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12

                                          -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

                                                                                                                                  박성용

------ 목차 ------

머리말

1. 위기와 전환의 시대에 있어 신학의 자리매김

2. 복음의 핵심으로서 샬롬의 통치

3. 지배체제의 분별과 샬롬 통치의 변혁성

4. 평화의 제자직과 혁명적 복종

5. 오늘의 제자직의 새 영역으로서 평화구축

6. 평화구축을 위한 작은 시도의 사례: 평화훈련을 통한 관계와 시스템 구축

결론





복음의 핵심으로서 샬롬의 통치

원시그리스도공동체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당시 유대교에 대한 변혁운동에서 자신의 길을 가게 된 것은 두 가지 근본적인 인식과 가치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유대교가 지닌 야훼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길로서 종교적 제의(율법, 정결법 등등)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었다. 두 번째는 당시 로마 제국이 약속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힘과 권력 그리고 무기와 전쟁에 의한 지배와 소수 지배 엘리트 집중의 부의 축적에 의한 평화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었다. 원시그리스도공동체의 이러한 종교적 제의를 통한 거룩의 길과 무기와 부의 통치로서의 로마의 평화에 대한 거부는 제 3의 길로서 이 지상에서 평화와 적극적 비폭력의 길로서 현실화된 "하나님의 샬롬"의 통치의 수행과 이에 대한 참여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종교적 제의를 통한 거룩의 길에 대한 유대교변혁운동으로서 그리고 무기와 권력에 의한 힘의 평화에 대한 대치로서 원시그리스도공동체는 그 상징적 표현으로서 종교적 제의의 중심인 시나고그(회당)대신에 민중의 마을집회인 에클레시아를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장소인 교회로, 로마의 10가지 형중 가장 잔인한 십자가형을 자신의 종교적 심볼로, 정복과 전쟁의 승리의 희소식으로서 유앙겔리온(good news)을 탈지배와 비폭력의 평화의 소식으로서의 복음으로 180도 전환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러한 전환을 통해 자신의 삶의 과제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즉 무엇에 대해 반대하며 투쟁하고 무엇을 건설해야 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최소한 예수를 대표로 하는 이들 그룹들은 종교의 울타리가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궁극경험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탈-지배와 비-폭력의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라는 소명을 위해 일어서며 이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확연해진 개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의 사건이 된다.

원시그리스도공동체가 선포한 에이레네(평화; 샬롬의 헬라어)의 선포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그리고 이제까지 전례가 없었던 세상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과 개입에 대한 이들 공동체의 핵심적인 확신을 진술하는 것이었고 이는 하나의 놀라움이자,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로 이해되어졌다. 그들의 에이레네는 당시 유대전통의 샬롬의 개념을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한 새로운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과거의 것을 잇되 여기에는 새로운 생활실천운동으로 갱신되어졌다.

새로운 현실이자 생활실천운동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기에 둔 "평화"는 원시그리스도 공동체안에서 우선적으로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서신과 서로의 인사와 작별을 할 때 이를 주로 사용하였고 파송에 있어서도 중심 메시지가 되었다. 이는 구약의 미가서 6:8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핵심 주제인 정의롭게 행하는 것,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 겸손되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에 대한 재 통찰과 새로운 의미부여로서 생활화되고 있던 진리의 경험이었다. 즉 우리의 삶이 임마누엘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다는 은총 안에 사는 신앙적 방향전환(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기), 타자에로의 윤리적 결단으로서 방향전환(따스하게 사랑하기) 그리고 탈지배의 구조적인 방향전환(정의롭게 행하기)라는 존재의 터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정치적 구조의 3중주의 균형과 통합에 대한 포괄적 전망으로서 샬롬의 통치의 현실화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예수와 바울의 이해를 통해 좀더 명료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샬롬의 통치'에 대한 선포와 이에 대한 실천과 연관되어 있다. 샬롬은 침투해 도래하고 있고("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라") 이는 세상이 주는 샬롬과 다르다(요14:27). 이는 지배와 위로부터의 강제, 칼과 권력 그리고 군사와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은총과 아래, 섬김과 비폭력 그리고 일치를 통해 구현되는 새로운 현실성이다. 비록 이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처럼 현재적 실현은 단지 징조와 작음으로 시작되지만 엄연한 현실이며 이에 응답하는 자들에게 능동적인 현실이 된다(마3,2; 4,23; 눅10,9;11,20, 17,21;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이 샬롬의 통치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가운데 역사하고 변혁시키며 세상 권력과 투쟁하는 '세력 force'로서 나타난다.

예수는 자신의 비유와 설교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섬김 (첫째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잃은 양을 위해 내가 왔다;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하러 왔다; 이 작은 이들에게 행한 것이 바로 나에게 행한 것이다)을 강조하고, 식탁교제를 통해 죄인들, 세리들과 같은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의지를 보여주셨고, 치유행위를 통해 몸의 안녕과 돌봄이라는 실천, 그리고 더 나아가 평화와 화해의 제자의 선택과 평화 공동체의 형성(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대야와 수건의 발씻기심)을 통해 샬롬의 3중 토대인, 존재론적이고, 관계적이며, 시스템적인 포괄적인 샬롬의 통치를 개시하고 확산한다.

그의 하나님 선포는 자신의 치유목회와 식탁교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되며 이에 뒤이어 샬롬의 통치를 위한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과 악의 세력과의 대결을 촉구한다(막3:13). 예수의 샬롬의 지배와 통치의 도래에 대한 선포와 이를 위한 제자들의 선택과 훈련은 샬롬의 통치로서 하나님 나라는 현 질서의 변화의 가능성을 확언하고 이미 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샬롬의 힘이 선물로 주어지고 이미 세상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생명을 풍성케 하고(요10:10), 잃은 자를 선택하는 대안적인 생활방식과 사회형태를 성취하기 위해 응답하고 투신하는 것을 요청한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감지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적 회개를 전제로 하며 이를 통해 재산, 사회적 지위, 권력, 종교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된다. 이는 산상수훈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신분들이 가질 가치들, 낮은 자리가 신성의 현존(구유에 누운 아기가 평화의 왕임을 아는 징표가 됨; 지극히 작은 이들에게 하는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최후 심판의 언급)이요 따라서 이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울의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평화의 선언과 그 성취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예수는 “우리의 평화”(엡2:14)이시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통해 소개되고, 자신의 유대전통을 갱신하게 된 근본 원동력으로서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롬 15:33, 16:20, 고전 14:33, 고후 13:11, 빌 4:9, 살전 5:23, 살후 3:16, 히 13:20)이시다. "평화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빈번한 언급은 사도바울이 ”평화“라는 단어 안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의 전체적 내용과 핵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에게 평화란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새로운 조건이자 새로운 현실성이었다(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근거한 하나님의 의와 연결되어 있다( 롬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바울에게 평화는 신학적 진술이 아닌 능력의 체험이자 활동의 중심 동기가 된다. '성령을 통해 누리는 정의, 평화, 기쁨'이라는 현실성으로서 샬롬의 통치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을 파고들며 영향을 미친다(고전7:15하 -“하나님은 화평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롬 12: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공동체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그들의 의지와 사역에로 전념함으로서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바울에게 특히 강조되는 근본적인 신앙행위는 평화는 화해의 현실과 화해로의 직무에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고후 5:17-19와 엡2:14-21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이 화해에로의 소명은 그의 사역의 정체성의 근본이자, 기독론과 제자직의 본질에 대한 이해로 일관성이 있게 연결되어 있다. 즉,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을 통해 우리와 화평을 이루셨고, 죄인이며 원수된 우리가 이 참혹한 현실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하나님과 평화가 다스리는 그 상황속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위한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읍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왔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읍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읍니다. (고후 5: 17-19)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엡 2:14-21)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고 화해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이 화해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가 말한 "새로운 인간" "새로운 피조물"은 존재적 측명이 아닌 윤리적 측면에서 화해와 연결되어 이해되어지며, 화해는 이 새로운 피조물의 활동의 내용이다. 이 화해사역을 통해 모두는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불리움을 받으며 이 화해의 목표는 누구도 제외됨 없이 서로 연결되어 '주님의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이루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읍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읍니다."(골1:19-20)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과 새로움은 소생의 경험이 아니라 화해의 경험 곧 평화의 경지로의 새로운 몸의 부여받음과 연계되어진다. 이 화해의 직무는 악과의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에서 보듯이 원수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그가 선을 행하도록 개입하며 궁극적으로 그가 자신 안에 있는 선의 가능성을 작동시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변혁시키도록 개입한다.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 평화구축을 위한 작은 시도의 사례-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6)- 메인즈 2011-05-05 2760
11 오늘의 제자직의 새 영역으로서 평화구축-기독교 평화구축신학을 향하여(5)- 메인즈 2011-05-05 2820
10 평화의 제자직과 혁명적 복종 -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4)- 메인즈 2011-05-05 2766
9 지배체제의 분별과 샬롬 통치의 변혁성-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3) 메인즈 2011-05-05 2793
» 복음의 핵심으로서 샬롬의 통치-기독교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2) 메인즈 2011-05-05 2823
7 구제역 살처분, 그리고 인간성과 문명의 위기 메인즈 2011-01-17 2919
6 간디의 진리실험을 다시 음미하기 메인즈 2010-10-04 2713
5 지속가능성의 신앙적 적용을 향하여 -기독교환경교육 의미와 그 과제 file 관리자 2009-07-12 2758
4 촛불정국과 권위에 대한 불복종-밀그람 실험의 예로 보는 교훈 file 관리자 2008-07-11 3143
3 촛불집회와 기독교인의 비폭력 평화행동 file 관리자 2008-07-09 2849
2 평화사상가-토마스머튼 "진정한 자아의 내적 성숙과 세상에 대한 책임은 함께 간다" file 관리자 2008-07-07 2940
1 창조영성과 그 목회 적용 가능성 모색 메인즈 2008-03-07 2845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