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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에서 들음의 세 경지

 

산이 흐른다 

오늘은 계절로 보면 입하, 말 그대로 여름에 들어서는 절기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제법 쌀쌀한 추위로 인해 그리고 수많은 모임과 워크숍으로 하지 못한 뒷산 산책을 아침에 모처럼 하였다. 5월로 들어선 산 허리는 그야말로 생명의 약동 그 자체로 눈 부실만큼 현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굳고 딱딱한 나뭇가지들 틈틈이로 꽃망울을 드러내고, 연한 이파리들이 아이 약지 손가락 크기도 안되지만 순하고 부드러우며 환하게 무리져 다가온다. 엄청난 생명의 합창이라고나 할까, 통전적인 어울림이 주는 묘한 감응의 충일감이라고나 할까, 알 수 없는 고요한 충만감과 통섭의 상호응답의 열린 세계를 보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싸리꽃과 찔레꽃이 지닌 작고 연한 눈송이처럼 연이어 무리져 피어난 그 자태가 풍기는 순백의 연한 어울림은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든다. 거기에 복사꽃의 만개(滿開)라니! 온통 나무나무 마다 전체가 연분홍 자태로 화사함의 극치를 품어내고 있어서 그것을 보는 게 어지러울 정도이다.

아침 햇살과 더불어 숲속에서는 뭔가 비밀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간간히 새소리들은 침묵을 불러내어 사물들, 형상들, 그리고 텅 빈 공간을 아우르면서 침묵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약동하는 부드럽고 약한 순들과 꽃들의 존재를 더욱 충일감 있게 현시한다. 어디에서 무엇이 이 모든 존재들이 한꺼번에 일어서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 수많은 각각 다른 존재들로 하여금 허물을 내려놓고 새로운 갱생의 도약을 꿈꾸게 만드는 것인가? 하늘은 그대로 있고 땅도 그대로인 데 대지위의 수많은 존재들은 모두가 일어서 여기저기서 서로를 부르며 하늘로 무리져 도약을 하고 있다. 연한 순들이 일제히 빈 공간에 웃음을 내밀고 있다.

~! 맑고 환한 청산(靑山)이 내 눈 앞에서 달리고 있다. 사방에서, 바닥에서 그리고 굳고 딱딱한 껍질속에서 연하고 부드러운 생명들이 춤을 추며 일어서고 있다. 아무런 말없는 이 존재들이 말없는 몸짓으로 끔찍하게 천둥소리마냥 내 전신을 흔들어 놓고 있다. 말을 잃었으되 마음은 빛살로 열어지고 세상천지가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말은 벽()이거나 창()이다

굳고 딱딱한 인생들이 서로가 지탱이 되고 성장하여 생명의 충일감을 선사하는 존재로 살 수 있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침범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의 확보이고, 둘째는 연하고 순한 손짓으로 자기 내면의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일터에서 선한 목적이라는 이름 하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관계에서의 분리와 도달하려는 목적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일의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다. 오히려 명절 때 모인 결과가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는 결별의 결심을 경험하는 예처럼, 자존심을 건드리고 두려움이나 수치심 혹은 강요나 굴종을 느끼게 되는 말과 행위 그리고 태도 때문에 지긋지긋하다고마음의 부담을 얻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좋은 동기, 선한 목적, 이상, 그리고 가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분리나 결별의 결과로 이어지는 혹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적이미지가 생기는 경우를 살펴보라. 우리가 주고 받는 말(혹은 언어를 대신하는 무언의 소통으로서 행위나 태도)이 벽의 구실을 하는 지 아니면 창의 구실을 하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상대방과 대화할 때 나와 상대방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가 지금 격투장을 상상하게 하는 가 아니면 댄스홀을 상상하게 하는가로 상상해보도록 요청한다. 격투장인 경우 - 때리고 치고 (맞서기 Fight), 뒤로 물러서고(얼어붙기 Frozen) 혹은 옆으로 돌아가기(회피하기, Flight)- 그것은 나의 말, 태도, 행위가 벽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댄스홀인 경우 상대방과 앞으로 뒤로, 옆으로 걸으며 서로를 연결해 주는 창이 되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덱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을 비폭력 실천의 영역에서 특히 의사소통에 적용하는 경우에 얻는 교훈은 이렇다. 첫째는 당신에게 중요한 존재력으로서 이해, 존중, 평안, 협력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을 중요시 하며 산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지에 대한 언어의 -말로 표현되든지 표정으로 표현되든지 간에-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표현된 것을 통해 상대방은 당신의 존재를 -표현되지 않은 것-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예로 들자면 내가 집안일에서 협력, 나에 대한 배려, 책임 분담 등을 중요시 한다 할 때(존재의 이유), “방 좀 치워라, 돼지우리처럼 이게 뭐니?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라고 표현하였다면 상대방은 나의 존재의 이유인 배려, 협력, 책임이라는 의도를 생각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난받고 있고 자신이 수용되고 있지 않다고 자연스런 해석을 함으로써 존재력을 상실하거나 줄이게 만든다. 이것이 굳고 딱딱한 것의 비유 혹은 언어가 벽으로 쓰여지는 경우이다.

둘째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것을 의사소통에 적용할 때, 언어가 존재력을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 언어는 존재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지탱하며 확대하는 데 있어 촉진자의 역할을 하게 한다. 내가 자극상황에서 연하고 부드러운 순의 이미지로서 상대에게 말을 걸음을 통해 내가 사용하는 말/태도/행동이 상대방이 어떤 방향 어떤 내용으로 응답할지에 대한 존재의 동기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사례로서 분노의 자극상황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고, 얼마나 자신이 억울한지 그리고 옳고 그름의 논리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따라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지를 고구마 줄기처럼 엮어져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무엇을 진심으로 기대하시는 건가요?”로 묻는다면 충족되지 않은 중요한 가치에 대한 아쉬움, 상대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자기 표현과 제안, 관계를 다시 잇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명료함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부드럽고 연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 언어를 매개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 가치, 방향에 대한 명료함을 얻어 불안과 모호성 속에서 존재에로의 용기’(기독교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의 용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선택하며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창으로 사용하는 언어행위 방식이다.

그러한 존재의 용기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으로-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안전한 공간의 확보이다. 나는 상대의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대를 온전히 수용하며 현존해 있는 것이다.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르침, 강제, 옳고 그름의 판단, 내이야기를 더해주기, 심문하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자극상황을 그 사람의 정체성과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일어난 일로 인해 그가 가진 사회적 기능과 역할로서의 그를 보는 대신에 상대의 본래적 인간성 곧 내면의 빛을 지닌 영혼이 작동하는 방식으로서 그를 안전한 공간에 초대하고 영혼과 영혼이 마주 대함을 통해 서로의 연결을 통해 발생한 일을 안전하고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공동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작업 공간을 허락할 때 여기서 진리의 확인과 그 실천에 대한 동기가 발생되어진다는 것이다.

안전한 공간은 이해에 필요한 신뢰를 상호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진정성이 머무르고 발생하는 곳은 인간의 내면의 깊이에 있는 적나라한 영혼이 자신을 노출할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적나라한 영혼이 자발적으로 호출되고, 각 영혼이 지닌 진정성이 활동하면서 소통하게 될 때, 이해와 연민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기 발견과 성장 그리고 진정함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의 선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생생한 삶의 약동(모두가 품어내는 생의 충일감)에 대한 기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소통을 위한 세 경지

생생한 삶의 약동과 충일감의 실재를 맛보는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함에 있어 장자는 마음의 재계(心齋)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 혹은 경지가 있고 이것은 비폭력 대화의 실천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나의 해석을 비폭력대화 실천가로서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청지이이(聽之以耳)의 단계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귀로 듣는 것이다. 귀로 듣는다함은 상대방이 말한 것에 대한 나의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고 상대방이 말한 내용에 대해 내가 다른 의견이 있거나 그가 말한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상대의 진실을 듣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진실에 대한 정보는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통해 듣게 된다.

얼추 듣기에 따라서는 이것은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이 초기 단계도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일 때 쉽사리 나는 상대방을 진단하고 훈수를 주기 위해 중도 개입을 하거나 나의 평가나 대답에 대한 조언을 상대에게 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한 청지이이의 단계는 로젠버그가 말한 평가없는 관찰에 해당하며 여기서는 상대방의 진실을 그대로 듣고 내가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지라도 상대의 진실은 내가 들었다는 표시로 상대에게 들은 것을 판단없이 들은 내용을 반영해주기(거울비추기)를 통해 이것을 확인해준다. 여기에는 상대방의 말을 통해 상대방의 진실에 대한 내용을 따라가는 단계이다. 여기에는 나의 판단을 내려놓는 자기 연결,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 그리고 들은 것에서 상대방의 진실의 내용이라는 엑기스를 내 언어로 반영해주기가 포함된다.

둘째는 청지이심(聽之以心)의 단계이다. 말 그대로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청지이이는 말로 전해진 것을 나의 머리로 상대방의 진실을 이해하고 그 진실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다시 전달해주어서 의미를 강화하고 소통의 연결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말하는 상대방과 그가 말한 이슈/현안/문제에 대한 명료한 연결을 이어준다. 이것을 표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speaker <-> it(issue/problem). 이것을 불교의 깨달음을 말하자면 산은 산, 물은 물로 보이는 단계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듣는 단계는 머리가 아니라 나의 가슴의 영역에서 소통을 이어주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에서는 이것을 느낌과 욕구(needs; 가치)의 영역에서 연결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말할 때 대게 사람, 관계, 상황에 대해 초점을 두고 이야기 한다. 말하는 사람이 사람, 관계, 상황에 대해 듣는 청자인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청자인 나는 그가 표면적으로 말하는 사람, 관계, 상황의 이면에 말하는 자가 겉으로 표현하지 않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읽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머리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가슴의 영역 곧 마음으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비폭력 대화의 실천영역에서 중재조정을 하게 될 때 중재조정자가 진심으로 초점을 두고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각 논쟁자 혹은 갈등 당사자들이 각자가 말로 표현하는 것(“입장position”)이면에 그 사람은 어떤 감정과 그것을 말하는 진정한 동기(“욕구”)에 대한 부분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렇게 될 때 쉽게 연결되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둘째는 각자의 욕구들을 노출시킴으로써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전략이나 해결책의 가능성이 쉽게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의 청지이이의 단계를 포함하여 하나 더 나아간다. 즉 현안과 상대방과의 연결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것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a speaker <-> it <-> speakers. 이것을 불교용어로 말하자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다로 보이는 단계이다.

셋째는 청지이기(聽之以氣)의 단계이다. 이것이 노장철학이 강조하는 궁극의 단계로서 말 그대로 기()로 듣는 것이다. 마음으로 듣는 데 있어서는 아직도 상대방과 사물의 외형이 그대로 저쪽에 존재한다. 여기에는 아직도 분리가 있고 나를 대()하여 서 있는 타자의 타자성(other-ness)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듣기 때문에 내면의 실재와 물리적 공간의 실재사이에서 내면의 실재를 중시하는 분별이 있다.

()로 듣는다 함은 안과 밖이 걸림이 없이-무애(无涯)- 자기 에고가 비어서 자기 내부에 벽이 없이 자기 존재가 전체의 창()으로 바뀌어져서 나의 존재와 상대방/외형이 더불어 하나가 되어 통전된다. 장자는 이 세 단계를 이렇게 말한다. 첫 번째 청지이이 단계에서는 들리는 소리는 귀에서 멈추고(聽止於耳), 청지이심의 단계에서는 이치와 부합하는 데서 마음이 멈추지만(心止於苻) 세 번째 청지이기의 단계어서는 텅빔으로 사물을 대접하는 것(虛而待物者)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음의 재계란 바로 이 텅빔을 통한 있는 그대로의 여여(如如)’의 경지로서 사물의 실상들이 그대로 드러나 조화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고 듣는 자의 경계가 없어 외형의 자취가 없는 것만 아니라 행하는 자취마저 놓음으로 무문무독(無門無毒)”, 곧 내세우는 자기가 없어 들어가는 문이 없고 내세우는 의견이 없는 집착이 없어 그 빈마음으로 감응이 되어 밝아지는 경지(虛室生白)이라는 존재의 순일성이 있게 된다. 이것은 말하는 자가 없는 말함의 경지로 표현된다: speaking<->speaking. 불교의 깨달음의 단계로 말하자면 산은 진실로 산이고 물은 진실로 물이되는 경지이다. 연한 순과 이파리 그리고 꽃들이 주는 진실로라는 감명의 실재가 품어져 어울림으로 다가온다.

비폭력대화에서 세 번째 단계는 현재로서는 나에게 추측만 가능한 단계이다. 그것은 존재 전체가 귀가 되는 것으로 내적으로 생각을 비우고 주목하는 개방의 에너지로 자기 존재가 되어 사물과 사건 그리고 사람에게 공명으로 응하기-릴케의 용어, “접하여 대하고 인사하는경지-의 차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경험의 세계에서는 이해와 그런 존재로서의 실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사유의 한계가 있다. 체험의 세계는 향유함의 세계여서 사유로서는 오직 문을 이해할 뿐 실제로 들어가 누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가는 문을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이와 유사한 공감의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창()을 통해 안을 흘낏 엿봄으로써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방향을 얻을 수도 있다.

존재의 전일성과 충일성으로서 생명들의 약동. 산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죽음과 탄생, 상실과 소득, 추와 미, 강한 것과 약한 것, 움직임과 정지 모두가 서로에 대해 걸리지 않고 서로에 접하여() 공명()하면서 인사하는 존재로 춤을 추고 있다. 그 속에 나도 하나로 감응해 들어가기를....

(20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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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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