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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4주 금요일

지혜서 2:1, 12-22
요 7:1-2, 10, 25-30

메시지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지혜서의 부분은 읽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대다수는 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악의 깊이, 무감각함과 의식적인 의도에 대해. 우리 대다수는 죄, 악 그리고 악인에 대해 순진하며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서하고 사람들은 악을 하려고 결심하지 않는다고 믿기를 원한다. 그들은 단지 실수를 하거나 감정의 파도에 따르거나 혹은 군중에 의해 따랐을 뿐이라고 믿기 원한다. 그러나 지혜서는 악을 행하는 이들을 묘사한다. 그들은 그 자신의 이득을 이해 남을 해하는 데 의식적으로 의도한다. 이는 죄에 대한 전통적인 묘사를 상기시킨다: 죄의 지식, 그것을 행하려는 의도 그리고 자유롭게 그것을 실행하기. 이 독서에서는 해하려는 의도 그리고 ‘의인’을 해하려는 의도가 있다.

악한 이들은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에게 말한다:
“우리가 의인을 함정에 빠뜨리자 왜냐하면 그가 우리에게 역겹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를 책망하고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그는 하나님을 안다고 큰 소리 치고
주님의 아들로 자처한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늘 우리를 책망하기만 하니
그를 보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되는구나.
그의 생활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고
그가 가는 길은 엉뚱하기만 하다.
그의 눈에는 우리가 가짜로만 보인다.
그는우리가 걷는 길이 더럽다고 멀찍이 피해 간다.
의인들의 최후가 행복스럽다고 큰소리치고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가 한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인생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기다려 보자.

추리하는 것과 의도가 치명적이다. 시도되는 것에 대한 인식은 종이 아침공기에 산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명료하다.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의인의 선과 관련하여 나열하고 그들은 그의 선과 어떻게 그것이 그들이 죄인들이며 악인지를 보여주는 지에 대해 수정처럼 명확하다. 그러나 의인이 가슴에게 말한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들은 그가 역겹다고 한다, 왜냐하면 의인의 바로 그 현존에 의해 그들은 그와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잔인한 힘을 가지고 있고 말과 몸으로 진리를 말하는 다른 사람을 파괴시킬 계획을 한다. 그들의 격노는 심지어 의인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 대한 더 깊은 인식에 의해 격발된다. 이것은 선한 이들에 의해 생산되는 증오의 진정한 십자가이다. 그의 말이 악을 행하는 이들을 하나님의 현존과 지식으로부터 분리시킴을 드러낸다.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결여됨으로 그들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가정한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그를 옹호하시고 그에게 적의 손아귀에서 구출하는가를 우리가 보자.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욕을 하고 고문하며 “우리가 그의 온화함을 입증하고 그의 인내를 시험해보자”고 결정한다. 의인에 대한 이 두 성격은 살아있는 실재로 심지어 악을 행하는 이들에 의해 인정된다.

그들은 이 모두를 미리 생각한다. “우리가 그를 수치스런 죽음을 안겨 주자 왜냐하면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주님이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한 이들이 생각하는 방식이지만 그들은 잘못 생각한다, 왜냐하면 악과 죄는 그들을 눈멀게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 권고, 그리고 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은 아무것도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 악, 파괴 그리고 죄 모두는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 홀로 영원하시고 모든 다른 힘들 위에 계신다. 거룩함과 정의는 어떠한 증오, 속임수, 부정직, 격노함, 고문 혹은 파괴보다 강하며 죽음 그 자체보다 강하다. 죽음은-의인의 죽음, 거룩함, 죄없음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 추구하는 이들-하나님의 지혜안에 뭍힌다.

악을 행하는 이들은 더 큰 가능성을 보거나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오직 직접적인 것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이점에서 주어지는 것만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숨은 권고를 계산하지 않으며 이는 오직 하나님을 아는 이들만이 분별할 수 있다. 믿는자는 악이 형성하는 것보다 더 참되고 진실한 삶에 대한 희망과 신앙에 의지한다.

물론 그 설명은 예수, 의로운 분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예언자들, 진리를 말한 이들과 거룩하고 단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모든 인간에 대한 복종을 하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에 대다한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진정한 거룩함과 선은 악으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색깔을 보여주게 하고 그것의 정체를 밝히게 한다: 그 진정한 정체란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남이다. 이것이 지혜이다: 죄, 악 불의의 정체를 아는 것 그리고 거룩, 순수 그리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이것은 성령이 주어진 이유다: 세상이 죄,악 그리고 불의에 대해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의인의 말과 삶을 입증하는 것.

이들 독서는 예수와 그를 반대하는 이들간에 죽음에 이르는 불가피한 투쟁에 우리를 가까이 가게 한다. 복음서는 음모의 배경과 이미 작용하고 있는 증오와 살인의 절정으로 시작한다. 예수는 갈릴리에 머물고 유대아를 여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몇몇이 그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증오, 음모 그리고 살인의 그늘속에 산다. 그의 제자들이 축일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그는 나중에 올라가서 몰래 슬그머니 “비밀히 모두가 보지 못하게.” 들어간다, 예수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이들의 눈으로부터 그 자신을 감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를 보고 인식하며 언급한다, “이분은 그들이 죽이고자 원하는 이가 아닌가? 여기에서 그는 대중에게 말하고 있고 그들은 그에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구나! 아마도 당국자들이 이 사람은 메시야라고 결정했나보다. 여전히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메시야가 올 때 아무도 그의 출처를 알지 못할 것인데.” 그를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장님이다. 그들은 그의 출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성서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제한된 정보를 이용한다. 그들은 그가 자유롭고 설교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은 것에 대해 당황해 하고 당국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들은 빈틈없고 스스로 용의주도하다. 그들은 듣거나 믿으러 그에게 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그를 죽이려는 이들처럼 그들은 멀리 서있고 가슴을 그의 말이나 가르침에 열지 않는다. 그들은 들으며 서있지만 듣지 않고 보지만 믿으려 하지 않으며 확실히 그와 한 입장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것과 우리가 하지 않으려고 선택한 것에 악이 존재한다.

예수는 그들을 잘안다. 그는 성전에서 가르치며 외친다:

“그래 너희가 나를 안다고,
너희가 나의 유래를 아는가?
진실은 이것이니, 나는 내 스스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보낼 권리를 가지신 분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그를 너희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안다, 왜냐하면 내가 온  것은 그로부터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보냈다.”

지혜서에서 의인이 의인의 운명은 축복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예수는 공개적으로 그는 하나님을 안다고 선언한다. 예수의 선언, 그가 그들에게 지해서의 말을 상기시키는 것이 똑같은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이로 인해 그들은 그를 붙잡으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그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의인이고 그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을 그에게 되돌아오도록 한다. 우리에게 여러 솔직한 질문들이 남겨진다: 우리가 이 예수의 하나님을 아는가? 그 하나님은 의인에게 아버지요, 의인과 죄없는 이들의 몸과 인결에서 악인들을 대면하시며 찢어진 마음으로 있는 이들에게 가까이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타인을 향한 악한 의도로 행동하는가? 우리는 타인이 악인의 손에서 불의하게 고난당하는 동안 기다리고 그들을 대변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날 우리가운데서 고통받는 의인의 현존에 눈멀어 머물고 있는가?

의인들에게 귀를 기울라. 1973년 국제 사면 보고(Amnesty International Report)의 고문에 대해 발행된 “유럽인들에 대한 편지”를 쓴 지오 만가키스(Geo Mangakis)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나는 한 희생자의 운명을 경험해왔습니다. 나는 고문자의 얼굴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왔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피흘리는 것보다 더 심한 조건에서였습니다, 창백한 얼굴을. 고문자의 얼굴은 아무런 인간적인 것을 지니지 않은 일종의 경련에 의해 뒤틀려졌습니다... 사람을 고문하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것은 내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행운의 사람임이 밝혀졌습니다. 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주지 않았습니다. ... 이 순간에 나는 학교가거나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기쁨이 박탈당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혹은 국제사면위로부터 다시 195년 금지된 라디오 방영을 생각해 보라:

들으세요, 들으세요, 당신은 그것을 들을 수 있나요? 르완다의 언덕과 들판의 소리입니다. 거기에서 수십만의 죽음들이 침묵하며 누워있지요.

들으세요. 이웃 부룬디에서의 두려움의 소리입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죽이는 칼들이 그들에게 오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들으세요.  수년간 재소자들의 축적된 침묵을. 그들이 한 때 생각하거나 믿거나 혹은 존재한 것 때문에 격리되어 있었던 침묵을.

들으세요. 그것은 살인부대에 의해 사라지고 강탈당한 자들로부터 존재하는 유일한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다시금 자신의 가족에 의해 듣거나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들으세요. 그것은 고문자가 떠난 후 작은 방의 침묵입니다.

들으세요. 그것은 강대국의 회담에서 이들 어려운 주제들이 아무런 언급없이 지나가는 침묵입니다.

들으세요.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관련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도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일상적이고 예의바른 사람들의 침묵입니다.            
  
들으세요. 당신 자신 안에 깊이. 당신은 무엇을 들으십니까?

침묵을 깨세요.
 

들으라. 주께서 그의 종들의 삶을 구원하시리니 그를 의지하는 어느 누구도 죄책감을 당하지 않으리라 (시 34)



**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 노점 상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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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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