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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과 권위에 대한 불복종-밀그람 실험의 예로 보는 교훈



전국공무원노조의 비협력 운동에 찬성하며


                              

지난 5월에 시작한 촛불집회정국이 정부와 보수언론, 보수단체들의 강력한 반격으로 새로운 대결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하는 종교인까지 구속하겠다는 강성발언이 쏟아져 나올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민중들은 정체된 현재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어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의 다양한 적극적 행동전략들이 제시되고 있고 종교계에서도 각 종단별 시국대책회의가 새롭게 태동되고 있다.



비폭력은 무저항의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간디가 말하듯이 ‘악에 대한 끈질긴 비협력적 저항’은 매우 중요한 정신운동이자 필요한 전략임을 나는 믿는다. 특히 전국공무원노조가 공공의 영역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불합리한 행정 지시등에 대하여 ‘시민안보’의 차원에서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거부하기 위해 투표를 하려다가 경찰력에 의해 어제(10일) 강제 해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한다.


비록 이들의 노력이 경찰력에 의해 무산되기는 했어도 광화문에서 촛불 광장을 지켜내서 촛불을 이어가는 일 못지않게, 실천과제로서 악에 대한 비협력의 적극적인 행동들이 여러 계층과 부문에서-동우회, 동아리, 시민사회, 종교계에서- 일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명박정부는 촛불시민들이 더 이상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 철심장,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폭력 평화행동에 있어서 가장 분별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권위에 대한 태도이다.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은 국민이 뽑은 최고 공직자들-정부인사들-의 말에 대해 의심하고 저항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 권위에 대한 체질적인 순응과 공적 지위에 있는 자들의 지식과의 공모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다양한 저항운동들을 지지하면서 ‘권위에 대한 자발적 순응’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밀그람 실험’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밀그람 실험


사회심리학에 대한 유명한 과학실험으로서 밀그람 실험(The Milgram Experiment)은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람의 논문 “복종의 행태연구”에서 최초로 묘사되고, 이어 1963년 “비정상과 사회심리학 잡지”에 출판되었고 후에 1974년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적 견해”라는 책에서 정리 요약되었다. 그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양심과 갈등을 일으키는 어떤 것을 행하도록 참여자를 지시하는 당국에 복종하려는 참여자의 의욕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그 후 수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이 이 실험을 적용하여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엉터리 실험을 위해 참여자들을 모집한다.  예를 들면 예일대학에 있어서 한 연구는 그 것의 구실로서 “기억에 대한 연구”를 사용하였다. 예일대의 실험은 응답하는 자들에게 시간당 5천원을 지불하겠다고 광고되어졌다. 참여자들은 20대에서 50대사이의 남성들이었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배제하였다. (후에 그 실험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모든 나이들, 인종들, 직업들 그리고 젠더의 인구통계를 실험하였다)



실험의 내용 - 전기 충격 단추의 비밀


대기실에서 힌까운의 실험자는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전문가인지를 상대가 암시적으로 느끼도록 하며, 참여자들은 동료 참여자라고 소개받은 누군가를 만난다. 심리학적인 말투로 이 사람은 협력자로 불러진다. 실험자는 참가자와 협력자에게 시험은 배움의 행동에 대한 징계의 효과에 대해 실험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참가자는 ‘선생’이 되고 그 협력자에게 여러 질문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은 의사소통 장치에 의해 추진되게 된다.


그 장치는 컴퓨터화된 커다른 통제 판으로 구성되고 점점 강도가 센 전력으로 연결된 일련의 단추들이 있으며  일련의 단추 거의 끝에는 “이 점을 넘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단추가 있다. 실험자는 학습자(동료 참여자로 소개받은 자)를 전기의자에 매고 교사(참여자)는 통제판으로 가게 한다. 학습자가 질문에 부정확하게 대답하면 그는 징벌로서 전기충격을 받게 된다. 각각의 부정확한 대답은 점차 높은 충격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학습자는 아무런 전기 충격을 받지 않으며 단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연극하며 신음소리를 내도록 되어있다. 각 단추는 적절한 다른 소리를 내게 되어있다.) 실험자는 방에서 교사와 함께 있어서 이를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교사는 자신의 마이크로폰에로 돌아가서 질문과 대답을 시작한다.


실험을 시작하면서 의자에 앉은 동료학습자는 잘못된 질문을 받고 교사는 적절한 충격을 보낸다. 그러나 전기량이 높아지면서 학습자는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는 쇼크가 전달될 때마다 고통으로 소리 지르게 된다. 질문과 질문사이에 그는 소란스럽게 불평한다: 쇼크들이 고통스럽고 그는 발작을 시작하게 되고 지금 당장 그 실험이 끝나기를 원한다. 더 나쁜 것은, 그는 가슴에 문제가 있어서 너무 많은 전기량은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실험을 통해 교사는 학습자가 풀어주기를 간청한다 하더라도 그를 풀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과학적 권위의 상징인 흰 까운을 입고 있는 실험자가 교사와 방에 함께 있어서 교사(참여자)가 그 실험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넘어가지 마시오”에서(일반적으로 300 볼트 단추의 지점을 취함) 학습자는 두려울 정도의 비명을 지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어떤 질문도 대답하지 않게 된다(거기서 실험자가 정확하지 않은 대답으로 해석하고 더 심한 쇼크를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의 침묵은, 그의 심장상태와 노골적인 “이 지점을 넘어서지 마시오”의 표지를 인식하는 것과 결합되어, 명백한 결론으로 이끌어지게 된다. 일단 참여자가 단추들을 다 쓰게 되면 그 실험은 끝난다.



어떤 결과들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실험이 실행되기 전에, 미그람은 동료 심리학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 투표하게 하였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오직 소수의 새디스트들만이 최고 전기량 단추를 누룰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실험에서 참여자의  65%가 그 실험의 최종인 450볼트 쇼크를 받았다. 어떤 참여자도 300볼트 수준이전에 멈추지 않았다. 그 실험은 전 세계의 다른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다른 참여 인구통계를 사용해서 되풀이 되었지만 항상 비슷한 결과들을 얻었다. 편차가 있는 것은 실험 시작에서의 변수들에 의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지시들이 전화로 주어질 때에 반대해서 실험자가 물리적으로 나타나 있을 때 참여자들이 훨씬 더 복종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메릴랜드대학의 토마스 블라스는 (3/4월 2002) Psychology Today 잡지에서 쓰기를, 그는 그때이후로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행한 그 실험의 반복에 대한 결과들을 모았는데, 그가 발견한 것은  치명적인 전기량을 과하는 데 준비된 참여자들의 비율이,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놀랍게도 61%에서 66%대에서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모든 결과는 1999년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되었다.



미그람 실험이후의 반응


이 실험은 그 자체의 윤리에 대한 문제 제시가 많았다. 왜냐하면 참여자들이 겪는 극도의 감정적 스트레스 때문이었다(이 스트레스는 그들 자신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 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인간 심리학에 매우 중대한 가치있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참여자들 85%는 이 실험에 참여함으로 그 과도한 스트레스 경험에도 많은 감사를 보내왔다.


그들이 보낸 감사의 내용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된 것을 행하고 있더라도 어째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는데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온순하게 권위에 복종하라는 암시를 받게 되면 실제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위배하여 너무나 쉽사리 권위에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충격과 교훈이 그것이었다.


밀그람은 1974년 “복종의 위험”이란 논문에서 이 실험에 대해 정리하였다. 이 실험은 어떻게 대다수 사람들은 한 과학자자 실험을 위해 단순히 명령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 그토록 높은 비율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완고한 권력은 타인들을 해치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참여자들의 강한 도덕적 의무들의 안전장치를 풀어서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권력은 더 큰 승리를 거둔다. 그것은 참여자들이 권위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따라가기 때문에 나온다는 것이 그 연구의 결과라는 것이다.




                                촛불이 밝히는 악에 대한 능동적 비협조


어제(10일)에 광화문 감리교빌딩앞 희망광장에서 감리교시국대책회의가 발족되면서 한 인사가 농담삼아 말하였다. “이제 교회는 모두 여러 교단이야기 할 것 없이 둘로 갈라 모이자, 촛불집회지지 교회인가 아닌가로.” 이미 촛불집회가 있는 곳이 교회라는 신학적 고백이 나오면서 “촛불교회” 깃발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악에 대한 비협력과 창조적인 대안 모색의 한 예가 여기에 있다. 정계, 검찰, 언론의 보수 세력화와 더불어 보수기독교 단체들이 9000명의 촛불집회반대 명단을 발표할 정도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단순한 광우병 소고기문제로 정국을 푸는 단계라는 ‘루비콘 강’은 이미 넘어선 것이다. 새로운 사회 질서의 도래를 위한 치열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필자는 악에 대한 비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이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전략이라고 믿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처럼 자신의 삶과 직장에 있어서 비협조에 대한 양심선언과 공동의 거부운동이 필요할 때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요청한다:


-아무런 반대소리도 들리지 않는 검찰내부에서도 조중동반대 네티즌을 잡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양심적인 검찰공무원들이 양심고백을 하고 악에 대한 비협조운동에 참여 해 주십시오.


-젼경들은 외부의 적에 대한 국가방위를 위해 있는 것이지 경찰을 위한 치안유지 하수인으로 자기 형제자매들, 부모들을 막으려고 있는 게 아니다. 최전선으로 전역시켜달라고 집단적으로 청원하십시오.


-공무원으로서 그대가 만일 기독교인이라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해 사셨던 예수의 삶을 따라, 자신의 직장에서 적극적인 악에 대한 비협력 운동을 동료들과 함께 실천하십시오.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 하기 쉽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200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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