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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영성, 그 의미와 내용

조회 수 3006 추천 수 0 2008.04.23 07:31:03



 

 


창조영성의 의미와 내용




학문과 신앙의 스승이었던 프랑스의 도미니크 사제이자 유럽의 해방신학의 할아버지이며 노동자 사제운동을 주도한 세누(M.D.Chenu)가 추구한 신비주의, 예언, 영성, 예술 및 사회적 정의를 결합하는 노력을 물려받은 매튜폭스는 창조영성이 신학이 근본주제이며, 여기에 근거하여 자연과학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그의 여러 저술들이 이 창조영성을 초점으로 하여, 전통에서 그 뿌리를 찾고, 토착원주민, 페미니즘, 현대과학으로부터 얻은 통찰을 기초로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로서 신학적 틀을 구축하고, 생활에서의 실천가능성과 적용능력을 실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매튜 폭스가 말하는 창조영성에 있어서  창조는 모든 공간과 시간을 말하며 그 핵심에 있어서는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존재는 관계에 관련되다. 그 관계라 함은 “관련됨, 교제함, 응답함, 내버려둠, 존재함이 나선형으로 움직이고, 춤추고, 쭈그러지고, 분출되고, 달려가고, 놀라는 행위”인 것이다.1) 며, “존재함(isness)이 하느님”(에크하르트)이기에 모든 창조는 신성(Godhead)의 자취가 된다. 따라서 모든 관계는 거룩하다. 창조는 신비가가 깨닫게 되는 내용이며, 경외로 충만하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살아있는 것으로서 영성은 “생명이 충만한 길, 영이 충만한 삶의 길”이다. 따라서 영성은 경험과 실천의 길이다. 



창조영성은 타락-구속의 영성이 4세기 어거스틴에 의해 시작된 것과는 달리, 히브리 성서의 야휘스트 전통에서 출발하여 지혜문학, 예수의 설교에서 발견되어진다. 이는 또한 중세 신비주의자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프란체스코, 힐데가르드, 메히틸드, 쿠자누스 등등-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창조영성은 우주와 함께 시작한 가장 오래된 전통이라고 매튜 폭스는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영성이 희랍의 영과 물질의 이분론적 도식에 근거하여 물질을 부정적으로 보고 쾌락을 제한하며 영적인 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였다면, 창조영성은 히브리의 야휘스트 기자의 “좋았다”는 선언에 따라, 생을 선물로 즐기고 나누며 감사하며 이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긍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타락-구속의 영성이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사유를 중심축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면 창조영성의 근간은 원복(original blessing)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창조영성이 회복하고 재건하는 역동적인 삶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2) 우선적으로, 새로운 우주창조 이야기로서 이는 인류와 자연을 하나의 가족으로 상호연결하는 경험이다. 여기 존재한다는 놀라움과 경외를 각성시킴으로 사소함, 산만함, 중독 등에 덜 종속시킨다. 모두의 기원(origin)은 거룩하며, 따라서 우리의 운명도 공통의 기원의 공유와 마찬가지로 함께 하며, 타자에 의존해 있고, 모두가 구원받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다음은 신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다. 새로운 창조이야기는 우리가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190억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몸의 조직, 한 계절당 6백만 나뭇잎을 생산하는 누릅나무에 대한 이해는 놀라움과 경외를 촉발시킨다. 셋째는 심층적인 종교적 일치운동(deep ecumenism)이다. 각 종교의 교의와 제도의 차이보다 공동의 지혜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며, 새로운 우주 이야기 속에 있는 심미적인 우주적 제의에로의 초대와 지구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공동의 노력을 이끌어 낸다.



또한, 창조이야기는 인간들을 새로운 역사적 비전의 공동창조자로 초대한다. 인간의 역사를 우주 역사 자체 내에 새롭게 정초시킴으로써 지금까지의 절대성을 누리던 인간의 이념, 제도, 국가, 종교에 대한 상대성을 보게 하며, 신비주의자, 예술인, 여성, 성적 소수인 등 목소리를 갖지 않은 자들을 역사의 주체로 초대한다. 특히 창조영성은 예술의 상업화와 세속화라는 소외로부터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예술가를 불러낸다. 자신의 창조성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힘이 방출되고 상상력의 도움으로 모든 사회의 지치고 병든 구조에 관건인 자아의 재생을 촉진시킨다.



이밖에도 창조영성은 인간사이의 정의만이 아니라 지구정의(geo-justice)를 주장하는 자비의 실천을 강화한다. 이는 정의를 위한 투쟁을 신비주의와 연계시킴으로 발현된다. 피조물이 신성의 살아있는 이미지로 나타남으로써 예배가 살아있게 되고, 예배는 과학, 신비주의, 예술이 함께 함으로써 깊은 치유와 힘을 북돋우게 된다. 창조영성이 영혼을 확대시키는 결과로 상상력이 증가하면서 삶에 대한 용기가 증가하고, 원죄가 아니라 원복(original blessing)의 관점에서 생을 선물로 받아들여 내면화된 억압과 자기 증오를 종식시켜 은총의 길을 연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허와 지루함으로부터 생겨난 마약과 알콜 중독을 극복시켜, 젊은이들로 하여금 다시 위대한 것에 고취되는 우주적 모험에 나서게 한다.



창조영성을 통해 역사를 넘어 이제 우주가 집으로 인식되고, 질서와 정의의 장소로 존중될 때, 이 새로운 집에서 사는 생활 규칙들이 있다.3) 첫째는 풍성히 거져줌(extravagance)이다. 자연은 다산적이고 태양의 에너지의 예처럼 자연은 거져준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손을 펴고 우주처럼 큰 영혼으로 타자에게 줄 수 있는 윤리적 요청을 일으킨다. 둘째는 상호연결성이다. 초신성의 폭발이 우리 몸의 세포와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 모두가 서로의 부분이어서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응답하게 되어있다. 셋째는 확장으로서 우주가 확장하고 있듯이, 사랑과 용기를 통한 가슴의 확대가 필요하다. 인종주의, 계급주의, 성차별주의, 종파주의 등의 차별은 가슴의 크기를 확대하는 데 실패함으로 일어난다. 다섯째는 다양성과 창조성이다. 우주는 다양성과 상이함을 축하하며, 우주적 상황 안에서 자비, 정의, 조화를 향한 창조성이 요구되어진다. 여섯째는 공동체성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공동체에서 살고 성장하며 협력적인 관계를 가진다. 생존은 적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동체에 적합한지를 배움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희생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주는 먹고 먹힘의 순환을 가지며, 이는 경외적인 행위이다. 우리가 축적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음식으로 살고, 먹음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희생이 요청된다.    



창조영성은 고전적인 기독교신앙의 3대 항목인 창조, 구속, 성화에 대해 우주론, 해방, 지혜의 입장에서 재해석한다. 우주는 창조자 하느님을 계시한다. 창조자는 계속 진행하는 행위를 통해 미와 힘으로 우주를 채우고 계신다. 우주론은 과학, 신비주의, 예술에 의해 이해되어지며, 하느님은 예술가 배후의 예술가이시다. 예언자로서 예수는 모든 이들을 예언자로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가르치신다. 예수의 우선적인 관심은 해방의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안의 신성은 하느님과의 공동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약자에 대해 자유를 선포하고 간섭하는 예언자적 삶을 수행한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다. 이는 우주적 영이자 녹색의 영, 새창조의 영, 그리고 생산, 포용, 춤의 페미니스트 영, 에로스와 파토스의 영이기도 하다. 이 영은 고통받는 모든 피조물을 통해 지혜에 대한 갈구를 한다. 하느님은 우주의 자기-조직적인 마음이며 분리되지 않는 일치를 유지한다. 그러나 지혜는 우주론과 해방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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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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