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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협조자

 

본문: 15:18-16:1-15

 

우리의 삶이 두려움과 결핍 그리고 어둠과 상실의 차원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돌보시는 실재(아버지로서의 하나님), 필요한 영양분과 안전을 주는 신적생명인 포도나무 줄기에 포도나무 가지로서의 우리의 인생을 보라고 요한은 15장에 초대하고 있다. 실재가 본래는 돌보고 양육되어지고 안전함에 기초하고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삶의 목표로 갖고 있다는 요한기자의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에로의 요청은 매우 대범하고 감격스러우면서도 이천년 전이나 오늘날까지도 이에 대한 아무런 신앙의 진화나 성장없이 두려울 정도로 낯설은 주장이다.

 

보이지 않는 궁극실재(하느님)의 돌보고 보호하시는 존재의 있음과 포도나무 줄기로부터 오는 양분과 삶의 기운을 공급받고 있다는 가지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응답은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15:9)와 같이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사랑을 서로 주고받고(사랑을 주기) 사랑안에 머물러 있기(소속하기)이다. 이것이 포도나무가지(하느님의 아들/자녀)로서 포도나무줄기에 접붙여있음의 의미이다. 그럴 때 포도나무 줄기를 통해 돌보시는 아버지의 존재와 활동영역에로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신적생명)가 내 안에 -존재와 활동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한 단순한 소속에로의 실천은 즉각적으로 세상으로부터의 미움박해라는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예수는 이에 대해 설명한다.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 제자라 해서 이렇게 대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고 있다.”(15:19;21) 이는 겉으로 이해한다면 즉각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따르면 희생, 미움, 박해를 받게 된다는 논리로 쉽게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일치에로의 몰입과 방향전환에 주저함과 용기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의 미움과 박해라는 진술은 이러한 단순한 논리로 귀결될 문제는 아니다.

 

첫째, 세상에 속한 사람은 같은 부류여서 미움이나 박해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에 속하면 미움이나 박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아니다. 세상에 속하면 이미 기적징표에서 보듯이 이미 기쁨의 단절(혼인잔치), 내면의 어두움(니고데모) 내적인 샘의 고갈(사마리아 여인), 38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활동없이 영혼이 드러누움, 나면서 소경된 무지와 몰이해의 긴 경험, 영혼이 잠듬, 결핍과 분리(오병이어)의 현상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이미 세상에 속하여 혼돈과 어둠 그리고 무력감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세상으로부터의 미움과 박해는 바로 내 자신이 혈육과 욕망의 세계를 따르는 현실의식이나 외재적 권위와 법에 대한 의존의 율법의식을 따르지 않고 내가 거기로부터 나왔다는 징표이다. 빛은 어둠과 상종하지 않는다. 일단 세상이라는 흐름속에 몸을 맡기지 않고 그 물의 흐름으로부터 오는 압력(미움과 박해)을 받고 있는 것을 예민하게 자기 삶에서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거기로부터 나오고자 하는 자기 태도와 의지가 설정된 것의 증상이다. 세상 물결의 흐름에 맡기지 않고 버티고 거슬러 가거나 옆으로 나오고자 할 때 느끼는 미움과 박해의 압력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란 징표의 모습이기도 하다.

 

셋째, 그러한 미움과 박해의 현상은 혹은 삶에서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는 추세에 내가 낯설어 하며 옆으로 튕겨져 나온 듯한 소외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대가 아버지를 알기 원하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거절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대는 예수의 제자가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 세상의 거절은 한 가지 특성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순간 세상의 속성이 사랑할 수 없음, 분리의 정체성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그 정체를 간파하게 되면서 오는 소속의 문제(세상인가 아버지인가?)로 인한 자동 반응인 셈이다.

 

사랑하고 돌보는 일치의 차원인 아버지의 나라는 무관심과 공격, 미움과 분리의 세상과 전면 배치되어 소속을 달리하는 순간에 세상의 미움과 배척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현상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자기 죄를 변명할 길이 없게 된다>(22).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는 자는 나의 아버지까지도 미워한다>(23). 여기서 죄(하마르티아)는 하나됨(속죄라는 atonement는 원래 at-one-ness라는 하나됨으로부터의 분리됨 혹은 벗어남이란 뜻이다) 대신에 분리의 길을 취한 양태를 말하고, 그러한 분리됨을 통해 아버지를 미워하는 정도까지 발전하게 된다. 참진리이자 궁극실재로의 방향설정을 잃는 무지의 경험만 아니라 이제는 그것을 아예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밀어내는 환영(illusion)속에 탐닉하게 된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정도에 이르면 환영으로부터 오는 에고의 두려움에 대한 작동이 자동화되면서 신적인 아들이 지닌 신성과의 연결과 기적징표에서 보는 능력화와 기쁨의 누림을 잃게 마련이다. 에고가 다른 안전의 대안물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숨가쁘게 뒤쫓는 실재가 아닌 환영 추구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실재와 환영간의 구별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인가? 요한기자는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26)의 받아들임이다. 성령은 환영에 사로잡힌 우리 에고의 지각을 바꾸어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신적 생명의 증언자로서 우리의 영혼에 안내자가 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 에고의 지각(perception)을 씻으셔서 죄와 정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여기서 꾸짖다는 폭풍우를 꾸짖다처럼 진정시킨다는 뜻이다]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8) 그렇게 하여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16:13).

 

이렇게 죄/정의/심판에 대한 생각의 교정, 진리를 깨달게 함과 더불어 신적생명을 영광되게 하고 또한 아버지의 것을 갖는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16:14-15) 성령은 육체라는 에고의 지각을 고치고 하늘나라의 비전(vision)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그렇게 하여서 세상의 지배에서 하늘의 통치 곧 세상이 종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신분전환으로 일어나서 아버지와의 교제,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아 누리는 상태가 되도록 성령이 도우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영혼의 벗인 성령에 대해 얼마만큼 자신을 열어 거룩한 동반자로서 - 성서와 수도원 전통에서는 천사라는 상징존재로 표현하기도 한다 - 맞이하고 있는가? 성서기자들은 실재에 대한 인식이 내 몸의 눈으로 보는 지각이 아니라 실재를 새로이 볼 수 있는 성령이라는 동반자를 통한 비전인식이 있을 때 안내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거룩한 메시지 탐구하기

 

1.본문을 읽어가며 성서(text) 본분중 어딘가 내 삶(context)에 말을 걸어오는 부분이 있다면 거기에 머물러 이를 묵상하며 가슴을 열어놓는다. 무엇이 들려지는가?

 

2.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라는 말을 깊이 묵상한다. 이 말이 주는 위로와 새로운 통찰이 있는가?

 

3. 협조자 성령이 하는 일이 신적생명을 믿지 않는 죄, 신적생명이 아버지께로 돌아감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그 신적생명을 보지 못함이 하느님의 정의이고 이 세상권력자에게 심판이 이미 내려졌다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성서가 말하는 세상과 하늘에 대해 기존에 어떤 선입견과 무지를 교정해주겠는가?

 

4.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16:15)은 진정으로 있는 실재속으로 들어가는 열쇠의 말이다. 이 문장은 어떤 차원들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말인가? 당신에게 무엇이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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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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