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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77

의지를 여의기,

무를 통해 인성의 고귀함을 경험하기 &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2014.5.4 평화서클교회 영적탐구자료) 

 

* 에크하르트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내버려 두려면 우리의 의지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무()를 건드릴 수 있다.

 

모름지기 사람은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식별력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영성이라든가 헌신이라든가 안식이라든가 하는 것을 구해서도 안 됩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도외시한 채 하느님을 아는 것은 하찮은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아무개가 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완전해집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듯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며, 하느님의 비위를 거스르고, 결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무릇 사람은 무언가를 구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만 그 밖의 모든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

 

* 우리가 우리의 뜻을 버릴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으로 변화된다.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뜻이 바르게 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의) 뜻이 이기적인 것을 완전히 여의고, 자신조차 버리고, 하느님의 뜻으로 변화될 때, (우리의) 뜻은 손상되지 않고 바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그렇게 될수록, 점점 더 바르고 진실해질 것입니다.

 

* 버리고, 자유 속으로, 곧 하느님의 의지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야말로 신뢰를 얻는 길이다. 그 이유는 선한 창조주야말로 신뢰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에 근본적인 것은 악이 아니라 선이다.

 

악은 비본질적입니다. 그것은 밖에 서서, 사물을 끌어내어 밖을 향하게 하고,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다름·구별·퇴보 혹은 파괴의 냄새를 풍깁니다. 따라서 악은 흠이거나 결점일 뿐입니다.

 

* 하느님도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우리도 우리의 행복을 바라건만, 어찌하여 우리는 더 행복하지 못한가? 그토록 고통과 아픔이 많다는 말인가? ... “여러분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집착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여받는 고통은 상처를 주지도 않으며, 견디기 힘들지도 않다.” 엑카르트는 일백 마르크의 돈을 가지고 있다가 사십 마르크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잃어버린 사십 마르크에 골몰한다면, 그는

 

절망과 슬픔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자기가 잃어버린 것과 자기의 고통에 마음을 쓰고, 그것이 자기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슬픔에서 벗어나 위로를 받겠습니까? 그가 자신이 잃어버린 것과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면 볼수록, 이번에는 그 잃어버린 것과 고통이 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려 말을 걸 것입니다. 그가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게 말을 걸면 걸수록, 그 잃어버린 것도 그에게 말을 걸 것이고, 그러면 그와 그가 잃어버린 것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바라볼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십 마르크에서 등을 돌려, 남아 있는 육십 마르크에 집중하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말을 걸어 보십시오. ...선한 것은 위로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찮은 것, 선하지 않은 것, 내 것이 아닌 것, 내가 잃어버린 것은 반드시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을 주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괴로운 날에는 좋았던 날들을 생각하라”(집회11,25).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그대가 괴로움과 고통에 빠져 있거든, 그대가 지니고 있는 선과 위로를 생각하라.

 

* 엑카르트는 이렇게 처방한다: 그대 자신을 포기하고 그대 자신을 버려라. 엑카르트는 사람이 아집을 버린다는 게 무엇인지 설명한다.

 

참되고 완전한 의지가 되려면, 오로지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걷고, 아집을 여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할수록, 참된 의지는 하느님 안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실로, 자기를 여의지 않은 채 수천 편의 시편을 낭독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여의고 안녕하세요 하느님!”하고 한마디를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자기 포기 없이 해외 순례를 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포기하고 내딛는 한 걸음이 더 낫습니다.

 

* 고통을 버리는 또 다른 경험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고통을 떠맡게 하는 것이다.

 

짐을 짊어지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서만 고통을 겪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백성이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고통과, 온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고 고통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을 짊어지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제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것이 하느님을 통해서 온 것이라면, 하느님이 먼저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닥친 고난이 제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것을 하느님 안에 두기만 한다면, 그 고난은 필경 그 사람보다는 하느님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니, 약간 불편하더라도 시험 삼아 그렇게 해 보십시오.

 

* 우리는 하느님에게 고난을 되돌려 보냄으로써 기쁨을 맛보고, 영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평정을 경험한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이 흡족해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조언한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것도 십자가나 슬픔이나 고난일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행복이고 기쁨이며 즐거움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에게로 나아가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사람도 슬프게 하거나 비탄에 잠기게 하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것도 그러한 사람르 불행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못합니다.

 

*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은 고통과 고난을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가장 심원한 평심(平心)에 이릅니다. 그것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너희 기쁨을 앗을 수 없다.” 내가 신적인 존재로 바르게 변모될 때, 하느님은 나의 것이 되시고, 그분께서 지니신 모든 것도 나의 것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는 너희 주 하느님이다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고통이나 괴로움이 여러분에게서 기쁨을 앗아 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제대로 된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 빌붙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신적인 존재로 변모됩니다. 하느님 안에는 진노도 슬픔도 없고 사랑과 기쁨만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 우리와 하느님을 갈라 놓는 것을 버림으로서 우리는 성도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와 남을 갈라 놓는 것도 버릴 수 있고, 심지어 우리와 우리의 가장 깊은 자기를 갈라 놓는 것까지도 버릴 수 있다. 우리의 심층에는 무뚝뚝한 개인주의자라든지 분리주의자가 없는 까닭이다.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고, 일치 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은 모든 이의 행복이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 속에서 헤엄을 치고,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에워싼다.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천사의 행복을 바라고, 마리아의 행복을 여러분의 행복과 똑같이 바란다면, 여러분은 그녀의 것과 똑같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행복은 그녀의 것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에게 성인의 반열에 끼는 영광을 주셨다”(집회45:2)고 지혜의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 내가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개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만이 아니라 인성humanity을 상하게 한 것이다. 인성을 상하게 하는 것은, 한 개인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대표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다. 신비스런 공동체the mystical body는 한 개인이 기뻐 뛸 때 함께 기뻐 뛰고, 한 개인이 괴로워할 때 함께 괴로워한다.

이처럼 인성 자체는 대단히 고귀하다. 왜냐하면 최고의 인성은 천사들과 동격이고 신성과 친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저런 개인의 특징을 버리고, 우리 자신을 인성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이루었던 최고의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성 그 자체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인성이야말로 개인으로서의 우리보다 더 사랑할 만한 대상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인격보다 인성이 더 귀중하다.

 

* 우리가 이토록 철저하게 버린다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된다면, 그런 우리의 뜻이야말로 행동의 원천이 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무위를 변명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지 안에서라야 여러분은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 오직 그런 의지만이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러한 의지를 더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은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더 많이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영혼의 터에 숨어 계시듯이, 그것도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바로 이러한 자유의지에서 우리의 일은 하느님의 일이 된다. 이때 누리는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찾고,” “속에 불의가 없게”(7:18) 될 것이다. 의지가 자유로워질 때, 우리도 자유로워지고, 하느님도 자유로워지며, 우리의 일도 막힘이 없게 될 것이다.

출전: 매튜 폭스, <<마이스터 엑카르는 이렇게 말했다>> 345-355쪽 선택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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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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