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12

구제역 살처분, 그리고 인간성과 문명의 위기

- 생명권 정치를 향하여-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남북평화연구소 소장

구제역 공포와 그 대응으로서 살처분과 생매장

작년 11월 말 안동에서 시작한 구제역의 확산으로 인해 만 2개월도 안된 1월 중순 현재 가축 170여만 마리가 살처분과 생매장이 이루어지고 조류독감으로도 그 두배 이상의 오리와 닭이 거의 대부분 생매장 되었다. 그 초기 대응으로서 정부는 발병원인은 규명도 못한 채, 발병지 500m 거리내의 가축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독약주사를 통한 살처분으로 대응하다 인원과 약품의 부족으로 생매장까지 해야 했다. 뒤늦게 백신을 투여하기로 했지만 이미 구제역은 정점을 찍으면서 전국적인 증상으로 번져갔고, 백신의 효과가 2주후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적절한 기회는 놓친 것으로 판단된다.

추운 날씨에 더욱 강세인 구제역은 현재 기상조건이 서로 맞물려 백신을 전국적으로 하더라도 그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고 조류독감은 더욱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 특히 여러 지역의 축산, 양돈, 양계업계의 초토화는 대만, 영국의 사례처럼 그 회복에는 꽤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은 단순히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손실비용에 대한 수치가 아니다. 이쪽 영역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구제역에 대한 발병원인과 그 대응, 국가의 정책결정, 구제역축산농가에 대한 보상 문제, 앞으로 재발에 대한 시스템 구축등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성찰과 토론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우리가 손 놓고 있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윤리적, 문명적 위기에 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증상들은 여러 곳에서 보도되고 있다. 곧 살처분 생매장에 참여한 공무원, 수의사들 그리고 가축 소유주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관여한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들에 대한 보도가 그것이다. 독약주사의 살처분의 경우 내장에서 기포가 형성되어 부풀러 터지기 때문에 반드시 배를 갈라 내장을 드러내어 묻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동원된 공무원, 수의사들의 정신적 외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자기를 죽이러 온 공무원에게 혀로 빨고, 갓 태어난 송아지가 구제역지역에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살해해야 하는 경우를 목격하고 참여해야 하는 당사자라면 어떤 심정이 들겠는 지는 충분한 상상이 된다.

특히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수의사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동물을 죽여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있으면서 정상적인 마음의 소유자라면 견딜 수 없는 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독약주사마저 없어서 생매장을 하는 경우에는 그 심각성이 엄청난 것이다. 문제는 정도를 떠나 이런 살처분 생매장을 직접 행하거나 보는 사람들의 정신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적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무감각성이 더욱 심각한 증세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의 영혼속에 본래 깃든 ‘측은지심’ 혹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보편적 연민의 감정의 상실은 그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감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기에 대한 거짓된 명명하기(naming)와 구제역의 윤리적 문제

몇 년 전 지구적으로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 세계보건기구의 한 책임자를 비롯한 몇 몇 해외 전문가들은 음모설을 제기한 바가 있었다. 그 이유는 실제 인간에 대한 피해가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백신회사가 이득을 챙기기 위해 그 위험성을 과대 광고하였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도 며칠 전에 EBS 지식채널에서는 “구제역 살처분의 진실”(1월 13일)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예로부터 구제역은
병든 가축에게 따뜻한 죽과 부드러운 건초를 먹이고
쓰라린 상처를 핥지 않도록 돌보면
보름 안에 완치되는 병이었다. -앤드류 니키포룩 (대혼란) 저자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는 의혹은 구제역에 대한 최대의 방지는 살처분을 통한 매장이냐 아니면 전 국토 사방에 마구 매립함으로 오는 앞으로의 다른 질병의 창궐에 대한 염려 대신에 고온의 불에 태워 없애는 것에 대한 효용성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진정한 문제의식은 검증안된 확률에 의한 공포와 혼란을 막기 위한 조처로서 동물이니까 발병이 일어난 같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감염의 가능성만을 기준으로 사방 500m이내의 가축이 도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질문과 이미 수백만 가축들의 살육에 대한 ‘동물들의 고통’에 대한 인간중심적 윤리성의 문제인 것이다.

8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권리에 대한 의식을 살펴보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국내법으로 아무리 합법적이어도 위기나 위험물에 대한 국제법의 우선과 국제법의 승리에 대한 많은 사례들, 전에는 전혀 생각 못한 소수자의 인권(예, 동성애자, 성전환자의 인권), 건축물에 있어서 조망권, 숲 조성의 권고 등의 생태적 권리 등은 그 작은 예들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에 대한 새로운 의식의 확산, 사라져 가는 동식물에 대한 보호와 이를 위한 적극적인 시민운동(예, Green Peace, Earth First 등)의 확산과 그에 대한 공감은 인간만이 아니라 고통을 똑같이 느끼는 동물에게까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주류화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의 문제로 더욱 급속하게 그리고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해 가는 이러한 생태적 동료들(eco-fellows)에 대한 배려와 책임에 대한 의식에 기초하여 지금 벌어지는 살처분, 생매장의 국가적 조치들은 사실상 2차 대전 중에 일어난 유태인들에 대한 “대학살(홀로코스트)”에 해당하는 “동물대학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런 대학살의 이면에는 인간의 죽음과 연결될 것이라는 확률적 공포로 인한 혼란 속에서 동물들의 인간을 위한 ‘수단적 존재 가치성’에 근거한 물건으로서 처분과 처리에 대한 습성적인 가치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테면 자연 상태의 동물을 일단 ‘가축’이라고 명명(naming)하면 그것은 동물원이나 집 혹은 산과 들에 있는 동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인간을 위한 고깃감을 제공하는 유사물건으로 전락하여 인간 마음대로 처분 가능한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 노동, 자본의 투입에 따른 최대의 이득을 창출하기 위한 차가운 분석적 이성에 의한 효용성의 법칙에 따라, 가장 좁은 장소에서 운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가장 빠른 속도로 살을 찌우고, 때로는 호텔에서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장 맛있게 하기 위해 어린 송아지를 어미소와 강제로 분리하여 거세시켜 일정시간 무게를 늘려 식탁에로까지 올려놓는 것이다. 이전에 한 두 마리 키우던 전통적 방식이 아닌 현재의 기계화되고 기업화된 가축사육의 방식이 지닌 비인도적인 성장환경과 더불어 가축들에 대한 이러한 고깃감으로서의 물건취급에 대한 대우는 결국 ‘대학살’이 아닌 위험물 제거에 대한 살처분과 생매장에 대한 사회적 관행을 정당화시킨다.

인간 생명의 보호라는 이름하에-그것은 오직 검증 안된 확률의 가능성만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인 살해가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의 윤리적 불편함을 덜어내고, 상대를 위험을 초래하는 ‘문제의 제공 자’로서 범주화하며, 그런 문제의 소지자에 대한 대응 방식은 치유와 배려가 아닌 처벌, 구금, 배제, 살해라는 강제적 방식을 통해 눈에서 사라지도록 처분해 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정리’하는 사회적 관습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관행은 4대강 사업을 ‘개발’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면서 강에 있는 다양한 생명들의 생존의 위기와 그 고통에 대한 무관심처럼, 거짓된 명명화(naming)은 실제의 피해 존재의 고통을 보는 창구를 막아버리는 데서도 드러난다. 위험한 자와 적을 살해처분하는 군대문화에 기초한 이러한 거짓된 명명화는 위험한 무기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 인격에 해당하는 이름으로 명명화하면서 (예, 스마트 미사일) 피해자의 고통을 상쇄시키는 것과 똑같다. 상대의 죽음과 고통의 현실은 차단하고 그 성능의 우수성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게 된다. 마찬 가지로 ‘살처분’이란 이름하에 벌어지는 현재의 구제역 관련된 대학살은 그 윤리적 부담감을 그 가공된 명명화로로 인해 축소시키고 그 행위를 의심없이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된 명명화는 삶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윤리적 민감성을 둔화시켜 일시적인 목표달성에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되어 전체 사회의 분별력과 윤리적 책임성을 둔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혹시 모를 감염의 가능성으로부터 인간의 보호라는 대의와 <차거운> 정당성은 수의사와 공무원들의 트라우마 호소를 사적인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앞으로의 이들의 경험을 앞으로의 새로운 관행의 필요성에 대한 기존 관행의 불합리성에 대한 전조(前兆)로 이해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생태영역에서 우리가 위험한 것을 버리는 안전한 쓰레기 집합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생태권에서 타자에게 하는 것은 반드시 나에게 일어난다는 법칙은 불변의 법칙이다. 중금속을 버리는 쓰레기장으로 삼은 바다는 거기에 사는 생명체에 응축되어 다시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게 된다.

생태적 위기의 대처로서 공감능력과 피드백 시스템의 형성

최근에 또 하나의 수난을 한반도에서 겪고 있는 대상은 독수리이다. 전 세계에서 일만 마리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독수리는 한반도에 약 이천 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몸짓의 흉측한 느낌과는 반대로 살아있는 동물은 일체 건들지 않고 죽은 시체만 먹는 독수리들이 기아와 농약중독으로 집단 폐사하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겨서 작은 동물들을 보기가 힘들어진 한반도에서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져 아사직전에 처해진 것이다.

루마니아 망명작가였던 비르질 게오르규는 신도 구원할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나 버렸다는 의미에서 쓴 그의 소설 <25시>에서 “토끼와 잠수함”이란 짧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처음 잠수함이 만들어져 전쟁에 사용될 때 잠수함에 토끼를 데리고 물밑잠행을 하였다고 한다. 승무원들은 계측기가 없어서 토끼의 눈을 보다가 특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이면 바로 이제는 수면위로 떠올라 산소를 공급받아야 할 순간임을 알았다는 이야기이다. 즉 토끼라는 약자의 고통스러운 변화는 그 사회가 산소를 공급받아야 할 징조를 보여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의 고통의 신호는 그 사회의 건강을 지켜야 할 조처를 취하도록 하는 신호라고 한다면 생태적 약자의 고통의 신호는 또한 한반도라는 생명권 사회에서도 똑같은 적용이 -변화에 대한 긴박한 필요의 순간이라는 자각이- 필요해진다.

생태적 약자는 바로 그 사회의 건강성을 바로 아는 계측기가 된다. 독수리가 아사하고, 가축들이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죽어나가는 이런 생태적 약자들의 고통의 신호들은 스마트폰이니 아이패드니 하는 가상현실에 대한 우리의 몰입으로부터 지금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눈뜸과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우리의 육식문화에 대한 제어장치 없는 탐욕과 가상현실에 대한 몰두는 현실세계의 생태동료들의 주검이 주는 가까운 미래에 있어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인간 안보, 사회 안보, 생태 안보의 위기에 대한 신호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류와 동물들이 죽어가면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사일개발과 뇌신경학 그리고 생태학에서 잘 쓰는 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부정적인 정보(negative input)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이들 진영에서는 과제를 수행하거나 건강과 평형계를 이루어 나간다. 예를 들면 미사일은 목표지점까지 가면서 오는 여러 이상증세나 이상정보를 프로그램속에 재 통합시켜 항로를 계속수정하며 목표를 향하게 되고, 뇌신경학이나 생태학에서는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 경험없던 정보나 물질에 대한 세포나 물질간의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게 된다. 따라서 건강은 각 세포나 각 생물 자체가 지닌 외부 침입 물질에 대한 방어능력과 상대를 박멸시키는 자체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세포와 다른 생물간의 활발한 소통능력과 개방능력을 통해 자체의 건강과 평형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사회, 국가의 건강력 혹은 안보(security)는 타자에게 일어나는 이상증세, 특히 약자에게 일어나는 이상증세로서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과 그 이상증세에 대한 활발한 피드백에 의해 구축된다. 만일 지금에 벌어지고 있는 생태적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또 다른 형태의 ‘질병인식불능증(anosognosia)'에 걸려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 사회는 이미 오염된 인식과 판단에 의한 죽음에로의 돌진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존재는 진실로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성을 통해 존재한다. 우리의 몸 자체가 또한 관계의 상징이다. 동식물, 물고기, 조류들의 말없는 죽음과 그들의 영원한 사라짐은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인간의 문명이란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그만큼 노출시키고, 우리의 공감능력의 부재와 피드백의 결여를 지닌 차가운 가슴이 결국은 스스로를 위험속에 넣는 부메랑의 효과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주목과 알아차림이 없다면 우린 인간의 마스크를 쓴 약탈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대안을 위한 생명권 정치를 향하여

몸의 건강은 가장 취약한 부분의 아픔이 전체의 아픔을 가져온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이에 대한 예방과 진단 그리고 필요시 수술과 회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회와 생태계도 또 하나의 더 큰 몸이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의 보호 그리고 그들의 쉽게 상처받을 수 있음(vulnerability)에 대한 주목은 실상 나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자신의 더 잘 살고, 더 오래 살고, 더 편안히 생활에 대한 집중적인 열망의 문화적 패턴은 오랬동안 함께 해온 그리고 우리보다 수 만년을 먼저 살아왔던 생태적 동료들이 굿바이한번 없이 그리고 주목한번 하지 않고 죽어 사라져 가는 것을 묵과하게 된다.

지구의 모든 원격 타자(distant Others)들이 이제는 서로의 위기가 상대에게 급속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영향을 주는 생태시대(eco-era)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과 공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우리가 점점 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6명만 거치면 전 세계 누구와도 접촉이 가능해진 사회적 네트워크의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생태계와의 물질적, 정서적 상호연관성과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에 대한 교육과 공감능력의 강화가 절실히 필요해지고 있다. 제레미 레프킨은 최근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생물권 교육, 특히 공감의 성숙도가 사회의 성숙도를 가름하며, 공감적 유대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배려와 자연에의 참여를 통해 생물권과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중요한 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제레미 레프킨이 제안하는 것은 바로 관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상호 의존적이고 호혜적으로 작동하는 정치로서의 생물권 정치(biosphere politics)이다. 그 내용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인류를 연결하고 다른 종에 대한 공감의 감수성을 확대하며 생명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예측이다. 한 예로 기후 변화에 대한 초기의 무관심, 부정, 마지못한 수긍이 인류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한 것이다. 생태적 타자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과 더불어 모두가 협력하여 생물권 전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공감의 문명(empathic civilization)'이 형성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미래학자의 권고는 이제 질병의 세계화속에 있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긴박하게 받아들여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번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심각한 상황은 이처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질병의 세계화와 기후대변화에 있어 단순히 육식문화의 절제, 가축농장의 인도적 환경으로의 변경, 질병위기에 대한 국가 예방 및 방역 시스템의 구축, 국제 공조의 네트워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책적 변화만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인식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의 고통을 진지하게 주목하고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성의 회복과 교육과 정치의 방향 전환이 절대적으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다. 이미 이 천 년대에 들어와서 기후와 질병의 이상증후군의 빈도수가 잦아들게 발생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 현실이 되어가는 마당에서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야 한다.

엘고어의 ‘불편한 진실’의 영화가 말해주듯이 생태계의 위기가 어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점차로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거기에 익숙해져서 살기위해 뛰쳐나올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예민한 윤리적 민감성을 질병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이지만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질병의 세계화가 단순한 흔치 않은 이상 증상이 아니라 이제 자주 발생될 현실이 되어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생활패턴, 그리고 사회적 구조의 갱생이 필요할 때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1.1.17.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 평화구축을 위한 작은 시도의 사례-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6)- 메인즈 2011-05-05 3267
11 오늘의 제자직의 새 영역으로서 평화구축-기독교 평화구축신학을 향하여(5)- 메인즈 2011-05-05 3342
10 평화의 제자직과 혁명적 복종 -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4)- 메인즈 2011-05-05 3297
9 지배체제의 분별과 샬롬 통치의 변혁성-기독교 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3) 메인즈 2011-05-05 3299
8 복음의 핵심으로서 샬롬의 통치-기독교평화구축 신학을 향하여(2) 메인즈 2011-05-05 3357
» 구제역 살처분, 그리고 인간성과 문명의 위기 메인즈 2011-01-17 3461
6 간디의 진리실험을 다시 음미하기 메인즈 2010-10-04 3262
5 지속가능성의 신앙적 적용을 향하여 -기독교환경교육 의미와 그 과제 file 관리자 2009-07-12 3277
4 촛불정국과 권위에 대한 불복종-밀그람 실험의 예로 보는 교훈 file 관리자 2008-07-11 3752
3 촛불집회와 기독교인의 비폭력 평화행동 file 관리자 2008-07-09 3383
2 평화사상가-토마스머튼 "진정한 자아의 내적 성숙과 세상에 대한 책임은 함께 간다" file 관리자 2008-07-07 3510
1 창조영성과 그 목회 적용 가능성 모색 메인즈 2008-03-07 3399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