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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평화주의와 회복적 정의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이 글은 2015/12/19/토요일 덕성여고에서 좋은교사, 회복적생활교육 연구센터가 주최한 2015 회복적 생활교육 컨퍼런스-“회복적 생활교육 어디까지 왔나?”의 원고이다.)



서 론

 

회복적 정의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만물의 신성함을 신앙의 기초로 하는 원주민들로부터도 현대에 와서 새롭게 배운 지류의 합류가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 평화전통에는 샬롬의 통치라는 하느님 나라개념속에 흐르는 두 지류인 평화와 정의 그리고 이것을 신실하게 실천하는 계약(covenant)사상이 수천 년을 흘러내려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메노나이트계의 아나 뱁티스트 운동에서 화해사역과 회복적 정의운동에 의한 소개이후 지금은 시민사회와 교육계에 넓게 전파되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서 회복적 실천들이 점차 가시화되어가고 있다. 교육운동으로서 회복적 생활교육이 아직은 생활지도의 측면을 중심으로 회복적 실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영역에서도 가시화되길 기대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이 학교에 퍼지면서 아직 정리가 안 되는 영역은 기독교사들이 회복적 실천에 대한 낯설음이다. 비록 좋은교사운동 단체내에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모임이 있고 종종 본인과 접촉을 갖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아나 갈등하는 아이들을 새롭게 생활지도하는 효과있는 도구정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정도에로 다가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신앙 특히 기독교 평화주의가 손상과 범죄의 영역에서 재 프레임화되는 영역이라는 것, 기독교 본질의 영역인 샬롬의 통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까지는 아직 미흡하다. 회복적 실천이 퍼져가는 넓이에 있어서는 좋은 흐름들이 강화되고 있지만 자기 신앙의 깊이에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회복적 실천을 이해하기란 아직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본인은 이 아티클을 요청받고서도 수많은 훈련 워크숍과 갈등사례 다루는 바쁜 일정속에서 제한된 시간속에서 몇 가지 기독교 교사가 회복적 정의를 만나는 근본토대로서 전통의 뿌리와 시대의 요청간의 긴장속에서 회복적 정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실천가로 기독교사가 만나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참조되는 성서귀절들을 묵상하도록 돕고 또한 이에 대한 몇 가지 성찰을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의 짧은 글을 통해 비유하여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하나의 설명을 위한 진술이기 보다는 앞으로의 사색을 위한 화두던지기이다. 샬롬의 통치를 구현하는 평화와 정의는 예언적 전승과 사도들의 전승속에서 면면히 살아있는 행동하는 신앙의 핵심이다. 여기서는 회복적 정의와 관련된 입장에서 우리의 신행(信行)을 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사색을 제시하고자 한다

 

 

I. 기독교 회복적 정의(회복적서클 진행자)를 위한 7가지 핵심 질문들:

 

1. 어떻게 우리는 생과 우주안에 있어나는 것으로서, 궁극의 실재/의미가 은총’‘영광’‘잔치(feast)’와 관련되어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러한 것을 삶에서 진정한것 혹은 소중한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까?

 

2. 어떻게 은총어린 실재(리얼리티)’를 경험하고 자신이 내적 자유를 얻고 타자의 온전한 삶을 돕는 섬김의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 존재-인식-언어-행위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3. 회복적 실천은 리얼리티 - , 빛과 어둠의 실재성- 작업이다. 어떻게 어둠을 빛으로 변형(transforming)하는 일이 내 소명의 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어둠: 실패, 고통, 좌절, 상처, 도전, 위기, 손상, 파괴

: 내적인 진정성과 성실성을 통한 온전성(wholeness)과 통전성(integrity)

 

4. 어떻게 신의 주권(샬롬의 통치)이 안전한 공간을 넘어 비통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파송받은 사도성과 관련된 제자직의 사명으로서)?

 

5. 어떻게 우리는 배움의 공간(물리적 공간, 마음의 공간)에서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 상대방의 타자성 그리고 주제의 진리성이 상호소통되고 상호의존되는 은총어린 실재를 성육화(incarnating)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환대와 초대, 경청, 그리고 의미의 흐름이 일어나는 이 배움의 공간이 바로 성소[sanctuary]로 이해할 수 있을까?)

 

6. 그리스도인이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해된다면 우리는 다음 두 사역을 어떻게 충실히 실천할 수 있을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케 하려 함이다.”(10:10) “그리스도는 평화이다. 그는 원수된 것,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로 만드신다”(2:14)

 

7. 회복적 서클 진행자로서 우리는 다음을 어떻게 철저히 인식하며 온전히 현존하여 진행할 수 있겠는가? , 사람, 사건, 상황, 관계를 회복적으로 인식하기(깨어진, 굳은 마음을 열고, 존중하고 우정어린 마음을 내어 나아가도록 돕는 것)와 서클로 진행하기(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열어 서로를 연결[communion]하여 사귐[koinonia]의 거룩함이 일어나게 하기)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II. 궁극 질문을 성찰하기 위한 참조본문:

 

1:1-3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 이 문장은 기독교의 원복음에 해당한다. 어둠에 동시에 하느님의 기운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어둠에서 빛이 나온다는 이 존재론적 사건은 회복적 실천가에 어둠의 변형작업으로서 회복적 실천에 대한 인식론적인 근본 토대를 제공한다. 회복적 실천가는 어둠과 혼돈이라는 것에 하느님의 기운을 불러넣기라는 영감(inspiration)작업을 하는 이다. into+spirit 곧 어둠에 영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럴 때 새로운 창조인 내면의 빛이 -enlightening- 발생한다.

 

13:29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 회복적 실천가는 잔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호스트와 같다. 모임공간은 잔치(feast)에로의 초대와 참석에 비유된다. 여기에는 강제와 비난, 규율이 없는 환대와 교제, 기쁨의 나눔, 넘쳐나는 대접이 핵심이다. 호스트로서 회복적 실천가는 환대와 풍성함을 누리도록 인도한다. 이 잔치에는 사방에서 오는사람들을 맞이한다. 어디에도 문을 열어놓는다.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적대자이든, 낯선 이든 들어오게 문을 사방으로 열어 놓고 맞이한다. 들어옴(entry)에 대한 문을 개방하는 것은 호스트의 기쁨이다.


17:21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 회복적 실천은 가운데(betweeness)’를 창조하는 연결자(connection-giver)이다. 그 연결이 바로 가르침과 배움의 핵심이고, 실재의 중심이기도 하다. 종교는 연결 그 자체를 신성한 것으로 본다. 종교 religion의 원뜻은 re+legere (다시+잇는다, 모은다)이란 말이다. 영성은 연결의 능력을 말한다. 지성 intelligenceinter+legere(사이+잇는다, 모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이를 잇는 능력이 바로 지성이다. 종교성과 지성은 이렇게 서로 만난다. 핵심은 여기아니면 저기라는 배제가 아니다. ‘가운데라는 연결과 관계를 맺어주는 행위가 회복적 실천가의 핵심 사역이고 이는 가르침과 배움 그리고 종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14: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 회복적 실천은 교사의 자기 영혼의 기쁨에서 자발적으로 솟는다. 여기에는 도덕적 당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아우른다. 정의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적절함에 대한 균형추이다. 그리고 평화는 적대감의 해소와 온전한 사귐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내적 기쁨과 펼쳐지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회복적 실천가는 서클에서 진행할 때 전체를 이끄는 각자와 우리를 넘어선 뭔가 영적인 안내 - 자기를 넘어선 그 무엇[공동지성]에 의해 인도받음 - 에 대한 감각이 있다. 각자의 부분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전체적인 그 어떤 영적 지성, 전체성에 의한 인도됨을 우리는 받고 있다는 살아있는 경험이 생생하게 있다.


10:9-10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 회복적 실천가는 문의 역할을 한다. 그 문을 통해 양우리라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그 서클의 안전한 공간에서 생명을 주는방식으로 경청과 말하기를 소통시킨다. 그래서 그 결과는 삶의 풍성함’(잔치)에로의 초대이다. 풍성함이란 각자의 선한 의도가 승승의 방식으로 자각되고 실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을 주고 풍성함이 일어나는 공간을 지키는 문지기가 바로 회복적 서클 진행자이다.


2:14-16;20-21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 신성함(그리스도)이란 상호 원수됨과 분리됨의 담의 해체 그리고 강제의 규정의 폐지와 관련된다.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신성함의 존재성을 드러내게 한다. 회복적 실천가는 그러한 신성함의 존재성을 근본토대(모퉁잇돌)로 하여 교실에서 나의 정체성, 타자의 존재성 그리고 주제/현안의 진리성을 서로 연결하고그 연결이 점점 커지게 하여 거룩한 일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돕는다. 그러한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거룩한 성소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집을 만든다. 안전과 거룩한 교제가 풍성해지는 그 공간을 통해 우리는 인식하기, 연결하기, 가르침과 배움 이 모두가 신성한 것임을 알게 된다.

 

5:8-9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한다. 그리고 그 행위로 내어오는 결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빛의 세계에 속한 자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빛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자기충족예언의 법칙으로 작동하여 결과를 예고한다. ‘선과 정의와 진실이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것을 맛보는 잔치’(feast)에로 누구나 초대하고, 환대자(host)로서 회복적 실천가는 선과 정의와 진실의 음식으로 생명을 주는’’ 섬김을 통해 다시금 그 결과도 선과 정의와 진실로 나오도록 그 빛의 풍성함을 돕는다.


어둠은 성숙을 가져오고, 빛은 열매를 맺게 한다. 회복적 실천가는 어둠이라는 상처와 고통, 손상과 파괴에 다가가 그것이 문제(a problem)가 아니라 필요(need)’에 대한 돌봄과 지원의 작업을 위한 계기로 본다. 그리고 그 어둠의 작업을 통해 빛(‘선과 정의와 진실’)을 내어온다. 서클은 이렇게 거칠고 힘든 어둠으로 시작하여 아름답고 선한 빛으로 나온다. 그리고 서클은 이러한 변형을 과정(process)를 통해 저절로 이룬다. , 아름답고 선한 것은 과정을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럽게 출현하게 하는 것이다.

 

 

III. ‘숨겨진 전체성의 회복으로서 회복적 실천의 영성적 측면

 

 

모든 보이는 사물 속에는

보이지 않는 풍요,

흐릿해진 불빛,

온유한 이름없음,

감추어진 전체성이 있다네.

이 신비한 하나됨과 통일성이

모든 것의 어머니인

지혜라네.

 

Natura Naturans(자연중의 자연)

 

- 토마스 머튼의 하기아 소피아

 

 

드러난 부분으로서 각자의 관점이 진실의 전체성을 계시한다

 

회복적 실천가는 보이는 사물 -문제상황, 문제아, 도전과 위기, 손상과 파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체성을 본다. 조각내는 거칠은 말의 보이는 측면, 그 이면으로 보이지 않은 진실한 그 무엇이 존재함을 본다. 겉으로 펼쳐져 보이는 거칠은 문제행위는 그 이면에 진실의 더 큰 전체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겉으로 펼쳐지는 거칠은 말, 태도, 행위에 걸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의미의 구조에 다가간다.


따라서 보이는 서클의 한 멤버로서 각자는 자신의 부분인 각자의 고유한 입장으로 서클에 오지만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그 입장들이 문이 되어 전체성을 여는 실마리들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중심에서 서클의 중심에 말한다그리고 서클의 중심이 각자의 중심에 말한다는 역설적인 경험을 맛보게 된다. 각자는 서클의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역설인 자신의 중심을 통해서 들어가야 서클의 중심에 다가감을 알게 된다. 이 서클의 중심으로서 온전한 전체성에 연결될 때 각 부분은 치유가 된다.

 

 

서클 진행은 변형의 연금술이다


보이는 어둠의 행위는 보이지 않는 빛의 변형 -왜곡된 혹은 비극적인 변형-이다. 우리가 보는 그림자(손상, 파괴)는 빛의 역방향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알려준다. 이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사물의 본성 곧 진정으로 있음에 대한 탐구에서도 진실이다. 곧 전자는 광자로 변형된다는 사실이다. 입자는 단지 에너지의 다발 혹은 패턴일 뿐이다. 전자와 광자는 변형이 자유롭다. 이것은 갈등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다루는 어둠, 그림자의 작업은 빛의 존재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갈등작업은 보이는 어둠, 그림자에 대한 빛에로의 변형의 연금술 작업이다. 변형(trans-formation)은 이미 있는 있음의 형태(form)라는 잠재성을 통해 새로운 형태(trans-form)의 현실성으로 불러오는 행위이다. 창조자의 첫 있음은 이었고 다른 있음들은 이 빛 아래서 이루어진 작업의 결과들이다. 우리는 이미 빛 아래 있고 또한 우리가 작업하는 그림자(손상, 파괴)도 빛에로 가는 과정을 돕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의 별먼지로부터 150억년을 여행 온 우리의 현실성이다.

 

풍요로움은 이미 거기에 있고 언제나 가능하다

 

겉으로 보이는 거칠음, 손상의 빈약함 혹은 상실에는 그것을 넘어서는 아니 그것을 치유하는 보이지 않는 풍요로움이 언제나 거기에 자족적으로 있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온다. 그러기에 회복적 서클 진행자는 언제나 공동체의 자기 돌봄 프로세스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세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자신이 의존하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 곧 서클에 들어온 사람들을 충분한 풍요로움의 자원으로 본다. 그래서 참가자들을 -그들이 적대자이든 예절 없는 아이이든, 손상을 입힌 자이든 손상을 당한 자이든- 신뢰하는 것을 배운다. 자신의 내면과 공동체가 충분한 자원이다.


둘째, ‘자기 돌봄이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어난 잘못된 일 -원래 사물의 실재에는 잘못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이 지어낸 판단이다. 필요가 존재할 뿐이다-에 대해 문제로 다가가지 않고 필요에 대한 돌봄과 지원으로 다가간다.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일어나는 일/사건/행위를 볼 때 첫 주목하기의 목표가 된다.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문을 열고 맞이한다. 다음을 잊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가/잘못인가?”라는 문과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두 문을 통해서만 우리는 리얼리티를 만난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문을 여는가는 그 결과도 자기충족 예언의 법칙에 따라 결과가 정해져 있다. 무엇이 옳은가/잘못인가의 문을 여는 순간 펼쳐지는 리얼리티는 정당성에 따른 맞서기, 강제, 비난, 고통부과하기의 힘겨운 싸움으로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어떻게 돌볼 것인가의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은 치유와 연결, 회복과 화해, 책임이행과 공동체 복원의 세계가 열린다. 리얼리티는 그 문 뒤에 존재한다. 그 돌봄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세상 사람들은 옳고그름의 넓은 문을 통해 들어간다. 그래서 세상(지배체제)에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있되 세상에 속한사람은 아니다. 자기 돌봄이 바로 속하지 않는 초월의 힘, 추락의 법칙을 상쇄하는 별들의 법칙을 선사한다. 이 자기 돌봄이 우리에게 선물로 바꾼다.

 

셋째, ‘과정을 설치하고 과정을 신뢰한다. 우리의 모든 언어는 딱지 언어혹은 고정된 이미지 언어이다.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에서 진정으로 필요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보다 그것을 발생시킨 사람에 대한 딱지 언어를 사용한다. 다루고자 하는 상황의 의미는 그 고정된 이미지 - 예의없는 아이, 문제아, 버릇없는 놈, 잘못 저지르는 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기분 나쁜 인간- 뒤에 가려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이미지가 다루고자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해석의 필터링을 한다. 과정언어는 고정된 이미지로서 아니라 모든 사람, 사건, 행위, 상황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본다. 되어져감의 과정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서클은 과정을 만든다. 그 과정은 환대하기, 상호 연결하기, 의미를 탐구하기 그리고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라는 4 과정을 대화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칠고 힘든 것(input)은 이 과정이라는 컨베이어시스템 속에서 저절로 아름답고 선한 것(output)으로 출현한다. 과정을 신뢰하고 이 4 과정을 잇는 것에 충실한다. 회복적 실천가로서 특히 회복적 서클 진행자로서 당신의 몫은 단지 이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행자로서 당신이 신경 쓸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잊지 말라.

 

 

모호함, 거칠음에 있어서 지성의 발생

 

서클은 일어난 손상, 파괴, 문제행동, 문제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대답을 알지 못함과 막막한 혼돈에서 출발한다. 서클 참여자들은 이미 대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꽉 막힘, 상대에 대한 비난, 좌절과 무기력감으로 휩싸여 있다. 그런데 진행자 자신도 아무런 대답을 사전에 갖지 않다. 우리 모두가 소경인 상태에서 어떻게 길을 안내 받을 수 있는가? 길을 안내받는 영혼의 내면의 끈으로서 흐릿한 불빛이 그 어둠속에서 우리를 비추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그 흐릿한 불빛이라는 지성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서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단계에는 일어난 관심 주제/상황/사건/행위에 대해 아무도 대답을 사전에 알고 있지는 않지만 길을 찾아야 한다는 열정과 관심이 일어난다. 그런 공통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서클로 모이는 것이다

 

둘째단계에서는 함께 하는 이들이 함께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원하는 것을 일어난 행위와 사건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경청과 말하기로 연결하고 서로의 존재를 연결한다. 각 이야기는 뉴론처럼 작동하여 신경망(net)을 형성하고 회로가 만들어진다.


셋째단계에서는 이야기가 서로 직조(weaving)되면서 각자의 스토리가 씨줄날줄로 엮어 짜지게 되면서 어느 순간 의미의 발현과 흐름이 발생한다. 이미 마치 각 뉴론들이 신경망으로 패턴화되고 조율이 되면서 갑자기 서로 통하는 요동이 있게 되면서 지성이 발생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각자가 지닌 존재라는 정체성이 조금씩 전달되고 연결되어지면서 갑작스럽게 어둠속에서 흐릿한 불빛으로서 지성이 발생하고 그 불빛은 각자를 비추면서 명료화의 자각이 출현한다. 뭔가 각자의 이성으로는 정의될 수 없기에 여전히 흐릿함을 유지하지만 그것이 불빛이라는 점에서는 분별과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지성으로 안내를 한다. 그 지성은 공동의 성격을 갖고 있는 점에서 공동의 지혜’ ‘공동지성혹은 위대한 영의 인도하심으로 불려질 수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온유함, 취약성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성은 머리의 판단이라는 논리와 이성으로부터가 아니다. 적대감과 손상으로 인한 관계의 어그러짐과 분별의 훼손은 논리적인 이성의 차거움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변화는 가슴의 따스함으로부터 가능해진다. 각자 조각으로 파편화되고 얼어붙은 마음이 열릴 수 있는 계기는 강한 논리보다는 자신의 취약성(vulnerability)과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에서 일어난다. 자기 방어와 보호의 빗장이 풀리고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그 연약함이 보호되는 공간에서 따스한 주목이라는 햇살을 받을 때 뭔가 중요한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꽃은 나무의 연약한 가지 부분에서 피고 열매 맺는다. 강한 외피라는 부분이 자기 생존과 보호라는 막을 형성하지만 그중에 약한 부분을 통해 꽃과 열매가 출현된다. 서클에서 논쟁과 갈등의 전환 지점은 참석자중 그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취약성, 연약성을 드러낼 때 그리고 진행자가 그 취약성과 연약성을 주목하고 거기서 원래의 순수한 내적 동기를 끄집어 낼 때 순식간에 얼어붙은 공간은 따사로움으로 변하면서 변화의 에너지가 솟는다.

 

 

신비한 하나됨과 통일성의 공간이 성소이다

 

성육신은 하늘의 이치와 땅의 실재가 만나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현실화의 신화적 표현이다. 그것은 초월이 시간과 공간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돌파의 경험을 뜻한다. 또한 한분이신 신이란 다()에 대한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일치와 통일성으로서의 궁극 현실성을 말한다. 마음이 연결되고 하나의 통전적인 어우러짐이 느껴질 때 거기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안에 영원에 대한 그 어떤 감동어린 차원을 접하게 된다. 자기를 넘어 타자에게 들어가고, 타자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경계의 무너짐속에서 우리는 초월을 경험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비체로서 한 몸, 한 영, 한 공간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수렴되고 그 하나로 흐르고 있음을 본다. 적대감이 풀리고, 무거웠던 가슴의 바윗돌이 떨어져 나가고 뭔가 가볍고 충만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이 채워짐을 볼 때 우리는 거기서 거룩함을 인식한다. 그러한 안전하고 충만한 공간이 성소(sanctuary)’로 변형되어 있는 것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무거운 선물, ‘적대자안내자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회복적 실천가가 받는 반대급부는 이 신비로운 하나됨과 통일성에 대한 경험 그 자체이다. 그것이 최상의 보상이다. 시간과 공간안에서 이 신비로운 하나됨통일성이 드러날 때 우리에게 그 활동 공간은 이제 신성한 곳으로 변형되어 우리의 영혼은 순수한 희열과 승화를 체험한다. ‘이 변형되어 선물영적 에너지로 변형되면서 회복적 실천가는 자기를 넘어선 숭고한 소명에 의해 자신의 삶이 안내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점점 더 가르치는 일의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그를 그토록 신나게 갈등의 폭풍우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비밀이다. 성스러운 소명의 흐름을 타게 되고 여기에 몰입이 되어질 때 더 이상 이 존재하지 않는다. ‘놀이가 있는 잔치로서 우리의 생과 우주의 공간이 우리를 손짓하고 초대한다.

 


결 론

 

기독교 전통의 핵심은 샬롬의 통치를 향한 하느님의 의지와 관계된다. 샬롬은 평화와 정의가 함께 하는 기쁨의 상태이다. 이 샬롬은 갈등과 폭력의 부재를 넘어 조화와 온전함, 건강과 번영 그리고 통합과 균형의 긍정적인 현실을 포함한다.


창조자 하느님은 어둠과 혼돈에서 빛과 존재를 불러내시고 있으라하시고, 생명을 주고 풍성함을 위해 우주의 호스트로서 일하신다. 이 신성한 보편적 의지가 인격으로 표출된 그리스도는 어둠과 혼돈의 실존적 상황인 타락, 실패, , 그리고 분열의 인간 조건에 대해 빛의 자녀로 초대하며, 우리의 궁극 실존인 잔치자리에로 인도한다. 여기에는 평등, 환대, 기쁨의 인격적인 교제가 일어나는 곳이다. 모든 대립과 원수된 것이 없어지고 하나로 모아지고 연결되어 신령한 하느님의 집에 있게 된다. 이것이 새 창조이다. 이렇게 창조자 하느님은 창조를 갱신하면서 혼돈과 어둠을 빛으로 변형시키고, 어둠의 역사인 폭력과 지배체제에서 샬롬의 상태인 정의, 평화 그리고 기쁨의 자리에 있기를 기대한다. 어느 누구도 상실함없이 이러한 최종의 기쁨의 잔치에로 부른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차거운 지식의 객관적 자료의 정보전달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축소판으로서 교실에서 잔치의 변형인 인격적인 환대와 생명을 주는 가르침 그리고 풍성함이 넘치는 배움에 대한 계약적 관계(covenant relationship)맺음을 추구한다. 이는 창조자 하느님의 일하심을 배우는 것이다. 바로 어둠에서 존재를 불러내고, 생명의 관계를 주고 풍성케하며, 어둠의 자녀를 빛의 자녀로 변형하는 계속적인 창조속에 동참하기가 그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의 법칙희소성에 의해 따르지 않고 은총의 법칙과 풍성함에 의해 자기 생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고 어둠의 작업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빛의 잉태가 있고 신성한 존재와의 대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메시지는 리얼리티에 대한 이해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은총이 보이는 현상을 넘어선 진정한 리얼리티이며, 우리 모두는 호스트인 신성한 분에 의해 잔치에 초대된 손님 그리고 그 잔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서로 존중하며 우정어린 관계이며, 호스트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환대를 기꺼이 수용하고 기쁨과 풍성함을 나누는 초대를-이것이 샬롬의 통치이다- 우리 모두가 받고 있는 것이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의 이유이자 궁극 목적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이러한 새 창조의 작업을 하도록 기독 교사를 부르는 소명의 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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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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