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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드러남과 감추임 그리고 이를 분별하기

 

본문: 7:1-24

 

이제 요한복음이 전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군중들과 제자들은 자신의 삶이 어둔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의 자원이 없는 곳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굶주림(결핍)을 해결하는 기적-이것은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신호였다-과 관련해서는 만족하고 행복한 삶의 경험을 했지만(6:1-15;오병이어의 기적), 이제 그것의 의미에 대한 이해로 건너가는 데에 있어서는 두려워하고(6:16-21), 그 말에 대해 못마땅해서 웅성거리기 시작’(6:41)하고, ‘서로 따지며’(6:52), 이해하기 어려워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지 수군’(6:60)거리면서 결국은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는”(6:66) 갈등과 분열의 상황으로 가게 되었다.

 

무엇이 기적의 황홀함에서 그토록 논쟁과 분열 그리고 결국은 무리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조차 예수를 떠나게 만드는 상황으로 만들었는가는 매우 중요한 성찰내용이고 이것이 우리에게도 실존적으로 큰 도전을 준다. 예수의 말은 단순하였다. 그리고 그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그 목적은 판단, 고발, 잃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그의 말은 원래 메타포(메타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실존적 진실을 가리킨다)였지만 이 문장들의 문자적인 이해로 인해 두 가지 사건이 기독교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박해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흡혈귀와 같은 끔찍한 비밀종파라는 오해에서 그들 보기에 정당한박해의 구실이 되어 엄청난 숫자가 원형경기장에서 로마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사자밥이 되는 순교자를 로마제국시대에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더 긴 역사동안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기독교 절대주의의 핵심인-예수는 하늘에서 온 절대자의 아들이고 그를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받고 구원받는다- 배타성과 타종교에 대한 정복의 이데올로기를 주는 문장이 되었다.

 

그만치 이 말들은 도전적이고 위험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결정적인 핵심 열쇠가 된다. 메타포라 함은 예수의 이 증언들이 예수의 절대성과 신성을 보여주는 문자적 의미에서 실체(substance)의 입장에서 절대적으로가 아니라 예수께서 화육시킨 로고스라는 신적 실재와의 하나됨이라는 존재양식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이라는 점에서 그의 증언을 알아듣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가 그의 말에 걸려넘어지는 스캔들이 일어나게 된다. , 창조되지 않은 신적실재(로고스)가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의 삶에 생명과 빛으로 다가왔으며 우리는 그 확실한 증거를 예수의 말과 삶에서 은총과 진리의 충만함에 대한 실재성에 대해 실존적인 입장에서 결정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타자에 대한 징벌과 저주, 멸망과 죽음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 영광의 누림, 영원한 생명으로의 무제약적인 초대가 선물로 주어졌고 이는 자신의 의식과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가슴을 열 때 일어난다는 증언에 대해 방관적이거나 무심하게 들을 수 없고, 결단하여 예 아니면 아니오의 응답을 요청한다는 것이다.(이는 간단히 말했지만 실상 현대신학의 기독론의 첨예한 논쟁의 역사가 여기 안에 있어 이것으로 진술을 끝내고자 한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가보면 멀리 지켜보며 따른 군중, 그리고 가까이 다가왔던 많은 제자들이 다 떠나고, 심지어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는 움직임을 가진 상황에서 이제는 가장 가까운 예수의 형제들이 다가와서 당신이 행하시는 그 훌륭한일들을 제자들에게 보이십시오. 널리 알려지려면 숨어서 일해서는 안됩니다.”(7:3-4)고 권한다. 요한은 이에 대해 이렇듯 예수이 형제들조차도 그분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응답은 이것이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나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7:7) 최소한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있고 내가 세상의 악을 들추어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이제부터 예수는 남이 눈에 뜨지 않게’(7:10) 움직인다. 사람들에게는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지면서 그에 대한 판단이 일어나고 그가 옳은지 그른지 논쟁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가 옳은 지 아니면 군중을 속이고 있는지 자기 이해에 따라 갈라지게 되었다. 예수는 진위 구별에 있어서 다음을 제시한다. 첫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느님으로부터 온 가르침인지 자기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 안다. 둘째는 삶의 자세와 목적에 있어서 자기 영광을 구하는가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는가이다. 셋째 영적인 것은 생명을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구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이것이 그 어떤 규정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사전에 자세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어느 때 안식일에 사람 하나를 고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유대교 정결법의 위반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쉬었기 때문에 이를 본받아 아무 것도 안하기 위해 밖으로 얼마만큼 움직이는 것이, 물건을 어느 정도 들어 올리고 내리는 것이 일인지 규정해 놓았을 정도로 거룩한안식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증언의 진위여부에 대한 분별이 오늘 본문에서 핵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7장의 나머지 부분도 이에 대한 논쟁의 계속이다. 만일 이 상황을 지금에 우리의 삶의 맥락에 끌어들이면 어떤 장면이 연출될 것 같은가? 두 부류의 사람들이 화를 내고 집요한 논쟁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유대인처럼 오늘의 기독교인들중 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서 대상화하여 섬기는 것을 편안하게 느꼈던 사람들이다. 그런 안전한 신과의 통로가 아니라 신적생명을 먹고 마셔야 한다는 직접 연결과 체험의 내재적 거룩성의 요청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둘째 부류는 세상은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고 자기 성취와 성공의 자기 잘난 맛 정도에 사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고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다. 생명과 빛, , 영원한 생명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실재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움을 선사한다. 나 자신을 그 정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데 대한 나 자신에 대한 기대나 삶의 목적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보이는 것 정도에서 사는 게 편한데 나를 귀찮게 굴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하는 예수는 못마땅하다. 그는 너무 현실을 모르니까 말이다.

 

뜻밖에도, 그리고 요한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예기치 않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신에게 다가가기 전에 우선 실재와 환상에 대해 그 그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을 믿기 전에 자기 정체성/자기 삶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본문 나눔을 위한 질문

 

본문을 각자 읽어가며 성서(text)가 어디에서 내 삶(context)에 말을 걸어오는 부분에서 묵상하며 가슴을 열어놓는다. 무엇이 오늘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2. “훌륭한 일신성한 일은 무엇이 같고 또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나의 때를 기다리는 것사이에는 어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는가? 당신의 영혼에 있어서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이것들은 무엇을 알려주는가?

 

3. 1:35-42의 제자들의 예수를 찾아감과 오늘본문인 7:11-13의 무리들의 예수찾음사이에는 어떤 특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 발견이 당신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4. 16절 이하의 예수의 자기 증언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당신은 자신의 삶의 논쟁, 거칠음, 갈등의 폭풍우속에서 무언가 가이드가 되는 것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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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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