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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

                                                                                                                                  박성용

------ 목차 ------

머리말

1. 위기와 전환의 시대에 있어 신학의 자리매김

2. 복음의 핵심으로서 샬롬의 통치

3. 지배체제의 분별과 샬롬 통치의 변혁성

4. 평화의 제자직과 혁명적 복종

5. 오늘의 제자직의 새 영역으로서 평화구축

6. 평화구축을 위한 작은 시도의 사례: 평화훈련을 통한 관계와 시스템 구축

결론



평화의 제자직과 혁명적 복종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이야기는 “평화를 위한 복음”(행10:36)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의 사역은 평화의 선언과 성취이며 따라서 “그는 우리의 평화”(엡2:14)라고 고백할 수 있다. 그래서 원시그리스도공동체는 복음의 핵심인 "평화의 하나님“(롬 15:33, 16:20, 고전 14:33, 고후 13:11, 빌 4:9, 살전 5:23, 살후 3:16, 히 13:20)에 대한 신앙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샬롬의 통치로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는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이 따른다. 이 제자도에 대한 응답은 모방과 뒤따름 그리고 사명을 초래한다. 제자는 예수와 함께 있도록, 예수와 같은 권위를 갖도록, 예수가 하듯이 설교하고 치유하고 악의 세력과 대결하도록 촉구받는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둡니다(약3,18).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롬14,17).

하느님의 샬롬의 통치는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권능이 지금 작동하고 있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대안적인 생활방식과 사회형태에 대한 전망과 이에 대한 투신을 요청한다. 바울에 따르면 십자가는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칭의의 능력이자 의인의 고통이 악인들의 사악함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악의 세력의 실체를 밝혀내는 힘이 되고, 압제와 예속에서 건저냄을 받는 새로운 전환(유월절 사건)이 되며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간에 증오와 적대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자, 정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는 성화의 길을 열게 된다. 십자가에 대한 이러한 존재론적이고 윤리적이며 사회정치적 영역에서의 변혁과 투신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제자직에로의 초대와 연계되어 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27)

존 하워드 요더가 지적한 대로 이 구절의 핵심은 "종교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견고한 가족적 유대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의 한가운데서 예수가 지금 자발적 헌신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제의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를 넘어 샬롬의 통치에 투신하기 위해 기존 사회의 미움까지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이슈 파이팅 공동체이다. 여기서 문제는 제자가 됨으로 선택해야 할 부르심의 삶에 대한 성격에 있다. 곧 제자직은 십자가와 불가불 연계되어 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운명과의 일치이며 지배권력에 맞서서 탈지배와 비폭력을 수행하는 혁명전사의 운명에로의 부르심과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자발적 선택을 의미한다. 그 혁명적 성격은 권력과 힘에 대한 180도 전위(transposition)에 있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식탁에 앉은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 중에 어느 편이 더 높은 사람이냐? 높은 사람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와 있다(눅 22:25-27).

관계방식과 사회질서에 대해 예수가 세우려 했던 것은 기존의 리더십과는 사뭇 다른 대안의 리더십이다. 곧 이것은 "세상 왕의 통치 방식을 벗어나는 이 대안은 '영성'이 아니라 종노릇(servanthood)이다." 그 차이는 종교적 제의의 차이가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 참여하되 거기에 속하지 않는 질적인 삶의 차이이다. 낮은 자리에서 섬김은 모든 기존의 권력에 대한 불가피한 도전이 되고 새로운 사회적 전망의 실마리가 된다.

예수가 선포하신 것은 세상 가운데 살면서 그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새로운 삶의 태도였다. 곧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의 어휘나 심상은 성격상 '실존적'이거나 제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이었다. ...예수의 수난이 불가피했던 것은 정당한 자기 방어책을 포기하는 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종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종교?신화론적 세계관속에서 종교권력의 지배와 사회정치적 상황에 있어서 로마의 제국주의의 침탈이라는 이중적 억압 속에서 원시그리스도공동체는 필자의 이해로는 경이롭게도 윤리적 민감성에 있어 혁명적인 인식전환이 예수와 바울에게서 있어왔다. 그것은 바닥존재로 하여금 도덕적 주체로 세우고, 평화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케노시스(자기낮춤)의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 잃은 자/마지막 된 자/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한 사랑과 섬김에로의 자발적인 복종에 신앙실천의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의 사역을 영혼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당시 가장 어려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대상인 적대적 관계의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화해속에서 신적인 현존을 보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읍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왔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읍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읍니다. (고후 5: 17-19)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각 개인의 존재의 변화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화해라는 인식과 실질적인 사회정치적 관계의 변화를 말한다. 샬롬은 분열과 억압을 종식시키며 화해속에서 자유와 일치를 위한 강력한 실재(reality)가 된다. 이것은 지배체제의 중심 가치들에 대항하는 강력한 투쟁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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