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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작업에 있어서 언어의 연금술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이는 실존철학자 마틴 하이덱거가 궁극존재인 신(SEIN)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 그리고 현존재(Dasein)이자 존재자인 인간이 존재를 찾는 실마리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간파한 말이다. 마틴 하이덱거와 칼 야스퍼스는 궁극존재//침묵, 현존재/존재자/인간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사유/언어/말걸음(Gerade)의 중요성을 이 짧은 격언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는 존재라는 넓은 광야와 같은 실재보다는 언어의 인위성으로 인한 작은 터전으로서의 집에 대한 언어의 한계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강조되어 있다. 언어가 존재에게 공간을 규정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는 집을 넘어선 공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신에 대한 언표불가능성을 아울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언어를 쓰는 자의 자기 한계에 대한 인식과 겸손을 요구한다. 언어가 궁극자를 향한 다양한 문을 열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문이 궁극자를 규정하거나 한계를 줄 위험성 때문에 문으로써 다양한 문들에 대한 대화와 실재와 그것의 문으로서 언어간의 차이에 대한 자각을 철학적 인간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신학생 시절에 듣고 잊은 말인데 사실 갈등상황에서 이 말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물론 상황은 전혀 다르고 원래 의미하는 바도 다르다. 차이, 갈등, 분리의 상황에 직면해서 이 격언을 내가 이해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 대부분은 문제상황이나 갈등상황에 직면하여 언어를 사용에 있어서 언어가 장벽(Barriers)을 구축하는 과정에 익숙하게 빠져든다. 우리의 언어행위(또한 사고, 말걸음도 여기에 포함한다)는 계속적으로 서로의 진실을 듣거나 보지 못하게 그 언어행위가 점점 벽돌을 올려서 장벽을 만들어 결국은 상대방도 안보이게 하고(청자의 상실) 결국은 분노나 좌절로 자신도 안보이게(화자의 정체성의 축소) 만든다. 그리고 그 장벽으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적-이미지는 더욱 강화된다. 마치 상대방이 그 장벽을 쌓아올리고 있다고 투사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장벽이 되면 그 다음부터 오고가는 모든 언어행위는 -심지어 비언어적 몸짓까지도- 소음이 된다. 들어도 들리지 않게 되고, 듣는 것이 싫어지면서 짜증을 내며 거부하게 된다. 소음이 되는 순간 이제는 그 언어를 말하는 자도 싫어지게 되면서 모든 말은 강요나 침범으로 해석되게 된다. 이런 경우 아무리 타당성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말하면 할수록 소음은 방어를 일으키면서 더욱 안 들리게 되고, 자연적으로 각자의 언어는 강력한 무기로 바뀌면서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 된다는 것을 문제상황에 긍정적으로 적용한다면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언어가 장벽이 아니라 창문(Windows)가 될 수 있겠는가이다. 언어가 창문으로 기능을 할 때 우리는 이제 그 창문을 통해 창문밖의 실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 창문이 많거나 클수록 더욱 많은 실재를 경험하게 되며, 그 실재를 경험함으로써 반대로 나를 경험하게 된다. 창문을 통해 밖에 눈이 오고 있구나, 햇살이 내리쬐는구나, 꽃이 활짝 피었구나는 창문밖의 실재의 경험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자기 인식에 대한 확대 그리고 힘의 부여를 -이렇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일어나 활동해보아야지!- 일으킨다.


창문은 거기서 실재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실재에 대한 인식과 명료함을 일으킨다. 상대방이 어떤 역할로 나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고 있는지에 대한 누구에게로부터 무엇어떻게라는 실재에 대한 감각으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그 누구에 대한 딱지로부터 - 선한 인간, 나쁜 인간, 내가 좋아하는 인간, 내가 싫어하는 인간 - 사회적 역할로서 누구에 대한 인식보다는 지금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펼쳐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재에 대한 감각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갈등작업자들에게는 궁극적인 질문의 하나가 바로 어떻게 우리의 언어가 장벽이 아니라 창문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이다. 이것을 매순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이 갈등상황에 적용될 때 -마틴 하이덱거는 이것을 초월자에 대한 사유의 길을 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언어가 존재를 비추는 빛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두 번 째 핵심이 된다. 언어가 창문이 되는 것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언어가 빛으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그러나 거의 우리가 평소에 경험도 못해보았기에 꿈꾸어보지도 못한 잊어버린 차원이다. 이것은 오직 만물이 신성하다고 믿는 애니미즘의 원주민들이나 소규모 종파로 남아있는 종교평화공동체안에서만 남아있는 유산이다.


언어가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의 체험은 나에게는 서클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언어행위에 대한 성찰에서 얻어졌다. 안전한 공간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진정으로 들려지는 상황에서 참석자들은 각자가 말한 스토리를 통해 뭔가 질적인 그리고 따사로운 지지와 일치의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이 소중하고,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확연히 깨닫는 사건들이 일어남을 목격하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경험은 나에게도 일어났다. 혼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말하고 듣는 것이 더욱 나의 영혼의 진실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도미니크 바터의 회복적 서클에서나 파커 파머의 신뢰의 서클에서 경험한 것이다.


갈등해결이나 화해사역에 종사하는 이들은 언어가 창문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빛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들의 작업은 언어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의 무능성(장벽이나 소음)이 가져온 폐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언어의 효능성(창문으로서나 빛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믿음이 갈등작업에 대해 용기를 가지고 다가가게 만드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


기독교인이자 갈등에 대한 화해사역자로서 나는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는 창조의 사건이 깊이 다가온다. 언어가 빛으로 펼쳐지면서 각 존재의 다양성이 일어서고 그러한 존재의 다양성들로 인해 심히 좋았다(very good)’는 심미적 공명이 창조자인 신에게까지 황홀을 일으킨다. 이것이 존재론적 창조의 언어가 가진 비밀이었다면, 더 나아가 요한기자는 말씀(로고스)가 진리와 은총으로서 실재를 이 세상에 충만히 가져왔다는 실존적 창조에 관해서 증언한다. 언어가 빛으로 작동할 때 이 세상(지배체제로서 코스모스)에서 그 빛은 진리와 은총, 곧 진정성과 자비로움의 실재를 발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강요와 처벌의 지배체제는 힘을 잃고 만다는 통찰은 기독교화해사역자에게서는 중요한 언어행위의 근거가 된다.


갈등작업자들에게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언어의 투명성과 능력부여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언어가 창문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빛이 될 수 있는가?’ 일년에 십만명이나 되는 젊은 청년들이 다른 사회 체제에 산다는 이유로 -한때 동포였었는데도-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21개월동안이나 하고 사회로 돌아온다.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우선 무기로 쏴 죽여야 한다는 신념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도록 모든 국가권력, 아카데미, 예산, 시스템이 지원을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엄마, 사랑해라는 개인의 언어로 남아있을 때, 다른 관료 언어는 말을 한다, ‘구조자는 몇 명인지 말하라. 지금은 상황이 어떤지 보고하라.’ 언어가 빛이 되지 못하고 장벽과 소음으로 되면서 피지 못한 꽃들은 가라앉게 되었다.


우리에게 가장 지금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수출 부진, 청년실업자의 문제, 노동시장의 악화, 정치의 무력화, 북미 핵 긴장, 미세먼지나 질병의 세계화, 국가 권력의 경직성과 무능력, 빈부격차의 심각성, 학교교실의 황폐화... 그 어느 것이나 만만하거나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 시급성도 또한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다른 신념과 견해를 가진 인간들이 언어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언어가 장벽이나 소음이라면 결국 어떤 선한 결과를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마틴 하이데거의 신학생 시절에 들었던 이 말이 내게 깊이 다가오는 것은 결국은 가장 우리에게 큰 적은 다른 색깔의 사람이 아니라 언어/말걸음이라는 것의 정체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갈등은 적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도 언제나 일어난다. 문제는 갈등의 발생이 아니라 서로가 사용하기로 선택한 언어가 장벽/소음이 되어 서로를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전락되는 데 문제가 언어에 있다고 보지 않고 저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오래되고 깨어지지 않는 이 신념이 실상은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고 있다.


따라서 언어가 어떻게 존재를 감추는 감옥이 아닌 존재를 가능케 하는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가정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언어가 논의하는 현안의 사물성이나 인간을 사물화(things)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근원인 존재(being)’에로 용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펼쳐지게 만들 것인가가 우리의 최종 숙제가 된다. 언어가 그러한 순기능의 역할로 쓸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안전함과 생의 넉넉함(well-ness)를 경험하는 존재의 집을 얻게 되며, 거기서 우리는 갱생과 활력 그리고 소명과 비전을 다시금 충전받게 된다.

 

20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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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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