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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
 

 

뻣뻣하고 강한 것과 부드럽고 약한 것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지만

죽으면 뻣뻣해진다.

만물 초목도 살아 있으면 유연하지만

죽으면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뻣뻣한 것은 죽어 있는 무리이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 있는 무리이다.

이런 이치로 보면

군대도 견강하면 패하고

나무도 강하면 부러진다.

강대한 것은 하위에 처하고

유약한 것은 상위에 처한다.


-노자/도덕경 76장-



어렸을 때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제일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야만 했던 것은

바로 ‘열중 숴, 차려, 앞으로 나란히’였다.

아침조회든, 월요일 운동장에서의 조회든, 체육시간이든

소풍이든 이 ‘열중 숴, 차려, 앞으로 나란히’는 지겹도록

그러면서도 한번도 그것을 호령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문도 없이

줄서기와 질서유지 이름하에 반복된 의식행위였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장위동에 있는 이 미션스쿨에서는

이전에 하던 것에 별다른 변화가 없이 계속되었다.

좀더 체육시간 등에서 더 뻣뻣하게 서라는 강요가 더 컸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근데 성경시간에서도 교사로 들어온 목사님은

성서의 진리보다는 안테나처럼 생긴 알루미늄 봉으로

책을 똑바로 놓지 않고 자세가 흩어진 학생들을 바로 잡는 것이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곤 하였다.


상고에 들어와서 이 ‘열중 숴, 차려, 앞으로 나란히’는 좀 성격이 바뀌었다.

중학교까지 키 작은 순으로 운동장 조회를 받던 관습이 교련이 생기면서

키 큰 거꾸로 순으로 줄서기로 바뀌어졌다.

그리고 중학교까지 앞뒤로 줄서기 하던 양태가

이제는 옆줄을 제대로 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교련검열을 위해 10여명이 옆줄로 서서 행진할 때면

나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그것은 뒤에서 둘째 줄쯤 서있던 키 작은 나는

무거운 총대를 메고 앞의 키큰 애들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큰 걸음으로

그리고 코너를 돌 때면 때로는 뛰다시피 해서 옆줄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옆줄을 제대로 맞추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의례 우리는 머리를 땅에 박고 벌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뻣뻣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만들려는 이 “열중 숴, 차려, 그리고 앞으로 나란히”는

미국 유학 갈 때까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내 의식과 몸속에 박혀있었다.

그러다 유학시절 애들을 퀘이커에 속한 유치원에 보내면서부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본성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학습 분위기를 보게 되면서

깊은 충격과 내 과거에 대한 회한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라,

뻣뻣하고 강인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생명의 무리라는 이 통찰은

폭력으로서 뻣뻣하고 강한 태도나 그러한 삶의 형식과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의 평화의 자리매김을 명료화시킨다.


군대문화의 본질은 단지 무기를 들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뻣뻣하고 강인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죽음의 무리요 패하고 부러지게 된다는 노자의 말은

이 시대, 특히 요즘 새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한 밀어붙임에 대해선

큰 교훈과 경종이 된다. 


평화는 폭력의 뻣뻣함과 강함을 또 다른 강함으로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을 지키면서 상대의 폭력성을 드러내어

유도처럼 상대가 스스로의 폭력성에 의해 역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0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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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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