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79

'감정적 노예상태'로부터의 해방

- 영성수련으로서 비폭력 대화 ③ -


--- 목차 ---

문제의 원인을 어디서 볼 것인가
100% 자기 책임하에 살기
알아차림, 연결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선택이 자유를 가져온다
자극되는 상황은 새로운 배움의 스승이 된다


문제의 원인을 어디서 볼 것인가


석가의 견성성불, 이심전심의 법통을 이어받은 6조 혜능의 이야기에 짧은 대화가 있다. 그가 달마에 이어 아직 6조로서 인정받기 전, 어느 날 마당에서 싸우고 있는 수도승들을 만났다. 바람이 부는 날 깃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 깃대가 흔들리는 이유가 바람 때문인지, 깃대 그 자체 때문인지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을 보고 혜능은 말한다: "그 둘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얼토당토않은 이 해답속에는 싸움의 본성이 과학적 진실의 규명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초점이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이 숨겨져 있다. 비폭력 대화는 밖 혹은 남이 원인이 아니라 자극일 뿐 원인은 가슴(욕구)에 있다고 가르치는 점에서 혜능의 견해와 일치한다.

위의 통찰을 일상의 문제로 가져가 보면 이렇다. "나는 네가 너무 늦게 와서 실망했어." "엄마는 네가 방을 치우지 않아서 화가 났어." 이런 수많은 말들의 뒤에 있는 인식적 논리는 나의 기분상함, 나의 불행 혹은 불만족한 상태는 '너의 그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너의 그 ~한 행동이 원인이 되어서 내가 지금 ~한 상태이야'라는 도식으로 구성된다.

나의 상태가 너의 행동의 원인에 의해 규정될 때, 우리는 로젠버그가 말한 '감정적 노예'상태속에 머무르게 되게 된다. 이렇게 원인-결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통한 논리적 판단으로 살게 될 때, 내가 문제를 해결할 힘과 선택은 상실하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너가 변화되어야 하며, 너가 태도를 바꾸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가서 결국은 상대방의 '잘못'을 바꾸기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온통 소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방법은 강제, 가르치기, 고통주기, 진단해주기, 설득하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상대방은 이에 대해 자연히 맞서기, 회피하기, 얼어붙기, 묵종하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위협과 두려움의 '결투게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100% 자기 책임하에 살기

다시 이야기를 살펴보자. "나는 네가 너무 늦게 와서 실망했어." "엄마는 네가 방을 치우지 않아서 화가 났어." 내가 실망한 느낌을 갖는 것은 너의 늦게옴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임, 약속의 준수, 나에 대한 존중, 충분한 교제시간을 갖기 등의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않아 일어난 것이다. 엄마가 화가 난 것은 네가 방을 치우지 않음으로 엄마의 휴식, 청결함, 가족구성원들의 도움과 협력을 원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이다. 상대방은 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자극일 뿐, 내 욕구가 원인이라는 통찰은 비폭력 대화 실천가에게 있어서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이자 삶을 보는 귀중한 인식 패턴이다.

외부의 자극되는 상황이나 상대방은 다이나마이트가 아니라 오직 도화선일 뿐이다. 내 분노의 폭발의 이유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내 욕구에서 기인한다. 네가/상황이 ~이래서 나는 지금 처지가 ~해라는 '감정적 노예'의 논리는 가장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인해 이 세상이라는 도화지에 검은 색, 흰색, 그리고 회색 -나뻐요, 좋아요, 몰라요-의 색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수십 개의 크레파스 색상을 사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불행의 근본 패턴이다. 나의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외부의 자극이 내 운명을 결정하게 허락한다. 혜능은 말한다. "움직이는 것은 너의 마음이다."


                         알아차림, 연결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선택이 자유를 가져온다

감정적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맨 먼저 자극에 대한 알아차림을 강화하는 것이다. 삶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경험이 일어날 때,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평가없는 관찰, 곧 알아차림(self-awareness)이라는 주목하기에 있는다. 이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평가없는 일어나는 것 그래서 나에게 자극이 되는 것을 그냥 주목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의 '잘못'에 대한 고치기, 가르쳐주기가 아니라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감을 통한 연결의 단계이다. 비폭력 대화는 갈등의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지 않고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연결하기에 둔다. 에너지와 주목하기를 연결(connection)에 두지 교정하기(correction)에 놓지 않는다. 서로의 욕구에 대한 연결이 일어나면 이를 통해 욕구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작동하여 해결책은 '저절로 출현하도록' 하게 한다.

알아차림과 욕구에 대한 연결은 결국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인간성을 지키면서, 상대방과 나의 복지(well-being)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선택을 하게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피드백은 나 혹은 상대방에 대해 문책이나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비롭고 신나는 삶에 대한 통찰과 배움을 강화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한다.

"나는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고 내 시간에 대한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나는 실망스러워. 앞으로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미리 연락을 줄 수 있겠니?" "나는 집에 들어오면 휴식이 필요하고, 집안 일에 있어서 내 시간에 대한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매우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한 느낌이야. 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위협과 두려움, 수치감이나 도덕적 의무감이 없이 자발적인 협조, 기꺼이 해 주고 싶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협력을 구하거나, 나의 진정함으로 일관성있게 대화하기가 가능해지고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들이 일어나게 된다.


                                     자극되는 상황은 새로운 배움의 스승이 된다

비폭력 대화가 영적 수련과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문제(a problem)"으로 인식한 자극되는 상황(triggered situation)이 해결되는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상대방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협조자가 됨으로써 나의 강함이 아닌 나의 상처받을 수 있음(vulnarability)이 오히려 효과가 있음으로 오는 감사와 진정성에 대한 확신이 강화되는 곳에서 삶의 근본 토대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게 된다. 아무런 힘을 소유하지 않은 채로 오직 진정성의 대화와 자비로운 연결을 통해 '우리'의식을 얻게 되고 진정성과 자비로운 연결이 참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극되는 상황에 직면해서 우리의 신체와 의식속에 깊이 프로그램되어 있는 '생물적?사회적 자기방어 본능'으로부터 오는 무의식적 반응을 멈추고 알아차리기-연결-새 가능성의 선택이라는 인식과 행동의 순환을 통해 나-너-우리는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내 안에 자기 보호의 동물적 반응이 아니라 진정함과 자비가 실재(reality)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자기존중에 대한 충격, 타자는 삶의 충만성을 일깨우는 선물이 되고, 결국은 우리와 세상에는 표면적인 갈등 그 속에 신뢰와 협력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감동을 얻게 된다.

우리의 삶이 '결투게임'의 법칙 혹은 추락의 '중력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게임' 혹은 '별들의 법칙'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바로 편안한 상황들에서가 아니라 자극이 되는 상황이 주는 것이다. 자극이 되는 상황이 오히려 변화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다. '낮'만이 아니라 '밤'도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밤의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삶의 진실에 대한 명료함으로 인도한다.

모든 존재는 빛을 품수하고 있고, 이 자비의 빛 아래서 자기 존재를 영위하고 있다. 자극이 되는 상황은 우리의 눈을 정화시켜주어서 빛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빛을 품수하고 있다. 모호한 빛에서 더욱 명료한 빛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희소성이 아닌 충만함의 충만으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열려져 있다.

"우리, 옳고 그름의 저 너머 빈 들판에서 서로 만나세" 수피시인 루미의 이 깨달음은 그렇게 우리를 초대한다. 빈 들판이 확장되고 우리는 결투가 아니라 춤을 배우게 된다. 신은 음악이고 타자는 댄서가 된다. 나와 너의 욕구는 새로운 스텝과 리듬을 가르쳐 준다. 그렇게 하여, 삶의 공간은 춤의 공간이 된다. 공감과 공감이 반향을 일으켜 율동이 된다. 여기서는 오직 두 가지 메시지만 들리게 된다. "부탁이 있는 데요- 저와 춤을 추겠어요?" "감사했어요,-저와 춤을 추어서." 모든 요구의 언어는 로젠버그의 말대로 'please! 부탁이 있는데요'로 번역되어 다른 형태의 춤의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고, 모든 그 외의 진술은 'thank you! 감사해요"라는 같이 춤춘 것에 대한 진술로 받아들여 질 수 있게 된다.

"부탁이 있는 데요- 저와 춤을 추겠어요?"

"감사했어요,-저와 춤을 추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흔들리는 것은 마음이니, 그 마음이 진정한 실재로 있다면 보이고 만나는 모든 실재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부처는 말한다. "나는 이렇게(thus, such as...) 들었으니..." Thus-ness, 삶의 그러함, such-ness. 판단없는 빈 들판의 광희(光喜). 여시아문. 그가 그렇게 들은 것이 아니다. 그러함이 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함이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예수는 말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Truth-ful-ness. 진정으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함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진정함이 실재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왜냐하면 그 진정함만이 실재이기 때문이다.

(2011.10.25)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비참함에서 풍성함에로 향하는 의식과 실재의 통합프로세스 워크숍 [1] 평화세상 2017-05-11 1415
78 서클 지혜를 트라우마에 적용하기 평화세상 2016-09-04 1175
77 갈등이 있는 곳에서 경청이 어려운 이유 평화세상 2016-01-10 1614
76 듣기와 말하기 태도를 변화시킬 대화태도 10가지 방법 평화세상 2014-05-06 3222
75 교사를 위한 비폭력실천 클리닉: 철수어머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것같은데, 사실은~~한 것이어요 메인즈 2013-09-20 2642
74 비폭력의 힘: 강제하는 힘 vs. 관계하는 힘 메인즈 2013-09-06 2444
73 적대적 상황에서 경청의 기적 메인즈 2013-07-07 3275
72 비폭력 대화와 마음의 가난 및 온유함 메인즈 2013-06-18 2446
71 비폭력 대화에서 들음의 세 경지 메인즈 2013-05-05 2540
70 비폭력 대화/ 두 질문의 힘: “뭐가 잘못된 것이니?” vs.“뭘 원하는 거니?” 메인즈 2013-04-10 2942
69 두 종류(강제 vs 관계)의 힘에 대한 사례-비폭력대화 혹은 회복적 정의에 관해 상상력 갖기 메인즈 2013-04-06 2457
68 진정성있고 의미있는 대화 원리에 대한 고찰 file 관리자 2012-10-27 2749
67 영성수련으로서 비폭력대화: 관찰과 환대하기 메인즈 2012-07-18 2296
66 목회자를 위한 비폭력 대화 워크숍(2012. 6/26-28, 서울 가회동 노틀담 교육관) 메인즈 2012-05-25 2374
65 서클 프로세스를 통한 가정에서 회복적 대화 모임 메인즈 2012-05-13 2492
64 회복적 대화에 의한 자기 치유와 화해이야기 -"나는 더 이상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요" 메인즈 2012-05-13 2395
63 술 취한 사람과의 비폭력 대화 메인즈 2012-03-05 2394
» 영성수련으로서 비폭력 대화 ③-'감정적 노예상태'로부터의 해방 메인즈 2011-10-25 2424
61 영성수련으로서 비폭력 대화(2): 상호이해와 선택을 위한 비폭력대화의 공헌 메인즈 2011-10-10 2594
60 영성훈련으로서 비폭력 대화(NVC) 메인즈 2011-09-29 3177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