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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4주 수요일
사 49:8-15
요 5:17-30

메시지                                 영생과 생명으로 이르는 길

이사야의 선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크기에는 한도가 없으신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호의, 은총 그리고 성령, 구원의 날로 채워진다. 황폐한 자들에게 유산들을 할당하며, 죄인들을 불러들이고, 어둠이 있는 이들에게 빛으로 인도할 길을 제시하는 시간이 된다. 하나님은 고뇌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자비를 베푸실 것이며, 심지어 엄마가 유아를 돌보시는 것처럼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엄마가 자녀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은 기쁨의 시간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산들도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에 대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하나님을 친밀하고 관심을 가지시며 어떤 거칠음이나 불친절이 없으신 분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교사들에게 모세와 율법의 하나님으로도 알려지게 된다. 균형은 거기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은 인간들 자신의 아젠다에 유용한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좁게 보는 경향이 종종 있다. 그러나 전통은 풍성하고 예수는 예언자의 저작들과 율법, 역사 그리고 시편에 대한 상속자이며 예수는 하나님을 그의 설교의 깊이에서 드러내신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말한다: “내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하시고 나도 마찬가지로 일한다.” 그들의 응답은? 그들은 그를 죽이길 원한다! 처음으로 그들은 그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안식일에 일하기 때문이다-만져서는 안되는 이들에 대해 치유하고, 가르치며, 접촉하신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는 하나님을 그 자신의 아버지로 말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든다. 정확하게 그렇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비, 긍휼 그리고 강건함으로 충만한 분으로 알고 있다. 예수는 그런 전통을 취해서 자기 자신과 모든 이스라엘에게 적용하고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열정과 하나님이 결코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실재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그들을 항상 유념하고 계신다. 그들은 “아버지의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에 거하고 아버지는 그들을 독수리처럼 그들을 높이 이끄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렇게 매우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을 원치 않는다.

그들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도제, 하나님이 하는 것을 보는 것만을 하는,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의 이미지이다. 이들은 때때로 요한복음에서는 유일한 비유인 도제의 비유로 언급되어진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 그의 아버지를 따르는 자로 묘사한다. 아버지같이 자녀같이 그리고 우리는 같은 것을 하고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는 그들이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아왔다고 말한다. 더 놀라운 일이 올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세우시고 생명을 주시며 그래서 아들이 똑 같은 것을 행하실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알고 그의 일은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것, 예언자 모두가 행한 것처럼 하나님은 어떤 설명, 어떤 말이상, 우리의 개인적 경험 이상, 우리가 하나님이신 분에게 원하거나 요구하는 것 이상이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사야가 선택된 백성의 고통과 문제들에서 하나님의 활동과 그속에 계심에 대한 이사야의 설명은 고려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우리의 이미지로 형성된 하나님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우리는 인간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운다.

예수는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해 나간다. 그는 말한다:

“아버지 그 자신은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모든 판단을 아들에게 맡기신다.
그래서 그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아들을 존경하게 된다.
아들에게 존경을 보내지 않는 사람은
그를 보낸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리 놀라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을 매우 예리하게 만드는 길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기술적으로는 20년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대한 조인에 대한 3주기에서 산 살바도르에 대한 방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오랜 과정의 시작에 대해 썼고 살바도르 백성들이 두려움과 공포, 살인과 사라짐의 이러한 십여년간 무겁게 걸었던 거칠은 길을 썼다.

이 현대적 여정의 진정한 시작은 파드 루틸리오 그란드(Padre Rutillio Grande)의 죽음과 그것에 대한 새로 선출된 대주교의 반응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교구의 한 사제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4혹은 5명의 사제들이 살해의 밤에 돌아가며 섭니다. 로메로 주교는 걸어 들어갔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그는 물었습니다, “내게 말해주십시오, 좋은 주교가 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제들중의 하나가 말했다, “그건 쉽지요. 당신이 일주 7일을 산 살바도르에서 보내신다면 당신은 안락하게 경청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묘책을 바꾸시지요. 하루 6일을 캠페니노들(the campesinos) 가운데서 시골에서 보내시고 오직 하루를 여기서 보내시지요. 그러면 당신은 좋은 주교가 될 것입니다.‘ 대주교 로메로는 응답했다: “그러면 당신은 내 일정을 만들 수 있겠군요.” 다음날 그의 친구 루틸리오 그란드(Rutilio Grande)를 위한 설교에 있어서 로메로 주교는 말했습니다, ”내 사제의 하나를 접촉한 이는 또한 나를 접촉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그토록 가까이 우리에게 계심을 보도록 우리가 보도록 노력하신다. 이것이 성육신이다. 이것은 복음,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희망이고 심판이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 대한 역사의 모두를 변경시킨다. 예수는 계속한다: “나는 단언하노니 죽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그 것을 주목하는 이들이 살아 날 시간이 왔고 진정으로 임했다.” 세상에서 예수의 현존은 심판이요 세상이 예수께 대응하는 방식은 그런 심판을 불러들인다. 이것이 항상 전통이 되어왔다: 의로운 자를 위한 구원과 하나님의 힘을 파괴하거나 범하는 이들을 위한 징벌. 예수께서 단호하신 것은 이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들은 대로 판단하고 내 판단은 정직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의 의지를 추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의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관계는 경청의 관계이다: 그의 판단은 하나님의 지각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작업은 이사야에 의해 묘사되고 시편의 응답에 반복된다: “주님은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시다”(시 145) 이는 심판의 기초이다. 우리가 예수가 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일을 할 것인가? 우리는 분노하는 데 더딜 것인가? 우리가 큰 친절로 행동할 것인가? 우리가 모두를 향헤 자비로울 것인가? 우리는 모든 우리의 활동에서 신실하고 거룩한가? 우리는 추락하는 자들을 높이고 굽힌 자들 모두를 올릴 것인가? 우리는 모든 우리의 글에서 옳을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는 모두 곁에, 특히 가난하고 곤핍한 자들의 가까이에 있고 기도에 있어서 충실할 것인가? 이것이 예수의 우리에 대한 판단의 기초이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그, 자신의 아들, 성육한 말씀, 우리와 함께 하는 인간에 대해 신뢰하신 활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예수님에 의해 판단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사야의 독서로부터 우리는 노래하고,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시작할 것임을 듣는다. 그것이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엘리 위젤(Elie Wiesel)의 「서약 the Oath 」에서 레비(the Rebbe)는 말한다: “노래를 통해 당신은 가장 높은 궁전 에 올라간다. 그 궁전으로부터 당신은 우주와 그것의 감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노래는 천사들에 의해 지상에서 잊혀진 야곱의 사닥다리이다. 노래하라 그러면 당신은 죽음을 물리칠 것이다. 노래하라 그러면 당신은 적을 무장해제 시킬 것이다.” 우리 노래를 부르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신앙안에서 우리 앞에 가고, 아버지를 모방한 예수를 모방하는 모든 이들의 탄원을 노래하자.    
 

** 세상을 위한 중보 기도: UN과 국제기구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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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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