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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라

 

 

내 나이가 이제 마지막 5학년 이름표를 달고 내년이면 학년을 올라가야 하는 요즈음 가장 절실하게 의식을 집중하여 내 삶을 살펴보는 내면작업으로써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론 이는 파커 파머의 신뢰의 서클(Circle of Trust) 워크숍을 자주 접하는 계기가 있어서 더욱 그런 계기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 내면작업중 하나는 작년부터 신뢰의 서클 주춧돌에 있는 가능한 온전히 현존하기의 실습에서 나오는 문장에 계속 돌아와 자신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영혼이 원하는 것을 하라. 그러면 우주(원래 문장은 서클구성원들임)가 너를 지원할 것이다. 영혼은 네가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다.” 내가 만나게 된 이 문장은 큰 위로와 동시에 절망에 가까운 충격을 지속적으로 가져오고 있다.

 

큰 위로라함은 앞의 문장을 통해 내가 비폭력평화실천가로서 어둠속에서 안내하는 빛을 본 것 같은 힘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매년 10만명의 젊은이들이 21개월동안 사람을 죽이거나 증오하는 연습을 하고 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폭력의 지배체제에 대한 나의 그간의 신음과 무력감에 대해 내가 오롯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계시해주는 비밀의 문에 대한 열쇠와 같이 다가왔다. 그래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거야. 그러면 이 우주는 마틴루터킹의 말처럼 정의를 위해 구부러져 있기에 지원을 할거야.

 

그러나 다른 한편 절망의 충격이라 함은 두 번째 문장이 도통 감을 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당혹스런 상태에 있다. 내 영혼이 누구보다 내가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데 아무리 들으려 해 보아도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은 바로 내 목소리인데 내가 내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는 아이러니한 충격이었다. 나는 나의 영혼(참자아)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하는 의심과 함께 손바닥에 모래를 움켜쥐면 빠져나가는 것처럼 의지를 다해보려 하지만 결국은 더욱 듣지 못하는 미궁의 상태에로 추락해 버리고 일상의 의식으로 돌아와 수많은 소음과 빠른 생각의 질주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4월의 사순절기간에 죽은 나사로의 성구장면이 그대로 나의 영혼의 상태였다는 자각이 또 다시 일어났다. 내 영혼은 바로 그렇게 무덤속에서 문이 돌로 막혀있고 어둠과 부패의 악취속에서 손과 발이 묶여있고 수의로 전신이 감싸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상황이 무덤으로 나의 영혼을 시스템으로 압박하며, 거기 공간에서 어둠과 부패의 주변 환경이 공기처럼 스며들며 두려움으로 위협하고, 내 자신의 의식도 끈으로 묶여있고 수의로 둘둘 감겨있는 신념프레임으로 겹겹이 싸여 있는 데다가 입구는 돌로 막혀 있다는 출구없음(No Exit)의 깊은 자각의 충격과 절망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내 나이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늦은 것 아닌가하는 속쓰림의 상태를 맞이했다. 마치 어렸을 때 큰이모댁에 놀러갔다가 본 장면과 같았다. 추어탕을 좋아하신 이모부가 도랑에서 잡아온 살아 있는 미꾸라지들을 대야에 놓고 거기에 소금을 뿌려놓았던 것을 보았는 데 미꾸라지들이 몸을 꼬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밖으로 발설하는 그 끔찍함에 대한 어렸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였다.

 

그러고 보니 파머가 분류한 세 가지 마음이 상태인 이성(지성), 에고 그리고 영혼의 상태에 대해 나의 일생이 그렇게 놓여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알콜중독으로 인해 다가온 허무주의와 우울증에 대해 안전(security)의 기반을 갖기 위해 청소년부터 나이 마흔을 갓 넘은 나이까지 학위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었다. 집안 경제형편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그리고 내성적인 나로서는 가장 힘든 여정중의 하나였다. 마치 알게 되면 실존적 불안을 없애는 안전한 토대가 구축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고라는 적과의 싸움으로써 종교생활이었다. 마땅히 위로와 힘을 얻는 환경이 없었던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우연히 다니기 시작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이후 폐결핵의 충격으로 야간 신학교를 거쳐 다시 감신대를 들어가면서 목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내 삶에 해야만 하는 당위(ought)와 신의 계시를 통해 에고와의 싸움을 지속해 왔다. 성취를 가장한 욕망의 한계에 대해 명료해지고 궁극의 아르키메데스 지랫대라는 신념을 내가 얻으면 안전함과 더불어 자유체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살아 왔었다.

 

그런데 이제 뒤돌아보니 그러한 이성은 생생한 삶의 경험에 차거운 냉소와 무력감을 가져왔고 에고와의 싸움은 계속 나의 괴물과 같은 통제할 수 없은 내면의 심연을 더욱 크게 보도록 가져와서 쉼은커녕 마음이 더욱 심각해지고 무거워 마치 수영 못하는 이가 물속에 빠져 어푸어푸하는 모양이 되었다. 잠시의 영적인 공기흡입은 있었으나 밑은 발을 디딜 수 없어 허우적대는 꼴이 맞는 내 모습이었다.

 

나는 요즈음에야 비로소 영혼의 길이라는 데 대해 그동안 머리로 알던 것이 아니라 폐부에 절감하며 동의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뒤늦은 자각을 맞이하게 되었다. 무덤이라는 구조적 시스템, 어둠과 부패라는 문화, 출구를 가로막은 이성이라는 돌 그리고 내게 가해진 억압의 끈과 수의라는 신념체계들이 그동안 자연스럽고 정상적(normal)이라 지내온 것이 이제는 의식이 살아나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최근에 깨닫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나오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하는 행위의 노력보다는 오히려 뜻밖에도 들어야 한다는 탈출의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몸부림이라는 의지의 노력과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뭔가 귀를 열고 고요히 듣고 있으면 깊은 곳에서 마음의 명령(the decree)’이 솟구쳐 나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깊은 경청속에서 존재적 확신이자 부활과 생명의 리얼리티인 ‘I-AM’은 무제약적 리얼리티의 본성으로 자기 존재를 개화(開化)한다. 여기서는 이성이라는 돌문과 에고라는 시체의 프레임의 힘이 무력화되면서 새로운 현실을 가져온다. “(영혼)를 풀어주어 가게 하라.”

 

여기서 영혼의 목소리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파머의 말에 동의가 되는 것처럼, 뭔가를 위해 노력하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실재가 말하는(‘let your life speak’) 것을 듣는 그 자체로 -그것이 기쁨과 희망만이 아니라 실패, 억압, 불안, 좌절이라는 실재에 대해서도- 인해 새로운 현실로 나오게 된다. 죽음과 어둠 그리고 악취에 대해 자각하는 의식을 되찾게 되는 것이 부활이고, 이 분리된 삶에서 일상을 벗어난 안전을 위한 높이로서 영성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현실관념 그 깊이에 이미 현존하는 무제약적 나는 이다, I-AM”로 현존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 마음의 자리(field)에서 영혼어린세상이 나를 둘러싸며 지원하게 되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그러한 우주의 지원에 따라 나는 영혼의 명령을 명료하게 듣게 된다: “그를 풀어 가게 하라.” 그 마음의 자리에서 궁극실재로서 부활과 생명풀어주어 가게 하라는 영혼의 실재와 더불어 춤을 추며 공명을 할 때, 나의 삶이 내게 말하는 것은 이제 운명(Destiny)이 된다. 이제 그것은 하늘의 뜻이자 내 자발적인 선택으로서 확고한 방향이 출현한다. 더 이상 망설임이 없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살아보아야지하는 열정이 내 가슴속으로 촉촉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내 메말랐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다시금 삶에 매료되고 꺾였던 다리가 펴지고 흥분이 일어난다. 의무가 아니라 놀이로서 삶을 그리고 비극적 간극속에서도 심각함을 내려놓는 웃음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201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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