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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올리워짐, 영광에로의 길을 열기

본문: 요19장


종교적 신념이 표현하는 실재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어떤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모든 이에게 그리고 요한공동체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질문이다. 하늘의 빗방울이 혹은 땅속으로부터 들어가 다시 올라오는 샘이 결국은 여정을 거처 바다로 가고 다시 상승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자연의 이치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되는가? 결국은 우리가 모두 그러한 전체 속으로 그리고 영광의 하늘로 간다는 사실이.
  그러한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거대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실패, 상실, 고통과 죽음이라는 막강한 두려움의 실재가 있다. 그리고 또한 그러한 두려움의 실재를 막아낼 수 있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실재로서 성소가 그 효력을 잃고 파괴되었다면 전체성과 영광으로 간다는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성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요한은 우리의 현실의 실존적 궁지라는 상황에 대해 ‘기적의 표징’이야기로 응답한다. 그리고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AD 66-70년의 경험과 유대인들 전통으로부터의 소외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의식, 새로운 생명, 새로운 실재’로의 방향에 대한 거룩함의 전이(transition)를 제안하였다.
  19장에서 나오는 예수의 처형이야기는 겉으로는 명백히 실패와 희생의 이야기이다. 1절부터 ‘매질’(1절)과 ‘가시나무 왕관’(2절)‘빰을 때림’(3절)이 등장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 사랑을 가르친 당사자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수치가 등장한다.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의 아우성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는 잔인한 몰이해와 증오가 뒤따른다.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는 유대 총독 빌라도의 연민을 향해 ‘스스로를 왕이라 함은 카이사르의 적’이 된다고 빌라도를 논리의 덫에 가둔다. 그들은 결국 ‘율법에 의하면 그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7절)과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밖에 없습니다’(15절)로 응답하여 율법의 기능과 세속왕에게로의 충성이라는 ‘이 세상에 속함’에 대한 변화없음을 드러낸다.
  일반 기독교인들의 대다수가 사도바울-어거스틴에 의해 만들어진 속죄론(a doctrine of atonement)으로 인해 십자가와 희생을 통한 우리의 죄의 대속이라는 희생양/염소(scapegoat)라는 대리설에 익숙하다. 그래서 십자가의 처형은 우리의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짊어짐이고 그래서 우리의 죄는 방면되었다는 교리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난주간을 절제와 금욕, 정화와 회개의 시기로 맞이한다. 십자가에서의 처형은 우리의 죄를 위한 고난과 희생의 상징으로 이해하게 되어 어찌되었든 간에 희생의 무거움, 죄의 연루성을 상기시키며 죄의 보편성에 대한 심각성을 자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교 전통을 요한기자는 전환시키면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새로운 의식, 새로운 실재로의 개방성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예언의 성취(‘성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28절)이자 새로운 인간성의 회복(“이제 다 이루었다”-30절)로 새롭게 이해한다. 전적으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처형이 아닌 예수의 ‘올리워지심’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요한은 8:28에서 예수의 말을 통해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십자가가 처형과 희생의 관점이 아니라 그래서 궁극적인 실패자의 모습이 아니라 올리워진 자, 곧 영광을 받은 자에 대한 암시를 말해주고 있다. 14장에서  십자가 처형후 예수의 부재에 대한 준비로 있을 곧을 마련하기 위해 간다(2절)고 말한다. 예수는 ‘길진리생명’이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10절)을 통해 특정 장소가 아닌 영혼의 내면에 대한 성소를 말한다. 게다가 다른 협조자이신 진리의 영이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실 것”(17절)임을 말한다. 세상에 나타내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23절) 이를 통해 신이 주는 평화를 얻는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유일한 일은 그 어떤 일에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31절)이다. 이것을 위해 ‘자 일어나 가자’는 차원에서 고난과 십자가를 맞이함으로 나간다.
  심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적대자들을 통해 숨어있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적대자 유다인들을 통해서는 율법이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민감하다는 노출(19:7)이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로부터는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온 사람이냐?”(9절)이며, 결국 “자 너희의 왕이 있다.”(14절)이며 십자가의 명패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19절)이었다. 결국은 겉으로는 심문과 처형으로 보이는 이 사건에서 ‘신비스럽게도’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는 숨은 절차들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그는 이 세상 왕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적인 ‘왕’으로 등극되는 -영광의 자리로 올리워지시는 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공동체가 갑작스럽게 그리고 새롭게 알아차리게 된 새로운 왕의 위엄이다.
  하느님의 사랑안에 신실하게 머물러 자기 생존의 최소한도의 노력을 내려놓고 모욕과 저주를 넘어 자신을 하느님의 현존과 일치시킨 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 올리워지심의 사건이다. 죄의 대속이라는 입장에서 희생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과 세상이 주지 못하는 신의 평화를 죽임당함이라는 한계상황에서도 그 분에 대한 신실성을 끝까지 놓치 않으신 새로운 인간성, 새로운 의식, 새로운 실재로의 전적인 자기 개방에 대한 무제약적인 사랑의 충격이 요한 공동체를 각성시켰다. 새로운 거룩함의 길이란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는 자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수치를 초월하여 새로운 존재의식의 섬광을 촉발시킨 것이다.
  때를 다시 아직 아님에서 이미 일어남으로 확인하는 가나의 혼인잔치의 어머니 마라아에 대한 돌봄과 ‘이제, 다 이루었다’는 이제의 차원이 펼쳐지면서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34절) 창으로 옆구리를 찌름이라는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성령의 피와 세례라는 물이 이제는 세상을 향하여 보편적으로 제공된다.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이 증언은 참되며,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35절)
  피와 물이 흘러나와 자신의 심장을 적시면서 그 사건의 목격자들은 이제 길진리생명의 증언자가 된다. 삼각형처럼 하느님의 아들(그리스도)-사랑의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신적생명이 내안에 있음을 아는 증언자의 세 축이 연결되면서 그 피와 물로 인해 새로운 존재의식의 섬광이 일어난 새 인간성이 일어서게 된다. 아리마대 요셉과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이제 신분을 드러내고 예수께 다가오는 무리가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37절)의 전환이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18:37) 이 예수의
빌라도 앞에서 한 심문에서의 말은 종교적인 고집스러움(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와 정치적 권력앞에서 최종적인 자기
증언이 되었다. 그리고 십자가까지 지는 증언의 충격은 그 사건의 새로운 성찰과 각성을 통해 새로운 뒤따름의 사람들을 불러
내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떨던 그들이 신적생명에로 자발적으로 다가와 그분과 접촉한다. 이것은 17장의 기도의 이루어짐과 같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7:26) 십자가를 통해 영광의 자리에 올리워지신 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름으로 인해 우리는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진정으로 보게 됨으로써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누구이고, 어떤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이제는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것이 신적 생명이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 거룩한 독서 방식에 의한 개인 성찰 ◉
1.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그대 자신에게 침묵을 허락한다. 어떤 이들은 내적으로 침묵하기 위해 암송하는 기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방법을 발견해서 몇분간 침묵을 즐겨라.

2. 텍스트를 천천히 읽는다.  읽으면서 각 부분을 맛보고 ‘나는 당신을 위해 오늘 존재한다’고 말하는 단어나 구절의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를 지속해서 듣는다. 어떤 각성이나 환각을 기대하지 말라. 거룩한 읽기에서 신은 그 자신에게 듣고, 침묵에서 그를 찾도록 가르치신다.

3. 말씀이 네 자신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말씀을 기억하여 조용히 그것을 네 자신에게 되풀이 하여 그대 자신의 관심, 기억, 생각의 내면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도록 허락한다.

4. 신에게 말한다. 그대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자와 그대가 함께 있도록 신과 상호작용한다. 그대가 명상의 경험동안에 그대 안에서 발견한 것을 그분에게 드려라. 그분이 그대에게 축복의 수단으로 준 단어나 구절을 사용해서,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숙고가 깨달음을 가져온 변혁적인 사고나 기억을 사용해서 신을 경험하라. 그대가 그대의 가슴속내에서 발견한 것을 신에게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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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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