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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비폭력 삶의 길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공동대표

<<출처: 이글은 원래 본인이 월간 <성서와함께> 2007년 1월호 통권 제35권 370호에 게제한 것으로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블로그에 올림>>


               약자가 우리를 인도한다


살아가면서 위기와 혼란이 올 때마다 삶의 가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결국은 오늘날 신앙수련으로서 평화운동에 몸담게 만든 일종의 계시적인 사건이 둘이 있다. 그 하나는 홀로 산을 걷다가 거대한 고목이 쓰러져 무게로 인해 주변의 작은 초목들이 휘어져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면과의 마주침이었다. 그 고목은 살아 있을 때도 크기로 인한 응달로 주변이 아무런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더니 죽어 쓰러져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아래서 올라오는 초목들의 성장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덩치가 큰 이유로 말미암아 죽어서도 삶의 무리들의 공간을 침해하고 있음을 보면서 어떤 경종의 울림이 가슴깊이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유학시절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주택가를 걷던 길에 뜻밖에 토끼와 마주침으로 멈춘 나에게 찾아온 경련의 경험이었다. 이웃집 뜰 가에서 조심스레 풀을 뜯고 있던 토끼의 그 천진한 눈망울과의 마주침 그리고 아무런 힘을 갖지 않은 약자로부터 더 이상 다가서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부름의 충격이 전신을 휘감았던 것이다. 한 발자국 다가서면 위협을 느끼고 사라질 그의 쉽사리 상처받을 수 있음(vulnerability)이 나를 오히려 긴장시키고, 자기 방어수단 없이 온 발과 귀 끝까지 감싼 극도의 예민한 경계심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해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지 어쩔지 몰라 하던 몇 분 동안의 당혹감. 그러나 결국은 해치거나 방해할 의도가 없었어도 나와 같은 거대한 몸체의 출현만으로도 작은 자, 약자는 겁을 먹게 되고, 결국은 자기 공간을 내어주고 덤불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작지만 내 영혼을 흔들어 놓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커지기와 힘 가지기는 그 자체가 폭력을 잉태함을 깨닫게 되었다. 힘과 크기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이 계시적 사건의 경험은 진리의 일상수행으로서 평화형성에 대한 다른 이해와 관점을 나에게 갖다 주었다. 폭력은 전쟁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나 시위 현장 등의 거대한 현상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 그리고 의식속에 습관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힘(영향력, 명성, 크기, 소유)을 숭배하는 생활양식에는 영락없이 폭력이 현존한다. 거목과 토끼의 예에서 보듯이 스스로 깨닫지 못해도, 의도하지 않더라도 힘을 지닌 존재는 약자에겐 위협이 된다. 폭력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신체적 폭력처럼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있는 보이지 않고 가해지는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적인 폭력들의 뿌리에는 근본적인 인식과 가치의 문제로서 힘과 크기에 대한 숭배가 존재한다. 힘과 크기를 인식과 가치에 있어서 선호하면 중심이 생기고 그러면 작고 힘없는 대다수는 주변화되면서 관계가 깨어져 나/우리와 너/그들의 관계로 나뉘게 된다. 여기에는 힘겨루기나 자기주장의 관철이 생활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평화의 힘으로서 경청


2001년 논문 마지막 학기에 9.11사건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들힐’이란 퀘이커 생활관에서 지낸 적이 있다. 기독교역사에서 평화교회란 이름으로 자리잡은 퀘이커들은 당시에 집집마다 성조기를 걸고 아랍세계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어내고 있을 때, 무슬림지도자들을 자신의 신앙집회에 초대하여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듣기 위해 장소가 넘치도록 수백 명이 몰려왔다. 이들이 주변과는 상관없이 종교적 타자로부터 숨죽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들에 대해 꽤나 충격을 받았다. 어째서 이들은 이토록 다른가?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폭력에 대한 철저한 저항의 무리로 만들었는가에 궁금해 하다가 그 비결이 바로 모든 인간은 내면에 ‘신적인 빛’을 지니고 있다는 신앙과 그러기에 ‘들음의 영성(listening spirituality)’이 생활의 근본토대가 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퀘이커들이  보여주는 온 마음과 태도를 집중하여 상대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가 평화를 사랑하는 단체로 만들어 온 것이다.


학자, 정치가, 종교지도자, 시민사회 지도자일수록 대부분이 자기주장이나 설교조의 말하기에 습관화되어 있어서 듣는 데 거의 무관심하다. 그러나 퀘이커들의 삶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부드러움, 공감적인 태도, 비폭력의 소박한 삶, 정의에 대한 사회적 증언 등의 공통된 모습들은 바로 상대방의 신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오는 경청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경청을 통해 진리를 담은 그 어떤 말에도 마음이 열려져서 새로운 삶에 대한 통찰과 새로운 생활습관이 일어나게 된다. 경청은 적을 무장해제 시키고 힘겨루기로서의 논쟁이 아니라 공감적인 대화를 통해 친구를 만들어 낸다. 우리 단체는  평화운동의 가장 근본문제가 경청과 공감적 대화에 있음을 알고 ‘움직이는 평화학교’에서 이를 몸으로 실습하고 있다. 이념과 구호 그리고 정치적 외교문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늑대들이 정의를 위해 단체를 조직한다 하더라도 본성은 늑대인 것처럼 근본의 변화 없이는 평화가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평화 건설의 근본토대는 바로 경청이며 이를 위해 상대방을 제대로 존중하고 온통으로 듣는 실습이 필요하다. 진실이 통할 때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법이다.


                      평화가 길이다


크로포트킨은 인간과 자연의 진화를 발전시킨 것이 ‘적자생존의 법칙’이 아니라 서로 보살피는 마음이라는 ‘상호부조론’을 주장한다. 실재에 있어서 각 개체의 존재의 힘은 상호의존과 상호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태학의 가르침도 ‘너’는 이미 ‘나’의 일부인 것이고, 약한 부분이 보호되어야만 전체의 건강한 평형(homeostasis)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평화의 추구는 강한 심성의 소유자가 거대한 악이 체계에 대항하는 특별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작고 약한 부분에 대해 주목하고, 삶으로 약자와 관계 맺기(감싸 안기)를 의식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작은 실천들이 개울을 형성하고 또 엮어져서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평화의 물결은 이렇게 작은 개인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그들이 서로 소통됨으로 형성된다.


지난 11월 말에 전국에 있는 평화단체 활동가 120여명이 제주도에 모여서 한국에서 앞으로 10년을 전망하며 나온 과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한 하나가 일상에서의 평화실천이고, 특히 평화활동가 자신의 평화문제였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어와 마음의 비폭력을 추구하고 양심적으로 살고 단순하게 삶으로서 타인의 삶의 수단을 취하지 않으며, 능동적으로 악에 저항하며 비폭력적으로 일하기가 일상의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영국의 지배앞에서 군사주의의 거대한 폭력과 억압의 고리를 끊는 간디의 방법도 일상의 평화 곧 ‘물레를 돌리기’로부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민권운동도 세탁소에 다니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차별된 자리의 바꿔 앉음을 통해 불이 붙여졌다. 가느다란 실로 온 세상을 잡아 당길 수 있다.


내가 새기고 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워진다는 성구이다. 이는 곧 신앙의 깊은 경지는 평화를 위한 생활수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구도의 삶은 진리가 실현되는 비폭력의 사회생활 곧 개인적의 덕(personal virtues)의 세움만이 아니라 공적인 섬김(public services)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폭력 생활의 삶은 일상에서 작은 자를 감싸, 관계를 재형성하는 수행이다. 이에 관련하여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간디의 두 격언이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사회가 바꿔지길 원하거든 그대가 변화가 되어라.” 개인의 의식이 깨어나서 진리, 사랑, 자비를 일상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삶을 살 때 거대한 폭력의 구조는 무너져 내림을 나는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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