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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약적 사랑에 의한 새로운 시작

 

본문: 21

 

요한복음에만 있는 17장의 예수의 기도는 요한공동체가 표현하는 하느님(실재)에 이르는 거룩한 길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시각과 핵심을 알려준다. 마지막 절을 보자:“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26) 여기서 두 가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하고 앞으로도 그러하며 둘째는 그분의 무제약적 사랑(아가페-헬라어)에 있음에 대한 것이다.

그 두 열쇠가 우리의 비참함을 여는 비결(이것은 앞서서 가나의 혼인잔치로부터 나사로의 소생까지 이어지는 기적징표의 핵심이었다)이었다. 18-19장의 심문과 십자가처형사건을 통해 중요한 관심은 비극보다는 네가 누구인가?’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그분의 십자가위의 들리워지심은 바로 하느님의 본성과 그분의 무제약적인 사랑에 대한 신실함으로써 은밀하게 세상의 왕이 아닌 진정한 왕의 등극에 해당되는 사건이었다(이는 사랑하는 제자들만이 이해하는 비밀이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들(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익명의 사랑받는 제자)에게 죽은 자의 두건과 수의의 종점에서 천사와 신성한 음성을 들음으로 그리고

무서워 떨며 문을 닫은 공간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주님(비육체적 현현)은 평화와 성령, 그리고 죄의 용서라는 사명을 주면서 일어서는 영혼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의심많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것에 대한 확연한 실재감각을 넣어줌으로써 부활은 육체의 소생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보다는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의 부어주심으로써 일어나는 영혼의 섬광의 의미로 나타난다. 의미, 목적, 에너지가 살아있는 삶으로 세상의 종살이에서 자유에로의 모험에 투신하는 존재로 바뀌어지는 것, 20장 끝절인 31절에서 말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 바로 부활의 핵심의미였다. 그 생명은 평화, 성령받음, 죄의 용서라는 구체적인 지상적인 삶으로의 개시속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부활은 공동관계성 곧 17장에서 말한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이 그의 심장 안에 현존하는 하나됨의 사건이다.

21장은 예수의 재출현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이미 20장 끝절인 30-31절이 마무리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21장은 많은 성서학자들에 의해 나중에 첨가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요한공동체 안에서 예수사건에 대한 의미의 일관성에 있어서 더욱 명료화하는 성격을 지닌다. 즉 저자와 신앙공동체의 신적실재에 대한 일관된 응답에 있어 정점에 해당된다.)

어쩐 일인지 21장에서는 20장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수의가 있는 곳에서 천사와 예수이 음성이 들리고, 두려움과 막힘의 상황에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네 손가락으로 (못자국의) 손과 (창자국의)옆구리를 만져보아라는 예수의 출현에 대한 제자들의 목격에도 불구하고 제자 7명이 다시 고기잡이의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기이한 출현의 목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떻게 다시 과거나 일상으로 혹은 옛 생활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목격과 회상에 머무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뭔가 더 말할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예수와 함께 하면서 그분의 말, 행동을 경험하고 처형과 부활의 목도에 경험하였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의미로서 명료하게 채워져야 할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기도 마지막 구절인 아버지를 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한다는 것이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가? 아마도 이것이 21장의 기록 동기일 것이다.

시몬베드로와 나타니엘은 세례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1:35)에 의해 처음 제자가 된 이들이다. 나타니엘은 하늘이 열리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1:51)까지 들은 첫 제자들이다. 이들은 다시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행동을 다시 취하고 있었고 그날따라 천생 어부였던 그들은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3). 이 때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첫 번째는 다시 예수께서 출현하여 예수지시대로 하여 큰물고기 153마리나 잡혔고, 주님이심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과 그분이 숯불, 생선, 빵을 준비하고 가까이 오셔서 빵과 생선을 집어 주셨다‘(13)는 세 번째 나타나심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주님이신 예수는 질문을 하였고 그 결과는 풍성한 고기, 음식을 건네심이라는 돌보아주심이었다. 이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최후의 만찬의 회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6:41-59) 세 번째 출현은 회상과 그 기억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확연하게 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증거도 포함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두 번째 질문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부인경험이 있는 베드로는 세 번에 걸친 질문을 받고 내 (어린)양을 잘 돌보라는 부탁을 듣는다. 통상 대부분의 해석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교회성장 혹은 기독교인화의 선교로 이해하지만 실상 이것은 요한기자의 본 뜻은 아니다.

를 사랑하느냐는 대상적 실재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시어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6:41), 간음한 여인사건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눈먼 장님이야기 후 목자와 양이야기에서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10:7,11), 나자로의 죽음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최후의 만찬 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그리고 고별사에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5:1) 등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말한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바로 신성한 문장, 곧 모세가 떨기나무불꽃에서 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 들은 YHWH(야훼; 나는 ...이다; I-AM-That-I-AM)의 신성어에 대한 확인이다. 세상으로부터 난 자로서의 에고를 넘어 하느님으로부터 난 자로서 '나다(I-AM)'이라는 우리 존재의 근거인 궁극실재와의 접촉에 대한 지시어이다. 예수는 육체적 자아로서 나를 사랑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참자아·신적생명인 라는 정체성에 대한 연결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적생명으로서 ’(요한복음에서는 이른 상징적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표현함)에 대한 확인이고, 그렇게 세상의 한계로 범주화되지 않은 에 대한 인식을 묻고 있다. 그러한 자각으로 삶에 대하여 무제약적인 사랑(아가파오, 조건없는, 이유없는 무제약적인 사랑인 아가페로서의 사랑)을 자기 삶에 대해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범주는 기껏해야 조건적인 사랑이다. 너는 그것을 넘어서는 무제약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자기 삶에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이유없는 사랑을 품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결단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한 주를 믿는 신앙의 새로운 차원이고 새로운, 사랑하는 제자됨의 방식이다.

내 양을 잘 돌보라는 것은 단순히 선교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례요한의 하느님의 어린양을 지목한 것처럼 그러한 하느님의 무제약적인 사랑에 머무르는 존재에 대한 주목과 관심을 이야기한다.

내가 돌아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22)은 타자에 대한 지적호기심의 관심에서 네 의식을 신성한 생명인 ’(하느님의 사랑이 그 안에 머무는 존재로서의 나됨)에 대한 주목하라는 뜻이다.

 

 

거룩한 독서 방식에 의한 개인 성찰

 

1.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그대 자신에게 침묵을 허락한다. 텍스트를 천천히 읽는다. 읽으면서 각 부분을 맛보고 말씀이 자신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영혼을 움직이는 들려지는 말씀에 자신을 열어 놓는다. 무슨 말씀이 들여지는가?

 

2. 당신이 신앙체험 후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때, 당신 안에서 들려오는 질문인 애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그물을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는 질문에 어떤 반응이 올라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3. 15-19절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라. 전체 장면을 생생히 느끼면서 당신이 베드로 대신 앉아 있고 질문을 받는다고 상상하라. 어떤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반응을 취하고 있는가? 무엇이 다가오는가?

 

4. 이제 요한복음 리딩(말씀듣기)을 끝내면서 무엇이 남는가? 어떤 것이 당신의 영혼속에 일어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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