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평화교육학 및 SEL

글 수 108

존엄과 존중을 통한 평화·인권 교육의 재설정과 주류화하기

 

박성용 대표/비폭력평화물결

 

사람들이 그들의 최선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도우라

그리고 그들이 이미 최선의 모습이 된 것처럼 대하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우리의 비참한 현실

 

성인과 청소년의 일상의 삶 모든 구석에서 억압과 지배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신념에서, 정서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인 면에서 그리고 가정, 학교 및 지역사회와 사이버 공간에서 현실로 작동된다. 비난, 무시, 욕설 등의 모욕적인 언동들과 갈등에 대한 폭력적 대응의 수많은 현상들은 상처, 결별, 우울증, 분노, 공격의 반응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결과가 우리 자신과 타인을 훼손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교육현실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다면 201112월 대구여중생자살사건으로 크게 이슈화된 학교폭력의 현실과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침몰에 따른 300여명의 학생의 죽음의 충격이다. 한 시간 반 동안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선과 헬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의해 탈출하지 못한 비극적 참사는 지배와 억압의 현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공공 시스템과 교육제도의 파산이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자가 되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말하고 듣는 언어가 지배와 억압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자성과 함께 깊은 혼란과 낙담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기술과 정보의 놀라운 하이테크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오히려 문명의 얼굴을 한 야만성을 곳곳에서 경험한다. 해체되는 가정들, 그리고 학교에 적응 못하는 학생들, 사회적 돌봄과 안전망에서 벗어난 낙심하는 사람들과 소수자들. 힘과 효율성이라는 문명의 고층건물이 높이 올라가는 만큼 그만치의 어두운 억압, 지배 그리고 폭력의 그림자가 커지고 있다. 이 그림자의 정체는 서로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대하기이다.

 

우리의 비참한 현실의 핵심 문제로서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대하기는 그 자체의 인식론과 윤리적 실천 그리고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이 사회를 얽맨다. (영향력, 지위, 경제력, 명예)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제도를 만들어 유지해야 하는 지에 대해 그 위력을 발휘한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이 힘의 자기장속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현실이 들려지거나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의 현실이 들려지거나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능동적인 관계도 맺어질 수 없다. 오히려 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들은 때로는 열등한혹은 위험한존재로 타자화되어 통제와 교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타자화되는 순간 그 타자에 대한 태도와 행동은 정당화된다. ‘우리 대 그들의 논리를 통해 그들에 속한 이들은 경시되고 또한 배제되는 일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그들에 대한 관계가 비틀어지거나 단절되면서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되어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진 이를 누군가 다시 언급한다면 우리는 불편해지게 된다.

 

평화교육자, 인권활동가 혹은 회복적 실천가가 이런 불편한 일을 언급한다면 그것 자체로 어느 정도는 선한 일이겠지만 정상적인것으로 대중에게 다가오지는 않게 된다. 그것은 오직 사회의 주변(the margin)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 중심(the center)로 오는 것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선한 일을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감동을 받을 수는 있어도 오직 주변에서만 일어나게 하고 중심에서 일은 우리가 힘을 발휘하도록 하자는 논리가 존재한다. “인생이란 현실이다.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서로에게 확인하면서.

 

 

일상에서 존엄과 존중의 재중심화

 

이 비참한 현실과 그것의 반복되는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해 그간의 평화교육, 인권교육 그리고 회복적 생활교육(restorative discipline)은 분명한 공통 근거를 제공한다. 그것은 만물과 인간의 존엄(dignity)과 이를 향한 존중(respect)의 철저한 인식과 그 실천이다. 존엄은 살아있는 존재의 본래적 가치와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며 존중은 그 본래적 존엄에 대한 윤리적인 태도이자 응답하는 행위이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평화교육, 인권교육 그리고 회복적 생활교육이 초점을 두고 있는 쟁투해서 얻어야 할 권리와 책임, 불의에 대한 비난과 분노, 도덕적 당위, 저항으로서의 세계이해(world literacy)라는 기존의 해방 교육을 넘어 좀더 본질적인 것에로의 해방 교육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존엄과 존중이라는 본질적인 삶의 경험에 기반을 한 긍정적인 교육학적 접근방식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어둡고 컴컴한 지하방에 살면서 악취를 제거하기위해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곰팡이가 쓸면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쥐나 다른 징그러운 곤충을 막을 방법 등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이런 인식들의 필요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삶의 기쁨을 앗아가며, 사는 공간을 언제나 힘들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 어둡고 컴컴한 지하방에 햇빛과 통풍이 들도록 하게 하면 어떨까? 약간의 해충은 들어올 순 있어도 앞에서 하는 방식보다는 좀더 노력이 덜 들어가고 삶을 더 음미하며 거주공간에 대한 편안함과 안전에 대한 감각이 더 일어나지 않겠는가?

 

어둡고 컴컴한 지하방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은 햇살과 통풍이 들도록 하는 방식으로서 존엄과 존중에 대한 감각이 우리의 일상공간에 들어오도록 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일이 절실하고, 결과가 더 효과있는 방식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비참함의 증상들을- 상처, 분리/소외, 비난, 분노, 증오, 폭력 그리고 제도적 불의 등- 살펴보면 그 핵심은 존엄과 존중에 대한 결핍에서 일어나는 것 아닌가?

 

존엄과 존중에 대한 결핍이 고통을 자아내는 습관적 반응을 일으키고 고통의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공격하기(Fight), 도망치기(Flight) 그리고 얼어붙어 굴종하기(Frozen)라는 3 F의 방식으로 서로의 관계를 해치거나 왜곡시켜 고통을 가중시킨다. 존엄에 대한 가치가 위협받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누구나 불안, 수치심, 굴욕감, 두려움의 감정이 나타나며 이런 상황에서는 그 결과에 대한 비용(손해, damage)을 생각하지 않고 이를 막거나 피하기 위해 그 무슨 일이라도 하게 만든다. 이성적인 것이 작동을 멈추어 본래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집안일 분담에 대한 갈등, 학술적인 토론에서 격렬한 논쟁 혹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두 정당원이 마을 호프집에서 논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존엄과 존중을 잃을 때, 이들 갈등상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악화되어진다. 첫째 당사자들이 다루는 현안(주제)에 대한 명료한 이해로부터 멀어진다.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상대방의 인격을 비난하게 되어 주제이탈이 생긴다. 둘째,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다. 내용중심에 대한 비난언어로 인해 둘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관계가 인식의 지평에서 사라진다. 셋째 자아존중감이 현격히 떨어진다. 논쟁은 타인비난 곧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동시에 자아정체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세 가지에 대한 악화된 영향은 바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상호작용으로서 존중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상황이다. 일상에서의 대화와 교육에서 가르침과 배움은 바로 이 세 가지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 첫째, 어떻게 학습공동체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분별하고, 그 다루고자 하는 이슈에 대해 명료하게 이해하여 접근해 갈 수 있는가? 둘째 다루고자 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서로가 어떻게 신뢰의 관계를 갖고 함께 생각(thinking with’하고 함께 일(do with)’을 해 나갈 수 있는가? 셋째, 다루는 주제와 타자와의 관계로 인해 자아정체성이 어떻게 배움과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존엄과 존중은 이런 면에서 단순히 친밀한 관계의 형성만 아니라 이해에 대한 이성적 작동을 강화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다. 존엄과 존중이 없을 때 우리의 차거운 지성은 객관적이고 수단적인 도구로 전락하여, 상호관계와 전체성에 의존하여 있는 생명운동의 현상들을 조각내고, 추상화시켜 영혼의 내적 음성을 듣지 못하고, 타자의 고통에도 눈감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전체적 감각을 잃게 되고 사물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부터 수단화와 도구화로 대상을 전락시키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비참한 현실의 원인이다.

 

 

존엄과 존중의 일상화와 가르침/배움에 접목하기

 

존엄과 존중이 실제로 도덕교과, 평화교육, 인권교육 그리고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핵심주제로 그리고 재성찰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지금까지 어둡고 캄캄한 지하실에 대한 저항과 비판으로서의 교육이 햇살과 통풍으로서 존엄과 존중을 핵심주제로 제대로 생각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내용중심의 지적인 인지교육으로 전달되었지 전달되는 과정-말하고 듣기, 생각하기, 결정하기, 행동하기-에 존엄과 존중이 지켜지는 방식을 놓쳤다는 점이다. 셋째 교과과목시간에만 전달되었지 교육현장의 일상에 골고루 배이지 못해서 살아있는 현실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주제이면서 존엄과 존중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평화교육·인권교육·회복적생활교육에서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데에는 삶의 리얼리티는 그 자체가 상호의존 및 상호연결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존엄과 존중의 근본적인 공감과 태도없이는 제대로 그 리얼리티와 교제를 할 수 없고 따라서 그 리얼리티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부터 나온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것을 넘어 온 존재로 참여하는 것이며 그 참여가 침해나 공격 혹은 점유가 아니라 대화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리얼리티의 전체성에 기여하는 것이 되려면, 존엄과 존중이외에는 사물과 사건의 진실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인권·회복적실천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주장들이 그리고 교육자의 가르치는 태도가 실제로 학습자에게 강요, 침해, 혹은 지배의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라는 격언이 진실이라면 존엄과 존중이 없이는 평화는 살아있는 실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진실이다. 왜냐하면 리얼리티는 그 본성상 공동체적인 성격이라면, 그리고 리얼리티 인식에 있어서 관찰자가 관찰대상에 함께 연결되는 것이라면, 존엄과 존중은 필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존엄과 존중은 단순히 윤리적인 성격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본성, 곧 리얼리티 그 자체의 요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퀘이커 교육사상가인 파커 파머(Parker Palmer)가 말한 가르침/배움은 진리가 소통되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는 점에 우리가 동의한다면, 존엄과 존중은 그 자체가 진리에 대한 영혼의 내적인 성실성을 불러일으키고,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서로의 심리적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의 여지를 제공하게 된다. 그가 말한 모든 이에게 있는 내면의 교사가 교실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존엄과 존중은 사물과 사건, 관계와 상황을 온전하게 맞이하고 대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가슴의 인식론(the epistemology of the heart)의 토대가 된다. 단순히 사물의 실재(what it is)에 대한 연결만이 아니다. 또한 우리 생에서 발생하는 실수, 잘못, 손상, 이탈과 소외들은 모든 인간이 생의 모호성과 유한성 그리고 인간의 취약성(vulnerability)으로 인해 발생하며, 이것들은 오히려 치유, 회복, 화해, 그리고 자발적인 재통합을 통해 개인의 배움과 공동체 성장에로 가는 기회가 되게 허락한다.

 

 

존엄과 존중이 교실과 일상에서 실현되기

 

존엄과 존중이 우리의 일상에서 실현되는 데는 사물과 사건을 접하고 반응하는 데 있어 일어나는 생각, 느낌, 욕구, 행동의 4 요소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비롭게 듣기, 진실하게 말하기 그리고 상호 욕구에 기초한 행동을 하기로 실천한다. 왜냐하면 이 3요소가 실상 우리의 모든 활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자비롭게 듣기(compassionate listening)는 나의 판단과 해석을 잠시 보류하고 타자의 말걸어옴을 자기 전 존재로 공감하며 환대하는 것이다. 이는 타자의 - 그 타자가 사물, 사건, 관계, 상황 혹은 사람이든 간에 - 말걸어옴에 대해 그 표면적인 말 뒤의 잠재적인 의미와 의도에 대해 판단과 저항없이 자신의 가슴에서 울리도록 받아들인다. 이는 특히 설령 상대방이 비난으로 말한다 할지라도 듣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판단으로가 아니라 그 판단을 유보하며, 말하는 사람의 내면의 느낌과 실현하려는 욕구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고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하며 자기의 반응을 보류하며 주목하여 듣는 것을 포함한다. (환대하기, 유보하기, 주목하여 듣기)

 

진실하게 말하기(honest speaking)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정보의 교류와 옳고 그름의 판단이라는 지성을 가슴과 연결하여 영혼으로 말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말하고자 할 때 어떤 의도와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느낌인지를 말하는 데 포함한다. 영혼으로 말한다함은 진, , 미에 있어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판단으로서 진에 초점을 두는 일상적 언어행위와는 달리 사실()위에 의미()과 감동이라는 느낌()를 통합해서 말하는 훈련을 쌓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이란 뜻은 나의 말이 상대방을 향해 건너가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진실를 표현하는 나-진술어(I-statement)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 미를 통합하여 영혼으로 말하기, -진술어를 사용하기)

 

상호욕구에 기초하여 행동하기(mutual needs-based action)는 말하고 들음을 통해 드러난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것들은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가치들이다- 상호 동의를 통해 그 진실들을 최대한 실현하는 선택방법을 결정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사건의 옳고 그름의 타당성을 밝히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는 미래에 진실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을 실현하는 선택하기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더 이것은 누군가 더 옳은 사람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들에 의해 출현한 공동의 지혜가 자신들을 인도하도록 허락하는 것을 포함한다. (욕구와 가치들을 최대한 실현하기, 상호동의로 선택하기, 공동지혜에 의해 인도받기)

 

우리의 일상의 말하기와 듣기 곧 대화가 위의 3 가지 방식에 의해 인도될 수 있다면 존엄과 존중은 살아있는 실재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대화방식이 교실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은 바로 서클형태의 대화방식을 수업과 생활지도에 적용하는 것이다.

 

서클진행(circle process) 방식은 존엄과 존중의 가치로 약한 관계를 강화하고 깨진 관계를 회복하며, 공동체를 복구하는 데에서만 아니라 리얼리티에 -학습주제, 교사와 학생간 그리고 학생들간의 적절한 관계의 현존- 대한 온전한 응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클은 단순히 동그라미가 아니다. 그것은 존엄과 존중이 펼쳐나가는 평등, 교제, 연결, 일치, 나눔, 공감, 자발성, 기여, 책임이행, 능력부여, 참여형 리더십이라는 다른 가치들을 초대하고 이것들을 실현시킨다.

 

서클은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상황, 위기, 도전적인 이슈, 공동체구축 등에 대해 참여자 모두가 함께 생각하기(thinking with)’함께 행하기(do with)’의 방식으로 이것들을 융통성 있게 다룬다. 필자가 적용해본 서클유형들은 체크인/체크아웃 서클, 기획서클, 대화/이해 서클, 공동체성장 서클, 자치회의 서클, 문제해결 서클, 지지/배움 서클, 축하/애도 서클,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 평화감수성(AVP/HIPP) 서클 그리고 신뢰의 서클 등이다.

 

서클 진행자로서의 경험은 존엄과 존중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서클 진행과정에서 참여자들 스스로 개인과 타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타자의 심리적인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차이와 다양성이 주는 선물을 즐기며, 자기보호보다 보살핌과 어울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여 자신들의 지혜를 통해 기대이상의 만족한 결과들을 가져오는 신비를 목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해결 서클이나 회복적 서클의 독특성은 깊은 상처를 받거나 준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문제상황과 갈등을 전환하여 화해하고, 이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서클에서는 특히 서로 적이미지(enemy-image)가 있는 당사자들이 존엄과 존중의 원칙을 지키며 대화할 때 스스로 기대하지 못한 신뢰와 협력으로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상호 만족스런 결과를 도출하는 비율도 85%가까이 된다. 배움에 있어서도 지지/대화/이해 서클은 동료들을 자원으로 당사자가 스스로 도전적인 상황, 문제상황, 위기에 대해 능력부여(empowerment)의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사실상 필자는 서클 진행방식이 존엄과 존중을 경험하고 그것의 놀라운 결과를 목도하는 데 있어 서클방식만큼 효용성있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러한 존엄과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서클진행방식으로 정체성 수용, 안전함, 공감, 인정, 공정함, 신뢰, 독립성, 책임성, 공동체성, 갈등에 대한 비폭력적인 대응, 집단의 협력적 의사결정 등이 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나오며

 

평화교육, 인권교육 그리고 회복적 생활교육 등 민주시민을 키우는 이들 교육의 핵심으로서 존엄과 존중이 오래된 주제이면서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정체성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고, 참혹한 현실로서 지금 시대의 긴급한 요청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교육에 있어서 리얼리티를 접하는 데 있어 핵심 사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지배와 억압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특히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존엄과 존중이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로 다시 자리매김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기존의 평화·인권·회복적실천에 관한 교육들은 책임과 권리의 저항적 측면이라는 어둡고 캄캄한 지하실을 청소하기에 급급해 햇살과 통풍이라는 존엄과 존중의 내용을 약화시키거나, 여러 내용전달에 머물러 존엄과 존중이 과정속에서 리얼리티로 펼치는 모델로 보여주기를 등한시하기도 하였다. 또는 교실의 커리큘럼 주제로 있지 일상에서 경험하며 사는 것을 어려워하는 점도 있었다.

 

존엄과 존중은 단순히 신뢰관계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아 정체성, 리얼리티에 대한 접근, 인간의 대화의 본성에 있어서 핵심이기 때문이고 이는 우리의 배움과 성장에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다시 존엄과 존중을 수업과 일상에 재주류화함에 있어서 그 실천으로 가능한 것은 일상에서 듣기, 말하기,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기에 적용하고, 서클을 통해 수업에 이를 구현함으로서 지배와 억압을 해체하고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존엄과 존중이 우리의 의식과 영혼의 핵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비폭력 실천가로서 평화훈련관련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청소년평화지킴이(HIPP),’ ‘비폭력대화(NVC)’ ‘비폭력대화중재(NVC-based Mediation)’ 회복적 서클(RC)’의 훈련가이며 '마음비추기및 서클 프로세스 등의 국제 모델들의 실천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2014.광명세계민주교육한마당(2014 IDEC). 2014.7.28./하안북초등학교 발표 글임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The Re-focusing and Main-streaming of Dignity and Respect into Education for Peace and Human Rights 평화세상 2014-07-28 12768
107 학교폭력, 현재 진행중인 서원초의 비극에 대한 성찰 평화세상 2015-07-07 2430
» 존엄과 존중을 통한 평화·인권 교육의 재설정과 주류화하기 평화세상 2014-07-28 3187
105 평화서클교회 나눔 자료-큰 기쁜 소식의 고지 (2013.12.15) 관리자 2013-12-15 3429
104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 “한반도 평화․통일에 관한 성명서” 전문 관리자 2013-11-12 3569
103 정전 60주년 통일교육의 문제점 그리고 그 향후 방향-통일안보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 메인즈 2013-08-08 4292
102 비폭력 평화훈련을 위한 나의 실험들 (기독교평화운동의 성찰과 분단 60년 이후의 과제) 메인즈 2013-07-05 3481
101 기독교 평화훈련의 현재 상황과 그 한계 메인즈 2013-07-05 3468
100 기독교평화운동의 성찰과 분단 60년 이후의 과제-향후 기독교평화(훈련)운동의 몇 가지 과제 메인즈 2013-07-05 3367
99 비폭력실천가/기독교화해사역자의 눈으로 보는 성서: 윤리적 응과응보를 변혁시키기 메인즈 2013-01-26 3381
98 평화훈련-변화의 출현을 위한 역동적 시민단체 조직 세우기 메인즈 2012-06-13 3161
97 비폭력평화훈련 - 평화로운 모임과 회의진행 방법 익히기 메인즈 2012-06-05 3302
96 종교간의 대화의 실천적 공통과제로서 생명평화운동 메인즈 2012-05-18 3341
95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민주시민윤리의 재성찰 -민주적인 시민역량을 위한 한 평화활동가의 성찰과 작은 시도 메인즈 2012-05-01 3532
94 평화훈련가 양성/ 청소년평화지킴이 HIPP 진행자 입문 워크숍 5월 12일(금)-14일(일) 안내 메인즈 2012-03-14 3189
93 비폭력의 힘-작은 희망의 징조들 메인즈 2012-03-05 3189
92 시민사회단체 실무자 능력강화 워크숍 메인즈 2012-02-01 3441
91 평화교육: 학문적 배움과 사회심리적 배움(SEL)간에 연결하기 메인즈 2011-09-29 3339
90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무용하고 통일염원에 장애가 된다-강정마을로 본 평화학강의?- 메인즈 2011-08-25 3358
89 평화 교육(SEL)- 사회적, 정서적 그리고 정치적 배움 메인즈 2011-07-21 3397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