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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배움, 토마스 머튼

조회 수 3843 추천 수 0 2013.08.27 11:31:50

                                            진정한 배움                        <토마스 머튼>

(마음자리인문학독서모임 자료) 

삶이란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행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

본질적으로 이 자유는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을 가능한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목표없이 여기저기를 방황하고, 이것저것을 맛보고, 기분전환거리(파스칼이 사용하는 의미에서)를 선택하는 피상적인 자유는 속임수일 뿐이다. 그것은 선택하는 사람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할 수 없게 한다. 그것은 자기 발견의 모험을 대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가 아니다. ...

기독교적 실존주의자처럼 말한다면, 내가 의미하는 영혼은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근본 형상이 아니라, 성숙한 인간의 본체(identity), 확실하고 진실한 탐색의 결과로 얻어지는 창조적 결실, 다른 부분적이고 외면적인 자아들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난 후 발견하는 자아이다.

이 은유적 표현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내적인 본체는 객체로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바로 그 자아이다. 그것은 발견하기를 게을리 할 때, 찾는 법을 알지 못할 때, 혹은 자체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찾을 때, 없어져 버린다. (그러한 찾음은 공허하고 자기 모순적이다.) 때문에 그것은 찾기를 멈출 때 가장 잘 발견한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은 배움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학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일어섬으로써 졸업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배운다는 것은 살기 위해서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바탕 속에서 궁극적이고 파괴할 수 없는 자아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아는 다른 모든 표피적인 자아들은 파괴되더라도 살아 남아 있고, 또한 그들이 파괴됨으로써 자신의 본체가 긍정되고 정화되는 자아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자아는 벌거벗고 있다. 벌거 벗음은, 상상력의 노력없이도 상품화될 수 있는 조잡한 형태(가슴을 드러낸 여자종업원들)를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육체의 벌거벗음에 대한 이러한 숭배는 베일이고, 오락이며, 공허한 친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본체들이 말초신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누구나 그것을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실제로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돈을 벌어줄 뿐이다.

반대로 영혼의 벌거벗음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유용하지 못한다. 그것은 삶을 그 뿌리까지, 즉 삶과 죽음이 동일한 곳까지 벌거벗기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바라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곳이 바로 자유가, 다른 어떤 것의 죽음에 의해서도 약속될 수 없는 자유가 진실로 생겨나는 곳이다. 그 곳에서 당신은 더 이상 죽음이나 악마나 가난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죽이고 착취하고, 파괴하고, 완성할 필요가 없이 자유로와진다. 만약 이 벌거벗음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은밀하게 감추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은밀하게 감출 수 있을까? 일단 들키면 사회는 당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당신에게 거짓의 옷을 입힌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이런 저런 외피를 벗겨내 버린다....

나는 중세기 동안 내내 인간들이 지상에 있는 낙원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대단히 궁금증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콜럼부스의 정신에도 이 궁금증은 존재했다. 개척자들은 그것을 다소 정화시키고 영화(靈化)시켰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신대륙은 일종의 낙원이었고, 그들이 세운 낙원과 같은 대학, 무엇보다도, 하버드를 확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세의 수도승들과 학자들은 내부의 낙원이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자유의 궁극적인 바탕이라고 믿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말했듯이, 그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 걸음으로써가 아니라 열망으로써 여행해야 했다. 그 여행은 인간의 타락한상태로부터,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없게 하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부터, 태초의 자유로, 하느님과 닮게 만들어진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상태로의 여행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법률과 설명과 정당화의 무화과 잎사귀, 맨살 위에 걸치는 사회적인 의상이 필요없는 아담의 벌거벗은 상태를 회복했다. 낙원은 단지 그 사람 자신, 자아, 아무런 억제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근본적 자아일 뿐이다. 그 자아는 더 이상 에고라는 옷을 입지 않는다. ...

수도원과 대학의 근본적이고 참된 낙원이념은, 단순히 석사나 박사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론적인 사상들을 모아둔 천상의 창고가 아니라 학생들의 내적 자아를 의미하였다. 학생들은 모든 창조물들의 중심에 연결된 자신의 인격의 바탕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자신 속에서 창조주의 빛과 지혜를 발견하였다. 그 빛과 지혜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었고, 또 이해될 수 없는 것은 명상의 어둠 속에서 직접적이고 실존적인 접촉을 함으로써 파악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표는 대학(에크하르트에 있어서처럼)에 있어서나 수도원에 있어서나(튀스브뢰크에게 있어서처럼) 그 맨 안쪽에 있는 중심, 정점혹은 섬광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유를 초월한 자유이며, 본질을 초월한 본체이며, 모든 에고를 초월한 자유이며, 창조된 영역을 초월한 존재이며, 모든 분파, 모든 분리를 초월한 의식이다. 이 섬광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플로티누스처럼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혼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것도 그것과 따로 존재할 수 없고 어느 것도 그것과 함께 할 수 없으며, 어느 것도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나의 진정한 자아인 섬광은 내 안에 있는 절대성의 번쩍임이다.

정점에서의 이러한 실현은 모든 대립된 것들의 일치이며(쿠사의 니콜라스가 말하듯), 자유와 비자유,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 자아와 비자아, 인간과 신의 용해이다. 섬광은 눈에 보이는 확고한 실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 모든 대립된 것들이 자신 속에서 충돌할 때 일어나는 폭발이다. 그것은 에고가 존재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그것은 섬광의 번쩍임만이 존재할 때, 그것의 보지 않음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모든 배움의 목적은 이러한 종류의 사건을 위해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여러 가지 훈련들의 목적은 점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가는 대로와 소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

완전한 삶은 어떤 특정한 외적 수단들, 그것이 수도원 생활이든, ()이든, 환각제든, 혹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든, 그것들에 의존하지 않고 점화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섬광, 정점에서 번쩍이는 것, 모든 자유들의 폭발은 결코 감독이나 계몽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코 버튼을 누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배우는 일의 가장 조그만 부분이 교실에서 행해진다. 나는 캠퍼스 곳곳에서 때로는 캠퍼스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 말들, 일화들, 충돌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는 가운데 일어난 빛의 조그마한 폭발은 나 자신의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내가 갈 길을 지시해 주었다.... 

대학의 기능은 사람에게 차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차를 마시는 것은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다. 태양 아래 있는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모든 행위는 아무리 작더라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행위하고 있는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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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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