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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 제자직의 근본수행으로서 평화

                                                                        파일 받기마태복음. 산상수훈의 분석표.hwp
(이 글은 감신대 "기독교와 평화운동"에 대한 수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일부 소개이다)




마태복음에 있어 평화의 문제는 강의실에서 설명했듯이 그리 호락호락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적인"(revolutionary- Yoder의 말) 실천이 내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여러 면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두가지만 그 예로 들어보자.


1. '하나님의 아들"의 사용이 어디에,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지를 눈여겨 보라.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Blessed are the peacemakers)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44-45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으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5:9절은 다른 7가지 축복이 천국의 상황과 선물에 대한 것이지만 이것은 신분(identity)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약속에 대한 것이지만 5:44-45은 그 약속의 실천(praxis)에 있어서 동일한 신분의 행위(behaviors)와 연결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이자, 이를 더욱 구체화하자면 "적 사랑, 박해자를 위한 기도"로 표출된다.

이것은 예수 당시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있어서 황제들에게 붙여준 칭호로서 "하나님 아들"에 대한 전복적인 (subvertive)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를 따르는 마태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고백하는 거룩에 이르는 길과 샬롬의 통치의 도래에 있어서 자신들이 누구가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정체성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의 발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단순히 신분귀속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가 어떠함나타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통해 그 아버지가 어떠한 분인가를 보여준다. 이는 곧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곧 "펴화의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하나님의아들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자기 삶으로 보여준다.


이는 개념과 지성화의 문제, 교리의 정통성-옳은 믿음-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였고 예수는 그들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했을 때 바로 '거룩의 울타리를 전체 백성에게 둘러 치는" 제의적 공동체의 지향성을 넘어서 '화해와 평화"의 공동체 (소금/빛, 예물을 드리기전에 화해하라, 듣고 실천하는 자로서 반석위에 세운 집의 비유, 아버지의 뜻의 지상에서의 실현과 용서의 중요성 등)로서 비폭력적인 평화실천을 강조한 이유이다.


2.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한 산상수훈의 공간배치는 평화의 수행이 마태 공동체의 근본이었음을 보여준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평화의 근본적인 통찰이자 변혁의 근본적인 힘이다.


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제국적이고 군사적인 통치자로서 '다윗의 아들'의 적의 징벌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를 마태는 비폭력적이고 자비로운 '다윗의 아들"로서 변형시킨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왕들이 추구하는 "권력, 기적, 물질적 안정"에 대한 유혹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왕-이거든"에 대한 물리침이었고, 목자의 이미지를 통해 군사적인 영향력을 제거한 마태의 예수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것은 첨부한 파일에서 보듯이 성막 곧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심의 표증에 대한 확인에 있어서 산상수훈의 배치구조에 대한 것이다. 마태의 산상수훈 5장-7장의 구조는 병렬댓구법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그 의미를 강화하고 이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주기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성막뜰->성소->지성소->언약궤->지성소->성소->성막뜰의 과정속에서 산상수훈을 대입하여 보면 확연히 무엇이 "거룩한 분을 만나는 길"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성소부분인 5:21-48 및 병렬댓귀절인 6:19-7:11이 화해와 단순히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이 지상재물로서의 화해 실천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라"-이라는 사회적 실천이 성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소에 해당하는 산상수훈인 6:1-6 그리고 병렬댓귀절 6:16-18이 "은밀한 실천"으로서 구제, 기도, 금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은밀한 이 지상에서의 실천의 핵심속에 언약궤의 부분인 "주기도"가 존재한다. 하나님의 법궤로서 거룩하고 자비로운 그분의 현존을 알리는 이 법괘로서 주기도는 "우리 아버지"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 이라는 하나님의 신분과 그의 일에 대한 것과 그리고 "죄의 용서,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생활실천적인 면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서 모두의 평등함과 따라서 그분의 자녀됨이라는 비상하계급적인 신분됨과 이 지상에서의 평화의 실천(뜻의 구현, 용서, 시험과 악에서의 보호)에 대한 의지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이어서 용서가 법궤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신다"


여기서 보여지는 마태 공동체의 제자직에 대한 이미지는 놀랍게도 단순히 거룩한 분을 예배하는 제의적 공동체가 아니다. 일상의 갈등과 폭력에서 강력한 비폭력 평화실천을 하는 실천적인 제자직이다. 이것이 샬롬의 통치의 도래에 대한 확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개인 생활과 공동체에서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헤롯이 만든 돌로 만든 성전의 제의의식에 기초를 둔 '거룩함에로의 길'을 넘어서 샬롬의 통치로서 삶과 그 샬롬의 실천가로서 자기 신분-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정체성은 서로 이어져 있고 이는 생활을 통해 거룩한 분을 드러내는 길로서 표현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길은 직접적인 제의-"신께 예물을 드림"-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길은 없다. 오직 주의 제자로서 자신의 선한 행실이 남에게 보여져서 그들이 직접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간접적인" 방법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마태 공동체가 인식한 거룩한 하나님께 이르는 새로운 통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당시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나 목회자들 심지어는 신학자들 조차도 놓치고 있는 혁명적인 인식인 것이다.

질문:  

1. 어떻게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지금까지의 가르침에 들어오면서 얼마나 편안해 하고 있었는가?

   과연 그 편안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2. 2천년전 신화적 시대에 있어 화해와 생활실천이 거룩에 가는 길이라는  유대교내의 이 철저한 개혁주의 운동아-초기에는 분리된 기독교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말 메노나이트 성서윤리학자인 요더의 말처럼 '혁명적인" 인식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에 당신은 얼마나 충격 혹은 통찰을 받고 있는가?


3. 무엇이 이러한 마태 공동체의 예수사건에 대한 증언에 우리 눈을 멀게 만들었는가? 어떤 장애들이 있어 이를 우리가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가?


2010.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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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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