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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구천동의 물과 바람

조회 수 2233 추천 수 0 2005.06.02 17:14:41
덕유산 구천동 산행(2005.4.28-30)

오랜만의 산행이었다. 유학후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 잡은 직장을 3년 넘게 다니다가 이제 한 달후 그만두게 되어 심리적 피로와 분위기 전환을 위해 혼자 배낭을 챙겨 무주로 향했다. 나제통문에서 덕유산 정상까지의 길을 2박 3일간 들길 산길을 마음내키는 대로 터벅터벅 걸었다. 이번에는 목표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단지 굽이굽이 휘돌아 길게 뻗은 구천동 계곡의 33경을 따라 감흥이 이는 곳에 머물러 응시하고 온몸으로 느끼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정도였다.

지리산 칠선계곡의 그 긴 빽빽한 수목과 바위들이 계곡의 ‘깊이’의 맛이 일품이라면 무주 구천동계곡은 그 옆으로 트인 들길의 운치가 매력적인 곳이다. 막히지 않고 트인 빈 공간이 산과 어울려 없되 무형의 역동적인 충만을 선사한다. 흙내음과 여러 꽃향기가 코를 관통하고 겨드랑이와 이마로 스치는 바람이 폐부속까지 흔들어 놓는다. 정적과 움직임의 조화, 고즈넉한 충일의 세계.

내가 이번 들길, 산길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깊게 만난 벗은 물과 바람이었다.
무어라고 형용할 수 있을까. 바위가 ‘연약한’ 물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있는 나무가 보이지 않는 바람을 해치지 못한다. 보이고 굳고 힘센 것들이 연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항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얀 파문을 그리며 흘러가는 계곡물살을 한정없이 빨려들어갈 듯 지켜보곤 한다. 잔 가지들이 휘돌아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춤을 춘다. 아아, 스쳐지나가고, 흘러서 사라지는 바람과 물이 주는 놀라운 생명의 향연들. 흐르고 스쳐 사라져가기에 순간의 맛봄과 만남이 영원의 파편을 품수한다. 순간의 ‘지금 여기’가 절대적 사건이 된다.

그토록 투박하고 거친 바윗돌들이 씻겨 투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바람에 씻겨 나뭇잎들이 아리도록 찬란하다. 바윗돌과 나무라는 사물의 ‘거기있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물이라는 중압감이 변형되어 物이 物로서 객체화되지 않고 존재의 풍요를 開化시킨다. 생태적 수도자로서 새로운 변형의 몸을 현시한다. 투명한 존재에로의 계시! 단순히 일상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신성의 전언자로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부딪치고 갈등하는 관계속에서도 그리고 미천함과 사물됨(thing-ness)이라는 현세적 존재로서 바위돌들이 씻어진 존재로서 투명성을 품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굳게 서있는 강한 존재의 힘에서가 아니다. 흘러가 사라지는 연약한 존재-물과 바람-에 의해 수련을 받아 변모되는 것이다.

파스텔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정겨운 산의 전경. 멀리서 보면 온통 빽빽이 충만한 연초록 물결로 산이 풍성하다. 그러나 다가서 보면 아직도 커다란 나무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작고 여린 새순의 이파리를 이제 겨우 가지에 드러냈을 뿐이었다. 이 어린 잎들에 비해 비여있고 뚫려있는 공간은 주변은 그 얼마나 큰가? 나무하나의 이파리들을 따서 모으면 겨우 두 손을 모은 양만큼 밖에 안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잎들로 산은 빈 공간없이 충만하다. 작고 연약한 이파리들이 산 전체를 덮어 벼려 빈 공간을 허락하지를 않는다.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이런 힘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들판과 숲 바닥에서는 작고 가녀린 존재들이 먼저 꽃을 피워 주변을 생동거리게 만든다. 가녀린 싸리나무가지로 줄줄이 맺힌 하얀꽃무더기의 수줍은 듯한 하늘거림이 주는 눈부신 정감! 그 하얀 무리지은 미소에 창자속으로부터 나오는 탄성과 그 마력에 걸음이 힘을 잃어버렸다.

헤드 렌턴에 의지해 계곡옆의 도로 길을 걷다. 사물이 보이지 않으니 오직 걷는 것에만 의식을 모으게 된다. 어둠이 주는 선물 - 걷는다는 것을 의식하기. 몸을 통해 중압감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낯설은 어둠 속의 주변과 더불어 오직 혼자 남겨져 있다는 자각. 대게는 남과의 관계의 시각에서 나를 보았는데 이제는 홀로 이 어둠을 걷고 있다는 의식을 통해 그동안 낯설어졌던 나를 대면하게 된다. 이 자는 신뢰할만한가? 구별된 사물들이 어둠속에 융합되어 나또한 이 어둠의 깊이에 융합되어 간다. 계곡 옆에 텐트없이 침낭을 풀어 누웠다. 쏟아지는 별무리들. 계곡 물소리의 어울림. 물소리를 새기며 새소리에 귀기울인다. 그리고 어둠이 품이 되어 감싸기를 기다린다. 자기를 포기하기. Let-it-go. Let-it-be. 꿈결처럼 아득해져 오는 의식을 타고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화답하며 전신을 감아낸다. 흐르라. 잡지 말고 놓으라. 그리고 흘러가라.

백련사 뒷 등산길에서 부딪친 새로운 전경. 2-3m 높이 위의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기생하는 나무 군락들. 대지에 뿌리를 내지지 않고 텅빈 흐름에 뿌리를 내려 하늘을 사는 모습들. 향함과 그리움만으로 자기 존재가 버틸 수 있는가? 성취함과 안전의 확보없이도 흐름위에 생의 보금자리를 틀 수 있는가? 굳고 커짐이 아니라 작고 여림으로도 힘내며 살 수 있는가? 바람에 동요하기보다 오히려 바람을 타고 전 존재가 춤으로 화할 수 있는가? 약해진 체력과 끊없는 계단식 등산로가 완전히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안개와 어둠이 몰려오면서 산정상바로 밑 대나무숲에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밤새도록 불어대는 거친 바람소리. 나뭇가지들의 묘한 울음소리가 전신을 꿰뚫고 지나간다.

다음날 산 계곡으로 내려와 알몸으로 물속에 들어가다. 서너 시간을 누워 계곡물을 응시하다 낮잠을 잤다. 햇살과 바람이 전신을 희롱하듯 애무하도록 내버려 둔 채. 계곡물, 개울물이 구불구불 흘러 가긴 하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다’라는 그 어떤 충격의 부름. 바람과 물의 길. 전적인 자신의 무장해제. 꿈꾸듯 내려오는 길을 걷는다. 꽃은 꽃으로 이어지고, 길은 길로 뻗어나 있다. 나무, 산, 물, 바람, 꽃 인생 모두가 길로 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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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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