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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의 지혜

조회 수 2895 추천 수 0 2013.09.06 10:03:38

                        비폭력의 지혜

 

폭력의 각본과 자기예언 충족의 법칙

필자가 비폭력에 관한 워크숍을 할 때, 이를테면 비폭력 의사소통에서부터 비폭력 실천가 양성이나 갈등전환에 관한 다양한 워크숍 혹은 조직과 단체의 따스한 관계와 강렬한 목적 수행으로서의 조직세우기 워크숍을 인도할 때 시간이 허락되면 가장 먼저 성찰 토론을 갖는 대화모임이 있다. 그것은 가정, 친구, 일터의 동료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가장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혹은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그 사례를 나누는 것이다.

서너 명씩 소그룹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전체 모임에서 발표를 하면서 나온 수많은 사례들을 놓고 이런 사례들 속에 어떤 유사한 패턴, 경향성, 태도나 반응들이 보이는 지 확인하는 과정을 갖는다. 이 사례에는 예를 들면 가정의 경우 특히 많이 나오는 것들이 자녀들이 말을 안들어서 강제하거나 짜증을 낸 일, 시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무시당한 이야기, 더 많이는 부부간에 특히 남편의 권위주의와 집안일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자녀훈육에 대한 시각차이, 남녀의 문제, 자녀들 간의 갈등, 동의할 수 없는 생활습관들, 취미생활의 차이 등이 많이 나왔다. 또한 동아리나 직장, 센터, 학교 혹은 종교기관에서 있는 동료와의 소통의 부재나 무시당함, 책임이행의 회피나 태만, 상사나 하급직원간의 오해나 말다툼 및 권위의식, 자기주장과 고집, 상과 벌의 불합리한 처리나 위협 등에 관련된 사례들이었다.

사례는 관계, 사람,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성, 나이, 직업, 정체성도 다양하였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유사한 반응이나 고정관념의 패턴들이 존재하고, 그 패턴들은 언제나 프레임을 갖고 있어서 그 프레임이 사용되는 순간 그 결과는 틀림없이 상처, 분리, 손상 그리고 파괴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각본이라 부른다. , 이 각본의 형식에 따르게 되면 그 주인공이 누구이든 상황이 어떠하든 그 각본이 정한 결과는 정해져 있고 비극적 상황을 가져오기 때문에 폭력의 각본이라 부르며 그 결과는 자동적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충족 예언의 법칙, 이 각본에서 작동한다고 나는 설명하고 있다.

사례들이 다양하고 다양한 워크숍에 다양한 참여자들이 자신의 불만족스런 상황을 이야기 했지만 그 사례들을 통해 보이는 일정한 패턴들은 다음과 같다:

1) 그 반응의 결과로 당사자에게 후회와 비난이 남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자극상황이 배움이나 성장에 대한 통찰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의 상황이 발생하면 반복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줄일 수 있는 통찰이 일어나지 못한다.

2)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야기 하지만 대화가 아닌 독백의 교환에 머문다. 상대방의 말이 들리거나 이해하려는 맘이 생기지 않고 내 말이 안들렸다 생각하여 더욱 세게 반응하게 된다.

3) 상대방의 말이 내가 한 행위에 대한 초점이 아니라 내 인격에 대한 비난이나 판단으로 생각되어져 화가 나게 된다.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4) 대화의 틀이 -메시지” (너는 ~한 사람이야)로 오고간다. 남을 바꾸려면 내가 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화를 내는 이유이다. 갈등 발생시 해결하는 방식은 콘테스트 방식(이기고 지는 방식: 지는 것은 손해)이다.

5) 쌍방의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은 옳고 그름이 드러나면 그른 사람이 승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재는 효과가 없다. 영광의 상처뿐이고 승리의 링위에 최종 남아있어도 박수 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즉 승리도 재미가 없다. 특히 아는 사람이나 가족의 경우에 그렇다. 상대가 옳다쳐도 그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 승인하고 싶지도 않다.

6) 말과 행동으로 반응하는 초점이 잘못한 것에 에너지와 노력을 집중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에 대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따라서 비난에 집중하게 되며 그 결과 해결이 없다. 오히려 일은 처음보다 더욱 커진다.

7) 하나의 갈등상황이 그 사람과 가졌던 과거의 수많은 좋은 경험들을 다 무너뜨린다. , 과거에 그 사람(동료, 남편, 아이)과 분명히 이것보다 더 질적으로 좋은 경험, 힘든 것을 함께 통과한 아름다운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극상황은 그런 과거의 경험을 하나도 떠오르게 하지 않고, 또한 과거의 그 좋은 경험이 지금 이 자극상황에 기이하게도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심하면 그 동료를 다시 보지 않은 인간으로 딱지를 붙인다. 한 번의 갈등 상황이 굿바이로 나가게 된다.

8) 상대방의 버릇이나 행동을 고치려면 무의식중이라도 고통을 주거나 세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욕, 비난, 강제, 참견, 분노, 말걸지 않음 등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부드럽게 말하면 뭔가 내가 약하고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9) 좋은 관계를 회복하려는 기대는 있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내안에 수치심, 두려움,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갈등의 상황의 결과가 그 비용이 아무리 크고 고통스럽더라도- ,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 내면의 갈등, 일이 해결 안 되어 지지부진한 힘들음의 상태, 물질적인 손해, 분리의 아픔이나 이별 등- 내가 지닌 정당성이 그 비용을 기꺼이 감수한다. , 아무리 결과가 고통스러워도 내가 갖고 있는 나의 옳음이라는 정당성이 그 비용에 대해 기꺼이 눈감게 한다.

10) 자극 상황이 생기면 생각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함으로 일을 크게 만든다. 그 상황에서 상대방의 진심이 무엇인지 내가 생각해 보지 않고 내 입장에서 재빠르게 반응함으로써 결과가 기대하는 데로 가지 않게 된다. 그 반응패턴이 맞서기(fight), 피하기(flight) 혹은 얼어붙기(frozen)의 세 가지 F‘s 반응뿐이다. 창조적인 승승의 방식이 생각나지 않고 자기 방어나 공격으로 패턴이 정해져 있다.

 

상처, 분리, 증오 혹은 폭력의 결과로 나아가는 자극상황들은 위의 패턴들의 몇 가지 요소들을 프레임으로 갖고 진행이 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패턴들의 공통된 특징은 첫째) 자신이나 상대방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이나 반응을 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진실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데 초점이 있지 않고 잘못된 것에 에너지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셋째는 일어난 것에 대한 책임이 어찌되었든 상대방에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항상 비극적인 것을 달고 사는 자기충족예언의 법칙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관계맺고 사는 사람들도 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섬속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상호의존 속에 살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런 힘들게 하는 자극 상황을 전환하기

우리의 인생이 모든 자극상황에 대해 위와 같이 힘들어지는 상황에로만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생존본능으로 인해 우리의 기억은 대게 위험하고 힘든 상황을 쉽게 그리고 빨리 기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극상황을 자기도 모르게 뜻밖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게 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지금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해결해야 할 문제로 빨리 넘어가는 실행모드로 우리가 살기 때문에 해결한 것 보다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에 관심과 마음이 쏠리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만족스럽게 해결한 것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그렇게 갖고 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생이 존재하는 한 위에서 인용표를 붙인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지금 존재하지 안았을 것이다라는 이 진술어는 매우 중요한 힌트를 어떻게 우리는 날 힘들게 하는 자극상황을 전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에 대해 주고 있게 된다. 우리 모두가 그 어느 시점에서는 무엇인가 자극 상황을 만족스럽게 해결한 경험이 있으며 이 경험을 다시 명료히 불러내어서 폭력의 각본에 의한 악순환의 사이클을 우리는 바꿀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나는 이것을 비폭력의 지혜라고 부른다.

이 비폭력의 지혜는 우리가 소유할 수는 없지만 그 지혜에 나 자신을 개방해 놓으면 그리고 그 지혜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내가 의식하고 있으면 거의 틀림없이 그 자극 상황이 만족스러운 배움과 성장으로 그리고 관계의 개선과 질적인 도약의 선물로 전환되게 된다. 여기서는 두 가지 사례를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는 나의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비폭력실천에 대한 워크숍 특히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청소년평화지킴이(HIPP)워크숍에서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다

 

사례 1)

어느 때인가 나는 기독교계의 한 환경단체 주관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교회의 책임에 관한 포럼의 사회를 맡은 적이 있었다. 두 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이 모임에는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여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나고 남은 30분에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때였다.

그 질의응답 중간에 한 분이 시골 어느 교회 장로님이라고 자신을 밝히면서 매우 격앙되고 듣기에 거칠은 소리로 한국교회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앉아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훈계하고 비난하는 투의 이야기로 이어가면서 2~3분이 지나니까 앉은 사람들의 몇 사람의 분위기가 뭐야 저 사람은?’하는 표정과 자세들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사회자로 목격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개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도 생기기 시작했고, 그 장로님도 분위기가 좋지 않는 표정들을 보면서 말하시는 것에 일관성을 잃어갔고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말을 5분 이상 하시다가 분위기에 의해 그만 대충 정리하시고 주저않고 말았다.

이 직전까지 분위기는 일부는 전혀 딴짓하고 누군가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 눈치로 보고 있었던 아주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그 장로님께서 결국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 채 그만 주저 않으신 것이었다. 그 동안에 사회자로서 나도 매우 당황하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앉자마자 나로서는 뜻밖의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장로님 말씀은 요약하자면 이렇게 중요한 지구온난화의 문제에 한국교회가 응답하고 있지 않다는 게 신앙인으로서 매우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긴급하고 중요한 일에 기독교계가 발벗고 나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일에 앞장서는 일을 보고싶은 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신앙인의 도리가 아니어서 분노가 치민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서 장로님의 교회에서라도 뭔가 해보고 싶은 데 그 방법을 몰라 그걸 알려달라는 말씀이신데 제가 맞나요?”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것은 의도하지 못한 내 말만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듣는 순간 그 장로님은 매우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이 된다는 듯으로 의자에서 안도의 제스처를 보이셨고, 그것을 본 모두의 딱딱한 얼굴들이 환하게 바뀌어지면서 자세를 다시 고쳐서 전체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마무리 발언에서 참가자들은 회의에 대해 그리고 어느 사람은 회의진행에 대해 특히 흡족한 코멘트를 하였다. 끝나고 서로 인사하며 그 장로님도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셨다. 내가 중간에 만일 중지시키고 경우에 맞지 않는 말씀을 말아달라거나 용건만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했더라면 어떤 분위기로 끝났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아슬아슬했고 다행이었던 모임이었다.

 

사례 2)

뉴욕 맨하튼의 어느 도서관에서 한 여성이 책들을 대출받아 들고서 옆의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그 공원길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지름길이어서 택해 걸어가고 있던 이 여인은 갑자기 이상스런 기척을 뒤에서 느꼈다. 고개 돌려 보니 도서관 건물 뒤에서 한 흑인 청년이 모자를 눌러쓰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인은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과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수상한 청년은 더욱 빠르게 뒤쫓아왔고 이젠 거의 뒤에 가까이와서 그의 호흡소리조차 들을 지경이었다. 그 순간 이 여인은 휙돌아섰고 마찬가지로 갑자기 서게 된 그 청년에게 이 여인은 똑바로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갑자기 자신이 들고 있던 책들을 상대방에게 덥석 안겨 주면서 말하였다. “아 청년이 마침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 책이 무거워서 힘들었는 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제 집이 바로 저 앞인데 거기까지 부탁할께요. 참 고맙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혼란에 빠진 그 청년은 어어~?”하면서 그만 그 책을 안고 말았고, 그 여인은 이 한적한 곳에 사람들이 마침 없어서 곤란했는 데 동반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며 앞서게 되었다. 10여분의 거리를 더 걸어 집 어귀까지 온 그녀는 이제는 괜찮다고 하며 책을 돌려받고 그 청년은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비폭력 활동가의 자기 경험 이야기)

위 두 사례를 통해 그 핵심은 비폭력실천가는 어떤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게 아니다. 실상 나나 그 여인이 그 시간에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안을 느꼈을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누고자 하는 것은 힘들은 상황에서 그 결과가 손상, 분리, 상처의 결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예감이 든 상황에서조차 다시금 비폭력의 지혜에 대한 자기 연결이 큰 도움이 된다는 확신에 대한 것이다. 이 비폭력의 지혜는 그가 소위 비폭력 대화에 대한 능한 숙련자가 아니어도 작동하고 그 결과는 폭력의 각본이 전환됨을 경험하게 된다.

 

이 비폭력의 지혜는 몇 가지가 있다.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인간의 신성함에 대한 신념이다. 겉모습, 지위, , 인종, 직업,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신성한 그 무엇을 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본래의 가치를 확인한다.

2) 위의 원칙에 따라 논쟁이나 갈등에 있을 때 상대방안에 있는 선함(the good)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상대방의 언어나 행동이 내 신념과 가치에 동의되지 않을지라도 그 선함에 대한 다가섬을 포기하지 않는다.

3) 나의 진정성을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에는 이 상황으로 인한 나의 느낌과 상대의 느낌을 확인하고 나의 진정성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말을 건다.

4) 때로는 위기를 피할 수 없을 때 상대방이 기대하지 못한 창조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나와 상대방에게 있는 최선의 자아(the best self)가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응답한다. 이것은 나와 상대방의 공동의 것, 공통의 인간성이 드러내는 방식이 선택 될 수 있다.

5) 폭력이 아닌 비폭력적인 대응을 한다. 비폭력 대응이란 진실의 위치에서 진실이 더욱 강화되고 충전되는 존중의 방식으로 대화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에게 행한 것은 나에게도 행하는 것임을 이해한다.

6) 상황에서 판단이 안될 때는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고 이를 따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 말하거나 행동할지, 언제 그만두고 멈출지에 대해 자신의 직관을 신뢰한다. 여기에는 자신에 대한 존중,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밑바탕과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즉 그 위기 상황에서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아닌 자기 존엄성에 대한 감각이 있을 때 그 직관은 잘 작동된다.

7)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대한다. 이것은 자신의 존엄성에 버금가는 상대방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이를 위해서 판단하지 않고 경청한다. 경청은 존중과 배려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상대방과의 연결을 위한 만능 열쇠이다.

 

위와 같은 제안은 이미 예수, 프란체스코, 간디 등을 통해 실험되었던 지혜들이다. 그리고 이 지혜들은 마음을 열고 삶이 편안해지는 능력을 체험하게 한다. 위와 같은 지혜들은 무의식적 반응을 끊게 하고 의식적으로 유념하며 살게 되면 점점 더 무의식적인 비폭력적인 습관으로 바뀌게 되면서 자연스러워지게 되어 저절로 출현하게 되는 빈도수가 많아지게 된다.

(20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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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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