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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넘어 증언하기

 

본문: 8:1-20

 

 

요한복음의 가장 대담한 시도는 신성이 육을 입었다는 것과 그 신성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로고스의 화육에 대한 이해이다. 거룩한 신이 불결과 죄의 육()으로 그리고 어둠과 폭력의 세상에 함께 하신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러나 지성적인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지성과 이해의 수준에서 그다지 충격을 주지 않을 만큼 이런 종류의 진술에 길들여져 있다. ‘말씀이 육신됨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에서 어떤 근원적인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점차적으로 기적이라는 표적(signs)’이야기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육신의 눈(“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1:13)이 아닌 새로운 눈(“하느님에게서 난 것”1:13)이 필요함을 말한다. 이 새로운 눈을 통해 빛이 세상에 와 생명을 주고, 그것을 받은 이들은 은총과 진리를 받는’(1:17). 그렇게 될 때 그동안 보이던 현실을 허상이 되고 실제로 있는 본래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진실로 보게 되고 맛보고 존재는 변화된다.

 

신앙은 신성함에 대한 현존에 대한 자각에 대한 본질적인 감각을 되찾는 존재-인식-행위의 일관된 무제약적 실존의 상태를 얻는 것과 연관된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의 상태에 사로잡힘으로 이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실상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앙이 가르침의 규범에 대한 준수, 혹은 당위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라는 태도의 정렬(alignment)로 이해한다. 이로부터 나오는 삶의 모습은 신의 존재성에 대한 이해와 그 헌신은 그의 위엄과 영광을 그릇되게 하거나 해치는 것에 대한 저항과 지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른바 당시의 주류 유대인들의 신앙관이 바로 거룩함의 울타리를 치기였던 것이다. 거룩함을 침해하거나 더럽히는 것에 대한 강렬한 저항과 그것에 대한 판단이 핵심 에너지가 되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단순히 간음한 여인에 대한 자비롭지 못한 군중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로 교훈을 끝내는 것 이상으로 표징을 읽어야 할 사건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당시에 거룩의 울타리를 쳐서 신에 대한 순수성의 보전에 대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진심 그리고 삶의 희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읽는 순간 우리는 메시지의 깊이로 들어가기 보다는 피상적인 도덕적 권고의 이야기로 듣게 된다. 율법을 그렇게 복음의 말로 간단히 대치시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거룩한 공간인 성전에서 가장 신에 대한 헌신에 자신을 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로고스의 화신인 예수께 와서 자신들의 가장 관심있는 사항인 율법을 어긴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판단을 요구했다는 스토리이다. 이는 거룩한 공간인 성소에서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가장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신은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환기를 요청하는 긴장어린 순간을 주변에 있었던 자들과 이 사건을 듣는 청자들에게 제공한다.

 

신앙이 신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처럼 자기 내면에서 들리기에 우리 대부분은 거룩함을 손상시키거나 더럽히는 것에 대한 옳고그름의 판단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 밑바닥에는 신앙이 철저하고 순수해질수록 순수함을 흐리게 만드는 대상, 사건, 상황, 관계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고 비난과 거부의 언어, 행동, 태도를 보이게 된다. 자신의 선한 의도가 뜻하지 않게 정죄, 분리, 제거의 결과로 안내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조심스럽게 이해하자면 우리는 거룩함을 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접근한다. 내 집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고 더럽고 손상이 있는 것이 말끔히 치워진 상태로서의 위생적인 차원에서 실재의 거룩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고스가 육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이해를 전복시킨다. 삶의 위생학적인 측면인 혼란없이 질서잡히고, 더러움없이 깨끗하고, 어둠없이 밝은 거룩의 울타리치기와 다른 혼돈과 무질서, 더러움과 수치심, 실수와 좌절, 모호함과 상실의 차원에 대한 옹근 존중과 주시하기에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완벽함(perfect; 예수는 하나님 이외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함(wholeness-취약함을 껴안은)의 토대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리주의자들과 전통수호자들은 신성함의 보호를 위한 열정에 기인하여 한 여인을 간음한 여인이라는 옳지 않은 인간의 확인으로서의 판단, ‘돌로 쳐 죽이라는 정당화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자신의 이해와 정반대로 행하는 다른 진리 주장자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예수가 그러한 난감하고도 위험한 순간에 그들을 보지 않고 땅에 무언가 쓰는 동작을 통해 다행히도!- 그 적대자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경험이 많은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하나씩 사라지고- 그 여인 혼자 남게 되었다. 역시 어떻게(how)’의 의문에 오병이어 사건처럼- 대답은 없이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최종의 말이 남는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 (죄에 대한 고발은 처리되었지만 그렇다고 죄에 대한 방관도 아니었다.)

 

그 표징의 사건을 통해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 신과 관련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말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신앙은 생명의 빛에 대한 것이지 판단의 빛이 아니다. 그런 것은 어둠속을 걷기에 해당하는 일종의 영혼의 자각의 상실에 대한 것이다. 영혼으로 사는 실존은 생명의 빛에 의해 걷는 삶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언제나 양심(conscience; con=together 함께 + science=see, 보다)에 의한 내적인 증언에 의한 것이다. 양심이란 하느님과 일치한,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눈과 내 자신의 눈이라는 두 눈의 함께함을 통한 삶의 정황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두 사람이 증언하면 참되다는 것에 의거하여 내 안의 신성한 빛과 나의 영혼의 빛이 상호 응답하여 증언하기에 참되다. 이러한 나 혼자서 판단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판단”(8:16)하는 것으로서 삶의 증언이 공정함참됨의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렇게 갈등과 위기의 상황에서 그리고 모호함과 고통어린 현실의 흐름 속에서 공정함진정함이라는 영혼의 감각을 갖고 살 수 있는 힘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과의 연결(connection)에서 나온다. 자신의 개별성과 삶의 조건을 넘어서서 실재의 전체성인 신적 현존과의 인격적인 연결(돌보는 신성과 그러한 신성과 연결된 존재[아들/자녀]인 나됨)이 보이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고 참다운 실재로의 방향감각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빛이다.

 

일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둘중 하나조차 허용이 안되는 첫째, 거룩한 공간에서 그리고 둘째, 거룩함에 대한 헌신의 삶이 있는 무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삶(better life)의 결과를 내지 못하는 역설적인 비극을 귀감으로 받아들여 눈뜨는 자각이 일어나기를. 잘못과 실패-간음-를 볼 때 고발이 아니라 생명의 빛에 의해 인도되기를... 거룩함은 잘못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잘못에 빛을 비추어 신성 옆에 서게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하는 것이며, 이것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증언에로 우리도 초대받는다.

 

 

본문을 통한 내 삶을 탐구하기

 

본문을 각자 읽어가며 성서(text)가 어디에서 내 삶(context)에 말을 걸어오는 부분에서 묵상하며 가슴을 열어놓는다. 무엇이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2. 성전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이파사람(바리새란 뜻은 거룩함을 위해 자신을 성별하여 내었다는 뜻)에 둘러싸여 있던 장면속에 내가 있다고 상상하라. 나는 내 삶에서 거룩한 현존과 거룩한 삶에로의 헌신이 때때로 나자신을 고발한 적이 있었던 순간을 확인한다. 무엇이 그런 처지에 있게 하였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었는가?


3. 고발자들의 존재가 사라지고 신성의 실재앞에 남아진 그러한 전환의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일어났었는가? 그로 인해 내 안에 무엇이, 어떤 감각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4. 아직도 고발하는 목소리(내면의 목소리, 사람, 상황, 관계)가 있다면 그 상황이나 상태를 불러서 성서의 상황으로 들어간다. 간음한 여인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불어들어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목격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음미하며 최종적인 그리스도의 말을 간직하며 머물러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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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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