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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주 금요일
호 14:2-10
막 12:28-34

메시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서로를 온전하게 한다

금주에 우리는 많은 예언자들로부터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호세아는 충실하고, 하나님과 친밀하며, 자기네 스스로를 다른 신들과 간통하고, 자기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섬기는 이들로 하여금 수없이 반복하여 주는 사랑의 예언자이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너무나 좋아서 거의 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집으로 돌아오라.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너의 삶의 첫 번째 사랑이자 가장 진실한 사랑으로 돌아오라: 하나님에게로.

호세아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인정하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혼자뿐이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진 어떤 동맹에서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만일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로 우리의 얼굴을 단지 돌리기만 하면 그대는 하나님게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그의 진노를 우리로부터 거두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슬과 같으셔서 우리는 백합처럼 피어날 것이다. 우리의 강함과 뿌리는 레바논의 삼람나무와 같을 것이고, 하나님안에서 우리의 화려함은 올리부나무 같을 것이다. 우리는 삼람나무의 그늘과 그 향기안에 머물며, 곡식을 거두게 되고 우리의 명성은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되리라. 이러한 이미지들은 희망과 풍성함으로 무성하고 평화가 넘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 것이 되기 원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말을 듣기에 주저하는 이들에게는 꾸짖음이 있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오직 열매를 맺음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지혜이다. 주의 길들은 곧으시며 그 길에서 의로운 자는 걸어가지만 죄인은 넘어진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이미지이다. 똑바로 자유롭게 걷는 이들과 걸려 넘어지는 이들.

이 독서는 하나님에 대해 묘사하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을 사랑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들은 발길을 돌려 멀어졌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거부하고 그들의 행복을 그 어느 다른 곳에서 추구하여 그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유일하게 하나님께 의존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보호를 위해 관계를 추구하는 그 나라들에 의해 낮아지고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랑은 열의가 없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다. 이스라엘은 계약을 잊어버렸고 하나님 홀로 하나님이시며, 예배, 칭송 그리고 주의깊은 헌신을 받을 분이란 첫 계명을 잊었다.

이것이 예수에게 서기관이 질문한 실체이다: 모든 계명의 첫째가 무엇인가? 물론 모든 유대인은 그 대답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자신의 기도와 신앙고백의 한 부분으로서 매일 아침 그것을 암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대답한다. 이것이 첫 번째이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두 번째이다: “너희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것들보다 더 위대한 다른 계명은 없다.

예수는 하나의 유대인으로서 예언자들의 충실한 아들, 계약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그 자신을 선포한다. 그분은 자신의 조상의 하나님 그리고 약속의 하나님께 신실하다.

서기관은 그를 칭찬한다: “놀라운 선생이시여! 당신은 ‘그는 유일하신 분,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옮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느 번제물이나 희생제물보다 더 가치있습니다.” 서기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언자들의 통찰과 가르침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성저의 제의 의식에 있지 않고 율법에 대한 사랑과 복종의 삶으로 구성된다. 이제 서기관의 통찰을 입증하는 분은 바로 예수이고, 그의 말을 확증한다.  그리고 예수는 서기관들에게 놀라운 선언을 한다: “너희는 하나님 통치에서 멀지 않았다.” 그 것 후에 아무도 예수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용기가 없어졌다!

서기관들은 율법이 마음, 목숨, 생각, 힘의 희생-바로 그 자신의 삶-에로 인도한다는 이해에 도달한다. 어떻게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 가까웠을까? 혹은 심지어 더 요점을 말하자면, 어덯게 우리는 가까울 것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한다함은 그토록 가깝게 조율되어 있어서 제의들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비교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그것은 심지어 하나님의 통치속으로 우리를 이끌지도 못한다.

하나님의 왕국에 있어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인지를 묻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온 마음, 목숨, 생각 그리고 힘을 다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하나님,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친척, 친구, 연인, 이웃, 낯선 이, 가난한 자, 적,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 우리를 반대하는 이, 우리를 무시하거나 시험하거나 혹은 우리와 경쟁하는 이? 어디에 우리는 우리의 삶, 욕망, 시간 그리고 타인에 대한 생각을 희생하는가? 우리의 사랑은 전적으로 소모하고 다른 것에 넘겨주는 번제물처럼 강한지를 우리가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그런 영원한 질문은 주님의 길에서 종종 우리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산 살바도르의 대 주교인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는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또한 명료하였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는 곤핍한자, 고문받은 자, 감옥에 있는자, 살해받은 그 사람임을 보기만 한다면. 어떤 존엄성도 없이 거리에 던져진 모든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 던져진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그분에게 우리는 온순히 함께 모여 키스한다.”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첫 번째 율법과 아울러 두 번째 율법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한 이야기가 극동아시아에서 말해진다:

옛날 옛적에 한 왕이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가 만난 이들중의 한명은 율법의 두루마리를 지닌 지혜로운 자였다. 그는 그 두루마리를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왕이 법을 사랑하고 공정하고 현명한 통치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이 그 두루마리를 열어보았을 때 그것은 비어있음을 발견하였다! 실망한 그는 현자에게 다시 돌아가서 불평하였다: “두루마리에 아무것도 써있지 않았더군요. 무엇이 옳고 현명한 것인지를 내가 어떻게 결정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쓰여진 것은 마치 네 마음속의 법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읽기 위해 배울 수 없다면 10년후에 돌아오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해 그것에 적어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내부에서 무엇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하나님 닮은지를 찾아야만 하고, 그것은 사랑과 온전함(integrity)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니콜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zakis)의 잛은 비유가 지닌 지혜를 반향한다:

한 남자가 절망적으로 신적 현존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보면서 울부짖었다: “아몬드 나무여,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렴.” 그리고서 아몬드 나무는 꽃을 피웠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 대한 실천에 의해, 우리의 이웃에 대한 돌봄과 하나님의 뜻과 꿈을 돌봄에 의해 우리안에 감추어진 이 지혜를 발견한다-세상에 의해 버려졌고 잊혀진  이들을 위한 정의, 평화 그리고 자비를 위해. 이러한 배움은 영혼을 만들고 아무도 그것을 우리를 위해 할 수 없다, 비록 우리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의 경험이 우리를 길위에 올려놓아주고 잠시동안 우리를 동행 할 수 있다할지라도. 그러나 우리의 매일의 말, 생각, 그리고 행위가 이 하나의 진리를 드러내주는 그러한 열정, 그러한 희생, 그러한 거룩함을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일생이 걸리는 것이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주님 한분이시다!” 우리가 예수의 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통치에 사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은총에 의해서만 그렇다.

아마도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좀더 확실히 길에 따라 시작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데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에 의한 것이다:

오주여, 나를 붙잡아 주소서. 나를 당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붙잡아 주소서. 그래서 거기서 나를 붙들어 주셔서, 나를 정제하여 주시고, 나를 정화시키시며, 나를 재점화시켜주셔서 나로하여금 화염으로 타올라 높이 오르게 하소서, 내가 전적으로 당신이 나로 하여금 존재하도록 하신 바가 될 때까지. 자아를 깨끗케 하는 죽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 제 3세계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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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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