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35

사순절 제 5주 월요일

다니엘(외경)13:41-62
요 8:1-11

메시지               빛에 대한 증언

이것은 요아킴과 그의 아름답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내, 힐키아의 딸 수산나의 이야기이다. 수산나의 가문은 부모가 그녀를 모세의 율법에 따라 훈련시켰다는 진술에 의해 신실함의 영역에서 매력이 더해진다. 요아킴은 부유하고 집근처에 정원이 있다. 유대인들은 종종 요아킴에 의지했는 데 이는 그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뒷배경이고 그것은 중요하다.

사람들 중에  원로이자 사악한 재판관 둘이종종 요아킴의 집에 들렸다. 그들은 바벨론으로부터 와서, 사악함이 육화된 자로서 야훼의 사람들에게 올무의 덫을 씌우기 위한 우상, 거짓말과 모든 것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이들 두 사람은 수산나가 정원을 걸을 때 그녀를 보았고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을 억누르고 자신의 눈을 하늘을 보도록 하지 않고 심판을 단지 유념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공모하여 무엇을 할 지를 의식하며, 그들의 악은 하나님과 백성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직과 성실을 결여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수산나는 목욕하러 왔고 두 사람이 정원에서 숨어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하녀를 가게하고 문을 걸어 잠근다. 그녀가 혼자 있는 순간 그 사람들이 접근하여 그녀를 위협한다. “우리의 욕망에 굴복하라. 네가 거부하면 네가 하녀들을 보내고서 젊은 청년과 네가 놀아났다고 증언할 것이다.” 수산나는 완전히 올가미에 걸렸다. 그녀는 탄식한다, “내가 굴복하면 그건 내 죽음이 될 것이요, 내가 거부하면 난 이자들의 모략으로부터 피할 길이 없구나. 그러나 내가 주 앞에 죄를 짓기보다 죄없이 이자들의 모략에 걸려드는 편이 낫겠구나.” 그리고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 질렀고 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달려가서 문을 열어서 집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나와 무엇이 일어났는지 보러 왔다.

이야기는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들과 두 원로는 다음날 요아킴에게 온다; 악인들이 그녀를 죽음에 내몰려고 한다. 그녀는 소환되어 가족과 친척들과 함께 온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하늘을 쳐다보고 그녀가 음행을 고소당하는 동안 주님을 온전히 신뢰한다. 그 사람둘은 젊은이를 잡지 못했지만 그녀를 붙잡았다고 보고하고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를 말하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장로들의 말이 믿어졌고 그녀는 죽음의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죄없는 이들이 항상 하듯이 수산나는 그녀를 위해 개입해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녀의 기도가 상달되었다. 그녀가 처형되기 위해 갈 때 하나님은 어린 소년 다니엘에게 거룩한 영으로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편에 서서 말한다,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빠르게 처형하는 것에 비난한다. 그리고서 다니엘은 재판정으로 가서 두 장로를 서로 분리시키도록 지시한다. 그는 그들을 심문하고 그들을 예언자의 태도로 규탄하며, 그들의 위법을 나열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한다: “어떻게 당신네들이 나이들어 악하게 성장했는가! 이제 너희들의 과거 죄가 다 드러나리니 불의한 재판을 하여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고 죄있는 사람을 놓아 주었구려, 심지어 그들이 주님의 계명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서 그는 첫 번째 사람에게 어떤 나무아래서 그들이 수산나를 보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한다, “아카시아나무였다.”

다른 사람이 다니엘 앞에 나왔다. 그 역시 똑같이 대범하고 정직한 말로 그를 비난받는다:

“당신은 유다 민족이 아니고 가나안 족속이오. 당신은 미모에 홀려서 정욕 때문에 당신 마음이 빗나갔소. 당신은 이스라엘의 ant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희롱해 왔는데 그들은 겁에 질려 당신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만은 당신의 악행을 참을 수가 없었소.”

다니엘의 어떤 나무에서 였는가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한다, “떡갈나무.”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거짓을 드러나고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주의 천사에 의해 처형되도록 비난받는다.

그리고서 회중은 일어서서 하나님께 희망을 둔 이들을 구한 하나님을 축복한다. 그들이 수산나에게 과한 벌은 그대신에 의롭게 그들에게 실시된다. 그리고 죄없는 피는 구해진다.

수산나는 장성한 다니엘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후에 같은 용어로 묘사된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에게 비전과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가 된다. 그녀는 또한 예수의 이미지이다.예수는 그를 구하도록 하나님께 울부짖고, 숨어있는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분에게 전심으로 신뢰한다. 하나님은 그가 거짓되게 비난받음으로서 예수의 기도를 그분이 들었듯이 그녀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그 상징은 중첩된다, 왜냐하면 요한의 이야기에서 다니엘의 역할을 맡아서 음행에 잡힌 여인을 구해주는 분은 바로 예수이기 때문이다. 곧 그는 재판정에서 그를 위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거짓되이 고소를 당한다. 그 재판정에서 율법은 비록 합법적이지만 공동체에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도구로서 불의하게 비난하는 데 사용된다.

두 이야기는 음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선적으로는 섹스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더욱이 신실함과 이스라엘에서 무엇이 신실함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자 그들의 죄없음과 그들의 필요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이들에 대한 것이며 사람들 가운데 종교적인 무게와 권위를 지닌 이들 가운데 신실함과 성실성에 대한 것이다.

요한의 이야기에서 예수는 올리브 산에서 밤을 지낸다. 날이 밝자 성전에 그는 나타나고 사람들은 지혜와 율법에 대한 이해를 구하러 온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와서 사람들 앞에 세운다. 아마도 거의 벗겨진 상태였으리라. 그들은 예수를 올가미에 잡기 위한 시도로 그녀를 이용한다. 그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붙잡혔고 율법은 말하기를 돌로 그녀를 쳐서 죽이라고 했다. 당신은 이 사건에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예수가 그들의 평가를 따르게 되면 그 여인은 돌에 맞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로부터 움츠러들 것이다: 그가 율법과 모순되면 바리새인들이 그를 붙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다니엘처럼 그는 은총과 통찰 그리고 강건함으로 다르게 보고 해석하고 응답한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모두 안에 있는 것에 대한 죄를 드러낸다. 그는 허리를 굽혀 땅에 뭔가를 쓴다. 그는 무릎을 꿇고 복종적인 자세로 있으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속하고 그는 곧장 우리에게 향하여 말한다, “너희가운데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그녀를 치라.” 그는 그들을 올가미에 맨다, 그는 허리를 굽혀 다시 무릎을 꿇고 땅에 쓴다. 그리고 청중은 침묵하며 하나씩 사라지고 원로들은 다시 죄없는 자, 예수를 반대하는 사건ㅇ르 만들기 위해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쓴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는 낙서할 수도 있었고, 그 자신의 분노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담아두고 있었을 수도 있었고 혹은 땅에서 기도하며 그들의 혼란에 대해 기다려서 가능한 전환을 기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와 그 여인은 홀로 되었고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상태였으며 그녀는 그 앞에 서있었다. 그는 일어나 단지 그녀에게 말한다, “여인아,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았는가?” 그 질문은 친절하고 심지어 온화하여 그녀의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는 지속한다, “나도 너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대는 가도 된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 죄를 짓지 말라.” 그는 그녀를 경고하며 자유롭게 하였다. 그리고서 거기에는 단지 생명을 떠받치는 가능성을 보기를 종종 거절하는 죄의 무거운 부담을 지닌 채 예수 홀로 거기 있는다.

두 이야기는 신실함에 대한 이야기, 악의 실재와 죄인이든 죄없는 이든, 타인에 대한 그것의 결과 그리고 진실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세상에서 예언자들과 그들의 현존에 대한 것이자, 죄없는 이들에 대한 주목과 진리를 말하고 공동체에 정의의 요구를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다니엘, 수산나 그리고 예수 모두는 하나님의 명예를 추구하고 역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악의 면전에서 그들은 모두 기도하고 그긍릐 몸과 가슴으로 시편의 후렴구를 기도한다: “비록 내가 어둠의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나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는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나님의 그늘에 살기, 슬픔, 악, 그리고 죽음의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대기는 믿는 자 곧 어떤 상황과 시기에서도 신실한 자들의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잔을 넘치게 하시며 살아생전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거하게 하신다-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앞에 신록이 무성한 목장, 쉴만한 물가, 그리고 휴식이 존재한다. 특히 고난, 박해 그리고 죽음의 시기에. 우리는 어둠이 예수 주변에 일어날 때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예수는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그를 따르는 자는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 한다. 예수는 무엇이 선이고, 진실이며 하나님 눈에 타당한 것인지를 드러내려고 하지만 그를 대적하는 이들은 모든 점에서 그에 반대한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이 만든 증언에 따른다고 비난하고 그런 증언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응답한다:

내 증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당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는 외모로 판단하는 그들을 비난한다. 그가 판단할 때 그는 그를 보낸 분,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진리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그렇게 한다. 그는 두 사람에 의해 (수산나의 이야기처럼) 주어진 증언은 타당하고 그와 아버지가 증언한다는 코멘트를 함으로써 그들을 그들 자신의 추리와 율법속에 덫을 놓는다. 그들은 즉시 이 아버지가 누구이고 어디있는지를 묻는다. 예수는 대답한다:

“너희는 나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너희는 내 아버지를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를 보는 이 능력은 친밀하게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고 우리가운데 있는 이 거룩함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죄를 볼 수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의 시기에 있는 이들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앞에 서 계셔서 세상의 빛의 현존에서조차 우리는 자신의 어둠속에 있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대면하고 계신 예수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진실로 이러한 거주하는 빛에 머무른다면 빛이 우리안에 깊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어둠속을 걸어다니지 않을 것임을 듣게 된다. 예수처럼 우리는 진리와 우정을 찾고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한 빛, 희망 그리고 진리의 표지가 된다.

독서는 사순절의 어둠의 깊이에서 불길한 전조로 끝난다: “여전히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를 붙잡을 것이지만 그의 입장에서 그의 시간에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수안에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의 권력이고 그들의 권력은 그분의 현존에 있어서는 약하다. 예수는 몰래 사라져 버린다. 진리는 말해져왔다. 하나님이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그리고 부활에서 그 진리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함께 서있던지 아니면 세상의 빛에 도전하는 이들과 공모하는 데 있게 된다. 우리는 빛과 진리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현존을 위해 서 있거나 그들에 반대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에 반대하는 데 서있게 된다. 이제 다시금 선택할 때이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세상에 대한 중보기도:  소유와 소비의 탐닉으로부터 절제를 위해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 평화의 성자이야기-세속의 성화와 형제 성소의 새로운 영적 개척자, 샤를 드 푸코 file 관리자 2009-05-13 2182
34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토요일 메인즈 2009-04-04 1783
33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금요일 메인즈 2009-04-04 1792
32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목요일 메인즈 2009-04-04 1816
31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수요일 메인즈 2009-03-31 1739
30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화요일 메인즈 2009-03-31 1796
»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5주 월요일 메인즈 2009-03-31 1787
28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4주 토요일 메인즈 2009-03-25 1801
27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4주 금요일 메인즈 2009-03-25 1820
26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4주 목요일 메인즈 2009-03-25 1776
25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4주 수요일 메인즈 2009-03-23 1794
24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4주 화요일 메인즈 2009-03-23 1808
23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4주 월요일 메인즈 2009-03-23 1762
22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토요일 메인즈 2009-03-23 1792
21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금요일 메인즈 2009-03-23 1823
20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목요일 메인즈 2009-03-23 1848
19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수요일 메인즈 2009-03-14 1845
18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화요일 메인즈 2009-03-10 1789
17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3주 월요일 메인즈 2009-03-07 1872
16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사순절 묵상-사순절 제 2주 토요일 메인즈 2009-03-04 1862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