신발을 신어야 하는 거야.”

소녀는 이번에도 고집스럽게 싫다고 말하면서 신발을 내던졌다. 그러더니 가까이 오는 사람들을 전부 때리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방 안의 모든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으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와주려고 했던 그 어머니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어깨를 으쓱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복도에서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겁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도와줘도 되겠냐고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선뜻 그러라고 하면서 아이에 대해 몇 가지 일러주었다. 아이는 얼마 전 두 살 반이 되었고, 영어를 조금 하긴 하지만, 말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나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유치원에서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잠시 망설여졌다. 그 아이를 잘 알지도 못 하는데다가 몇 년 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아이들과 내가 서로 친해진 뒤의 이야기였다. 이 아이와 나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런 아이가 과연 나를 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나는 작은 의자를 들고 복도로 나가 아이 옆에 앉았다.

너 지금 무척 화가 나고 슬픈 것 같구나.”

내가 말했다. 아이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얶기 때문에, 과연 내 말을 들었을지 궁금했다. 어쨌든 나는 아이가 우는 소리를 그냥 들으면서 그 자기에 계속 앉아 있었다.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는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엄마가 저리로 나가셨어?”

내가 물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엄마!엄마!”

이번에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아이의 커다란 갈색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고, 울다가 그쳤다가 또 울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가버리셔서 무서운 거야?”

내가 물었다. 아이가 왜 그렇게 우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두 살 반짜리 아이에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설사 누군가 말해주었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떼를 쓸 나이였다.

그래, 엄마가 저리로 나가셨구나. 하지만 곧 돌아오실 거야.”

내가 말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그때 나는 노래가 하나 생각났다. 언젠가 잔뜩 겁을 먹고 있던 다른 아이를 그 노래로 달랜 적이 있다. 나는 이번에도 꼬마 아가씨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나가셨어요, 하지만 곧 오실 거래요,

엄마가 바로 오실 거래요, 바로.

엄마는 나가셨어요, 하지만 곧 오실 거래요,

엄마가 바로 오실 거래요, 바로.

 

내 노래를 들으며 아이는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커다란 갈색 눈에 아직도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몇 번 더 불렀다. 내가 노래를 멈추자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조그만 손을 붙잡고 아이의 신발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같이 놀까?”

아이는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복도 건너편 방에 가서 기차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기찻길을 따라 기차를 움직이면서 나랑 같이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그 다음에 신발을 신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이가 발을 한쪽씩 쑥 내밀며 나를 도와주었다. 나중에 아이의 엄마가 도착했다. 화려한 빛깔의 사리(인도 여성이 입는 민속의상) 차림이었고, 맨발이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뒤로도 계속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쌍둥이 자매들의 유치원에 동행했다. 유치원에 갈 때마다 검은 머리의 꼬마 아가씨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내 일음을 부르며 달려와 내 다리를 꽉 껴안았다. 그러면 나는 항상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아이를 다시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매일 매일 작별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아이가 겁에 질려 울고불고했던 날 겨우 20분 남짓 같이 있어주었을 뿐인데, 마음을 같이 나누었던 것이 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이런 사실에 오히려 내가 많이 놀랐고 깊이 감동 받았다.

그 아이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의 포옹과 웃음뿐만 아니라 화내며 울던 모습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에게 진정한 공감에 대해, 즉 상대방에 비판 없이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들 한 분 한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 패티 차이틀린 -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행진에서

 

이 글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두 가지의 힘에 대한 이해이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힘을 의존한다. 하나는 강제하는 힘/영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하는 힘/영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일상에서 하는 모든 방법이 실상 상대방을 더 울리고 두렵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공감과 연결로 이루어진 힘의 작동에 대해 단 일회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꾸준히 배운다면 한 개인을 넘어 우리의 세계는 달라지게 된다. 이런 대응의 방식이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에서 의식적으로 조직화되어 실행될 수 있다면 비폭력은 언제나 폭력보다 더 강하고, 더 영속적이며 더 도덕적이고 비용에 있어서 더 절약이 될 것이다.

둘째는 권위(power, authority)의 자기 제한성과 그 방향성에 대한 것이다. 권위, 국가의 힘, 조직, 공동체의 힘은 가장 약한 자, 약한 그룹의 수준에 대한 민감성의 수준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 약자가 그 공동체, 사회, 국가의 건강성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의 건강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다.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1% 부분의 아픔은 다른 곳의 99%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이 아픔으로 함께 고통을 느낀다. 마치 치통에 의해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 발 가락이 아파 아무 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이 그 예이다.

위의 스토리는 단순히 관계하는 힘의 효능성과 그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우리가 이 사회에서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과 연결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위, , 전문성이 어떻게 자신을 낮추어 사회적 겸비의 실천을 통해 작은 자 the least, 마지막 줄에 선 자 the last, 그리고 잃은 자 the lost’를 향해 봉사를 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민감성에 대한 자각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나의 눈이 무엇을 보고 어느 현장에 주목하는 지 -울고 있는 작은 자의 현실- 그리고 그 자세와 나의 다가감의 도구(tools)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셋째는 우리가 권위, 전문성이 가르치는 자세가 아니라 듣는 자로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사회는 온통 가르치고, 교정시키고, 지시하는 권위자들로 가득차 있다. 실례로 교육에 있어서는 누구나 전문가이다. 그래서 학교폭력에 관해, 수많은 진단과 처방을 쏟아내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수많은 말걸음, 가르치기, 교정시키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두려움으로 더욱 울고 있는 형국이다. 당사자가 대상이 되고 딱지가 붙어져서 자기 존재에 대한 표현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의 가능성은 조금 남아있지만 상대가 가해자, 범죄자, 문제를 일으키는 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연민조차 없이 사회적 통념과 법적 매뉴얼에 따른 가차없는 조치를 행사한다.

이 사회가 두려워 우는 존재에 대해 얼마만큼 주목하고 예민한 민감성을 갖고 있을 것인가, 조직, , 권위가 이에 대해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이 작은 자에게 다가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판단과 조치이전에 어떻게 이 우는 작은 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할 것인가는 혼이 있는 민주주의, 법적 제제와 통제로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공감과 배려의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는 데 기본적인 물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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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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