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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진리의 참됨을 증명한다

 

본문: 18

 

초월적 신념을 사는 한 인간이 자신의 진리를 살아갈 때 가장 혹독한 시험은 세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내부 추종자의 배신, 기존 종교의 박해 그리고 정치적 권위의 위협이다. 통상 소종파(sect)화된 한 신흥종교가 흔들리는 것은 그 세 요소 중 하나에 의해 허물어진다. 생존을 위해 때로는 기존 종교의 박해에 대항하여 내부 추종자의 강한 결집과 정치권력과의 야합 등의 길을 걷기도 한다. 더 분리된 섹트종교의 경우 기존 종교의 박해와 정치권력의 위협앞에 세상과 분리된 장소에서 내부 추종자의 강한 결속을 꿈꾸기도 한다.

요한기자의 이야기는 이제 정점, 곧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당시에 가장 끔찍한 형벌로 이해된 종교지도자에겐 수치의 길을 맞이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생존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일관성, 곧 하느님 사랑에 끝까지 머무는 자의 일관된 태도가 어떻게 죽음, 그리고 권력의 힘을 무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 진리, 생명의 자기 증거이다. 그리고 최후의 덫인 제자의 배반, 종교적 박해, 그리고 정치적 억압의 장벽들을 통과하면서 무엇이 최후에 남는 것인지를 드러낸다. 그 스토리를 듣는 청자들은 예수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진실로 살아있고 무엇이 죽은 것인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의식, 새로운 생명, 새로운 실재에로의 길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장해물이 실상 그 힘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히 알게 된다. 그 새로운 길은 막을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랑안에 머무는 진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새로이 부여받은 영혼의 생명은 처형과 무덤이 가둘 수 없다는 것도 눈으로 보게 된다.

18장의 첫 시작은 바로 앞 절의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7:26)의 예수의 간절한 기도와는 달리, 외형적으로 볼 때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다.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침묵의 현상과 배반의 현상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배반자 가롯 유다와 수석 제자의 세 번에 걸친 예수에 대한 부인이다. 여기에 덧붙여 유대교의 대사제 안나스와 가야파로부터의 심문과 예수의 권위에 대한 의심이 추가된다. 거기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정치권력인 로마로부터 파견된 빌라도 총독에 의해 사형허가(이는 마지못한 허가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본디오 빌라도는 그의 정치권력을 통해 사형을 허가한 책임자이기도 하다)까지 내리는 일련의 과정이-점차적으로 강화된 억압과 불행이 진행된다.

그러나 요한이 증거하고자 하는 겉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일련의 비극적인 사태들이 과월절 절기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출애굽당시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죽음의 사탄이 건너갔다는 -그래서 과월절 곧 pass-over ‘건너감이다- 절기라는 를 상기시키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때가 이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때로 바뀌는 시기/때를 암묵적으로 상기시킨다. 그러한 때의 참/충만함에 있어서 배신, 박해 그리고 억압은 더 이상 그를 붙잡는 올가미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참된 정체성과 그가 말한 메시지의 참됨과 실재성이 드러나게 되는 통로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살펴보자.

첫째, 가롯유다의 배신을 넘어 스승을 붙잡으러 무장한 군인들에 대한 직면의 상황을 보자. 무장을 갖춘 그들에게 오히려 예수는 앞으로 나서시며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라고 묻는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고있다고 하자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진다”.(4-6) 아마도 독자들은 추측해야 하리라: 붙잡으러 온 무장한 군인들에게 내가 그이다라고 앞서 나서고 그로 인해 군인들이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지는 이 권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무엇이 이런 역전을 가능하게 하는가?

둘째, 종교권력의 최종 목적에 대한 심판이다. 새로운 토라(하느님의 법)의 수여자인 예수에게 대항하여 기존의 종교권력의 수장인 대사제 안나스는 한 사람이 온 백성을 대신하여 죽는 편이 낫다는 말로 두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는 종교가 권력이 되어 자기 보호에 경직되어 새로운 영의 출현에 둔감하다는 것이요 -이것은 바로 도스토엡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의 비유를 통해 말한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권력의 최후가 새로운 진리에 대적하는 기능과 죽임의 통로가 되었다는 아이러니이다. 진리에 대한 분별을 중요시해야 할 위치에 있는 수장이 오히려 온 백성을 대신하여 한 인간을 죽이는 이데올로기를 결정적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은 역사이래 모든 종교전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권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독관저를 찾아간다. [19장에서 보겠지만 종교권력이 지닌 최후의 자기증명은 이것이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7)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라고 군중을 선동하며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밖에는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다.(15)]

셋째, 빌라도는 어쩌면 운 좋게도 자신의 정치권력의 위치에 있어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궁극적인 질문 두 가지를 묻는 위치에 있었다. 하나는 네가 왕인가?”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두 질문을 동시에 던진 사람이다.(37-38)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질문을 하면서 자기 지위보전을 위해 결국은 더 깊이 탐문하지 않고 예수의 증언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서 군중과 타협하려 자기 지위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온다.(38-39) [19장에서 이 사람의 최후 모습은 이렇다: 물러나서 손을 씻고 자신의 신념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과는 달리 공범자가 되어 결국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의 압력에 의해 그들에게 내어 주게 된다.(16)]

이 세 역할자들의 등장과 더불어 더욱 반대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세 가지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용감(?)하게 행동한 베드로를 보게 된다. 그는 예수의 제자들의 리더처럼 보여진 인물로 붙잡으러 온 군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예수를 보호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심지어 안나스 대사제의 집안뜰 문까지 가 있던 사람이었으나 예수와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27) (닭이 울었다는 것은 양심에 큰 울림이 있었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청자들로 하여금 그 신호에 의해 무언가 깨닫는 결정적인 울림의 말일까? 우리는 여기서 뒤따르는 제자직의 한계가 어디까지 이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의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제자가 아니라 벗이 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그 세 시련의 장면과 제자인 베드로의 부인을 배경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그 무대 뒤에 중요한 한 가지의 흐름이 존재한다. 그것은 반대자와 박해자의 입으로 물어지는 질문의 궁극성이다. “너희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내가 그 사람이다그리고 네가 왕인가?”“진리가 무엇인가?”-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I-AM, 내가 그 사람이다는 말로 인해 부장한 군인들이 뒤로 자빠지는 상황이 연출이 되었고, 로마총독이라는 최고의 권력 앞에서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고 일관성 있게 말하는 한 존재가 여기 있다. 그로 인해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 배신/박해/위협 앞에서 일관된 행동을 보인 한 존재가 서 있다. 그래서 잡으러 온 자가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고, 박해하며 심문하는 종교적 권위가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에 관해 묻는’(19) 이상한 위치로 전락하게 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정치권력이 비밀스럽게 왕됨의 의미진리에 대해 묻게 되면서 자기 권력의 공허함을 간접적으로 신비스럽게 드러내게 만든다. 예수에 대한 심문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신들이 근거한 터전의 비실재성에 대한 은밀한 심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심문받는 이가 세상의 권력자를 심판하고, 박해가 오히려 진리를 드러낸다.

 

개인 성찰을 위한 질문

1. 본문을 깊이 묵상하라. 그중에 당신의 영혼을 울리는 텍스트 앞에서 자신을 열어 그 메시지가 자신의 영혼과 삶을 비추게 허락하라. 음미하며 자신을 맡긴다.

 

2.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본문에 나오는 장소, 등장인물을 따라가라. 각 장소, 인물, 말들을 목격하며 있는다. 목격자로서 그대에게 무엇이 느껴지는가? 그들 인물과 그들의 말이 당신을 대표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떤 연관성이나 도전을 느끼는가?

 

3. 3-8절을 주목하여 천천히 이미지화하여 묵상하라. 상황과 장면, 등장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예수의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할 때 뒷걸음치다 넘어진 장면에서 머물러 있는다. 예수에게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여기서 무엇이 일어났던 것인가?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당신의 영혼에 연결하여 보라. 무엇이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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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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