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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4

나에게 물어보기를

(개인 사번역 및 시 묵상)

윌리엄 스탠포드 (William Stanford)

 

나에게 물어보게나

강물이 얼음이 된 그 어느 날

내가 저지른 실수들에 대해 나에게 물어보기를,

내가 행한 것이 내 인생이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천천히 내 생각에 들어왔고,

어떤 이들은 도와주려고 혹은 상처를 주려 했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나

그들의 가장 강한 사랑이나 증오가

어떤 차이를 가져왔는지

 

나는 그대가 말하는 것을 듣고자 하네.

그대와 내가 돌아서서 그리고

침묵하는 강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나니.

우리는 흐름이 저기 숨어 있음을 알고 있지,

그리고 거기에는 수마일 떨어진 데서 왔다가 가고 있음을

그 흐름이 우리 앞에서 정확히 고요함을 지키고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강물이 말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라네.


Ask Me

Some time when the river is ice ask me

mistakes I have made. Ask me whether

what I have done is my life. Others

have come in their slow way into

my thought, and some have tried to help

or to hurt: ask me what difference

their strongest love or hate has made.

 

I will listen to what you say.

You and I can turn and look

at the silent river and wait. We know

the current is there, hidden; and there

are comings and goings from miles away

that hold the stillness exactly before us.

What the river says, that is what I say.

  

내면의 묻는 자에게 경청하기

 

우리가 걷다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동료들이 대부분 그 길로 가고 있고,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다른 의심의 내색을 우리가 읽을 수 없을 때 나는 어떻게 길을 제대로 간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상고를 나와서 은행에 취직이 되고 3년 넘게 있다가 폐결핵으로 몇 개월 치유하고서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동료와 학교선배들은 말렸다.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정든 일상사와의 결별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모호함의 엄습 그리고 선배라는 인생을 먼저 산 사람들의 경험과 조언에 대해 내 선택이 잘못된 것 아니었을까하는 자기 개인의 주관성과 다수 타인들의 객관성의 사이에서의 머뭇거림. 무엇이 내가 진정으로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는가?

타인의 경험과 조언이 내가 길을 제대로 걸어간다는 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나 스승이 없었다. 외톨이로서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거의 우회의 길을 걷는 시간이 많이 걸린 길을 걷곤 하였다. 때로는 후회하면서, 때로는 힘들어하고, 옆의 동료가 없다는 사실에 쓰린 가슴을 움켜 쥐면서...

내가 제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다는 첫 번째 이정표로서 동료나 선배의 경험과 충고가 별 다른 효과가 없을 경우에는 나는 어떻게 나의 가는 길을 확인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이정표로서 내가 성취한 것들과 열정과 희망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길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러고 보면 자신이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간간이 중요한 선택의 지점들이 오던 길에 있었고 그것이 인생을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을 3개월 공부하여 들어간 것(809월의 시험공부시작), 문경새재 고사리마을 목회의 절망과 유학의 선택(91), LA 흑인폭동 기폭제인 로드니 킹 사건의 문제의식(92년 봄학기)과 국가부도사태(97)로 인한 학문의 방향전환, 졸업학기의 9.11사태의 충격과 퀘이커 평화운동과의 만남(2000), 국내에 들어와 유네스코관련 기관에서 굿바이와 지금의 NGO단체로의 전환(2005) 등등...

그러나 그 모든 선택 행위에는 약간의 성취감과 새로움을 맛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후회, 절망, 실수, 시간 낭비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비폭력에 대한 낯설음과 방향감각 상실에 대한 기억들이 더 많이 남는다.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기억이 후회, 절망, 실책, 낯설음, 그리고 방향감각의 것들이라면 그것은 내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표시 아닐까? 아니면 그 실책과 후회, 낯설음 자체가 뭔가 이상적인 것에 대한 지시(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또 다른 초월의 감각을 얻는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되어 나를 움직인 것일까?

시인의 글이 나에게 다가 오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행한 것이 내 인생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내가 행한 것이 나라는 정체성의 전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행한 것이 내 삶, 내 자신이라는 동일성 논리의 오해가 자신을 탈출구없는 감옥이나 계속적인 일상의 반복이라는 다람쥐쳇바퀴에 넣어둔다는 것에 대한 자각의 울림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행하고 있는 선택자의 결정에 따라 살기보다 내 내면의 질문자의 목소리를 의식하는 것이 행함이라는 실행모드로 사는 나의 사회관계적 정체성이라는 껍질을 깨고 전체성으로서의 삶의 감각에 자신을 열게 해 준다.

그 질문자의 목소리에 대한 경청이나 허용하기를 통해 적어도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내가 행하는 것이 내 삶, 내 정체성이라는 동일성의 고정화를 깨는 기회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지금 행하는 말, 행동, 정해진 생활패턴(routine)에 대해 왜 하는 지에 대한 선택행위에 대한 깨어있음은 가능해지게 된다.


 

전환점: 물이 얼음이 되기 vs. 흘러가는 물이 되기

삶의 수많은 상황과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미움과 배신감으로 내 기억들은 채워져 있고 바쁜 일상에 몰입된 상황이외에 잠시 벗어나 있을 때면 수시로 그 기억들은 타자와 일 혹은 상황을 구실로 하여 회상되고 그 속으로 생각과 에너지가 빠져들게 한다. 특히 부끄러운 실수들, 잘못내린 결정들, 그리고 아쉬운 이별과 등 돌림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갈수록 사라지고 없어지는 줄로 알았는데, 저 깊숙이에서 영혼의 심장이 아리고 생채기 나 있음을 확인하고는 섬뜩해지는 회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사라진 사람과 순간들이 사라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라는 물속에서 묻혀서 희석이 되어 해체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홀로의 시간에 다시 방문객으로 찾아와 흔들면서 시간을 정지시키는 얼음이 되어 나타날 때, 갑작스럽게 나는 공기의 무거운 압력을 받아 가슴이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 때 내 진심을 말해주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아니 내가 좀더 현명했더라면, 좀더 내용에 대해 알아차렸더라면 등등의 "만일 ~라면(what if I were~)"의 가정을 가지고 과거를 현재에서 살고, 미래를 현재에 살면서 흐름없는 얼음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잘못된 선택과 실수를 다시 기억함으로 앞으로 있을 만일의 동일한 상황에 대해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고통을 통해 가르치기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와 의식속에는 이토록 강하게 잘못에 대한 처벌의 의지교정하기의 유혹이 여러 겹으로 내면화되고, 관계속에서 사회화되고, 일상의 문화 속에 구조화되어 있다.

그 탈출구로서 시인은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른 공간에로의 이동, 다른 차원으로의 건너감이 아니라, 다시 살펴봄에서 온다. 새로운 육지가 아니라 새로운 관찰로의 이동인 셈이다. , 물이 얼음이 된 곳에서 뒤돌아서 그 얼음 밑에 보이지 않게 본연의 물이 흘러감을 본다는 것이다.

그 흐름은 수 멀리에서 온 것이고 또한 수멀리 가는 흐름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 이전에 오랜 의식의 흐름으로서 나에게 도착했고- 그래서 내 의지 이전에 발현된 것이고 -, 나를 통로로 다시 멀리 흘러가는 - 그래서 스스로의 자율적인 다른 선택들로 조화되어 나아가는 - 흐름이 된다.

내가 생각하고 행한 것이 나의 정체성, 삶의 실재로 고정시키는 얼음의 선택에 머물러 있지 않고, 침묵하고 기다림의 물을 보는 것을 통해 생각없는 침묵과 행함없는 기다림의 흐름들을 보게 될 때, 그것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자각하게 될 때 우리에겐 새로운 실재에 대한 감각이 일어나게 된다.


 

온전히 현존하기: 실재가 나에게 말 걸게 하기

 

마틴 하이덱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을 때 언어가 어떻게 존재를 규정하고 새로운 어휘가 어떻게 새로운 존재성을 개방하는 지 이해하게 된다. 이를 추적해 들어가면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실재를 구성하게 되는 지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생생하고 놀라운 경탄으로 그리고 풍성하게 하며 사는 삶으로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생각하기와 행하기속에 있는 의식과 거기서 나오는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존재성을 위축시키고 감옥/올무로 만드는지 시인의 눈으로 보는 관조가 필요하다.

강물이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말하고 있는 바라네.

온전히 현존하기(to be fully present)는 나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생각과 행위에 의해 실재가 측정되고 그 의지와 선택으로 실재를 보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재 -“강물이 말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 말을 걸도록 나를 허용하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 내 삶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 자연스럽게 되어질 때 생생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행함없는 적절한 행함이 발현되어진다.

그 흐름이 우리 앞에서 정확히 고요함을 지키고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삶의 흐름을 살되 새로운 중심(stillness)이 잡혀진다. 배가 출렁이는 파도속에서 흔들리지만 그 중심축을 통해 균형을 잡는 고요함의 중심을 통해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감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작동된다.

생각과 행동이 실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나 아닌 실재가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자신을 내어 놓을 때 숨어있는 온전한 전체성이 나를 포용하면서 삶의 깊이넓이의 공간을 허락하면서 나의 분별과 자유로운 선택을 강화한다. 나는 수 만년 멀리 걸어온 온전한 실재가 나라는 현상으로 지금 도착한 것(comings)으로 였고, 나라는 현상을 넘어 앞으로 수 만 수백 수억 년을 앞으로 진행될 온전한 실재로서 수많은 존재들과 어울릴 다가가는 것(goings)임을 자각할 때 자신의 에고를 넘는 더 큰 실재감각을 인식하게 된다.

실재가 말을 걸어오고 내가 그 목소리를 들을 때 (let your life speak), 나는 흐름속에서도 하나의 중심점(stillness)에 대한 감각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점을 통해 전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통해 두려움과 수치심의 렌즈가 아닌 알아차림과 새로운 가능성에로의 기여라는 생생함의 기적을 일상에서 살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시간 속에서 온전히 경험하며 살기 위해서는 실재가 자기에게 말을 걸도록 자신을 허용하고 초대하는 내면의 문을 열어야 가능하다. 아니, 실재가 말을 거는 것을 직관으로 알아차리고 거기에 순명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아직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강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폭력의 뿌리가 된다.

흐름위에서 온전히 현존하기, 여기에서 고요한 평화의 중심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시인의 메시지이다. 마치 이는 공초 오상순의 흐름위에 보금자리 친 영혼’-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이라는 마음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절망과 실수 그리고 잘못된 선택과 수치는 치유되고 날개를 펼친다. 흐름을 타면서 고요함을 맛보는 영혼의 힘이 품어져 나오게 된다. (2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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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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