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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과 갈증 그리고 비천의 사막은 거룩함의 우물을 지니고 있다

-세속의 성화와 형제 성소의 새로운 영적 개척자, 샤를 드 푸코-

종교적 회의주의, 과학적 실증주의 그리고 군국주의의 식민지 팽창이라는 병적 혼란의 어둔 밤에 새로운 별을 잉태한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1916)의 삶과 그의 영향은 매우 기이하다. 왜냐하면 살아생전 아무런 제자도 없이 죽었으나 사후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의 영향력이 생겨나면서 그의 통찰에 영감받아 세계 곳곳에서 20개 가까운 다양한 재속 수도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낮은 곳’과 ‘마지막 자리’에서 신의 현존을 발견하고, 형제성소와 세속의 성화라는 새로운 현대 영성의 샘을 판 사람이었다. 그의 시도는 완성된 결실은 없었지만 그의 시도와 그가 제기한 새로운 영성의 통찰은 오늘날 종교의 물질화와 제도화 그리고 화려한 사업들에 대한 대안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며 욕망과 사치로 지쳐버린 현대인에게 참된 삶에 대한 갈증을 덜어주는 생수를 공급해 준다.



“나는 멀어져 갔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샤를 드 푸코가 살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식민시장의 쟁탈과 군국주의의 부활, 국가간 전쟁과 계급투쟁, 인종과 이념간 갈등으로 황폐해지고 분열의 골이 깊어져 가는 시대였다. 그는 1858년 프랑스 동부 한 도시,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6살 이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환경의 변화로 상처받으면서 쓰라린 공허감과 불안으로 예민해진 무분별한 아이로 성장한다.

샤를에게서 특이한 것 중의 하나는 다른 성인들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깊은 종교적 체험이나 그 어떤 영적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중에 피정의 묵상시간에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유년기는 “게으름, 음식에 대한 탐욕, 거짓말, 배은망덕, 부끄러운 죄들, 허영심, 오만, 자만심”으로 가득 찼다고 고백하였다. 소년기에 있어서도 “...저속한 말과 독서, 거짓말, 도둑질, 부끄러운 죄들, 오만과 무분별한 허영심, 지독한 이기주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어리석은 낭비”로 인해 극도의 쾌락주의에 탐닉하였다.

방황의 사춘기를 지나면서 신앙을 잃고 쾌락과 무질서의 삶에 빠진 그 전형적인 이야기가 바로 22살에 청년 장교로서 아프리카 북서부 알제리에 파견되었던 당시의 일로 알 수 있다. 기병학교시절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으로 고급 양복점과 양화점을 다니고 고급주를 마시며 대단한 미식가로서 그 당시 하루에 수백 프랑을 그는 돈을 물쓰듯 손쉽게 썼다. 군인으로서 사치와 방탕, 그리고 정부와 놀아나던 그는 결국 군기위반과 풍기문란으로 정직처분까지 받았으나 그의 돈으로 얻은 인심덕분으로 겨우 졸업을 하게 된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경건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군을 떠나 1983년 6월부터 1년간 위험한 모로코 지리 탐험을 통해 비로소 그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멸시와 비참하고 험한 극기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여정을 통해 나그네로서 약자의 상태를 맛보고 그곳에서 자기를 받아준 유대인과 무슬림의 충실함과 관대함에 감명을 받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눈이 떠지게 된다. 특히 그곳 무슬림의 증거적 신앙은 큰 충격이 된다.

이슬람교는 내 안에 엄청난 전율을 불러일으켯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을 사는 이 신앙, 이 영혼들을 보고서, 나는 이 세상의 일보다 더 크고 진실한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성서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앙리 드 카스트리에게 보낸 편지, 1901.7.8)

축제와 권태로움에 빠져 있던 그가 비기독교인의 충격을 통해 종교적 심성의 회복하고 현대 종교인들이 거의 상실한 ‘회심’의 길을 걷는 인연을 맺는다. 파리에서 모로코 여행기를 출판하고자 머무는 동안 지적이고 덕망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면서 가톨릭을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위블랭 신부를 만나면서 그의 일생은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주님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셨기에
아무도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샤를은 자신이 신의 자비로 인해 생명을 찾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통해 신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사셨던 그 장소에서 강생과 육화의 신비에 대한 종교적 확신의 경험과 자신의 전 삶을 규정짓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통찰을 얻게 된다. 이 나사렛 순례를 통해 위블랭 신부의 강론이 메시지가(“주님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만큼 철저하게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셨기에 아무도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영혼속에 각인이 확인되고 구체화되는 헌신의 동기를 받게 된다. 그가 이 순례에서 발견한 것은 ‘나자렛의 숭고한 노동자의 겸허하고 숨겨진 삶’이라는 강생과 육화의 신비였다.

그에 따르면 나자렛의 예수는 무한한 겸손 곧 무한하시고 완전한 분이 이 지상에 한 인간 그것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초라한 분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는 위대함에 연연하지 않고 존경에서 초탈하며 아무도 알지 못하게 그는 나자렛 사람들과 어울려 노동하시며 사셨고 최악의 치욕속에서 죽으셨다는 강생의 신비에 그는 매료되어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비천과 무명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채 가난한 장인으로 사셨던 우리 주님의 발길이 다녔던 나자렛의 거리를 걸으며 나 자신 예감하고 상상했던 삶을 살고 싶은 갈증에 불타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는 신념으로 그는 주인이 한 것처럼 작기 위해 마지막 자리를 찾기 시작하였고, 가난가 비천, 고통과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 삶을 성실히 추구하였다. 이 육화의 신비야 말로 샤를에게는 신의 궁극적 선을 표현하는 삶으로 이해되었고 ‘비천’과 ‘낮은 자리’야말로 성소, 신의 현존의 장소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생 동안 ‘내려오는’ 일만을 하셨습니다. 육화하며 내려오시고, 어린 아기가 되어 내려오시고, 순종하며 내려오시고, 가난한 자 되며 내려오시고, 버림받으며 내려오시고, 피난 가며 내려오시고, 박해받으며 내려오시고, 사형 인도받으며 내려오시고.... 항상 마지막 자리를 선택하시며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밤의 순례자) 

샤를의 직감은 바로 이러한 ‘낮은 자리’에로의 추구가 그리스도교 계시의 본질이며 그것이 단순히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천의 근거이자 과제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현대 그리스도교 영성과 성소에 대한 새로운 지평과 갱신의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낮은 자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겸손과 존경 그리고 세심한 배려로 그들을 대함으로 새로운 성소(sanctuary)의 길을 열었다. 성체(미사와 같은 예배의식)에서 신을 만나는 ‘성체성소’를 지키며 기도의 생활을 추구했지만 또한 일상의 삶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섬김과 사랑속에 신을 만난다는 ‘형제성소’의 새로운 수행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친절과 애정과 형제적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겸손과 온유를 통하여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안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는 모든 영혼에게 말합니다.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일하십시오”

나자렛 예수의 숨은 생애가 세상을 피한 조용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가장 작은 자들에게 더 깊이 다가가기 위한 길임을 깨달은 샤를은 이제 가난과 겸손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는 수도회로 알려진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하여 첫 7년을 지내고 나자렛 글라라 관상 수도회의 문간에서 은수자로 4년을 보낸다. 관상생활을 통해 그는 주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처럼 가장 버림받아 멀리 있는 이웃이 되는 것임을 깨닫고, 수도원의 안전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문명세계로부터 단절된 사하라 사막 오지로 들어가 가난한 원주민 곁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기독교 복음의 정수인 ‘사랑의 완전한 단순성’을 순명으로 받아들여 이렇게 고백한다: 

“나로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닮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랑,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고, 그 삶을 같이 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 없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샤를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스승이신 그분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는 일에 온몸으로 투신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19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굶주림과 마른 모래폭풍의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 베니 아베스(Beni-Abbes)와 타만라셋(Tamanrasset)에서 단순히 사막의 유목민들과 친구이며 형제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는 힘들여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혀 나간다.

“... 저는 닮고 같아지려는 절대적 요구를 외면한, 특히 사랑하는 이의 삶의 고됨과 어려움을 공유하지 않는 그런 사랑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일하시며 구차하고 힘든 노동자의 삶을 사셨는데, 제가 저의 재산을 가지고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높은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자리)

복음서의 꾸준한 묵상을 통해 샤를은 신을 사랑할수록 더욱 이웃을 특히 작은 자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육화와 강생의 신비에 심취된다. 따라서 그가 순명을 이야기 할 때 이는 사랑의 단계에서 가장 끝단계인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완전히 낮추어지는 단계’ 곧 예수처럼 십자가에서 자신에 대해 죽는 단계라고 고백한다. 그는 이를 위해 “비천함과 가난함과 천한 육체노동의 길을 따르는 것”을 실행하기 위해 수도자의 지위를 버리고 ‘만인의 형제’로서 사하라 사막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저의 집을 ‘형제의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군요.
그것이 저를 흐뭇하게 합니다

성찬의 의미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심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먹히우는 자가 되는 것이라는 이해를 가진 샤를은 또한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제단의 성사를 형제들의 성사와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깊이 각인하여 모든 사람과 섞이고 환대, 봉사, 그리고 가장 미소한 이들과의 형제적 나눔을 실천한다. 종교와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 상대가 자신을 모든 이의 형제로 보고 그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04년 4개월의 길고도 험한 사막횡단 끝에 사막의 오지인 호가르에 정착한다. 여기서 그는 은둔소를 외딴 곳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한다. 단순히 사막의 유목민들의 형제가 되려고 애쓰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개종보다는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를 위해 그의 전 삶을 건다. 그는 가장 가난한 이들을 맞아들이면서 그들의 필요에 세심해 지면서 그들의 현실 조건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실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노예제도가 프랑스당국자들과의 공모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에 대한 여론을 일으키려고 한다. 희생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선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어떤 면에서 우리가 돌보는 이들에게 중대한 불의를 행할 때, 정부에 그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책임한 목자”(겔34장)나 “잠든 보초, 짖지 못하는 개”(사56,10)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이 성체안에 현존하시듯 가난과 억압으로 일그러진 모든 사람들 안에 참으로 현존하신다는 확신은 샤를 형제의 삶을 변형시킬 뿐 아니라, 그의 삶에 통합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은 “선의 사도”(우정의 사도직)로서 모든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형제로, 누구에게나 온유로 대우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게 된다. 거기서 병약한 자로 눕게 되자, 당시 17개월이 넘는 기근에 허덕이던 투아레그인들이 약간의 우유를 얻기  위해 십리안의 염소들을 찾아다녀서 그를 살려낸다. 이제 비로소 깊은 신뢰가 싹트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항불운동이 전개되어도 현지인들과의 우정 때문에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여 홀로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은 무장약탈집단의 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유인 것이다.

그가 죽는 날(1916년 12월 1일) 마침 사촌 여동생에게 이런 글을 그는 남긴다: “우리가 무화(無化)된다는 것은 예수와 하나가 되고 뭇 영혼들에게 베푸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거의 매 줄마다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사랑을 위해 자신이 무화되기, 세속의 성화, 종교와 인종의 벽을 넘어서는 형제성사(sacraement of friendship)에 대한 그의 투철한 실천은 살아생전 아무도 따르는 자가 없었지만 그가 남긴 글로 인해 영감받아 이제 20개의 그를 따르는 재속수도회와 수많은 익명의 활동가들에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목을 받으며 마르지 않은 샘이 되고 있다.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 이슬람 교도, 유대인, 우상숭배자 등 모든 사람들이 저를 자기들의 형제 즉 모든 사람들의 형제로 여기는데 익숙해지게 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제가 사는 집을 ”우애의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제게 매우 감미로운 일입니다.” (1902.1.7)


신의 존재는 사랑을 증험한다(샤를이 남긴 몇가지 메시지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공식적으로 공의회에서 선포한 그 시대에 샤를은 이렇게 까지 말한다:
 
"우리는 주님에 관한 말을 직접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떠나가버릴 테니까요. 먼저 그들과 신뢰를 다지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작은 봉사를 하고, 그들에게 좋은 의견을 들려주고, 그들과 우정을 맺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종교를 열심히 믿으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1905년 12월 16일, 드 봉디 부인에게 보낸 편지)]

...애덕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애덕은 예수님의 마음이 끌어안으시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그들이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함으로서. 곧 나와 관계를 가진 모든 사람을-한 사람도 빠짐없이-친절, 상냥함, 형제적 사랑, 덕행의 표양, 그리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겸손과 온유로서 끌어안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느님이나 종교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인내로우신 것처럼 인내하고, 하느님께서 선하신 것처럼 선하고, 친절한 형제가 되어주고, 기도해줌으로서 다가가야 합니다.  ..(1912.5.3. 요셉 하우어스에게 보낸 편지)]

그가 죽는 날 사촌 여동생에게 보낸 글에서:

우리가 무화(無化)된다는 것은 예수와 하나가 되고 뭇 영혼들에게 베푸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거의 매 줄마다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받거나 사랑할 때, 이 세상에서 달리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늘 느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고 싶어하며, 또 사랑하고자 하는 원의는 이미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충분치 않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정말 사실이지요. 우리는 결코 충만히 사랑할 수 없으나, 우리를 흙에서 빚어내시고, 한 어미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며 거짓말을 모르는 선하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오는 자를 나는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날 마씨뇽 L. Massignon에게 이렇게 썼다:

위험과 희생과 헌신이 더욱 필요한 자리를 주저하지 말고 청해야 합니다. 명예는 그것을 원하는 이에게 넘겨주고, 위험과 수고는 늘 요청하십시오. 이러한 행위안에 혹시나 교만이 꺼여들까 염려하지 말고 평생을 소박하게 이 원칙에 성실하십시오. 이러한 의무를 실천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예수께 아주 겸손하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안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청합시다. (1916.12.1 사망-폭력의 희생자가 됨)

누군가 우리를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불의의 잔혹한 죽음을 당신 손으로 축복하신 선물로서 받아들인다면 달콤한 은총의 선물로 기꺼이 따르는 선물로서 당신께 감사드리게 된다면, 우리가 그 죽음을 우리 자신의 원의로 바치는 희생으로 당신께 드리는 것이라면,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당신의 말씀과 “그는 털을 깎였을 뿐만 아니라 말 한 마디 않고 죽임을 당했다”(사 53:7)는 모범을 따르기 위해서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사랑의 순수 안에서 죽는 것일 터이고, 우리의 죽음은 당신께 참으로 향기로운 희생이 될 것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고 뭇사람의 눈에는 순교가 아닐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눈에 순교일 것이고, 당신의 죽음을 가장 완전하게 따르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모방하지 않으면서 그분처럼 되고 그분이 하신 일을 하지 않으면서 고통 다앟고, 괴로움 중에 죽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그분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고통 당하시고 괴로움중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시관을 쓰셨을 대 우리는 장미 화관을 쓰기를 바라면서 그분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알하신 방법으로 그분을 사랑합시다. (하느님의 선하심, p194)]

구유와 나자렛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사용하신 방법은 가난, 비천, 굴욕, 버려짐, 박해, 고통, 십자가입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무기이며, 당신 생명이 우리 안에 계속되도록 맡기라고 하시는 천상 정배의 무기입니다. 이 유일의 모델을 따릅시다. 그러면 틀림없이 많은 선을 행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살고 계시는 분의 삶을 사는 것이며, 우리의 행위는 더 이상 인간적이거나 가련한 것이 아니라 신적 효력을 지닌 그분의 것입니다.“ (1908년 1월 15일, 게랭주교에게 보낸 편지)

<<샤를 드 푸코의 약력>>

1858.9.15.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남
1876.10.30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입학
1883.6.10 모로코 탐험
1886.10.30. 회심
1890.1.16. ‘눈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
1890.7.11 아크베스 트라피스트수도원 도착
1897.1.23.트라피스트 수도회 탈회
1897.3.10. 나자렛 클라라 수녀원의 잡역부
1901.6.9 사제 서품
                                                   1901.10.28. 베니아베스에 도착
                                                   1905.8.11 타만라셋(호가르)에 정착
                                                   1916.12.1 타만라셋에서 살해
                                                   2005.11.13. 시복

(2009/5-6월호, 법무사저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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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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