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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5
 <기독교생명평화아카데미 강의자료>
일시: 4월 11일(화)
장소: 아현감리교회


 
마가복음내  공간구조에 얽힌 갈등과 평화

   -지배와 억압에 대응하는 변혁의 길을 향하여-


서 론:

-시원적 사건으로서 출애굽 사건:  이집트 (지배와 억압/신음과 고역의 체제)로부터 가나안(평등과 돌봄/정의와 사랑의 체제)를 향하는 탈출 공동체의 길 떠남 이야기(이집트/가나안)

이는 하느님이 누구시며, 어디에서 자신을 나타내시며,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에 대한 방향타.

-새로운 출발로서의 마가의 증언의 중요성: 출애굽사건의 재 표현으로서 예수의 말씀과 생, 그리고 대안 공동체의 정체와 지향성의 제시/ 공관복음의 최초의 증언으로서의 중요성

(갈릴리/예루살렘; 황야, 회당/집, 길가, 호숫가,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

-길 떠남의 철저한 증언자로서 마가 (새로운 이집트로서 로마제국->평등과 돌봄의 공동체)

-66-70년 로마 유대간 전쟁에 의한 압력과 고통가운데 글을 쓰면서 마가는 철저한 제자도를 선언함. 이이야기는 오늘날 청자로 하여금 “방향을 돌리고 turn around" "명확히 보도록 see clearly"(8:25) 철저한 결단을 요청한다.


* 공간(space)의 의미: 지배 혹은 변혁의 체제를 가시화하는 전형(archetype)

       1)공간은 안과 보임, 그리고 바깥과 안보임을 결정하는 곳

2) 공간은 힘의 장소 (특권의 중심 the center/차별의 주변 the margin), 지배와 억압은 공간의 독점, 공간의 중심(center)에 자리 잡음으로 이해된다.

3) 공간은 자아와 타자, 우리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곳, 자기 정체성은 공간의 규모와 제한에 의존

4) 공간은 관계의 문제를 제시함- “넘어갈 수 있는가?”

5) 마가의 공간은 거룩함에 대한 새로운 의미규정을 연다(이 세상적, 세속의 관점)

6) 평화, 정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안보이게 하고, 차별시키며, 배타적이게 만드는 공간의 재 정위(re-transposition)와 공간의 나눔을 통해 취득됨

7) 구원 혹은 복지는 타자(Others)를 포함하는 (내적, 외적)공간의 통전성(integrity of space)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8) 공간의 문제는 신적 현존과 인간성이 명사(noun)이 아니라 동사(verb)이며, 부름과 응답의 상호관계성(inter-being)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문제를 제시함


본 론  

I. 공간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노출과 예수 제자됨의 본질


황무지/광야(wilderness): 새로운 시작/출발의 근원지<>인간삶의 주변(the margin)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또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라’.(1,1-3)


-없고 비어있는 곳; 인간의 욕망으로 이루하는 인위성이 배제된 곳; 원초적이며 그래서 갱생이 준비되는 곳; 길이 시작되는 곳

-광야/빈들/황무지는 배타성에 의해 제한된 장소,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영과 육간의 장소.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힘의 중심밖에 위치. 변방/변두리임.  여기서 예언적 말씀이 가능함.

시작-창세기 1:1을 반영  우주적 사건에서 윤리적 사건으로. 창조이야기

이사야는 길을 재개(re-opening)함이 촉발을 그리고 이는 출애굽 23:20, “나는 길에서 너를 이끌 메신저를 너앞에 보낼 것이다”와 연계됨. 마가에게 이 길은 제자도에서 구현됨. 윤리적 차원.

-외딴 곳: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곳


♧가난한 이의 허름한 집

-하나님의 힘/통치가 드러나는 곳(병자치유 1,29-34; 중풍병자 치유2:1-12,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딸 치유 7,24-30)

-예수는 환자의 처지를 강조함.  병이나 불구의 상태= 버림받음, 억압, 비참

-나병환자 시몬의 집과 예수의 장례준비로서 향유부음(14,3-9)

-이름모를 이층방에서 최후의 만찬(14,12-26)


회당 <그리스도 사역을 적대시하는 중심; “들어갔다가...나오심”=머물지 않으심>

회당-악령의 고함소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1,21-28)

    오그라든 손 고침으로 논쟁이 일어남: “안식일에 사람을 고침으로 완고해진 사람들”의       적대감을 받게 됨 (“바리새파 사람들은...헤로데 당원을 만나 예수를 없애 버릴 방도를       모의하였다.” 3,8)


성전(예루살렘)- 특권층의 중심지

-예수의 분노와 탁자를 엎으심(“강도의 소굴” ->“기도하는 집”; 대사제,율법학자의 예수살해 모의 11,15-19)

-성전파괴의 예언(“성전을 떠나 나오실 때에...저 웅장한 건물이...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13,1-2)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를 꾸밈 (14,1-2)

-예수를 배반하기 위해 가롯유다가 대사제들을 찾아감(14,10-11)

-대사제들/원로들/빌라도의 예수심문과 신성모독자로의 판결(14,53-65, 15,1-15)

-예수가 진리를 만나는 장소는 이같은 성전은 아니며 하느님께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다.

성전건물이 아니라 사람안에 있는 성전임.


성소 밖/주변으로서의 게세마니/해골산(14,32-50)

-수난의 장소이자 자기 헌신의 장소

-산위의 변모보다 바로 고난과 죽음을 통해 예수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고 첫 신앙 증언자들은 고백함

-제자들의 잠들음과 버리고 도망감:“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14,50) (제자들의 몰이해->잠들음->버리고 도망감)

‘버리고 달아나버리다’(aphentes auton) -그를 “다라가다‘(akolouthein)과 반대 의미임


호숫가(경계의 끝/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혁)

-제자들을 부르심(어부 4사람1:16-20; 세리 레위2,13-17)

-군중을 가르침, 치유함(3,7-12)

-하늘나라 비유를 가르침(씨뿌리는 자, 등불, 자라나는 씨, 겨자씨 4,1-34)

-군중을 먹이심

      기적은 우리의 이기적인 안일무사와 사리사욕이 멈춘 곳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는 돈이 결코 행동과 희망의 동기도 목적도 되지 못함을 말해줌.

-가난한 사람들에게 놀랄만한 음식을 마련해 줌(6,30-44; 사천명의 기적 8:1-10)

이 잔치는 모든 이가 똑같은 음식을 나눠 먹고 있으며 모든 이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음.

공동체와 함께 하는 식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과 봉사행위.

-행위를 통한 공간구분의 통합: “호수 저편으로 건너 가자”(let us go over the other side; 4,35-41); 건너가시는 예수가 "유령인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나다, 안심하라”(6:45-52) / 제자들의 건너감의 실패와 무능력

길 위에서(on the way): 예수의 정체성과 하나님 나라의 정체

-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7-30)

- 수난에 대한 예고(8,31-33)와 십자가의 길 선포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것이다...” 8,34-38)

-두 번째 수난 예고(9:30-32)

-길 위에 다툰 제자들과 하늘나라 시민의 자격(“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와 아버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9,33-37)

-공동체를 위한 권고: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9:50)
-작아짐의 요구: 부자청년/낙타와 바늘귀(10,17-27)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10,32-34)

-야고보와 요한이 영광의 자리를 요구함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 “사람의 아들”-섬기러 왔다/많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왔다. (10,35-45)

-바르티매오 소경의 치유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10,46-52): 예루살렘 입성이전에 눈뜸의 중요성이 드러남

앞 못보는 거지 바르티매오처럼 예수를 따르려면 먼저 볼 수 있는 눈을 치유받아야 한다. 그 치유를 위해서는 길옆이라도 서 있어야 한다.

-갈릴래아로 가는 길위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16,12-13)


2. 공간의 위치이동(transposition)의 숨은 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전위(轉位:trans-position): 익숙함과 낯설음, 안과 밖, 우리와 그들, 거룩함과 속됨이 뒤바뀜. 낯설음, 밖, 그들, 속됨이 거룩하신 분의 능력을 드러내는 장소로 바뀜. 익숙함, 안, 우리, 거룩함이 그리스도 사역에 방해꾼이 됨.
<예>

*사 람(대접받는 사람의 반전)

친척, 가족의 몰이해 -> 둘러앉은 이들이 내 형제자매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베드로: “사탄아물러가라” 떠나감, 배신 -> 구레네 시몬/백부장-“   이사람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느님의 사람들/전문가들의 거부와 증오 ->아함레츠(창녀, 세리, 이방인)와의 식사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11,12-14)

*장  소(거룩함의 반전)

회당(악령의 소리침)/예루살렘(예수와의 논쟁)/성전(장사/“강도의 소굴”)/휘장이 찢어짐 -> 집(치유, 응대)/ 갈릴리(변두리가 사역의 중심)/호수가, 길 위에서(하나님 나라의 비밀 가르침, 제자됨의 의미)

=>일상성, 비천함, 바닥, 가에서 하나님 자비의 현존


◈옛 가족/제자과 새 가족/제자의 위치 바꾸기: 밖(the outside)과 안(the inside)의 변형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3,20)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 보냈다. 둘러 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하고 말하였다. ... 둘러 앉은 사람을 돌아 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3,31-35)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키레네 시몬: 십자가를 들어준 제자(15,21-22)

-백인대장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멀리서 지켜본 여인들, 아리마대 요셉(15,33-47)


예수에게 익숙한 사람들-친척, 형제들, 제자들-의 몰이해와 대조하여 예수가 낯설은 자들-키레네 시몬, 백인대장-이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이해한 최초의 제자로 뒤바뀜

▷친척->가족들->둘러앉은 사람들 ->십자가를 진 자 ->십자가 사건의 목격자(이방인)


결  론: 끝에서의 새로운 시작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1,3)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겨 더 찢어지게 된다.”(2,21) ->갈아치움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 전하라”(16,7)

->가(the margin)에로 위치이동


▷빈들/광야 wilderness(시작) ->갈릴래아 -->예루살렘 ---> 갈릴래아(다시 시작함)


토론을 위한 질문


1. 마가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도전을 우리가 받고 있는가?

2. 기독자됨의 정체성은 “길을 열고” 길을 가는 삶에 있으며 그 길은 “타자”로의 건너감(crossing-over to the Others)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이다. 오늘날 타자는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건너가야 할까?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3. 마르코가 제기하는 제자직/공동체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






마르코 증언에 대한 통찰:

-편견과 차별은 특권과 권위의 문제에서 발생하며 이는 공간의 중심화하는 데서 가시화된다.

-예수 당시의 ‘하나님 전문가들’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폭력에 대해서는 모른 체함. 그 결과, 그들의 종교적 사고 방식은 사실상 그 당시의 지배와 억압의 사회생활을 정당화시킴. 성전의 상업화와 특권층화는 거룩의 가장 가증한 모습이다.

-예수가 비난하는 불순한 자/부정한 자란 나병환자가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가져오는 자,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가로막는 자이다.

-예수는 소름끼치는 병의 역겨움을 넘어서 구체적인 한 인간이 고통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고 있음. (사회가 구축한 차별장벽의 허물어짐-죄인/세리들과의 식탁교제에서 드러남)

-권위/힘은 버림받은 이들과의 일치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고 애쓰는 중에서 드러난다. 이는 지배의 힘(power-over)가 아니라 함께하고 연계하며 일치하는 힘(power-to; power-with)의 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샬롬의 나라의 구현은 ‘길을 열고’ ‘길을 가는’데서 드러난다. 이는 평화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과 같은 말이다.


마르코가 증언하는 신앙공동체 모습


-으뜸이 되는 자는 섬기는 자, 총애를 받는 자는 어린이처럼 힘없고 도움이 필요한 자

-하느님의 뜻=버림받은 자, 거절당한 자, 의지할 데 없는 자의 하느님이 됨

-온갖 이해관계, 친족관계, 자신의 안일무사, 자신의 의향보다 하느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형제자매됨의 공동체

-모든 이가 소중하며 모든 이가 평등

-체제에 대한 저항의 공동체= 권력, 금력, 종교권력을 통한 세력과 이기주의로써 약한 자를 지배하는 체제의 종식을 위한 전심전력의 저항

- 은총과 자비와 생명의 하느님의 힘/통치를 위해, 무지, 광포, 광신, 지배의 힘으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함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에 있어서 가치전복은 피할 수 없는 관건이다: 형제자매를 얻는 부, 관계를 얻는 부,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위한 헌신의 부

예수님은 주변에로 몰린 이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으며 이들에게 운명지워진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성서를 해석하는 우리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권력자들로부터 참혹한 공격을 받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로마제국은 맹수나 다름없었다. 오늘날에는 그 같은 제국들(소비주의, 이념간의 갈등, 세계화의 그늘)을 호의적으로 인정하면서 성서를 연구하고 있다. 성서연구가들은 우리 시대의 바로나 네로로부터 이상하리만치 고통을 받지 않고 있다.


그토록 철저히 예수를 따름으로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예전에 우리가 향유하던 다른 방식으로 가족과 재산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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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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