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216
                                    인간의 운명과 하나님의 의지

 

본문: 9:1-12

 

앞서 8장에서 요한기자가 서술한 인간의 실존적 운명의 빅 쓰리(Big 3)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게 됨(21), 이 세상에 속해 있음’(23), 자기가 있는 집에서 끝내 살 수 없는노예상태(35)는 고통의 근거이자 그러한 고통에서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리의 두려움의 근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는 바로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왜 인간은 고통의 쓰라림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러한 실존적 궁지가 우리에게 두려움의 장막을 치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와 해방의 장소로 제공한 성소가 그려한 두려움의 수단이 되어 우리를 고발한다는 역설의 메타포를 우리는 청자로서 혹은 독자로서 요한기자의 텍스트를 따라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따라왔다면-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9장은 매우 심각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작한다:“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1)” 우선 아름다운 이야기란 모두가 우리의 실존적 고통인 빅쓰리의 덫과 장벽에 갇혀 멈추거나 좌절해 엎드려 있는 데 한 존재가 그 덫/장벽을 넘어 길을 가고 있다는 고지(告知) 때문이다.매우 심각하다함은 그렇게 가는 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그 소경은 처음부터 길을 가기엔 무능력자인 것이다. 길을 가는 자와 그 길에 길을 처음부터 가지 못하는 자가 대조적으로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의 상태를 극명하게 대비되고 그 장면은 극대화되고 있다.

 

우리는 8장까지 만나게 된 지금까지의 기적의 신호(signs of miracles)’들의 스토리들을 통해 무언가 잠재성으로부터의 가능성을 기적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술이 떨어졌지만 원래 술이 있었음(가나의 혼인잔치), 어둠을 경험하고 있지만 예수를 찾아옴(바람비유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징조가 있음), 솟는 샘은 아니지만 우물이 있음, 질병이 있지만 치유의 가능성으로서 천사가 못가에 내려옴, 오천명의 많은 군중이지만 오병이어의 먹을 것이 소량이나마 있음, 간음해서 위협은 주지만 차마 살인할 수 없는 성소에 있다는 최소한의 자각은 있음 등으로 그런 기적 이야기들은 펼쳐진다.

 

그러나 여기 9장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이 두 이야기가 만나고 있다. , 인간으로서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예수를 빼고는).제자들도 이에 대해 기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만큼 무지한 상태이다. 그리고 본래 나면서 소경인 사람이 등장하여 길을 전혀 스스로 가지 못하는 상태를 심층 강화한다. 가려해도 결국 만나는 자는 길을 못가는 자를 만나게 될 뿐이다. 계속해서 우리가 읽어왔지만 기적이란 질병의 치유, 얻고자 하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선물로 받음이라는 치유,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어둔 현실의 어려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늘 나라의 길을 걷는 것(어둠과 광풍속에서도 저쪽으로 건너가는 passing over 하는 것;6:16-21)에 대한 것이 기적의 속뜻이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결핍되어 있지만 그나마 그 있음속에서 무언가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을 때 기적을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처음부터 그 가능성이 없는 현실-태어나면서 눈 먼 소경의 현실로서 메타포-을 만날 때, 즉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상황파악이 일어날 때, 결국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남는 시도는 바로 논리이다. 그래서 묻는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2). 최소한 이 질문의 의도는 현실의 비극을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면 그 이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비극을 견디어내는 방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이해하고 싶은 결론은 이것이다: “비극에는 인과적 사슬의 논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인과적 사슬(원인과 결과의 일관성)이 보여지면 우리는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신념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빛과 생명의 하늘의 길을 펼치며, ‘진리와 은총의 실재를 삶에 성육화(incarnation)하는 모델로서 예수는 이에 대한 전적인 다른 이해를 하고 있다. 비극의 인과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실재는 실패와 비극을 포함해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론적 지향을 향해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3). 원인과 결과의 사이클이 아니라 하나의 지향점인 오메가 포인트만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실패, 비극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궁극 목적인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것,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긍정의 낙관론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론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은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4).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는 한, 할 수 있는 것, 특히 보내신 분의 일을 하는 것을 선택하고 이를 하는 충실성의 요청이 우리에게 남겨진 것뿐이다. 이것이 불행, 즉 절대적인 불행(당시의 의술한계의 입장으로서는)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요한이 전하는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은 완전하시며 참되시다. 그가 존재하도록 만든 창조물들은 사람, 삶의 조건, 관계, 상황은 그 어떤 결과나 외양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창조자 그분의 본성에 따라 참되고 온전하다. 아버지이신 궁극실재(esse)로부터 보냄을 받은 각 인생 실존들(existence)은 그 궁극 책임이 자신이나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실재로부터 그 실재성을 부여받기 때문에 그분의 의지와 뜻의 펼쳐짐에 대한 오롯한 마음하나로서 삶의 과제를 부여받을 뿐이다. 이것을 바울은 질그릇은 옹이쟁이를 탓하지 않고 부여받은 천성에서 질그릇으로서 그 안에 내용물인 하느님의 은총을 담을 뿐이라는 비유로 말했다. 자신의 겉모습이 자기 평가의 기준이 아니라 무엇을 담고 있는가가 질그룻의 본질인 것처럼, 이득과 손실, 성공과 실패의 자기 이해나 관심, 인과론이 아닌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냄에 대한 자기 실존으로서의 정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자기 삶에서 증득하기 위해서는 실재의식(로고스의 한 화육이신 예수)에 접촉하여 진흙(저주스러운 중력의 경험)을 눈에 발라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오는”(7)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게 눈을 뜬 사람은 견해로서 살고, 보이는 현실대로 사는 주변 구경꾼들과 다른 차이의 삶으로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며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라고 자신을 증언할 수 있게 된다. , 나는 로고스이신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파견된자란 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11)라고 자기증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씻어서 눈을 뜬 자가 될 때, ‘자기 죄 탓이나 부모의 죄 탓을 넘어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난 자가 아닌 하느님에게서 난 자’(1:13)로서 빛과 생명의 실재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기적은 자신을 넘어 하나로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다.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는 일을 위해 가는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분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자신의 그 어떤 행위나 삶의 조건에서도 창조자와 연결된 본성(하나님 형상)은 해침이 없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로고스는 언제 어디서나 살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구를 위한 질문

 

1, 본문을 각자 읽어가며 성서(text)가 내 삶(context)에 말을 걸어오는 부분에서 묵상하며 가슴을 열어놓는다. 무엇이 오늘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2. 당신이 신앙의 길을 가는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당신이 가는 길과 예수가 가는 길사이에 어떤 거리나 일치점이 보이는가?

 

3.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장애나 방해물을 만난다. 그러한 적극적인 방해자, 소극적인 방해물 앞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각각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4. 자신의 실패나 방해물이 자기 죄부모의 죄라는 인과관계에 있는 결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해 있는 것이란 예수의 선언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3-5절의 예수의 선언을 자기 삶에 적용해 보라. 무엇이 일어나는가?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종교개혁 500주년 기독교 평화사역 세미나로의 초대 10월 24일 평화세상 2017-10-13 11930
공지 평화서클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신앙 세미나 예고-2017.10.24. 평화세상 2017-09-13 12194
공지 2017 평화서클교회여름피정-"마크네포와 요한기자에 따른 내면작업 워크숍" 2017.7.30(일)-8.1(화) file 평화세상 2017-07-08 14041
공지 「평화성서학세미나」에로의 초대/3월 7일(화)-10일(금) 저녁7시-9시반 (연속 4회) 평화세상 2017-02-12 17634
공지 2016년여름피정-혼란과 상처로부터 정신적·정서적 웰빙을 위한 '돌봄과 회복의 서클' 워크숍 평가와 사진 file 평화세상 2016-08-18 18685
공지 2016년여름피정-혼란과 상처로부터 정신적·정서적 웰빙을 위한 '돌봄과 회복의 서클' 워크숍 평화세상 2016-07-03 18517
공지 서클에서 공간의 마술적인 힘 평화세상 2016-03-21 18566
공지 2016 평화서클교회 여름피정 일정 공지(8/11-8/14) 평화세상 2016-02-29 18800
공지 대림절4주: 징조의 출현/마이스터에크하르트 '존재는 하느님의 가장 독특한 현존이다' 평화세상 2015-12-20 19441
공지 대림절2주: 끝에서 하는 시작/마이스터에크하르트 설교 평화세상 2015-12-06 19061
공지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외 마크네코 "신에게로 돌아가는 길" 평화세상 2015-01-04 20713
공지 대림절 제 4주 예언과 환희 그리고 복 평화세상 2014-12-21 20308
공지 대림절묵상자료: 평화를 꿈꾸기와 잉태하기 평화세상 2014-12-14 22698
공지 대림절 두번째 묵상자료: 주목하기, 길떠남 & 경배하기 평화세상 2014-12-14 20341
공지 대림첫주일 묵상자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평화세상 2014-11-30 20995
공지 11/16 성서본문나눔과 성찰: "결국 드러나는 것은?" 평화세상 2014-11-30 20826
공지 움직이기와 접촉하기 -말씀나눔 자료 평화세상 2014-09-21 21389
공지 분단의 비참함과 장벽의 강고함속에서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4-08-10 21860
공지 흉측함을통한 신탁 그리고 창조적 변용의 삶 평화세상 2014-07-20 22109
공지 말씀묵상자료: 정체성과 행위, 마크네포-원숭이와 강물 평화세상 2014-07-13 22424
공지 위험을 통한 본질로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4-06-15 23534
공지 하나님 나라 및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묵상글 평화세상 2014-06-08 24422
공지 일상에서 무제약적인 갱생의 현현 평화세상 2014-06-01 24156
공지 잔치로서 일상과 그 깊이를 맛보기 평화세상 2014-05-25 24259
공지 부활에 대한 성서묵상질문 & 사랑의 눈으로 본다는 것 -마크 네포 평화세상 2014-05-11 25166
공지 의지를 여의기 무를 통해 인성의 고귀함 경험하기 &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평화세상 2014-05-04 25294
공지 죽음-신앙-부활, 토마스머튼 글 하나 평화세상 2014-04-27 24821
공지 존재로서 하느님, 영혼, 그리고 복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평화세상 2014-04-03 25171
공지 두번째 평화영성일일피정-신앙의 내적탐구와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4-03-27 24895
공지 평화영성- 밤을 통한 연금술, 메리올리버 "괜찮아" 평화세상 2014-03-23 25380
216 추수감사주일 예배.2018.11.18 평화세상 2018-11-18  
215 몸으로 드리는 주기도 예배 평화세상 2018-11-18 1
214 의식변형실습을 위한 요한복음읽기 요10:1-18: 눈뜸에서 속함/일치함으로 평화세상 2018-11-04 52
213 의식변형실습을 위한 요한복음읽기 요10:1-18: 눈뜸에서 속함/일치함으로 평화세상 2018-11-04 55
212 의식변형실습을 위한 요한복음읽기 요9:13-41: 신앙의 근본문제로서 눈뜸 평화세상 2018-11-04 54
»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9:1-12: 인간의 운명과 하느님의 의지 평화세상 2018-10-14 165
210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 마음의 묵상 8:1-12: 내면의 성전을 발견하는 길 평화세상 2018-10-07 204
209 의식변형을 위한 요한복음 묵상 8:39-59: 진리는 전통이 아니라 직접성이다 평화세상 2018-09-30 215
208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8:21-38: 이세상에 속하지 않기 평화세상 2018-09-16 282
207 의식변형실습을 위한 요한복음읽기 요8:1-20: 판단을 넘어 증언하기 평화세상 2018-09-09 292
206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7:1-24: 진리의 드러남과 감추임 그리고 이를 분별하기 평화세상 2018-09-09 297
205 의식변형실습을 위한 요한복음읽기 요7:25-52: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의 위험성과 장벽들 평화세상 2018-09-09 311
204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6:34-71 무엇이 지금 네가 나를 찾게 만드는가 평화세상 2018-08-12 400
203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6:16-33 흔들리는 터전에서 무제약적 근거를 세우기 평화세상 2018-07-22 512
202 의식의 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6:1-21: 결핍을 넘어서 실재의 풍성함으로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8-07-15 552
201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5:19-47 진리를 증언하는 삶(let the truth speak to your life) 평화세상 2018-07-08 572
200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 5:1-18-누음에서 일어나 걸어가기 평화세상 2018-07-01 631
199 의식변형을 위한 요한복음 묵상 4:1-42: 자신의 삶의 갈증으로 영적인 것에 들어가기 평화세상 2018-06-24 640
198 의식변형을 위한 요한복음 묵상 3:22-36: 앎을 넘기 위한 방편으로 스승과 그 증언을 의지해 나가라 평화세상 2018-06-17 689
197 의식변형실습으로서 요한복음읽기3:1-21 실존의 궁지를 넘어서: 죄인의 판결을 넘어 빛으로 나아가기 평화세상 2018-06-10 735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