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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실천가 및 갈등해결 서클 진행자를 위한 인식론적 오딧세이

-Dancing with our epistemological Szylla and Charibdis in our journey toward wholeness-

 

 

호머의 오딧세이에는 주인공이 자기 고향에 돌아오기 까지 배로 여행을 하면서 겪는 갖은 고초를 묘사한다. 그중에 주목할 것은 이 여행자에게 있어서 두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나는 스킬라(Szylla)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카리브디스(Charibdis)라는 위험이었다. 전자는 배가 지나갈 때 섬에서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고 후자는 소용돌이라는 것이었다. 이 둘을 안전하게 지나가는 것이 바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관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파편화되고 분열된 세상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위험이자 새로운 기회이기도하다. ,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외적인 표상이 괴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잘 통과해야 한다. 섬이 괴물로 다가온다는 메타포는 내가 다루는 현안, 상대방(개인 혹은 그룹이든간에)이 무서움의 대상, 혹은 적으로 인식되는 위험을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피해야 할 스킬라 현상이다.

 

또 하나는 비폭력 활동가로서 혹은 갈등해결 진행자로서 맞부딪치는 내적인 표상으로서 소용돌이라는 위험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리고 현안에 대해 온전히 현존하기 위해서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소용돌이는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관계의 실상을 왜곡시키고 나의 판단, 선호성, 기호, 선입견, 가치에 의해 굴절되어 진다. 그래서 일어나고 있는 실재에 대해 다가가기 보다는 내 판단, 기호, 선입견 등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해 일의 실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내면이 일으키는 카리브디스 현상이다.

 

비폭력 실천가로서 혹은 갈등해결 서클 (회복적 서클 포함) 진행자로서 이 두 위험은 가장 도전적인 위험이자 또한 일상에서 알아차림으로 있어야 할 표상들이다. 외적인 투영으로서 괴물/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적인 자기 판단의 반영으로서 혼란은 사물과 사건의 진실, 상대방의 진실 그리고 이를 통한 나의 진실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주의해야 할 인식론적인 방해물이다. 이 둘은 어째서 위험하고 그것을 잘 통과하는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는가?

 

스킬라 현상은 사물의 실상(what-it-is)과 일어나고 있는 일의 실상(what-it-really-happens)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전자는 전통적인 명상의 궁극 실재에 대한 이해의 길이고 후자는 갈등해결 혹은 갈등전환 활동가가 취하는 역동적 명상의 삶의 적절한 사건에 대한 이해의 길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일, 사건 그리고 사람이 그대로의 본성으로서 다가오지 않고 혹은 인간성 그 자체로 인식되지 않고 괴물로 보여짐으로써 - 무서움의 대상 혹은 적으로 여겨짐-로 인식됨으로써 - 우리는 관계성을 잃게 되고 단절과 거부 혹은 회피로의 반응을 나타냄으로써 그 대상/사건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삶의 여정을 즐기거나 교훈을 얻거나, 활력이나 풍성케 하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카리브디스 현상은 더욱 교묘하게 작동되고 내가 이미 인식적 정서적으로 연루되어 있어서 알아차리고 주의를 기울이기 힘든 내적인 동요를 말한다. 옳고 그름, 좋아하고 싫어함에 대한 나의 가치와 신념의 굴곡, 과거의 경험이 주는 상처의 이미지로 인한 유사 경험이나 사람에 대한 내적인 굴절, 종교적 신념이나 이념적 확신에 따른 외부 정보에 대한 선택적 반응이 사건과 사람 앞에 온전히 직면하거나 현존할 수 있는 여지를 앗아가게 된다. 이런 경우 이미 그 결과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법칙으로 예견되어 있게 된다.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해 기여하기 보다는 스토리의 미로를 헤매게 되며, 실패의 경험은 자기 판단 혹은 자기 비난으로 증폭되게 된다. 그래서 움츠러들게 되고, 진정한 관계적 존재로서 자신의 중심 세우기를 못해서 힘들어 지게 된다.

 

우리의 인식의 함정인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현상은 무엇보다도 두려움의 인식이 실재를 보는 프리즘으로 작동하게 만들어서 내적 외적인 실상을 굴절시키면서 이에 대한 온전한 반응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자동 반응을 프로그램화/사회화시키고 나는 그게 현실이라는 환상을 실재로 보고 이런 왜곡된 렌즈를 통해 항상 실재를 접하는 폭력의 각본을 되풀이 실행하게 된다. 왜곡된 렌즈를 통한 실재에 대한 착시 현상은 우리의 사물을 진실하게 대하는 성실성(integrity)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게 된다. 따라서 다름과 같은 현상들이 일어나게 된다.

 

1) 삶에서 무언가 잃어버렸다고 허한 느낌이지만, 그것의 실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찾아 밖으로, 세상으로 헤매고 다니지만 얻는 바가 없게 된다.

2)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나 성실성이 모아지지 않고 사는 까닭에 세상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허상의 감각이 존재의 충만성을 갉아 먹는다.

3) 카리브디스로 인해 내면에 빛이 생겨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스킬라로 인해 세상의 빛이 자기 내면의 실상을 비추지도 못한다. 그럼으로써 존재력을 잃게 된다.

4) 내면의 소용돌이는 타인을 ’ ‘괴물로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용돌이로 인해 자신도 적이자 괴물로 인식되어 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5) 내적 실재와 외적 실재에 대한 거짓된 상(image)으로 인해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따라서 삶의 풍성함과 진실에 대해 진정한 기여도 할 수 없게 된다.

6)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로 인해 사랑의 존재로 현존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그래서 사랑할 수 있는 생명력을 북돋는 참 자아에 대한 감각마저 잃게 된다.

7) 내면과 외면에서 동시에 스테레오로 갈등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중의 덫에 걸려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틈이 안보여 결국은 깊은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이중 판단의 덫이다.

8) 자신은 아무것도 안되고 (nothing to do) 아무 것도 아닌 존재(nobodiness)로 느껴지면서 자기 파괴의 충동이 힘을 얻게 된다.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겉의 사건과 내적 충동에 휘둘리게 되면서 선택과 자유의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위에 진술한 인식론적인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괴물이라는 외적 표상과 소용돌이라는 내적 반응을 작동시키는 의식의 작용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신경생물학자 움베르토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주장처럼 인간의 인지 능력은 존재와 실재가 먼저 있고 우리의 인지가 그 표상에 대한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이 실재에 앞서며 실재를 창조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는 통찰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다. 즉 관찰되는 실재(외적 표상이든 내면적 실재이든 간에)는 관찰자의 주관(perceptions)의 프레임에 따라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보여진 것 (the seen)은 보는 자(the seer)의 인식행위에 맞물려 상호연결성, 상호순환의 인식고리를 갖게 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현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는 가라는 실재에 대한 알아차림(awareness)과 판단없는 연결로서 관계성의 전체를 의식한 존재로 있기(co-relational presence)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자유와 선택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충만한 경험-배움과 방향감각 그리고 생생한 활기-이 열려지게 된다.

 

필자는 이것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현존하기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비폭력 대화에 있어서 우리의 언어행위에 대한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제안이나 비폭력 영성과 그 실천에 있어서 변혁시키는 힘(transforming power)에 대한 자기의식을 갖는 것 모두가 사실상 빙산의 일각에 나온 우리의 언어 및 행위의 7% 그 아래에 93%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의식/무의식의 장( conscious/unconscious field)이 투명해짐을 통해 작동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의식은 언어를 벽에서 창으로 전환시키고, 경계없는 경계 (켄윌버의 용어로는 무경계의식”)로 자아가 개체가 아닌 장(field)으로 존재하면서 섭동과 융통을 통해 나-우리-그것-그것들(켄윌버의 4상한)의 전체성을 통전적으로 인식하는 통합적인(integral) 지각으로 있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존재론적 두려움을 넘어서는 이해와 연민의 통각(通覺)이 일어나면서 진정함과 자비로움이 흘러나오는 존재성(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를 Is-ness라 표현하였다)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함없는 행위라 하였고, 에크하르트는 이유없는 함(doing without 'why')이라고 기술하였다.

 

깨어있는 의식은 상관적 현존(co-relational presence)에서 나-그것-우리-그것들을 통합하며, 현안에 연결되고, 내안의 진실과 연결되며, 상대방의 진실에 연결되고 또한 주변 상황에 연결되는 인식의 4 지평의 통시성속에서 열려있는 상태이다. 그럴 때 정보의 상호순환이 일어나면서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나 해결의 제시가 출현하게 된다. 이는 인식의 패러다임에 있어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지각 혹은 자비의 지각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가 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질적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개체적 자아로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일방적인 줌과 받음의 관계가 있게 되지만 상관적 현존으로서 깨어있는 의식으로 참여할 경우에는 언제나 상대에게 주는 것은 나에게 선물함으로 변화된다.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소진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충만해 진다. 왜냐하면 엔트로피의 법칙은 오직 닫힌 폐쇄계에서만 작동되지 열린 개방계의 존재 시스템에서는 그 역설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성장과 변화, 새로운 기여가 발생하면서 자유와 선택 그리고 창조성이 출현한다. 그래서 상관적 현존은 존재의 터전에서 나오는 낙천적 기쁨을 되찾게 된다.

 

이러한 공동관계성으로서 존재로 있기라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사물, 관계, 사람, 상황을 바라볼 때 사물은 괴물이 아닌 그 자체의 타자성(otherness)으로 나에게 다가오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 타자성에 대해 호기심과 존중이 일어나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내적 실재에 있어서 소용돌이보다 더 큰 잔잔한 대양의 내면의 투명함을 인식하면서 잠시 일어나는 소용돌이에 대한 관찰과 즐김이 생기고 오히려 생명의 약동, 감정의 일어남이 주는 생생함을 에너지로 부여받게 된다.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이 내 인식에 대한 미지의 참자아라는 타자성의 차원이 열리면서 자기 발견의 계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론적 오딧세이라는 온전함 삶으로의 여정을 통해 겪게 되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현상은 이제 무서움이 아닌 외적 표상의 타자성 그 자체와 내면적 실재의 타자성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 경치를 무서움이 아닌 호기심과 말걸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고 그러한 타자성들은 삶의 경험을 충만케 하는 경이로운 경관으로 지금 이순간과 지금 여기의 공간에 대한 성스러운 질적 경험으로 승화되게 된다.

 

그리하여 나의 온전함으로의 여행이 최종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과 지금 여기가 궁극성을 띠면서 무제약적 현존으로서 관계를 맺음으로 과정과 길이 목적이 되어 이유없는 함의 생생함으로 나는 현존하게 된다. 이 순간 그리고 이 공간, 그리고 이 존재에 연결됨이 궁극적으로 도달된 나의 목적이 되고 (최종 목적의 내역사화/inhistorization) 나의 존재성이 되며, 앞으로 전개되는 것은 모두가 그 존재성을 강화하는 선물이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 현존하기 때문이며 사랑하는 자, 사랑받는 자 그리고 사랑하는 행위가 분리없이 하나로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인드라 망처럼 혹은 무수히 많은 거울의 망처럼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의 거울을 통해 사랑하는 행위를 비추면서 서로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해 사랑을 비추는 존재성으로 인도하게 된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로 인해 더욱 생생해진 삶의 충만성,

그리고 존재의 신비로움.

현시되는 실재의 약동과 춤추는 실재 그리고 춤을 배워가는 나.

타자성에 대해 말을 걸고 연결의 춤을 새롭게 배우기.

무서움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도록 다시 초대하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아아
~이 순간, 이 공간의

숨막힐 듯한 엄숙함과 타자성에 대해 은밀한 밀어를 즐기는 이 기쁨.

말없는 공명과 침묵의 깊이 그리고 타자로 인해 열려 펼쳐지는 무한성

그리고 모름에서 나오는 인식의 겸허함을 새롭게 배우기.

여정을 오래 해 온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상관적 현존하기로 모든 것을 환대하기.


어서 오라
, 그대여.

실패, 상실, 어둠, 추락, 낯섬 모두를 환영하기.

상관적 현존하기의 주인으로 문을 열어 그 손님들을 맞이하기.

서클을 열고 호스트로 각자에게 목소리를 내도록 초대하기

연결하기, 그 타자성의 목소리들에게

선물로 받아들여 연결하기,

그리고 기여하기

내 상관적 존재성, 투명한 있음으로 기여하기.

(20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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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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