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202
로고스가 펼치는 진리와 은총의 세상과 그 화육으로서 성육신의 삶

 

본문: 1:1-18

 

 

복음서중에서 요한복음은 다른 3 복음서와는 다른 복음서이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를 공관복음(共觀福音)으로, 요한복음은 제4복음서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자신의 그리스도 체험에 대한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통상 요한복음은 유대문학의 지혜서인 시편, 잠언, 욥기 등의 지혜문학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기록될 당시의 영지주의(gnosticism)의 도전에 따른 유대신비주의(카빌라)의 재해석으로 이해되고 있다. 핵심은 지혜(wisdom)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전체를 가름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핵심에 해당한다. 요한복음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신학서적가 주해서가 있겠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참조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기독교 비폭력 실천가이자 회복적 실천가로서 요한복음이 주는 평화의 능력과 그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기초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련에 접목할 것인가에 주목하며 따라가고자 한다.

 

우리가 본문에서 맨 처음 만나는, 텍스트를 통해 우리 자신과 자기 삶에 던져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시작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악과 두려움, 비참함과 무력감의 현상이 극명하게 보여지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은 어떻게 가능한가? 복음서의 한 처음에 대한 언급은 단순히 존재론적인 언급만이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 불안, 무력감이라는 우리 생의 한 가운데서 시작의 처음이라는 용기와 행동에 대한 것이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이미 로고스(말씀, 이치)’가 존재했고, 이 로고스는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1:1)는 선언은 창세기의 존재론적 창조에 버금가는 윤리적 창조, 곧 의식과 행동의 새로운 선택으로서 창조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은 단순히 (nothingness)로부터의 창조를 넘어서 하느님의 본성과 뜻으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새로운 인생들의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요한 기자는 예수의 입을 통해 아버지로부터의 창조, 아버지와의 인격적 관계라는 통로를 통해 이 로고스의 발현과 그 작동을 증언하고 있다.

 

로고스라는 신성한 에너지이자 근원적 지혜가 만물의 창조와 탄생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비폭력실천가로서 삶에 대한 용기와 평화의 심장을 갖기 전에 이미 우리의 신성한 환경 (“Divine Milieu”)로서 우리 존재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용기와 행동의 결단은 이미 나로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러한 신성한 환경으로서 로고스의 선재하심을 통해 부어지고,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이것은 우리 모두의 본성적인 부분인 것이다. 이로부터 시작이 가능해진다

 

이 로고스는 생명과 빛의 기능으로 작동한다. , 어둠, 그리고 지배의 세상속에서 이 로고스와 접촉하면 존재를 얻고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1:3), 생명을 얻었으며어둠을 이기는 빛을 얻게 된다(4-5). 존재, 생명, 빛을 주는 로고스는 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해 생겨났”(10)기에 바로 가까이에 내 안에 그리고 내 주위에 존재하신다. 이렇게 로고스는 신성한 실재이자,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영적 능력이며, 신성한 교제를 가능케 한다.

 

이 로고스의 현존과 그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맞아 들이고 믿는”(12)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그 어떤 노력과 같은 공로, 지적인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무제약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으로부터의 선물이며, 오직 받아들임믿음으로 주어지고 이를 통해 우리는 혈육과 육정의 욕망을 넘어 신의 자녀로서 하느님에게서 난 자’(13)가 된다. 그러한 예표가 예수였고 예수는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심하느님의 영광을 보도록 하셨다.

 

그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뵙기에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로 증언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음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이다. 제자인 우리도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16-17)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외아들이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18). 그래서 제자들인 우리도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삶을 살고 하느님을 아는 자녀로 살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가 보여주신 예표를 통해 우리도 은총과 진리의 충만함이라는 삶의 수육, 곧 보편적인 은총과 진리의 성육자(the incarnated person of grace and truth)”가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도 아버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요한이 제시하는 것은 악, 어둠, 불의 그리고 무력감에서 시작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은총과 진리의 수육자로서 우리가 로고스를 받아들여서 하느님에게서 난 자가 될 때 가능해진다. 그러한 수육(성육신, incarnation)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된다. 이것이 제자로서 우리에게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이며 새로운 존재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초대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노력이나 당위의 지침-율법-이 아닌 오직 받아들이고 믿는 눈뜨임만 요구한다.


본문을 통한 거룩한 임재와의 대화질문들

 

1. 본문의 글중 나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단어, 문장, 정서적 감각, 이미지에 집중한다. 나의 영혼을 흔드는 말걸어옴을 숙고한다. 말씀이 불꽃처럼 혹은 샘물처럼 촉촉이 오는 것을 주목한다. 나에게 무엇을 말 걸어오는 것인가

 

2. 당신은 지금까지 악, , 어둠, 실패 그리고 무력감에서 어떻게 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는가? 어째서 신적인 실재(로고스)의 수용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거나 저항이나 의심이 생기는가?

 

3. 생명과 빛에로의 이치(로고스)에 다가가거나 막는 것은 당신의 내적인 자원과 외적인 환경은 각각 무엇인가? 다가가기 위한 자원과 환경은 무엇이고 이를 막은 자원과 환경은 또한 무엇인가?

 

4. 1:14절을 음미하며 한자 한자 숙지하여 묵상하며 머물러 있는다. 무엇이 자신 안에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서 오는 깨달음, 축복, 기쁨, 생의 소망에 대해 받아들인다. 은총과 진리를 성육시키는 삶에 대한 새로운 현실을 꿈꾸며 앉아있는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기독교 비폭력실천가의 눈으로 읽는 도덕경 1

 

(이 도덕경 성찰은 요한복음을 예배의 텍스트로 삼으면서 참조하는 의식변형실습의 참조로서 요한복음과 도덕경이 지닌 각자의 진리의 강물이 서로 어떻게 바다로 우리를 안내할지에 대한 의식실험을 위한 것이다.)

 

 

1장 실재의 실상과 현상은 함께 어울려 펼쳐진다

 

말할 수 있는 도(可道)는 영원한 도(常道)가 아니요

부를 수 있는 이름(可名)은 영원한 이름(常名)이 아니다.

무명(無名)은 하늘과 땅의 기원()이요,

유명(有名)은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무욕(無欲)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有欲)으로써 그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은 달리한다.

이 유·무를 동시에 말하여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더욱 현묘하다.

그것은 온갖 현묘함(衆妙)이 출몰하는 문()이다.

 

성찰:

 

근원적 실재(로고스, )는 의식을 넘어서 있고 따라서 명명될 수 있는 이름으로 전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의 전체성(常道)이 존재하며 우리는 이에 이르기 위해 감히 말로 표현하는 실재(可道)로 그것을 담아보려 하고 그것을 감히 지칭(可名)해보려 시도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로서 可道可名은 본래적인 실재라는 달을 지칭하려는 손가락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손가락과 달을 동시에 봄으로써 현상과 실재에 대해 판단의 오류를 줄이고 다가갈 수 있다.

 

판단없는 순수 의식(無名)로서 다가갈 때 그대는 하늘과 땅의 중심을 얻는다. 당신은 그러한 판단없는 마음의 일치를 통해 안전한 공간속에 중심을 잡고 흔들림이 없다. 개별성을 분별하는 의식(有名)을 통해서는 모든 현상(萬物)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물과 사건들의 차이와 그 갈래들의 독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불변의 실재(常道)와 의식되어진 실재(可道), 본래의 의미성(常名)가 파악될 수 있는 의미(可名)는 순수의식으로서 無名과 분별의식으로서 有名의 상호 교섭을 통해 그 실마리를 얻는다. 실재는 의식을 넘어서 있지만 실재를 포착하는 것은 의식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하이덱거)이라는 게 맞는다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의식의 소통 방식으로서 언어 존재에 다가간다. 무명과 유명이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의 펼쳐짐과 그 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들을 인식하고 다가가도록 만든다.

 

하늘과 땅의 공간에서 수많은 사물들의 일어남에 대해 휩쓸리지 않고 그 본질을 관()하여, 본체(상도)와 그 작용(가도)을 혹은 본성()과 현상()을 동시에 꿰뚫을 수 있는 수행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본성적인 마음의 작용이라 부르는 무욕(無欲)과 지금여기의 공간과 시간에서 연관된 마음의 작용인 유욕(有欲)의 동시성을 함께 봄으로 가능해진다. 본래적 실재의 본성적 마음의 움직임은 우리 사고의 이분법과 경계를 넘어선 무()와 허()의 일관성이 주는 오묘함()이라는 원융자재함을 보게 한다. 동시에 지금여기의 시간과 공간에 연관된 의식의 움직임으로서 유욕(有欲)은 사건과 사물의 변형들이 어떻게 출현하고 사라지는지,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사물과 사물이 그리고 사물들과 의식이 서로 연결되어 -起緣하여- 서로 일어난다(竝作).

 

우리가 의식에 있어서 무욕과 유욕의 동시성에 함께 할 때 우리는 무의 오묘함과 유의 왕래를 인식할 수 있다. 의식의 전체성에 있어서 이 두 무욕과 유욕의 수행을 견지할 때, 전자는 깊이로서 삶을 후자는 풍성함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무욕과 유욕으로서 우리는 삶의 지루한 일상성속에서 현상에 빠지지 않고 신비스러운 생명력이 무궁히 발휘되는 실마리 -를 얻게 된다.

 

본래적인 삶의 길을 가고자 할 때, 본래적 실재의 오묘함과 현상적인 만물의 오고감이 서로를 어떻게 투영하고 서로에게 참여하는가? 투명한 마음-무욕-과 분별의 마음-유욕-이 각각 서로의 기능을 다할 때, 우리는 존재의 전체성에 참여하는 황홀과 기쁨 그리고 본래적인 삶의 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무욕은 우리를 현상의 덫을 넘어서 꿰뚫게 만든다. 유욕은 생명감과 움직임을 주어서 삶의 흐름을 타고 놀게 만든다. 이 둘을 서로 잃지 않고 함께 지키는 것이를 덕(;virtue)이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악과 불행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는 것에 거부하거나 빠지지 않고 오히려 함께 춤추며 즐기게 하는 것, 이것이 온갖 묘리가 출몰하는 현묘의 문(衆妙之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자가 보는 세상의 악에 대한 치유이자 구원과 해탈의 가능성이다.

 

참조: 요한복음 1: 1-18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종교개혁 500주년 기독교 평화사역 세미나로의 초대 10월 24일 평화세상 2017-10-13 7508
공지 평화서클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신앙 세미나 예고-2017.10.24. 평화세상 2017-09-13 8256
공지 2017 평화서클교회여름피정-"마크네포와 요한기자에 따른 내면작업 워크숍" 2017.7.30(일)-8.1(화) file 평화세상 2017-07-08 9938
공지 「평화성서학세미나」에로의 초대/3월 7일(화)-10일(금) 저녁7시-9시반 (연속 4회) 평화세상 2017-02-12 13262
공지 2016년여름피정-혼란과 상처로부터 정신적·정서적 웰빙을 위한 '돌봄과 회복의 서클' 워크숍 평가와 사진 file 평화세상 2016-08-18 14725
공지 2016년여름피정-혼란과 상처로부터 정신적·정서적 웰빙을 위한 '돌봄과 회복의 서클' 워크숍 평화세상 2016-07-03 14512
공지 서클에서 공간의 마술적인 힘 평화세상 2016-03-21 14646
공지 2016 평화서클교회 여름피정 일정 공지(8/11-8/14) 평화세상 2016-02-29 14844
공지 대림절4주: 징조의 출현/마이스터에크하르트 '존재는 하느님의 가장 독특한 현존이다' 평화세상 2015-12-20 15396
공지 대림절2주: 끝에서 하는 시작/마이스터에크하르트 설교 평화세상 2015-12-06 15009
공지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외 마크네코 "신에게로 돌아가는 길" 평화세상 2015-01-04 16806
공지 대림절 제 4주 예언과 환희 그리고 복 평화세상 2014-12-21 16398
공지 대림절묵상자료: 평화를 꿈꾸기와 잉태하기 평화세상 2014-12-14 18610
공지 대림절 두번째 묵상자료: 주목하기, 길떠남 & 경배하기 평화세상 2014-12-14 16481
공지 대림첫주일 묵상자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평화세상 2014-11-30 17011
공지 11/16 성서본문나눔과 성찰: "결국 드러나는 것은?" 평화세상 2014-11-30 16822
공지 움직이기와 접촉하기 -말씀나눔 자료 평화세상 2014-09-21 17414
공지 분단의 비참함과 장벽의 강고함속에서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4-08-10 17923
공지 흉측함을통한 신탁 그리고 창조적 변용의 삶 평화세상 2014-07-20 18198
공지 말씀묵상자료: 정체성과 행위, 마크네포-원숭이와 강물 평화세상 2014-07-13 18462
공지 위험을 통한 본질로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4-06-15 19625
공지 하나님 나라 및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묵상글 평화세상 2014-06-08 20403
공지 일상에서 무제약적인 갱생의 현현 평화세상 2014-06-01 20229
공지 잔치로서 일상과 그 깊이를 맛보기 평화세상 2014-05-25 20354
공지 부활에 대한 성서묵상질문 & 사랑의 눈으로 본다는 것 -마크 네포 평화세상 2014-05-11 21121
공지 의지를 여의기 무를 통해 인성의 고귀함 경험하기 &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평화세상 2014-05-04 21444
공지 죽음-신앙-부활, 토마스머튼 글 하나 평화세상 2014-04-27 20959
공지 존재로서 하느님, 영혼, 그리고 복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평화세상 2014-04-03 21070
공지 두번째 평화영성일일피정-신앙의 내적탐구와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4-03-27 20996
공지 평화영성- 밤을 통한 연금술, 메리올리버 "괜찮아" 평화세상 2014-03-23 21445
202 의식의 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6:1-21: 결핍을 넘어서 실재의 풍성함으로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8-07-15 19
201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5:19-47 진리를 증언하는 삶(let the truth speak to your life) 평화세상 2018-07-08 36
200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5:1-18-누음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평화세상 2018-07-01 67
199 의식변형을 위한 요한복음 묵상 4:1-42: 자신의 삶의 갈증으로 영적인 것에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8-06-24 84
198 의식변형을 위한 요한복음 묵상 3:22-36: 앎을 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승과 그 증언을 의지해 나가라 평화세상 2018-06-17 110
197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3:1-21 실존의 궁지를 넘어서: 죄인의 판결을 넘어 빛으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8-06-10 160
196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2:1-12: 삶의 목적은 기쁨과 풍성함으로의 초대이다 평화세상 2018-06-10 156
195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2:13-25: 너의 마음의 성전을 허물라 그리고 다시 세우라 평화세상 2018-06-03 201
» 요한복음1:1-18 & 도덕경 1장 평화세상 2018-05-06 272
193 부활주일->부활의 의미: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영혼들이 일어서다< 평화세상 2018-04-01 385
192 고난주간: 비아 돌로사(십자가의 길) 평화세상 2018-03-25 392
191 사순절 5주: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라 평화세상 2018-03-18 417
190 사순절 4주: 세 번째 수난예고와 새 제자직의 비전 평화세상 2018-03-11 468
189 사순절 3주: 두번째 수난 예고와 영혼의 길 평화세상 2018-03-04 521
188 수난주간 2주: 첫번째 수난 예고와 그 도전 평화세상 2018-02-23 536
187 주현절 6주: 드디어 나타났구나 평화세상 2018-02-23 553
186 주현절 5주: 시작과 끝이 지시하는 것 평화세상 2018-02-01 607
185 주현절 4주: 안전한 공간을 넘어 성스러운 공간으로 평화세상 2018-02-01 611
184 주현절 3주: 빛 안에서 사랑의 에너지로 살기 평화세상 2018-01-21 644
183 주현절2주: 날로 튼튼하게 자라서 지혜가 풍성해지고 평화세상 2018-01-21 651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