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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아의 내적 성숙과 세상에 대한 책임은 함께 간다

-격랑의 세기에서 행동하는 관상가 토마스 머튼 -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공동대표


(법무사저널 7/8월호 기고)



 20세기 최고의 서구 기독교의 영성가로 알려진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두 번의 세계대전이 지닌 파괴와 불안의 격랑 속에서 가톨릭 영성가로서 1948년 베스트셀러 자서전 『칠층산』이후 자유, 양심, 침묵, 명상 등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써서 수많은 세계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실상 그는 5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력과 전쟁에 대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문제와 비폭력적인 평화건설에 대한 글로 인해 기존의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사회문제에서의 그의 발언은 진정한 삶에 대한 그의 영적 여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진정한 실재 추구에로의 삶의 여정-“당신은 성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차 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시작된 머튼의 초기 생애는 신병모집 포스터, 군가, 구호들로 둘러싸인 스페인 국경근처 프랑스 피레네 지역 피난촌인 프라데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반전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6세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그리고 수채화가인 아버지도 뇌종양으로 1931년에 사망했다. 아버지의 질병과 죽음 그리고 전쟁 등의 현실이 아직 어린 그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 자신의 비정한 시대, 독가스와 원자탄 시대의 참다운 시민이 되었다. 묵시록의 문지방에 사는 사람처럼”(『칠층산』). 당시의 사회적 현상인 폭력과 군사적 구호, 상실감, 외로움과 무의미로 인해 그의 캠브리지에서의 대학 생활은 무절제의 생활로 이어져서 그는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고 술 파티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의식 참여로 제적을 당하는 상태까지 이어졌다. 그에 따르면 이 당시는 "맥주와 당혹과 슬픔속에 보낸 시기“로서 쾌락을 추구하면서 아무런 가망성이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머튼이 회복되게 된 계기는 1933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늦게나마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는 플리처상 수상자 마크 반 도렌을 만나, 성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에 점화를 받아 영적 독서와 종교적 탐구의 길로 들어서게 됨으로서 기회를 얻는다. 그는 동양종교와 서양의 영적 저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는 그가 에띠엔느 질송의 『중세철학의 정신』을 만나 가톨릭 신앙의 권위와 성실성을 이해하고, 알도스 헉슬리의 『목적과 수단』을 통해 “왜곡되고 불의한 사회로 미쳐 들어간 자들의 자학과 피학대 음란증을 대체하는” 금욕과 덕성의 수련에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서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으며, 1938년 대학원 논문으로 반체제론적 시인이자 신비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위선적이며 탐욕스런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시인의 태도에 대해 강열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1940년 4월 쿠바로 부활절 여행하던 중 아바나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미사 봉헌 중에 하나님이 현존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앞, 나와 제단 사이 성당 중심 어딘가 확실치 않은 곳에 더없이 완전무결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게 그러나 바로 내 눈 앞에 혹은 감각을 초월한 무엇인가 나의 인식에 드러나는 그분의 모든 정수...셀 수 없이 많은 성인들의 빛나는 얼굴로 둘러싸여 계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곳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께 자신이 사제가 되어 당신께 소명을 다하겠노라고 서원을 하게 된다. 



불의와 전쟁에 대한 저항의 길로서 수행-관상은 사랑의 존재를 형성한다.

   

40년 여름이 되자 유럽의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하였다. 워싱톤에서는 곧 통과될 의무병역법이 논의되고 있었다. 국가와 세계가 산산히 부서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머튼은 유물론적이고 일시적인 유행, 욕정과 잔인함 그리고 거만하고 경박함이 팽배하는 사회의 흐름과는 달리 국가주의가 의존하고 있는 폭력과 살인에 대항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불의와 전쟁에 대한 그의 대답은 성덕을 쌓는 것이었다. “오직 하나의 방어는 복음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인이 되는 데 있다.” 머튼은 징집신체검사 통지서에 대한 응답대신에 1941년 12월 9일 미국 국회가 일본에 전쟁 포고를 한 다음날 머튼은 자신의 은행계좌를 없애고 다음날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게 된다. 그의 수도원 선택은 병사로서 서명한 것과 동일한 이유로 새로운 전선(평화의 구축)에 자신의 생애를 바치려고 수도원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머튼이 대담히 세상이 아니라 수도원을 역사의 중심으로 놓은 것은 세상이 지닌 조직적 속임수와 공허한 약속에서 잉태되는 비극과 무질서의 힘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이 감추고 있는 절망, 냉소, 폭력, 갈등, 자가당착, 모호함, 공포, 의심, 신조, 우상, 슬로건 등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크기, 부피, 질, 속도, 숫자, 가격, 힘, 가속 따위의 기술적 열광을 통해 ‘무’를 향한 고통을 증식시키고, 과다한 정보로 감수성을 차단하고, 상업적 우상에 시간과 인간의 에너지를 낭비시키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보편적 절망의 현상이며 이는 또한 영적인 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폭력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정신병적 집착과 망상에 따른 전체 구조의 문제이다(『신앙과 폭력』). 실제로 우리는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파괴적인 악마에 붙드려 있는 것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병이 모든 정치적 사회적 삶을 집단적으로 병들게 한다.


이런 현실 진단을 통해 머튼은 자신의 삶의 과업을 유행의 시류를 타는 것이 아니라 “불안의 밑바닥보다 더 깊이 놓인 침묵과 모호함 그리고 확실함 속에서, 실존적인 신앙의 깊이를 탐색”하는 고독한 탐험가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현대 지성의 엄밀함과 기독교 영성전통의 진실성을 결합하여 외면적·사회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의 틈새를 좁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먼저 거짓 자아의 허구적 정체성을 파헤치고 사물을 조작하는 데 집중하여, 힘과 만족의 소유물을 얻는 절망적인 투쟁에 있는 집단적 환영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참된 ‘세상’을 발견하는 길은 바로 자신의 고유한 내적 토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참 자아는 가장 내부에 있는  내밀한 침묵과 겸손을 통해 살아지는 생명이다.


참 자아 안에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이 있게 되며, 존재의 깊이와 행위의 질이 증가하면서 양심의 순결이 강화된다. 온전한 존재감이 회복되는 것이다(『양심, 자유 그리고 침묵』). 관상의 삶은 시간과 사건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영혼의 중심에 거주하는 생명이신 초월적인 임과 사랑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참 자아의 비밀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속에 있다. 관상을 통해 영혼속으로 부어주는 빛의 순수함과 밝음이 새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참된 나는 “자유로 사랑하는 사랑”이 된다.


머튼은 이렇게 현대 세계의 환상에 저항함에 있어서 겸손, 사랑, 자비를 심화시키는 종교적 원리와 실천이 ‘참 자아’를 발견해주는 변혁적 힘을 지닌다고 증언한다. 관상은 내면적인 추상적 진리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서 인지되는 신의 사랑에 근거하여 찌그러진 진정성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실재한다.”(『양심, 자유 그리고 침묵』) 세상에 대한 애착, 욕망으로부터 해방됨으로서 사물들은 스스로 꼴을 갖추게 되며, 조화와 통일이라는 기쁨을 회복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속에는 보이지 않는 풍요, 희미한 빛, 유순한 무명, 숨겨진 전체가 있다. 이 신비로운 조화와 통일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인 지혜이고 창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이다. 모든 사물에는 무진장한 달콤함과 순수함, 곧 행동과 기쁨의 원천인 침묵이 있다.”(『토마스 머튼의 시 선집』)


머튼에게 있어서 관상은 인간의 지적, 영성적 삶의 최고 상태이다. 그것은 생명과 존재의 거룩함에 대하여 저절로 우러나오는 영적인 놀라움이자, 존재에 대한 순수한 충만된 각성이다. 자유와 침묵의 공간을 통해 새로운 개화(開花)의 체험을 가져온다. 분열된 체험 주체는 사라지고 ‘무한한 자유’(신)와 구별됨이 없는 사랑과 일치된 사랑으로 존재하게 된다.



기독교인의 중대한 소명으로서 사회적 책임- 관상은 행동을 부른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48년 머튼은 수도원장의 지시로 트라피스트 관상가로 변화된 자신의 영적 자서전인 『칠층산』을 출간하여 당시의 유물론적 갈망과 도덕적 와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내적 자유에 대한 영성가로 알려진 그가 50년대로 들어오면서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가공할 파괴 속으로 점차 몰입되어가고 있는 세계 상황이었다. 지금은 ‘하느님의 종’으로 가톨릭에서 존경을 받고 성인으로 즉위하려는 과정에 있지만 당시의 전쟁옹호자들에게는 ‘빨갱이수녀’로 통한 가톨릭 평화운동가 도로시 데이의 ‘가톨릭 노동자’가 하는 빈민구호와 반전 및 시민 방위훈련 거부운동, 그리고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활동과 마하트마 간디의 활동에 강한 감명을 받았다. 



머튼의 생애의 놀라운 변화는 수도원 생활 후반기에 세상과 맺었던 관계이다. 그는 수도자의 고독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문제와 사건에 몰입하였다. 이미 1951년 6월에 수도자 생활이 10년째 되는 그 해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칠층산은 내가 들어 보지조차 못한 사람의 작품이다.” 1958년 그동안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환상이 깨어져 나감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철저한 고립이라는 가상적 세계로부터 깨어남이었다. “진짜 고독은 현존하지 않음과 현존해 있음, 참여하지 않음과 투신, 숨어 있음과 환대, 사라짐과 도착이 공존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쌍방은 새가 두 날개를 필요로 하듯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가 세상에로의 적극적 투신을 할 수 있었던 다른 신비 체험은 1958년 2월과 3월에 이른바 ‘프라버브’(세상에 존재하는 거룩한 지혜)에 대한 꿈이었다. 3월 18일 루이스 빌의 거리를 걷다가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프라버브로 보이며 모두에게서 뛰어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보게 된다. “인류의 한 일원! 그런 평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 돌연히 우주적인 도박에서...이길 수 있는 티켓을 쥐고 있다는 소식처럼 보였다. 낯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서로 내내 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전쟁도 증오도 그리고 잔혹함과 탐욕도 없을 텐데...하늘나라로 가는 문은 곳곳에 있다.”(『지혜로운 삶』)


베트남전 개입과 쿠바 미사일 문제로 인한 소련과의 핵위기 등으로 인한 세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그는 1961년 10월 ‘가톨릭 노동자’지에 <전쟁의 뿌리로서 두려움>이란 글을 실었다. 그 요지는 기독교 신자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전쟁을 반대하는 투쟁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기도와 희생은 전쟁을 반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영적 무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10월 23일의 일기에 따르면 이제 그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철저한 비타협적인 행동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확인한다: "어쩌면 나의 영성생활이 전환점에 와 있는 것 같다. ..익히 알려진 결정적인 전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이 전투에서 부디 저를 보호하소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신학이다. 이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혁명과 저항의 신학으로서 사랑의 근본은 “형제를 살인적인 절망으로 몰아넣는 악에 대한 거절이다.” 신의 초월적 사랑에 근거하여 기독교인은 자신의 망상, 공격성, 이기적 야망, 목적에 대한 수단의 합리화, 교조주의적 선입견과 저항하며 힘이 아닌 진실을 드러내는 비폭력 삶을 실천한다(『격변하는 세상에서의 관상』.사회에 대한 머튼의 발언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수도원 장상과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가톨릭교회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황 요한23세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희망을 갖고 자신의 글을 보내 63년 4월에 나온 교황회칙 “지상의 평화(파쳄 인 떼리스)”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교황이 사용한 전례의복과 영대를 수여받을 만큼 요한 23세로부터 특별한 신뢰를 받게 된다.


머튼은 말기의 글(『머튼의 평화학』, 『비폭력 대안』)을 통해 적을 폭탄과 유혈 혹은 굴욕으로가 아니라 공동선을 인식시킴으로서 협조자로 바꾸는 평화의 실천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로마지배의 평화”와는 달리 인간을 성스럽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에 일치시키며, 전쟁과 불의의 세속제국에 맞서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전투는 비폭력적이고 영적이었으며 전쟁에서 싸우기보다 자기 생명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기독교는 도덕성, 정체성, 자비도 없는 퇴행한 상태여서 영성의 종교가 파괴와 자멸을 향한 전체주의적 전쟁과 기계의 우상숭배 앞에 무릎을 꿇은 상황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신의 회복을 촉구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연민과 책임과 헌신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고통과 불의와 오류와 허위에 무관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진리를 발언해야 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양심상의 엄중한 의무가 있고 그 힘은 내적 쇄신으로부터 솟아나온다고 그는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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