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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장애물들

조회 수 2819 추천 수 0 2016.11.06 09:54:46

>경청의 장애물들<

 

......

우리가 보게 되는 건 그가 고개를 쳐들고 얼굴이 진지해져서

세상의 벽들이 벌어져서 넓어지게 되는 거야.

......

윌리엄 스탯포드(William Stadford)

 

 

대개의 경우 우리는 대화, 회의, 그리고 모임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말하기로 이해한다. 그만큼 우리의 습관적인 고정신념은 이해나 변화 그리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말함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행위는 그러한 말함이라는 소통방식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내 오랜 기억속에 한 가지 장면이 생각난다. 2003년에 필리핀 민다나오 중앙 깊숙이 피킷(pikit)이라는 지역에서 무슬림 반군과 카토릭정부군 사이에 무력분쟁이 간헐적으로 지속되고 있었는 데 거기서 한참 산으로 두 시간쯤 걸어들어가 한 원주민 부족(baranggay)에서 일박을 한 적이 있었다. 원주민으로부터 무력갈등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대나무와 짚으로 만든 커다란 움막집속에서 저녁 10시부터 회의를 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보기에는 가난으로 인해 남루하다 못해 너무나 초라한 옷들을 입고 앉아있는 20여명의 성인들이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개인이 경청의 모드로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별다른 움직임없이 침묵으로 한 사람의 말을 전체가 듣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의 차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밀어내거나 충돌함이 없이 들려지고 엮어지고, 한쪽에서 말이 끝나면 다른 쪽에서 말이 이어지면서 진행되지만 전체 분위기는 말하기보다는 경청하기 속에서 펼쳐져 나갔다. 내가 새벽 세시가 넘도록 듣다가 몰려오는 잠에 그대로 들어가서도 가끔씩 들려지는 소리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가장 신성한 대화의 장면을 내 생애 처음으로 목도하면서 내가 가진 잠재의식에 갖고 있던 미개인으로서 원주민에 대한 편견을 고치게 되었다. 집단속에서 침묵이 말함을 초대하고 화답하고 엮어져 들어가고 전체 공간이 진지한 연결된 분위기로 승화되어지는 그런 장면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청에 대한 주목하기가 금방 내 삶에 파고 든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건 원주민의 독특한 문화로 기억속에 남겨지고 나는 다시 일상의 생활패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경청을 다시 고민하고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서클의 경험이 축적이 되고 여러 형태의 서클에 관한 국제모델들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청소년평화지킴이(HIPP), 회복적 서클, 신뢰의 서클, 그리고 스터디 서클을 경험하고 진행하면서 나에게는 다시 경청에 대한 주목하기가 핵심문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청에 대해 의식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몸에 배이도록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 내 나이 50세가 훨씬 넘어서였으니, 그 자각으로 인한 깊은 자괴감이 따라왔고, 젊었을 때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우 컸었다.

 

경청은 그냥 듣는 것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은 참으로 다르다. 경청은 자동적으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며 따라서 능동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란 말도 생겨났다. 혹은 자비로운 경청(compassionate listening)’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경청은 의식적인 집중이나 자기 개방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온전한 경청하지 못하는 것 어떤 이유에서 일까? 무엇이 경청을 방해하는 것일까?

 

첫째는 주관적 해석에서 사실을 듣는 것이 어렵다. 손상, 갈등, 외부 위협에 따른 도전의 상황에서 화자는 대개의 경우 누가 어떻게 얼마나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프레임속에 무엇이 진실로 일어났는지를 담아 말하기 때문에 청자는 쉽사리 청자는 그 프레임에 갖혀서 대방의 해석과 사실 간의 차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어느 누가 불의한 일을 상대방에게 한 말을 듣고 있으면 같이 덩달아 그 나쁜 사람에 대한 분노나 말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두둔과 지원하고 싶은 생각이 올라온다.

 

둘째는 우리는 사고 중심으로 말하고 듣기 때문에 느낌/정서를 듣는 것에 소홀히 한다. 사고는 머리의 판단과 관련되어 있고, 정서는 심장과 관련된 것이다. 머리는 알고심장은 이해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이해의 부분이기 때문에 아는 것으로는 변화를 얻어낼 수 없다. 정서(emotion)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에너지 = e+ motion’와 관련이 있다. 뇌 과학자나 생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정보를 정서로 펩타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속에 기억시킨다. 이성은 걸어가지만 감정은 말을 타고 질주하는 속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는 감정에 무력한 것이다.

 

셋째는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반영해주어 무엇을 들었는지 돌려주는 행위이다. 이른바 반영적 경청(reflexive listening)’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논쟁이 벌어졌을 때 상대방의 말을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는 반영해주면 상대방의 진실에 내가 동의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반영하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틀린 점을 그 자리에서 지적하는 논박으로 나가게 된다. 경청이 아니라 말해주기로 나가면서 논쟁을 심화시킨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청자없이 모두가 말하는 자로 있기 때문에 더욱 말소리가 커진다.

 

넷째는 위의 세 가지 경청을 잘해도 함정에 걸리는 데 그것이 바로 메시지만 듣고 메신저의 마음을 놓친다는 점이다. 우리가 화자가 말한 메시지인 사실, 느낌, 그리고 반영해주기를 잘 하고 있을지라도 결국은 그것을 말하는 메신저를 놓치면 화자가 말한 내용에 의한 납치당하기를 경험하게 된다. 상대방이 그런 메시지로 나에게 말하는 내적 동기나 목적을 대부분 놓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지에는 화자의 마음이 담긴 그 어떤 문장도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누군가로부터 왜 그런 식으로 날 대하는 거여요?’라고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 때 그 메시지에는 자기 선택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 수용이나 인격적인 관계를 마음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만 메시지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난 거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싸우게 된다. 메신저를 놓치고 메시지에 의해 납치당하기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아무도 오해하고 들었다는 생각보다는 왜 나에게 그런 거친 말을 하는지 상대방에게 따지게 된다.

 

다섯째, 메시지와 메신저를 잘 경청해도 이제는 다 된 것인가? 그것은 실재의 반만 정리된 것이다. 실재의 다른 반쪽은 청자의 문제가 남는다. 양자물리학의 인식론은 말한다, 인식자는 인식대상에 참여한다는 것을. 즉 청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돌아가고 있는 신념(mindset)이 듣는 것을 굴절시킨다. 청자는 그냥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메시지와 메신저를 맞이한다. 상대방이 문제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면 청자로서 당신은 즉각적으로 대답을 주고자 하는 충동이 발생한다. 그 대답은 당신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고정신념이 어우러져 일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의 말걸기에 대해 경청이 아니라 나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암묵적인 고정신념이 표출하는 그 어떤 대답이나 해결책을 상대방에게 전해준다. 상대방을 듣는 것이 아니라 를 듣는 방식으로 전환이 된다. 이런 경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쉽사리 일어나기 때문에 청자는 거의 눈치 채지 못한다. 적어도 상대방이 궁지에 있고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데 책임있는 청자라면 어떻게 그것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청자인 당신이 문제에 대한 해답주기가 아니라 거울로 그냥 상대방의 말에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의 잠재적인 고정신념과 연상되는 유사한 경험을 내려놓고 듣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의 늪에 빠져 있는 자를 구제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비도덕적으로 우리는 느낀다. 그래서 개입하게 되고 내 말을 한다. 그리고 청자는 보고자 한다: ‘넌 내 말을 들어야 돼.’ 어느 새 처음에는 경청으로 들어갔다가 자동적으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문제인 너 vs. 대답을 지닌 나의 도식으로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내 조언이나 대답에 성실히 응답하지 않는 화자에 대해서 실망을 하게 된다. 여기서 경청의 마지막 장애가 남아 있다.

 

그 마지막 장애는 바로 이해와 변화를 위해서는 말해주기가 효과가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다. 상대방이 그 문제에서 나오기 위해 문제의 진실을 이해하고, 그 잘못을 이제는 다시 하지 않도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질 때, 뭐가 문제인지 말해주기를 하지 않으면 청자는 태만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현장에서 잘못을 보게 되면 그 즉시 말해주기모드로 전환이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펼쳐놓으면 상대방은 고맙다고 받아주며 이해와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순진한생각을 계속해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하게 된다.

 

더군다나 잘못된 화자가 이해나 변화되기 위해 청자가 말해주기를 했는데 듣지 않으면 당신은 이중의 고정신념을 강화하게 된다. 첫째로 상대방은 잘못을 했다는 것에 대한 인식에 흔들림이 없고(‘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견해는 오해가 아닌 진실이다’), 둘째로 그런 잘못을 한 당사자가 내 말을 안들은 것에 대한 청자 자신의 불편함과 분노의 타당성이 신념화된다(‘상대방은 듣지 않는다’-아이러니 하게도 청자인 내가 안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러므로 청자인 당신의 상대방에 대한 불편함과 분노는 정당하고 당신의 기분 나쁨은 표출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아니다. 상대방이 문제이지 당신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신념이 강화된다.

 

듣는다는 것이 청자인 나의 그 무엇을 끄집어 내지 않고 그대로 상대방과 연결되어 듣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인내할 수가 없다. 우선은 문제-대답의 도식속에 그동안 갇혀 지내왔기 때문에 자동적인 개입의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그리고 듣는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다.

내가 현대물리학과 데이비드 봄을 이해한 바로는 경청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모든 전자는 광자를 내품는다. 부분인 하나의 사건은 언제나 전체성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특정한 패턴의 응결이며, 그것은 그것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 마음이 무거운 잘못된 그 어떤 사건/행위라는 전자는 그 스스로 광자()을 내재하고 있다. 소용돌이나 역류로서 인식되는 하나의 부분으로서 사건과 특정한 행위는 전체성의 흐름속에서 만들어지는 특정한 일시적인 패턴의 고정화이며, 그 패턴의 고정화는 보이지 않는 실재의 전체성속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청은 전자로서 그 사건경험 속에서 광자를 내품도록 돕고, 소용돌이나 역류로서의 사건인식에 대해 전체성의 흐름속에서 재의미화 혹은 재맥락화할 수 있는 과정적 공간을 허용한다. 화자는 그러한 경청을 통해 광자나 전체성과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의 틈이 자신에게 허용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잠재적인 가능성(광자, 전체성)이 스스로 표출되면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간다. 청자는 목격자로 있지만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과정이 스스로 일어날 공간을 허용할 뿐이다.

 

청자는 그렇게 연결은 되어 있지만 양자물리학은 이것을 얽힘이라 한다- ‘침범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풍성한 삶에로 기여한다. 그러한 경청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시인인 윌리엄 스탯포드가 말한 바와 같다.

 

우리가 보게 되는 건 그가 고개를 쳐들고 얼굴이 진지해져서

세상의 벽들이 벌어져서 넓어지게 되는 거야.

 

경청을 통해 이제는 상대방이 축 쳐진 고개를 다시 쳐들게 되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되고, 분노나 실망의 얼굴이 주목하며 진지해진 초점어린 눈을 가지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은 세상의 벽들이 벌어져 넓어지게 되어 자유의 공간을 맞이한다. ‘세상의 벽들이 실제로는 화자도 청자도 경청하지 않은 문제였음도 알게 된다. 그 모든 세상의 벽들은 전체성의 흐름의 부분으로서 고정된 패턴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경청은 화자로 하여금 자신을 경청하게 하고 또한 경청자가 그러한 자기 경청을 돕는 공간을 허용하고 그 경청 공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모든 유기체가 스스로 자기 조직화를 통해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 법칙이 작동되도록 돕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돕는다. 그러나 그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주의깊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말함도 그러한 경청이 묻어나오는 방식으로 간다면 우리는 진실의 깊이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실이 치유하게 한다. 진실이 들려지는 곳에서 그 자리에 있다는 그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있음의 감동,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청자게에게 그토록 매력적인 순간이고 그것이 경청자가 얻는 보상이다.

 

(201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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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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