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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을 위한 비폭력 영성과 실천

                                           맞서 싸운 상대가 천사로 바꿔지다


참조: 창 32: 23-32

기독교내의 비폭력 평화운동에 있어서 역사상 이루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의 중심에는 내가 갈등하는 상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비폭력은 단순히 갈등과 대립을 하는 문제를 싸우지 않고 타협하여 좋게 끝나는 방식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갈등과 대립의 불일치에 대한 피상적인 해결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고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피상적인 해결의 방식이었다 함은 그 어떤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좋아함과 싫어함의 판단에 따라 쌍방이 얼마나 정당한 지 혹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주지해 주고 상대의 승복을 받아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례를 들어보자. 여기 한 부부가 있다. 둘이는 그간 20년이 되는 결혼생활에서 두 자식을 대학에 보낼 때까지는 그동안의 갈등은 그런대로 잘 봉합이 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떨어져 나가 살게 되고, 아내가 이제 자식의 양육에 대한 노력에서 자기 생에 대한 자기 성장에 신경을 쓰면서 사이가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자기 성장에 대한 홀로서기라는 구실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실망스러움이 폭발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내는 그동안 경제권이 없고 자녀양육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의 숙명에 의해 '마땅히 누려야 할 자기의 몫'을 오랜 세월 희생하고 살아왔다는 자각으로 인해 남편의 강요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쌓여 저항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급속히 식어지고 대화는 대게가 "...을 왜 안했어" "그건 당신 잘못이야" "당신은 ...한 것에 있어 정당하지 않아" "당신은 당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래 한 번 따져보자,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책임/잘못인지" 이렇게 대부분의 대화가 이런 형태로 진행되어가면서 쌍방은 말 안하고 말기, 고통을 주는 행동을 상대에게 해서 불만족한 상태를 알리기, 상대의 잘못을 논리적으로 논박하기로 상태가 악화되어간다. 결국은 애 때문에 혹은 미래에 대한 독립의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지 않아 그냥 살고 있지만 진정한 소통은 끊어져 각자의 삶을 살되 한 공간에 있게 되는 경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불만족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 혹은 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 부음으로써 나온 결과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 피상적인 해결책인 등 돌려 서로 안보기, 비난하여 상대방의 입을 막기, 서로 건드리지 않고 자기-몫, 자기-생활 챙기기, 네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도 그대로 행한다는 상황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일이 이쯤 되면 상대방이 야속해지고 결국은 상대방은 배우자로부터 '낯선 자' 혹은 더 나아가 '적'의 이미지로 굳혀지면서 서로 맞지 않은 성격의 차이에 대한 신념이 강화되면서 속으로는 조용한 이별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본질은 '자기만 아는'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 소통하는 방식과 상대를 보는 인식에 있다. 자연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차이와 다름은 생을 풍성하게 한다. 차이와 다름은 갈등의 원인이 아니다. 초점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주목하기가 아니라 '넌 ..해야만 해'라는 상대의 잘못의 발견과 교정하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자신들의 관계를 결투의 공간으로 전체를 소모하는 데서 일어나는 비자연스러운 관계의 자연스러운 결과를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쌍방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욕구인 상대에게 주기/기여하기를 상실하고 투쟁자가 되는 것이다.

비폭력 영성과 그 실천에 대한 생활적용에 있어서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통찰을 가져다 준다. 둘째로 태어난 그는 사회적 약자로서 '자기의 몫'을 찾아 쟁취하는 데 놀라운 수완과 성실성을 발휘하였지만 그에 대한 뒤따라오는 결과는 갈등과 반목, 시기심을 자기 가족내에서와 다른 그룹이나 부족들에게 일으켰다. 교훈은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해 보이는 그 주장이 자신이 기대한 결과와 다른 것을 가져온다는 것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자기 몫은 챙겼지만 관계는 나빠지고 그래서 자기의 안전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본문의 예는 몇 가지 새로운 다른 가능성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첫째, 비폭력적인 삶은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긴장을 일으킨다. 그것은 일이 해결되기 위해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상대방과 전심을 다해 씨름한다. 얍뽁 나루에서 그는 밤새 싸우며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쌍방이 인식하게 하고 그것에 주목하며 서로 그에 대해 응답을 하도록 요청한다.

둘째, 갈등과 싸움의 대상이 '적대자'가 아니라 결국은 '천사'로 노출이 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싸움은 상대방을 쳐 없애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밤새도록 싸움을 통해 그의 '선/진리'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논리로 맞서서 상대의 정당성을 파괴시키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상대가 진정으로 본래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긍정적인 선함을 결국은 드러내도록 돕는 것이다. 상대는 '천사'가 된다. 그럼으로 나의 정체성도 바뀐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자신에 대한 관점도 바뀐다. 

셋째, '겨루어 이김'의 궁극적 목적은 상대의 축복(blessing)을 얻어냄에 있다. 상대방이 적대자로 남지 않고 더 넓은 진리에 서 있음으로 인해 상대가 축복을 주는 신뢰와 우정이 형성된다. 이것이 화해의 근본이다. 반목과 적대적인 관계가 바뀌어 상대방이 내 삶을 인정하고 축복해 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그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떠올랐다"(32)

그가 겪은 얍복나루에서의 적대자가 천사로 바뀐 체험을 통해 그는 외모로는 더욱 못난 자가 되었다. 자기 몫 챙기기에 수완이 빨라서 누구보다 길을 앞서 나갔던 그는 가장 뒤쳐진 자가 되고 세상을 그토록 빠른 걸음으로 걷기 보다는 느리게 걷는 사람으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자기 생에 있어서 '해가 떠올라' 그 빛을 쬐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삶에 내리쬐는 아침햇살의 기운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갖음'에서 '누림'의 감격을 얻게 된다. 환도뼈의 상처(심각한 갈등의 경험)는 이제 새로운 경지를 드러낸다. "당신의 결점은 영광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그곳은 빛이 당신에게로 들어가는 곳이다." 이제부터는 어느 곳도 자신이 밟는 공간마다 그리고 관계마다 그는 '브니엘(신을 대면하기)'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의 일생도 선물을 주는 자로 바뀌게 된다:

"...형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하느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잘 돌보아 주셔서 제 살림은 이렇게 넉넉하답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선물을 받아 주셔야 하겠습니다"(33:10-11)

'자신의 몫'을 챙기는 자가 '선물을 주는 자'로 바뀌면서 그의 안전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지고 생은 더욱 풍성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비폭력의 실천은 단순히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변화시키고-천사로 바꾸기- 자신과 상대도 '선물을 주는 자'로 바뀌게 만든다. 이렇게 변화된 것은 상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밤새도록 붙잡고 놓치 않고 '겨루어' 나와 상대안에 있는 선/진리이 교류하고 더큰 선/진리로 통합하여 끝까지 드러내게 된 결과이다. 에너지와 시간을 비난하기와 정당한 몫챙기기에서 상대의 선/진리를 드러내는데로 전심으로 투쟁함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거기에는 이제 선물을 주고 받는 축복주기(blessing)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20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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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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