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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성서학세미나로 초대하며

 

평화형성(peacemaking)은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자 특히 구약의 메시야에서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로 전환되는 초대교회의 신적 체험의 근본 표증이다. 복음(기쁜 소식)의 핵심 주제이면서도 지난 기독교 주류 신앙에서 잊혀져 간과된(missing) 복음이기도 하다(감히 말하건대 그렇다).

 

2017년 사순절을 맞이하여,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아니오에 대한 것은 있었지만 에 대해 철저한 전환이 없었던 그간의 개신교 상황에 대해 성서기자들이 말한 복음의 능력에 대해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금년부터 6학년 나이에 들어서면서 공적 발언으로서 평화에 대한 나의 증언을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으로서 평화는 윤리적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론적이고도 존재론적이며 사회정치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인식과, 실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어떤 사회와 누구와 더불어 있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정치적 비전에 대한 삶의 열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식-실재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은 또한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향한 행동을 할 것인지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평화성서학세미나는 최근 수년간 성서읽기를 통해 나에게 일어난 경험처럼, 기존의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대한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낯설음과 충격 그리고 심장을 찌르는 아픔, 그리고 빛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열망이 일어나기를 돕고자 제시되는, 텍스트를 통한 영적 탐구의 자기 생을 읽기이다.

즐겨 인용하던 아인슈타인의 말인 제정신이 아님(insanity)이란 유사한 일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가 무자각적 무능력의 상태에 있는 현재의 자기 신앙에 적용될 수 있다면, 이 평화성서학세미나는 그리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적 이해의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자기 삶에 있어서 영혼의 정직성과 신실성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미나는 기존의 기독교 방식에 너무나 익숙하고 안전하게 사는 소위 문화적 기독교인들에게 정말 낯설은 방식으로 다가오는, 그러나 전혀 인식하지 못한 엠마오의 길에서 만나는 그리스도, 우리의 영적인 밤에 텍스트라는 떡을 떼며 눈이 열려 알아보는기회를 갖고자 마련된 실존적 접근방식으로서 영혼의 세미나이다.

지금 본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눈멀음의 경험을 줄 수도 있는 이 세미나를 통해 나는 감히 확언하거니와 은총을 통한 치유와 갱생이 다 늦고 생활패턴이 굳어진 나이에도 가능함을 믿는다. 그것이 밤의 경험을 한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은 이유이고, 삶을 탕진한 둘째 아들의 그제서야의 경험이며, 폭력의 통치에 익숙한 로마 백부장이 십자가의 한 인물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고 한 갱생의 고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의 열정이 사실은 신을 괴롭힌일생임을 자각한 바울이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거꾸로 떨어져 눈이 뜨인 것처럼, 이 세미나는 참석자인 그대가 안전한 발판이라 생각한 것이 다시 무너지는 통증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위험한 세미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환영과 눈멀음에 살아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이는 나의 신앙적 신념에서가 아니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성서의 메시지가 주는 충격에 따라서- 그간의 보낸 익숙한 시간에 대한 쓰나쓴 고통일 수도 있지만, 이 사순절을 통해 생명, 기쁨, 정의, 평화라는 부활의 근본 사건을 경험하는 통과제의가 될 수도 있다.

 

종결하면서, 내가 감히 평화성서학이란 주제를 내 세우는 것은 내가 그런 단계에 도달한 인간이라기보다는 내가 그러기를 바라는 나의 열정을 붙들어 매려는 뜻이요, 이제 6학년 나이로써 공적인 가치영역에 뛰어들어 발언하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자로써의 나를 증언하라명령에 대한 출사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간디가 말한 진리에로의 실험에로 우리 영혼을 초대하는 결정적인(카이로스적인) 시간을 나누는 만찬(feast)의 자리이기도 하다.

 

마틴 루터의 저항(95개조의 아니오’)의 실패는 오늘 우리의 사회적 상황인 세월호-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상황에서 단순한 아니오를 넘어선 그 무엇인가에 대한 로의 부름을 듣게 된다. 평화는 이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생수가 될 수 있다는게 비폭력실천가로서의 나의 비전이자 이 시간을 마련하는 나의 동기이다. 결국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열정에 대해 재정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면의 열정과 시대의 굶주림이 만날 수 있는 심장의 공간으로서 평화성서학세미나 시간이 주어지길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일시: 2017.3.7.()-10.() 오후 7-9시 반

장소: 동그라미와 네모 (광명시 철산동 509-267, 서빈빌딩 503, 철산역 10분도보)

내용과 등록 안내:

https://docs.google.com/forms/d/1TOpi01IYtx9Xd2q0mTaoWn7VcGU7OZQbWbCA3Kfbk5Q/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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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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