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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금 네가 나를 찾게 만드는가

 

본문: 6:34-71 (참고 요5:19-47)

 

 

요한기자의 공동체는 거룩함의 탐구와 이에 따르는 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깊이에 대한 혼란속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거처로서 객관적인 보증인 성전이 로마군인들의 훼손으로 무너짐(하느님이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의 무너짐), 거룩한 길에 대한 규례와 지침인 율법의 경직성과 엘리트주의[성직과 권력의 공모]로 인한 민중의 비참함의 현실의 무감각, 그리고 수많은 명목으로 걷어들이는 인두세, 재산세, 공간세 등의 로마제국의 지배와 착취로부터의 억압과 이에 저항하는 투쟁의 반복과 무력감이 사회적 환경이다.(이 패러다임은 놀랍게도 오늘도 우리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거룩함의 객관적 보증인 장소, 규범이 효력이 없어지고, 외적인 현실의 압박이 가멸차게 가해질 때 어떤 희망의 가능성 혹은 실존적인 터닝포인트가 가능해지는가?

 

이것에 더해 왜 그들은 주류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유대교가 아닌 예수를 따르는 새로운 길을 가야하는지 그 차이에 대한 자기 납득이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무엇이 예수에게 새로운 것이 있고 기존것과 차이를 만드는가? 라는 질문이 그들 공동체의 진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의 사역에 대한 일반기독교인과의 차이에 대한 역사적 평화교회[메노나이트, 형제교회, 퀘이커]의 질문이기도 하며 평화서클교회의 질문이기도 하다).


죽임과 어둠의 세력화속에서 심장이 찢어지는 비통함의 경험이라는 요나의 뱃속 경험을 통해 몇몇은 신적생명의 현실화라는 표징은 갈릴리예수로부터 보면서 그로부터 거룩함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여는 대안의 길과 다른 현실을 보게 된다. 이것은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seeing)’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계속해서 예수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기적이야기를 통해 그 너머를 보게 만드는 신호(signs)’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가나혼인잔치, 니고데모, 사마리아여인, 베쩨타못가 앉은뱅이 그리고 오천명을 먹임이라는 기적들 속에서 그 현상을 넘어서는 그 뭔가의 신호로 그 사건들을 접하며 그래서 봄(seeing), 알아차림이란 예수의 제자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기적이야기 뒤에 점차적으로 내용을 길게 가지면서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이를 통해 깨닫고 눈을 뜨는 기회를 가지라는 친절한 배려이기도 하다.(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그 기적 이야기 저변에 깔린 핵심에는 요한이 서론인 1장에서 이야기한 생명과 빛의 차원으로, ‘영광을 보고’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세계의 경험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신비한 문/신호와 관련된다. 그 문/신호는 예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애했는지에 대한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뒤따르는 자들이나 모인 군중들은 예수가 말한 것과 행한 내용(“What”)과 그가 어떻게 치유하고 먹였는지에 대한 방법(“How”)에 눈이 가 있지만 요한기자는 비밀스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특히 소수의 제자나 이야기를 듣는 청자나 독자)로 하여금 예수의 정체성, 곧 누구(“Who”)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핵심은 자신을 누구(Who-ness)로 생각하는지 그리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인생의 실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거기로부터 WhatHow는 몸의 손과 발, 언어, 행위로 표현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근본문제는 단순히 마음공부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글의 서두에서 말한 카오스의 깊이에 빠져있는 당시의 예민한 민감성을 가진 요한 공동체 사람들이나 거룩함의 성소가 객관적이고 외적인 것-성전과 규범-이 아닌 자기 심장과 삶에서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공동체 자체에서 세우기를 작정한 요한공동체의 거룩함에 대한 이해이자, 로마지배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과제는 신과의 새로운 내적 관계와 지배체제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증오의 사슬을 끊는 방법을 통해서이며 이것이 요한공동체가 청년예수를 통해 깨닫게 된 새로운 신비로운 여정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주장은 매우 결정적인 중심축을 이루며 이를 수용하고 신뢰할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적으로여정의 길과 그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이제부터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에 의해 그동안 기독교에 의한 타종교에 대한 학살과 배제의 배타주의 우리는 이를 기독교-파시즘이라 말한다.-가 팽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절대주의가 기독교절대주의를 낳고 그래서 십자가전쟁부터 기독교국가[목사에게 정부가 급여를 줌]가 세계전쟁을 벌이며, 청교도주의가 흑인과 원주민에 대한 공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수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인가?

 

나는 생명의 빵,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그 말뜻은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란 의미이다.(6:35,38) 생명이신 아버지 그것의 수단인 내 시간과 능력은 그것을 전달하는 도구인 빵이다. 즉 나는 빵이며 내 삶과 정체성의 본성을 살피면 그 빵의 본질인 생명의 본원이 있다. 겉의 빵보다 그 본질적인 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빵이란 의미는 아버지의 뜻인 하나도 잃지 않고 모두를 살리는것이자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6:39,40) 두려움과 상실은 거짓 실재이고, 아버지의 뜻은 아니다. 살리고 생명을 얻는 것은 참실재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실존적으로 모두에게는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때이기에 결코 외면하지’(6:37)않고 모두 살리는 일에 집중한다.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활동은 외적인 조건의 가능여부, 좋은 혹은 어려운 조건의 문제에 있지 않고, 신의 자기-활동성에 의거한다. 그것이 내 활동의 준거(reference)이다.

 

조건은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간지하지 못한다.”(6:53) 이미 5:19-47에서 아들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아들은 자기에고가 아닌 아버지께서 하는 일을 따라하며(19),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의 근원에 연결된 관계이다(26),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의 일에 대해 증언한다는 의식을 아들은 갖고 있다(37) 그래서 나사렛예수라는 역사적 개체성으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됨의 관계를 갖고 그 아들의 살과 피를 먹는 것처럼 자신의 온 존재와 숨쉬고 살아감이 일치되지 않으면 시간과 공간의 두려움과 결핍의 무거움을 넘어서는 영원한 새명을 얻지 못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한 의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말씀이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고’(60) ‘예수를 버리고 물러 갔으며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게되었다(66). 더 나아가 뽑힌 자중에서도 배반자-예수는 악마라고 칭함-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부터 다수는 떠나고 소수만 남게 된다. 이토록 우리가 익숙한 세상과 예수가 보여주고자 한 차원은 거리가 크다.

 

 

 

1. 본문중 나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단어, 문장, 정서적 감각, 이미지에 집중한다. 텍스트가 당신의 인생을 읽게 하라. 한 단어나 한 문장에 머물러 깊이 연결한다.

 

2. 여기서 은 여러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군중들이 예수께 몰리게 만드는 안전과 생존 그리고 배부름의 의미로서 빵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수가 말한 생명의 근원에 대한 신호, 보이는 현실을 넘어선 궁극실재에 대한 암호로서 빵이다. 두 가지가 당신의 삶에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3 66-67을 깊이 묵상한다. “이 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 갔으며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았다....너희도 떠나 가겠느냐?하고 물으셨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대입시켜 떠나감혹은 그대로 머무름의 이유가 각각 자신에게 무엇이 되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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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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