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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5주 수요일

단 3;24-30
요 8:31-42

메시지             생명의 하나님을 선택하기


금주의 나머지 기간 동안 독서는 점차 험악해져 간다. 예수를 살해하는 것이 불가피해져가는 때까지 진행되어져 간다. 그의 말, 추리, 성서의 인용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성이 그들을 격노하게 만든다.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그를 반대하는 다른 이들과의 논쟁을 함으로써 그들의 행동과 동기 그리고 그들이 진실로 누구인지에 대한 의도를 드러내신다. 그는 죄를 거부하고 악을 지명하는 예언자 이상이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방향을 돌려 그를 영원히 침묵시키기만을 의도한다.

첫 독서는 다니엘서로부터 온다. 느브갓네살 왕의 어전에 있어서 세 젊은이들에 대한 친숙한 이야기이다. 사르닥, 메삭, 아벳느고, 그들은 금신상에 예배하기를 거부한다.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모두는 엎드려 그것에 예배하도록 되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화로에 던져져서 산채로 태워지게 된다. 왕은 인격화된 오만을 드러낸다: “내 손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해줄 수 있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세 젊은이들은 심지어 왕 앞에서 자신들을 방어조차 않는다. 그들은 누구를 섬기는지를 알고 있고 그들 앞에 서있는 이 사람, 왕은 아닌 것이다. 그는 그들을 죽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물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하나님과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왕에게 말한다: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왕께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 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왕의 신을 섬기거나 왕께서 세우신 금신상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왕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는게 아니다: 그의 얼굴은 ‘노기에 차서’ 안색이 달라져 어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군인들 가운데 몇 명이 그들 셋을 묶어 화덕에 집어넣게 하였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네 사람이 아무런 탈없이 걷고 불속에서 걷고 있고 한 사람은 신의 아들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그 단어는 천사 혹은 몸으로 나타난 영이 형태로서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 왕은 무릎을 꿇고 세 신앙인의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를, 그를 믿는 종들을 구하시기 위해 그가 천사를 보내셨구나. 그들은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들 자신의 하나님을 제외한 어떤 신에게 섬기거나 예배하는 대신에 그들의 몸을 내주었구나.”

야훼의 그 세 추방된 종들은 포로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에 대해 증언하고 그들의 신앙은 왕으로 하여금 무릎꿇게 한다. 하나님은 개입하여 세상의 권력에 심히 시련을 당하고 지배받는 이들과 동행함으로서 신적인 힘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물론 비록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시고 역사와 지배적인 권력들이 자신의 경로를 가도록 하게 할지라도,이것은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실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역사의 일상적인 경로와 삶과 죽음의 일상적 경로를 헤뜨리실 것이다. 예수는 그의 하나님을 반대하는 이들 앞에서 다니엘 시대의 세 친구처럼 용기있고 신실하다. 그리고 그 반응은 똑 같다: 격노함.

오늘의 독서의 모두는 하나님의 본성과 누구의 하나님이 하나님인가에 대한 것이다. 시편은 다니엘서로부터 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는 기도이다. 깊이를 통찰하시고 케루빔과 하늘의 궁창위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모든 것을 넘어서는 찬양받으시게 합당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이것은 느브갓네살 왕이 결코 예기치 못한 하나님이시고 그 대신에 그는 예배의 가치가 있고 힘있는 것의 기초로서 자신의 권력에 의존한다. 그는 자신을 예배하고 다른 사람도 같은 것을 행하도록 요구하고 강요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복음서 독서는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 그리고 우리들에게 언급한다:“만일 너희들이 내 가르침에 따라 살면 너희는 진실로 내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것은 힘의 선언, 하나님의 견해로부터 실재에 대한 선언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조차 이것에 주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아직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격렬하게 논쟁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결코 우리는 누구에게도 종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신앙으로 자신의 조상들을 확신하고 그들의 뿌리에 의존하여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진실로 누구인지를 스스로 보도록 의도한다-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가 진실로 누구인지를 보도록 한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 모두를 포함한다. 예수는 합법적인 아들과 가정에서 노예를 비교한다. 노예는 집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산다. 오직 아들이 종들을 자유롭게 한다면 종들은 자유로워 질 것이다. 예수는 듣는 이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함을 잘 알고 있고 그러나 또한 그들은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비난한다: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 말을 너희가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현존에서 내가 보아온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로부터 들은 바를 행한다.

그들의 힘과 자유의 근거는 전혀 정반대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로 아브라함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예수는 교사, 설교자, 예언자이고 그는 그에 대항하는 그들의 말과 추리를 사용한다. 아브라함은 신앙에서 살고 방문했을 때 천사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관대함을 보여주었고,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그가 심지어 어디로 갈 지 몰랐을지라도 그의 본토를 떠났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도시를 위해 하나님과 논쟁하여 악한 백성을 파멸로부터 구하려고 시도하였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식이라면 그들은 그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신앙의 자녀, 계약의 자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들에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진리를 그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는 것처럼 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격노해져서 증오로 눈이 멀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예수가 그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안다: 사생아가 되는 것에 대한 비난!

우리는 거의 치명적인 것이 발생함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느브갓네살 왕처럼 행하고 반면 예수는 조용하고, 그가 진리를 말함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밀을 드러낸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는 전에 그토록 많이 말한 것을 되풀이 하며 대답한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내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은 바로 그이시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예수의 말은 우리의 가슴에서 울릴 것이요 그러면 우리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 혼자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와 격리되어서는 우리중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예수와 떨어져서는 우리는 죄에서, 노예로 살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의 자유와 힘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의 하나님보다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 대신에 불길에서 기꺼이 죽기 원하는 세 젊은이들의 자유를 알지 못한다. 

누가 우리의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가 우리의 가슴속에서 울리는가? 우리는 예수를 사랑하는가? 사랑은 와서 가버리고, 섬기거나 사랑하는 다른 것들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느낌이 아니다. 예수가 말하는 사랑은 예수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항하여 신실하게 기꺼이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폭력, 전쟁, 비인간성, 가난, 모욕, 불의, 부당함, 물질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 국가주의에 대항하며 서있는가? 우리는 우리 존재를 다바쳐 심지어 몸으로도 세 친구들이 한 것처럼 불의하고, 공모하며 자기를 섬기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가?

3월 24일은 엘 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살인에 대한 기념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서로 죽이지 말라고 호소한 후에 제단에서 총탄에 맞아 순교했다. 그의 말은 권력있는 자들의 가슴에는 아무런 울림이 없었지만 그 말씀들은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서 존중되어왔다. 1979년 4월 1일의 그의 말씀은 수년간 더욱 강하게 메아리 친다:

“성서귀절로 보자면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즉, 문제속으로 들어가고자 하지 않고, 우리의 관여를 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이든 밖에 서있기를 원하는 이들은- 그들의 삶을 잃을 것이다.

고통없이, 문제속에 들어가지 않고, 매우 조용하게 안정되게 아무것도 결여함이 없이 좋은 연결들로-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사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어떤 선이 있을 것인가? 그들은 자신의 삶을 잃을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만일 네가 네 삶과 사명을 나처럼 열매맺기 원한다면 나처럼 행하라. 자신을 땅속에 묻는 씨앗으로 바꿔지라. 두려워 말라. 고통을 피하는 이들은 홀로 남게 될 것이다. 아무 것도 이기심보다 더 홀로이지 않다. 그러나 당신들이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부터 당신의 생명을 준다면 내가 나 자신의 삶을 모두에게 주었듯이, 너희는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 당신은 가장 깊은 만족감을 가질 것이다. 죽음이나 위협을 두려워 말라. 주가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악에 대항하여 예수와 함께 서있는 시간이 왔다. 진실하게 되고 세 젊은이들처럼, 오스카 로메로처럼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우해 일어선 그토록 많은 수천 명들처럼 사랑하고 예배할 시간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참되신 분, 우리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분을 아는 유일한 방식이다. 
 
 
    
 ** 세상을 위한 중보 기도: 위협당하는 자연생물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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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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