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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학 및 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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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진행중인 서원초의 비극에 대한 성찰


지난 5월 중순 서초의 서원초 초등3학년 급우들사이에 일어난 일이 이제는 각종 언론사와 인터넷 까지 방영될 정도로 심각한  여론몰이가 일어나고 있다. 학교폭력자치위의 결정후 사건은 결국은 서울시교육감의 입장표명,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터넷에서 자기 의견이 공개되는 특이한 상황에서 각 자는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상황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사건의 영향을 받은 당사자가 자폐라는 특수교육 대상자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교폭력의 상황을 넘어 진실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6월 말의 상황은  언론과 일반인에 호소하는 양측의 입장들이 공개적으로 -사건에 영향을 받은 측은 사진까지- 올라오고 지지층을 끌어오면서 이에 대한 지지를 확대재생산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이 비극인 것은 4년동안 함께 양쪽 부모(행위자로 지목된 한 학생의 부모와 피해자로 주장하는 부모-학교폭력은 일반사법의 가해피해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다)가 친구로 잘 지내왔다는 것과 사실진위관계가 이젠 정치적(일반인의 의견구하기) 성격으로 간다는 점만 아니다.  문제해결과 재심청구에서 법적인 강한 처벌과 재발방지(행위로 영향받은측) 혹은 사실이상의 진술( 행위자측)이 맞서고 재심청구까지 올라가 있지만 나의 학폭위의 사건심리의 경험을 볼 때 이러한 옳고그름의 논리와 법적소송의 결과가 양쪽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도움이 안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문제를 다룰 때 아이러니는 당사자의 심각한 입장(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한 주장과 의견)이 서로 부딪쳐 상호 비난이 일어날 때 학폭법 조치 9개항(서면사과부터 퇴학)이 별다른 유효한 작동을 못한다는 점이고, 당사자들은 본래의 의도와 일의 결과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없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본래의 의도가 아이의 안전, 친밀한 관계, 돌봄, 재발방지, 고통에 대한 상대방으로부터의 이해 등일 것이겠지만 지금 표면으로 나오는 비난과 고소의 결과는 서로에 대한 고통부과와 상처뿐인 승리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정당성에 기초한 억울함과 분노가 -한편 이해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도를 돌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어서 심판자의 법적 조치의 결과는 당사자들-갈등 당사자들인 초등3년생들, 학부모, 교사,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별다른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반의 학부모들간의 소통의 창인 밴드에서 의사소통은 얼어붙어 있고, 당사자들만 아니라 같은 반의 다른 부모들이 이에 대해 피해보지 않으려는 염려가 고조되어 있다. 어느 일방의 승리라면 상대방은 끝까지 법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확대할 방법들을 찾을 것이어서 해당 학생들과 부모만 아니라 함께 반에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관계를 조심할 상황이 되어 당사자들은 가을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더 힘든 상황으로 바꿔질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비극은 이제 주변의 아는 사람과 지인들은 특히 반의 다른 친구들이나 학부모들은 입과 행동을 조심하여서 양쪽 당사자들 가까이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항상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며 조심스러운 관계를 설정할 것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법적조치와 비난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계속되는 소송 사건에서 학생과 부모들이 불려나가 에너지, 시간, 비용을 허비하고 오리혀 굳어진 관계의 구조속에 초등학교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여 "회복적 대화모임"을 다시 원점으로부터 시도해 보는 것이다. 관련자와 영향받은 사람들이 안전한 대화의 공간안에서 각자 자신이 이 사건으로 인해 어떤 관점과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존중의 자세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서로 '함께' 듣는 방식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현재는 모두가 말하는 사람으로 있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듣지 않기에 이해의 가능성도 없고 따라서 해결할 가능성도 나타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한것으로부터 눈을 돌려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 다시 보지 않으면,  이기려는 싸움에선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엄청난 시간, 노력, 비용, 그리고 관계의 파괴, 더 큰 상처를 받고나서야 '의심'의 내면의 목소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분노와 억울함이 이런 '의심'의 내면의 목소리까지 짖누른다, 정당성의 이름으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비록 그것이 갈등이나 고통, 손상이나 파괴라 할지라도 문제가 아닌 역설로 다가가서 주목하고 그 근저에 무슨 진실이 있는지 들을 때 분리와 상처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건 오직 당사자들이 선택의 몫이다.  허상을 보아야 하는 건, 전문가와 책임자가 할 수 있는 몫이 별로 없다는 게 지금까지 학교폭력사건에 개입하면서 느낀 결론이다. 뭔가 하는 것처럼 서류도 만들고 의견진술도 듣고 하지만 강제적인 법적 조치의 결과는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관계의 문제는 당사자들의 연결과 이해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단순한 작동원리때문이다.


학교폭력의 문제만큼은 누가 옳고 그른가의 잣대로 다가가기 어렵다. 사건이 터지면 누가 잘못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필요와 지원이 필요한지로 다가가야 한다. 초등3학년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일어난 고통을 서로 돌보고 서로 대화하고 존중의 약속을 내어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윈윈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다시 배우고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풀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갈등에 대해 앞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맞서거나 얼어붙기로 혹은 피하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들은 방관자로 있는 정치적 훈련('입을 다물고 모른체 해야지. 불똥이 나에게도 떨어질지 모르니까')을 이 사건을 통해 배울 것이다.


지금의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결국 방학동안 애들이 뿔뿔히 흩어져 있다가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될 때 당사자를 제외한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학교가서 000와 ***를 만날 때 -이번 갈등당사자들을 만날 때-조심해서 만나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왜 자기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조심스러워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부담스런 짐으로 받고 자기 행동을 살펴야 한다. 그 아이들도 자기 내면의 진실의 목소리보다는 어른들의 당부의 말에 이끌려 어른들이 듣고 싶어하는 행동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그래서 모두는 정치적 학습을 하게 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어른들의 권위와 그들의 요구를 잘 따라야 내가 편하다는 학습을 ... 그래서 결국은 -이런 시나리오는 가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희생자가 된다. 본인들은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지만 결국 얻는 것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비극인 것은 내 주변에 뭔가 일어났을 때 내가 혹은 우리가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의 실천과 학습을 개인이나 학습공동체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교과-국어, 영어, 사회, 도덕...-는 가능하지만 이런 갈등문제가 나타나면 아무도 '건설적인' 학습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조심하라는 당부를 받고, 교사들은 얼어붙어 있고, 당국자들(교육청, 경찰)은  제복을 입고 뭔가 하는 것 같은 데 실상 갈라놓은 것과 벌금 이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희생자의 사이클이 형성되고 물위의 파문처럼 모두에게 번져나간다. 이렇게 가해-피해라는 논리의 덫에서 모두가 희생자가되는 학습 사이클이 '당연하고 정상적으로' 이해되는 학습효과가 전체로 번지게 된다.   

 

나의 주장은 간단하다. 아무리 소송이 걸려있고 소송의 결과가 어떠하든 다시 만나 이야기할 기회는 존재한다.(단 이때는 대화를 도와줄 진행자가 필요하다). 문제가 있는 당사자와 공동체는 충분히 지혜도 그나 그 공동체가 지니고 있다. 지금은 해결책이 안보이는 모호함이지만 대화의 과정을 신뢰하고 진행하게 되면 지성은 그 과정속에서 발생한다. 각자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공통적으로 아쉬운 것들인지 출현하게 된다. 그 공통적으로 이해된 소중한 것을 기반으로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통로의 구체적인(기꺼이 그리고 측정가능한) 제안을 만들어 실행한다. 나중에 다시 모여 바람직한 것에 대한 새로운 공동창조를 계속적으로 한다.   (20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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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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